에피소드 2: 모래시계 속의 모래

Posted in Magic Story on 2022년 8월 11일

By Langley Hyde

Langley Hyde's short stories have appeared in Podcastle, Terraform, Escape Pod, and several anthologies. Her novel, Highfell Grimoires, was named a Best Book of 2014 in SF/Fantasy/Horror by Publishers Weekly. She volunteers for the Escape Artists, is a member of Codex and SFWA, and she is an MFA candidate. Currently, Langley Hyde lives in the Pacific Northwest along with her partners and two children.

시간은 바위 사이에 내려앉은 모래알들보다도 더 느리게 흘러갔다. 미세한 입자들이 카른의 관절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어둠 속에 갇힌 채로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며칠, 아니 몇 주가 지난 것일까? 이미 몇 달이 놀라서 날아가는 작은 새처럼 지나가 버린 것이라면? 그보다도 더 긴 시간이 흘렀다면? 몇 년, 수십 년, 영겁의 시간—

아니, 그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을 터였다. 아무도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할 터였다. 그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최소한 조이라에게는 말했어야 했다. 아니면 자야에게라도. 그들에게 말했더라면 그들은 어디를 수색해야 할 지를 알았을 것이고, 자신을 구출해 주거나 피렉시아인들을 직접 볼 수 있었을 터였다.

그를 발견하는 사람이 피렉시아인들이라면? 그것은 아무도 그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보다 너 나쁜 일이 될 것인가? 그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혼자 기다려야 할 지도 몰랐다. 침묵 속에서.

모래가 흘러내렸다. 뭔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거친 돌에 발톱이 갈리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의 손에서 무거운 바위가 들어올려지면서, 손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안도감이 스쳐지나가면서, 공허한 우주보다도 더 강력한 고통이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손가락을 펼치면서, 그 작은 움직임의 자유에, 어떤 움직임도 해낼 수 있는 능력에 경탄했다. 무언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그의 감각으로는 침투할 수 없는, 유기물질이었다. 피렉시아인이 아니었다. 부드러웠다. 사려깊었다.

그는 발견되었다.

온기가 그의 손끝을 떠났다. 구조자가 떠난 것인가?

긁는 소리가 빨라졌다. 바위가 갈려나갔고, 돌멩이들이 쏟아져내렸다. 공중으로 던져진 큰 바위들이 땅에 떨어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그를 누르고 있던 무게가 가벼워졌다. 카른은 안간힘을 썼다. 그의 엄청난 힘에 의해, 그의 주변을 두르고 있던 물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른은 상반신의 강력한 기계장치를 십분 활용해 자신의 몸을 똑바로 세웠다. 바위가 옆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천천히 몸을 끌어올리며 자신을 구조하러 온 자가 자칫 잘못 굴러 떨어진 돌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려 했다.

그는 계속해서 노력했고, 긁는 소리가 멈췄다. 구조자가 비켜섰다는 듯이 뒤로 물러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카른은 그들이 안전한 거리까지 이동했을 것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카른은 몸을 일으켜 두 발로 섰다. 돌들이 그에게서 떨어져 내렸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따뜻한 공기가 그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그 움직임에 즐거워했다. 이리저리 부딪히는 바위들이 희뿌연 안개를 만들어냈다. 그는 몸에 묻은 미세한 입자들을 털어내고 눈을 깨끗이 닦았다.

아자니가 터널에 서 있었고, 횃불의 빛을 반사하는 그의 털가죽은 눈부시게 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흉터가 없는 쪽에 있는 옅은 파란색을 띤 눈의 동공이 야행성 포식자의 색조를 발하면서 반짝거렸다. 그의 두 어깨는 카른을 찾은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듯이 들떠 있었다. 그는 카른에게 입술을 다문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른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자니를 단지 몇 번 만났을 뿐이었다. 아자니와 같은 종족에게 있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적대적인 행동이었기에, 이 작은 미소는 활짝 웃는 인간의 미소보다 더 친근했다.

"나를 어떻게 찾은 겁니까?" 카른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목소리에도 먼지가 잔뜩 끼어 있는 것 같았다. 내부의 기계장치가 불편한 듯이 찰칵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는데."

아자니는 어색한 듯이 깊은 기침을 했다. "자네가 편지들에 답장을 하지 않은 후에, 조이라가 . . . 자네 걱정을 하기 시작했지. 그녀는 라프에게 자네만이 봉투를 열었을 때 활성화되는 추적 주문을 걸어 달라고 부탁했다네. 그렇게 해서 자네의 거점을 발견한 거지."

카른은 당황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하지 않을 때마다 조이라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려고 작업대 위에 쌓인 종이 더미를 한 켠으로 밀어낼 때마다? 자신의 작업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수선함을 아자니가 본 것인가? 방문객이 올 줄 알았더라면 카른은 절대로 거점을 그런 상태로 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아자니의 시선을 피하면서 자신의 몸 안 관절들이 손상되었는지를 조사했다. 아, 그렇다, 그의 몸 속에는 창날 끝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안에 박힌 채로 두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자네가 편지를 옮길 때마다 조이라는 자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아자니가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야. 그녀는 자네를 압박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자네가 필요로 하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네. 그녀는 자네가 얼마나 혼자 있기를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네. 자네가 . . . 화가 났을 때는 더욱."

카른은 자신의 몸에서 창날 끝을 제거하려고 애썼다. 그를 짓누르고 있던 바위들이 그것을 그의 몸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게 했다.

"하지만 자네가 그 편지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일을 그만뒀을 때," 아자니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걱정이 더 커졌지. 그래서 내가 찾아왔고."

카른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는 창날 끝을 앞뒤로 흔들어 그것을 몸통의 장갑판들 사이로부터 빼내 보려고 했다. 그의 무딘 손가락들은, 세밀한 작업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충분히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얼마나 자주 그 편지들을 보고, 답장을 할까 고려하다가, 그것들을 한켠으로 비켜두었는지를 조이라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믿을 수 없었다. "조이라는 잘 지냅니까?"

"그녀는 마나 장치에 있는 작업장에 있다네." 아자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웨더라이트는 어떻죠?"

"그녀가 웨더라이트를 정당한 소유자에게 되돌려주었지," 아자니가 말했다. "함선의 선장은 샤나라네."

"아, 좋습니다. 샤나라면 그 임무에 걸맞겠군요." 카른은 시세이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고, 비행선이 그녀의 후손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괜찮다면 내가 해도 . . . ?" 아자니는 창날 끝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카른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자니는 카른만큼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창날 끝을 살펴보기 위해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는 되었다. 그는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의 발톱을 카른의 관절 속에 집어넣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모든 플레인즈워커들이 이런 단계를 거치지. 우리는 물러난다네. 특히 우리가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역할을 맡았다면 더욱이 말이야. 나는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아 왔지. 큰 사냥이 끝나면, 다같이 식사를 하고, 잠을 자지. 그건 당연한 것이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네."

"나는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그게 자네가 회복할 필요도 없다는 뜻은 아니잖나." 아자니는 카른의 몸에서 창날 끝을 천천히 빼냈다.

우르자가 카른을 전쟁 기계로 풀어놓았을 때 그는 "회복"하는 것을 허락 받지 못했다. 우르자는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카른의 피로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그의 관심을 계속해서 다른 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로 돌렸다.

아자니는 창날 끝을 살펴보았다. 그 금속은 어둠 속에서 역겨운 녹색 빛을 발하며 반짝였다. "자네가 마주친 건 낙석만이 아니로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친구여?"

카른은 그가 아자니를 믿어도 될 지에 대한 확신이 들때까지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시올드레드를 만졌을 때 보았던 도미나리아 전역에 걸쳐 기다리며 도처에 숨어 있던 피렉시아 요원들의 환상이 아직도 그의 마음 속에서 쿵쿵대고 있었다 "제가 얼마나 오래 묻혀 있던 겁니까?"

"몇 달 정도," 아자니가 인정했다. "자네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네."

몇 달이 날아갔다. 준비하는 데 시간을 들였을 수도 있는 몇 달이.

시올드레드의 절단된 부분들이 거미처럼 그를 뒤덮고서는 그의 마비된 팔을 따라, 등을 따라 아래로 달려 내려갔었다. 그녀가 자신을 다시 조립할 시간은 충분했을 터였다. 그는 로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확신했다.

"상처를 입으셨군요." 카른은 아자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발톱은 뿌리까지 심하게 닳아 있었고, 그것은 아마도 그가 바위에 파묻혀 있던 카른을 파냈을 때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컸다. "거점으로 돌아가 보급품을 챙기는 게 좋겠습니다. 그곳에 있는 민감한 장비들이 여전히 작동하는지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카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장 두려운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 여전히 성배와 점토판이 남아 있을 것인가?


카른이 묻혀 있던 몇 달 동안, 그의 거점은 방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바뀐 것이 없지는 않았다. 작은 텐트들에 흰곰팡이가 얼룩져 있었다.

아자니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도 이 동굴에 대해 플레인즈워커로써의 불쾌함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차원간의 기술을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것들이 시간을 왜곡하는 방식이 이 공간에서 폐쇄공포증을 느끼게 했다. 카른 또한 그 압력을 느낄 수 있었다.

카른은 아자니를 데리고 그의 어수선한 거점 사이를 가로질러 가장 큰 텐트 안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갔다. 성배와 점토판을 보관하고 있던 상자는 그가 놓아둔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른은 아자니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무시했다.

카른은 마실 수는 있지만 보통은 청소 목적으로 사용했던 물이 든 통과 헝겊을 찾아냈다. 그는 헝겊을 아자니에게 건네주어 상처를 씻고 감싸맬 수 있게 해 주었다.

"카른, 왜 이곳에 있었지?" 아자니는 손을 헹구면서 상처에 박혀 있는 모래알들을 빼냈다.

카른은 손상된 장비들이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대답했다. "유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코일로스의 동굴이 가진 독특한 특성 때문에, 가장 모험적인 고고학자나 열정적인 연구자들조차 이곳을 약탈하지 못했지요." 그는 텐트 주위를 빙빙 돌면서, 성배와 점토판을 숨겨둔 상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아갔다. 그 상자는 온전해 보였지만, 그는 지금 감히 그것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상자 안으로 그의 특별한 감각을 내보냈다. 그 점토판은 알루미늄, 실리콘, 마그네슘, 나트륨, 그리고 다른 미량 원소들이 조합되어 있는, 단순한 점토처럼 느껴졌다. 성배는 그에게 반응하며 윙윙댔다. 그것은 그 안에 있었지만 강력한 마법 때문에 해독은 할 수 없었다.

카른은 상자를 한쪽으로 치워 두었다. 그는 아자니를 마주하고 그가 본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시올드레드가 도망쳤다고?" 아자니는 텐트 안에서 서성거렸다. "카른, 우리는 경고를 해야만—"

"이미 해 봤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여러 번."

"이제는 시올드레드를 보았지 않나."

카른은 자신이 아자니를 믿을 수 있기를 바랬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피렉시아의 집결지를 발견한 동굴에는 더이상 접근할 수 없습니다. 제게는 피렉시아인들이 도미나리아에 돌아왔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없는 게 맞나?" 아자니가 창날 끝을 내밀었다. "카른, 켈드인들과 베날리아인들 사이에 열리는 평화 정상회담이 있네. 피렉시아인들의 귀환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나라가 있다면, 바로 그 둘이야. 그들의 지도자들과 이야기해 보는 걸 제안하지."

아자니의 말이 옳았다. 도미나리아에 있는 모든 국가들 중에서, 카른의 경고에 가장 귀를 기울여줄 만한 국가는 켈드와 신 베날리아였다. 켈드인들의 지도자인 라다는 그 바위투성이인 전사들의 나라를 파괴적인 군사력으로 보강했다. 아론 카파셴은 신 베날리아의 기사들을 이끌었고, 그의 정의에 대한 열정은 기사들 각각이 혼자서 전사 열 명만큼의 값어치를 하게 만들었다. "떠나기 전에 발견물들과 민감한 장비들을 회수하겠습니다."

아자니는 자신의 허리띠에 매달린 부적을 두드렸다. "조이라가 나를 이곳으로 보내기 전에 웨더라이트를 호출하는 장치를 주었다네. 샤나가 이곳으로 올 게야."

"웨더라이트가 빠른 비행선일 지는 몰라도, 충분히 빠르지 않습니다." 카른은 성배와 점토판이 움직이지 않도록 여러 장치들을 가슴까지 쌓아 올린 뒤 모든 것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차원 이동을 하는 것을 제안하겠습니다."


카른은 다른 플레인즈워커들이 공허한 우주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몰랐지만, 그에게 그 끝없는 공간은 우그러뜨린 벨벳처럼 느껴졌고, 그것의 미지근한 까끌까끌한 감촉은 때때로 그에게 따끔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카른을 관통하는 현기증은 그가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느낌과 대조되었는데, 이는 그가 미지의 목적지로 향하는 줄을 따라 자신을 당기고 있다는 느낌과는 상충되는 것이었다. 그는 비단결 같은 막을 뚫고 나와 시원한 공기와 마주했다.

카른은 자신의 무릎까지 자라나 있는 들풀, 주황색 양귀비, 보라색 꽃이 핀 엉겅퀴들 사이에 서 있었다. 내륙에 위치한 농장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였고, 최근에 개간된 땅들은 유채꽃으로 뒤덮여 온통 노랗게 되어 있었다. 산기슭에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안개가 자욱한 온대우림의 끝에는 에메랄드 빛 고산지대 초원이 있었다.

그가 인간이었다면, 그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반대편에는, 하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절벽 속에 건물과 거리가 조각되어 있는 항구를 큰 석상이 지키고 있었다. 오래 전에, 피렉시아의 차원 함선이 그 조각상의 목을 자른 것이 분명했고, 그 노쇠한 덩치는 석상의 목 위에 놓여 있었다. 인동덩굴이 무성하게 자라나, 도시의 화려한 차양막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만의 중심부에는 닳아서 매끄러워진 섬이 물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바닷새들의 서식지가 된, 동상의 머리 부분이었다.

아자니는 석회암을 파내 만든 수수한 집들을 지나가는 좁은 길로 카른을 안내했다. 새로 조각되어 화려한 기둥을 자랑하는 발코니를 가진 거대한 시청과는 대조적으로, 이것들은 작고 잘 노화된 것 같아 보였다.

"평화 회담이 어디에서 열리는 지를 아십니까?" 카른이 물었다.

아자니는 멈춰서서 고개를 위로 젖혔다. "논쟁하는 소리를 따라가면 될 거라고 생각하네."

카른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레오닌의 감각은 탁월한 것이 분명했다.

아자니는 카른을 데리고 웅장하지만 텅 비어 있는 접수 구역을 지나,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방들을 연결하는 복도는 매우 비좁아 보였고, 횃불 들만이 그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들은 황동으로 장식한 이중문을 밀어젖히면서 긴 화강암 탁자가 놓여 있는 밝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발코니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주황색 가슴깃털을 빼면 전신이 검은 깃털로 뒤덮여 있는 아름다운 생물인 수컷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그 난간에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베날리아의 카파셴 가문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 탁자에 앉은 귀족인 황토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중년의 남자인 아론 카파셴의 비단옷 위에 일곱 가지 색깔의 창문을 가진 자랑스러운 탑이 수놓아져 있었다. 금으로 장식된 은색 갑옷을 입은 채로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방패들을 치켜들고 있는 기사들이 그의 뒤에 늘어서 있었고, 그들의 가슴팍에도 같은 금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반대편에는 회색 피부를 가진 덩치 큰 켈드 전사들이 무거운 가죽 갑옷을 두르고 그보다 더 무거운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전쟁군주인 라다가 카파셴 귀족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켈드의 잿빛 피부, 검고 긴 머리칼, 그리고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카이슈라우드 엘프의 특징인 뾰죡한 귀와 푸른 반점도 가지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검은 수염을 기른 신 아르기브 출신의 남자가 이끌고 있는 다른 관계자들은 대립하는 두 단체 사이에 놓인 화강암 협상 테이블에 일렬로 서 있었다.

아자니와 카른은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도착한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조금 후에 조다와 자야가 둘 모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조다는 자신의 마법이 허공에 만들어 낸 차원문을 통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책과 장식품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그의 사무실은 차원문이 닫히자 함께 사라졌다. 번쩍임과 함께, 자야가 숯이 타는 냄새를 풍기면서 차원 이동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간만이네요, 이 노인네." 자야는 조다를 친근하게 포옹했다.

소년 같은 외모와 덥수록한 갈색 머리칼 때문에 조다가 자야의 손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그녀보다 수천 년은 더 선배였다. "귀중품을 찾으러 온 건가?"

"오, 여기엔 제가 가지고 싶은 귀중품 같은 건 없어요, 제 머리카락은 빼고 말이죠. 당신의 주머니는 이미 확인했어요. 보풀 농사를 지을 생각인 거에요?"

조다는 미소지었다. "난 걱정 안 하네. 자네의 혀가 자네의 손끝보다 더 빠르니."

자야의 시선이 카른과 아자니에게 향했다. "음, 이건 놀랄 일이로군. 자네들도 이곳에 협상하러 온 겐가?"

아자니는 엄숙하게 자야를 바라보았다. "카른이 코일로스의 동굴에서 본 것에 대해 당신들에게 알려주어야만 합니다. 피렉시아인들이 도미나리아에 돌아왔습니다."

한가한 잡담을 나누던 협상 테이블이 충격을 받아 침묵에 빠졌다. 조다와 자야가 눈빛을 교환한 뒤, 카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켈드, 베날리아, 그리고 아르기브 사람들은 논쟁을 벌였고, 방언과 억양이 서로 겹치는 웅성거림이 그들의 공포를 드러내고 있었다. 베날리아의 기사들만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들만의 규율을 증명하는 듯이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자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수천 년 동안 이 세계를 돌아다녔지," 조다가 말했다, "나는 이야기들을 읽었고, 역사를 조사했다네. 폐허들을 방문한 적도 있지.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일세. 피렉시아인들은 공허한 우주를 건널 수 없어."

"시올드레드가 세계 사이를 건넜습—" 카른이 말했다.

"이제는 플레인즈워커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네." 조다가 자신의 콧잔등을 꼬집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카른, 그게 자네가 도와줘서 만들어낸 현실이라네." 우르자가 카른을 만들었을 때의 우르자와 비슷한 나이의 그는 젊은 외모를 지친 듯이 보이게 만들었다. 카른은 자신이 시올드레드를 보았음에도 조다가 진실을 부정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피렉시아인들은 공허한 우주를 지나가는 여정에서 살아남지 못했겠지만, 시올드레드는 살아남았다. 그것이 그녀의 유기 물질을 태워버리고 그녀를 손상시켜 약하게 만들었을지라도, 그녀는 어떻게든 성공했다.

아론 카파셴이 일어나 서성거렸다. 그는 불안한 것처럼 보였다. "피렉시안들은 고대의 역사요. 당신이 이걸 주장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군."

"나는 새로운 침공을 위한 집결지를 발견했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그리고 그곳을 지휘하는 자는 뉴 피렉시아의 지도자 중 하나인, 시올드레드라는 이름을 가진 총독이었고 미쉬라 협회가 그녀를 섬기고 있으며, 피렉시아인들은 수십 명의 일반 시민들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미나리아 전역에 얼마나 많은 피렉시아인들이 주둔해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경고하지 않았나?" 신 아르기브의 젊은 귀족이 일어섰다. 금과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모피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중요한 관계자인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피렉시아의 비밀 요원들이 사회의 각계 각층에 스며든다고 말이야. 이제 알게 된 건, 이미 그렇게 됐다는 거 아닌가!"

Art by: Mila Pesic

"스텐, 경계심이 강한 자네의 성향은 도움이 되지 않네," 조다가 말했다. "카른, 피렉시아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개똥지빠귀는 그의 대답이 궁금하다는 듯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카른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가 무력화되어 있는 동안 대피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조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협상을 중단하기에는 외교적인 상황이 너무 민감하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면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장소와 같은 것처럼 더 강력한 정보가 없다면 그들을 뿌리뽑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피렉시아인들이 도미나리아에 있다고 해도," 자야가 말했다, "역사적으로 그것들은 정복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분열시켰지. 우리가 베날리아와 켈드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둔다면, 그들의 손에 놀아나게 될 뿐이야."

개똥지빠귀가 난간을 따라 겅중대며 뛰어다녔다.

"카른, 내 말을 듣고 있는 겐가?" 조다가 물었다.

카른은 조다에게 시선을 되돌렸다. 그는 창날 끝을 탁자 위에 놓았다. "듣고 있습니다."

"미쉬라 협회의 무기는 전에 본 적이 있네," 조다가 가볍게 말했다.

"카른이 언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아자니가 으르렁댔다. "그가 만일 시올드레드가 사람들을 완성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난 믿네," 아론이 말했다. "하지만 수군대는 소문을 뒤쫓기 위해 도미나리아 전역에 내 병사들을 보낼 수는 없어. 켈드와의 적대적인 관계와 도당의 부활을 물리치는 싸움이 한창인 와중이니, 내게는 더이상 싸울 사람이 없네."

"그의 부대의 상황은 내 부대의 상황과 똑같지." 라다는 짧게 짖는 것처럼 웃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조다는 라다와 아론을 번갈아가며 힐끗 쳐다보았다. "피렉시아인들은 수 세기 동안 위협이 되지 않았다네. 자네의 기억력이 길다는 것은 알고 있지, 카른. 나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오늘의 문제인 카파셴과 켈드 간의 갈등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그 후에 피렉시아인들과 싸우기 위해 병사들을 재배치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걸세."

시올드레드의 은신처에서, 그녀에게 바치는 황홀한 기도 소리 아래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찬 날카롭고 힘없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 당장 시올드레드가 빼앗고 있는 목숨들은 어떻게 합니까?"

조다는 카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차원간 침공처럼 거대한 것은 아닐 지 몰라도, 이 갈등에서도 생명을 잃는 자들이 있네. 이들 또한 중요해."

"우리가 함께 가마, 카른," 자야가 말했다. "그들을 찾아나설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게 해 주려무나."

카른은 방 안의 관심이 다시 협상이 이루어지는로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똥지빠귀는 날아가 버렸다.

"스텐," 자야가 말했다, "사람을 불러 카른과 아자니를 손님 숙소로 안내해 줘."


카른의 방은 소박하고 가구도 기본적이었지만 잘 꾸며져 있었다. 침대, 의자 두 개가 있는 큰 테이블, 그리고 안에 도자기 대야가 있는 세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카른은 침대를 한쪽으로 밀고 탁자를 방 한가운데로 옮겼다. 그는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여전히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성배가 안전한지를 확인했다.

"조다와 자야가 우리를 돕는 것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가장 일관된 주장은," 카른이 말했다, "우리가 피렉시아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조다와 자야를 설득해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자니는 멈춰서서, 강인한 육체를 웅크렸다. "어떻게?"

"점술 장치를 만들겠습니다." 카른은 테이블 위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는 먼저 수정이 덮여 있는 구리 판으로 관측 평면을 만들었다. 그는 두 물질 사이의 좁은 층을 액체로 채웠다. 장치의 나머지 부분인 복잡한 기계 부품을 조립하는 일에는 그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마법이 그의 몸 속을 흐르면서 웅웅대는 소리를 냈다.

아자니는 창백한 푸른 눈으로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건 뭐지?"

"멀리 떨어진 장소를 보기 위한 장치입니다." 카른의 목소리에는 긍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스스로 그 장치를 위한 설계도를 개발했고, 이것과 비슷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치는 그가 아는 한 아무것도 없었다. 카른은 조이라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얼굴에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정수에, 그녀를 조이라일 수 있게 해 주는 특성에 집중했다. 그녀는 항상 사람들의 상황을 그 본질까지 꿰뚫어 보곤 했다. 그녀는 모두를 일단은 믿어 보려고 했다.

수정 안에 마나 장치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흐릿했다가, 영상에 깊이가 생겼고, 그 후에 색이 채워졌다. 시브의 잔인한 사막의 절벽 끝에 자리잡은 이 금속 구조물은 작은 도시라고 불러도 될 만한 정도의 크기와 복잡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상은 조이라가 있는 작업장 쪽으로 좁혀졌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로 작업대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어깨 위로 황동빛 머리칼이 늘어뜨려져 있었다. 그녀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스위치를 앞뒤로 만지작거렸다.

"시올드레드를 볼 수 있나?" 아자니가 물었다.

카른은 너무나도 쉽게 시올드레드를 시각화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인간형 몸통이 전갈 같은 몸 위로 솟아올랐고,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머리 속에서 친밀하게 울려퍼졌다. 카른 . . . 그런 계획이로군.

점술사의 영상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카른은 몸을 뒤로 기댔다. 아자니가 카른을 힐끗 쳐다보았다. "우리가 그들의 위치를 점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 장치를 준비해 둔 것이 분명합니다."

"일리 있는 예방책이로군." 불행히도 말이다.

아자니는 웨더라이트를 호출할 수 있는 부적을 허리띠에서 꺼냈다. 그는 그것을 카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필요할 걸세."

카른은 부적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간단한 장치처럼 보였다. "전 이걸 복제할 수 있습니다."

아자니는 입을 다물고 미소지었다. "그러면 더 낫지."

카른은 부적을 향해 자신의 감각을 확장했다. 그가 그것을 복제하자, 금속이 그의 손끝에서 감겨올려지며 똑같은 부적을 만들어냈다. 아자니는 원래 부적을 자신의 허리띠에 부착했고 카른은 부적을 복제한 것을 매달기 위한 사슬을 만들었다. 카른은 장식이 어색하다고 느끼면서 부적을 목에 둘렀다. 평소라면 그는 그런 것들을 피할 터였다.

개똥지빠귀가 아자니의 어깨 뒤에 있는 창턱에 내려앉았다.

카른이 피렉시아인들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들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질 터였다. 그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피렉시아인들은 도미나리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들을 무력화시키고 싶어했다. 거기에는 성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소식을 사용해 그들을 밖으로 유인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선 성배를 어딘가 안전한 곳에 숨겨야만 했다.

"아마도 자야와 단독으로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아자니가 제안했다,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 지도 모르네. 그녀가 본질까지 외교관인 것은 아니니까."

카른은 개똥지빠귀를 아주 고요하고 주의깊게 응시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카른은 협상에 참여했다. 스텐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 잉크통을 놓았고, 조다와 자야는 라다와 아론 카파셴에게 깃펜을 건네주었다. 그는 그들이 서명을 하기 전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발코니로 밀려와, 끝나가는 봄날의 더위를 식혀 주었다.

"당신은 인상적인 지도자로군," 아론이 말했다. "당신과 함께 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네."

라다가 미소지었다. "넌 화려한 말을 좋아하는군."

"그리고 당신은 난폭하다고 오해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아론 카파셴이 말했다. "당신을 단순한 전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곧 후회하게 되겠지."

조다가 미소지었다. "라다, 아론은 이 합의안을 다른 의회에도 제출해 승인을 요청할 걸세. 나는 이 과정이 몇 달 안에 끝마쳐질 수 있도록 그와 동행할 예정이고, 그 기간 동안에는 얼음서리 고개의 모든 적대 행위가 중단될 것이네."

라다는 양보한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래. 그 신성한 장소에는 더이상 전쟁을 할 가치가 없어. 그곳에 어떤 유물이 있을 지 모른다고 해도 말이지."

옅은 청색을 띤 빛구슬이 허공에서 나타나면서 방 안에 미풍이 불었다. 빛은 바깥쪽으로 소용돌이치며 하늘색 원반이 되었고 그 소용돌이로부터 테페리가 걸어나왔다. 그는 잘 늙은 모습이었다. 중년이 되면서 어깨가 넓어지고,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으며, 암갈색 피부는 건강한 듯이 홍조를 띠고 있었다.

"또 다른 플레인즈워커인가?" 아론은 화를 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흥미로운 시기의 징조인 게 틀림없군," 라다가 말했다.

조다가 일어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피렉시아인들입니다. 그들이 카미가와에 있었어요." 테페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카야가 칼드하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말해준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것들이 차원 사이를 이동할 수 있군," 자야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말했다.

잠시 후, 조다가 말했다, "그건 아주 심각한 일이군."

카른이 자야와 조다에게 이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것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 그는 시올드레드의 손길이 그의 몸에, 그의 정신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테페리는 와서 간접적인 소식을 전한 것뿐인데, 조다와 자야가 그의 주장을 믿는다고? "위치를 증명하라"던 그들의 요청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들에게 있어 카른은 그저 조각상인 것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테페리가 그들에게 경고했던 위협은 도미나리아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이 관련이 있었다. "만약 피렉시아인들이 여러 세계를 오갔다면, 그들의 침공 계획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잘 조정되어 있을 겁니다."

라다는 긴장했다. "그러면 싸워야만 하겠군."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기사들은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마치 곧바로 행동을 개시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검을 향한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살면서 또다시 피렉시아의 침공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진정한 황혼이 찾아왔다," 라다의 전사들 중 하나가 쉭쉭댔다. "어떻게 그런 생물들과 싸울 수 있지?"

"아무리 나쁘더라도," 스텐이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더 나쁘겠지."

조다는 자야를 향해 침착하게 "도와줘"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야는 이 혼란의 근원인 테페리를 데리고 나가라는 듯이 카른과 아자니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라다와 아론은 서명을 하지 않았고 서명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조다는 충전된 알루미늄 조각을 물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가 등장한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테페리가 말했다.

"아무려면," 자야가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상호 보호 조항에 대해 확신을 할 수가 없군—" 아론이 말을 꺼냈다.

"각자의 해안과 각자의 백성을 돌보는 게 최선이겠지—" 라다가 말했다.

카른은 테페리를 문 쪽으로 안내했다. 테피리는 그를 따랐다.


차원 이동을 해 온 테페리는 지쳐 있었기에, 카른과 아자니는 그를 자신들의 방 옆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바깥에서는 봄비가 절벽 위로 후두둑거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유리를 끼우지 않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는 돌 틈새에서 자라난 로즈마리 풀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로즈마리의 향기는 카른이 좋아했기에 그를 기쁘게 해 준 것일까? 아니면 우르자가 그것을 좋아하게 설계한 것일까? 카른은 그것을 알 수 없을 터였다.

테페리는 항상 카른에게 자신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것이 언제나 편하지는 않았다.

"니암비는 어떻게 지냅니까?" 카른이 물었다.

"그 아이는 자무라의 유목민 부족들에게 의료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네." 테페리에게서 딸에 대한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조이라는 어떤가?"

"조이라와 이야기를 나눈 지는 꽤 되었습니다." 카른은 자신이 테페리에게 이 일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도록 우르자가 자신의 얼굴을 인간만큼 잘 움직이며 미세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아자니는 테페리와 카른 사이의 길고 어색한 침묵이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보이기라도 하는 듯이 테페리와 카른을 번갈아 쓱 쳐다보았다. "뭔가 다른 게 당신을 괴롭히고 있군요."

"이 이야기는 켈드와 베날리아 사람들 앞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네," 테페리가 수긍했다, "하지만 그들이 타미요를 데려갔어. 이제는 플레인즈워커들조차도 그들에게 취약할 수 있네 . . .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렸어, 아자니."

아자니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타미요를?"

테페리는 피곤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하세나."

카른은 아자니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것과 함께 친구의 얼굴에 분노와 슬픔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둘이 가까운 사이였는지 몰랐다.

"저도 쉬어야겠군요," 잠시 후 레오닌이 말했다.

카른은 이것을 나가자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방으로 돌아와, 그는 성배와 점토판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었다. 그는 점토판을 꺼내고, 상자를 다시 잠근 뒤,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것은 연구하기 위해 이곳에 보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새 집을 찾아야만 했다.

어딘가 안전한 곳. 그리고 그는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카른은 점술 장치의 수정으로 뒤덮인 구리판 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조이라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더이상 작업장에 있지 않았고, 얼굴을 베게 속에 파묻고 불그스레한 갈색 머리칼을 한쪽 뺨으로 늘어뜨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카른은 그녀의 영상을 사라지게 했다.


오이스터 만의 경비대를 피하는 일은 간단했다. 이곳 사람들이 한때는 훌륭한 해적이었을지 몰라도, 그들은 경비 임무라는 조직적인 따분함에 적응하지 않았다. 그림자 속에 거대한 몸을 숨긴 카른은 자신의 몸에 반사되어 빛날 수도 있는 광원은 전부 피했다. 그는 어둠 속에 머무르면서 마을의 깎아지른 거리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가,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는 피렉시아의 차원문 함선의 보라색 과꽃과 황금색 메꽃과 같은 야생화들로 인해 부드러워져 있던 퇴화된 금속으로 되어있는 용골을을 따라 걸어올라가, 어린 덩굴단풍이 뒤덮여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카른의 정강이 부근에서 양치식물들이 부스럭거렸고, 축축한 공기가 카른의 몸에 닿아 물방울들이 응결되었다.

이제 자야와 조다의 감각을 뒤흔들지 않기 위한 충분한 거리를 둔 카른은 불타오르고 있는 공허한 우주에 상처를 내면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가장자리들이 그의 몸에 부딪히며 펄럭였다. 그는 그곳을 지나 시브에 있는 마나 장치로, 조이라의 작업장으로 직행했다. 그곳에는 숨죽인 침묵만이 있었으며, 마치 그곳에 있는 모든 장비들이 조이라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른은 보급품 보관소를 찾았다. 그는 성배와 성배가 든 상자를 파이프 뒤에 있는 가장 낮은 선반에 보관했고, 그곳에 쌓여 있는 먼지는 최근까지 조이라가 그것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보장해 주었다. 그는 두 가지 장치를 만들어냈다. 하나는 파이프가 움직이면 이를 기록하는 경보 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상자 자체를 움직이면 이를 알려주는 무게에 민감한 경보 장치였다. 됐다. 성배는 이제 안전했다. 아니면 가능한 한 안전하던가. 카른은 다시 공허한 우주로 걸어들어갔다.

숲 언덕으로 돌아온 카른은 오이스터 만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걸어내려갔다. 자작나무의 창백하고 가느다란 줄기들 사이로 불빛이 반짝였다. 사람의 그림자가 등불을 높이 쳐들고 있었다. 카른은 멈춰섰지만, 등불의 불빛이 그의 몸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는 목격되었다. 그 형체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협상 테이블에 있던 신 아르기브의 귀족인 스텐이었다.

쏙독새가 나무 사이를 누비면서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만약 그의 예방책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산책을 나온 겐가?" 스텐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저는 잠을 자지 않습니다. 늦게까지 깨어 있으신 겁니까?"

"아니, 일찍 일어난 걸세." 스텐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이목구비가 더 명확히 드러났다. 수염은 다듬어져 있었고 머리도 단정히 빗겨져 있었다. "새벽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지. 평화롭다고. 빵을 굽는 냄새가 도시를 뒤덮고, 시민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상상을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아침이 하늘을 밝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공기에서는 이슬과 계피 맛이 났다.

"다른 플레인즈워커들의 말을 듣자 하니 자네는 피렉시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그 말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플레인즈워커가 자네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네." 스텐의 모피 망토에는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침공의 징후를 읽어낼 수 있는 자는 자네뿐만이 아니네. 다리엔 왕께서도 내게 피렉시아 요원들을 발견하는 임무를 맡기셨지. 당연하겠지만, 이건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아니네."

"그런 요원을 발견한 후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카른이 물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겠지," 스텐이 말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누군가가 완성되고 나면 그들은 자신이 알던 모르던 이미 그쪽으로 넘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스스로에 대해서 모르는 겁니까?"

"그래," 스텐이 말했다. "스스로에 대해서 모르는 편이 피렉시아인들에게 더 유용하겠지. 그리고 발견하기도 더 힘들고."

자신의 이익과 가족, 그리고 세계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강요되는 사람들이 그 행동에 대해서 망각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피렉시아인들은 이 알려지지 않은 위장 요원들을 어디에나 투입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이미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 . . 다리엔 왕은 스텐의 무자비함을 탁월히 여겨 그를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요원을 붙잡은 적이 있습니까?" 카른이 물었다.

"아니. 아직은 없네." 스텐은 새벽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응시했다. 어선들이 물결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검게 그을린 돛이 종소리를 냈다. "테페리가 전한 소식이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지."

카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겁을 먹어야 마땅합니다. 당신은 베날리아와 켈드가 연합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르네," 스텐이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약속할 수 있지. 신 아르기브는 출병할 것이네. 우리는 도미나리아를 수호하기 위해 자네와 함께할 것이야."

카른은 누군가가 자신을 믿을 만한 소식통이라고 여겨 준 것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군사적인 지원을 제공해 줄 첫 번째 동맹을 찾아낸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논의하세나."

마을에는 아직 깨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반죽을 오븐에 집어넣고 있는 제빵사들과 염소 젖을 짜고 닭에게 모이를 주는 아이들만이 보였다. 때때로, 카른은 그들의 고통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애완용 수탉을 저녁식사로 식탁에 올리거나, 몹시 필요한 우유 양동이를 엎지르거나 하는 일들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이 사람들이 죽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에도, 카른은 계속해서 그들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터였다.

그는 자신이 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고, 피곤하다고. 그리고 아이들의 아름다운 덧없음은 이 고요한 아침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비극처럼 여겨졌다.

카른이 시청에 도착했을 때, 아자니도 깨어나 있었고, 로프처럼 늘어진 등나무 둑 사이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자니는 몸을 떨면서 멈춰선 뒤, 꼬리를 한 번 휘둘렀다. 카른은 이것이 자발적인 행동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는 레오닌이 인간 근처에 있을 때 자신의 인간적이지 않은 버릇들을 어떻게 억누르는지를 보아 왔다. 아자니의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포착했고, 그의 동공이 포식자의 녹색 빛으로 반짝였다.

"카른. 인간들이 이제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자니가 물었다. "조다와 자야가 오늘 다시 한번 대표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예정이네."

카른은 조다가 피렉시아의 위협보다도 이 사소한 인간들의 분쟁을 계속해서 우선시하는 것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몇몇은 깨어 있더군요. 오늘 아침에 스텐을 만났는데, 그는 신 아르기브의 군대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야에게 이야기하세," 아자니가 말했다, "협상이 재개되기 전에 말이야."


"너희 둘이 '카페인'이라고 불리는 물질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지금 바로 나를 훨씬 더 동정하게 될 거야," 자야가 중얼거렸다.

"들어 본 적 있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그건 사악한 것이네," 아자니가 말했다.

테페리가 방 안으로 들어와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쌀쌀한 바닷바람이 봄철의 떠오르는 새소리와 함께 방 안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발코니에 내려앉아 머리를 젖히면서, 테페리가 가진 빵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난간에 내려앉더니, 난간을 따라 종종거리며 돌아다녔다. 어제와 같은 새일 수도 있는 것인가? 가슴에 주황색 깃털을 가진 경계심 많은 숲 속의 새가, 어떻게 갈매기를 참아낼 수 있는 것인가?

"누가 어느 국경에서 어떤 세금을 부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네," 아자니가 말했다. "피렉시아와의 싸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만 해."

"맞습니다." 카른은 개똥지빠귀를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성배가 피렉시아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성배라고?" 아자니가 흠칫 놀랐다. "자네가 그걸 가지고 있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작동하는 방법만 확인하면 뉴 피렉시아에 그것을 설치해 피렉시아의 위협을 원천적으로 근절할 계획이었지요."

"카른, 그 일은 우리가 함께 처리하기로 하지 않았나. 자네 혼자 갈 수는 없어," 테페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 스스로도 우리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저를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런 뒤에는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했지요. 더이상은 아닙니다," 카른이 말했다.

개똥지빠귀는 이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빵 부스러기를 쪼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카른은 그 새를 붙잡았다. "난 네가 뭔지 알고 있다."

"카른—" 자야가 말했다.

새의 가슴 부분이 벗겨지면서 케이블들이 튀어나왔다. 피와 점액으로 미끈미끈해진 케이블들이 카른의 머리를 감쌌다. 점액이 그의 피부 위로 흘러내렸고, 촉수의 중심부에 있는 아가리는 붙잡을 곳을 찾아 카른의 뺨을 훑었으며, 그것의 이빨은 매끄러운 금속을 긁어 댔다. 카른은 그 생물의 미끄러운 몸체를 고쳐잡고 자신의 얼굴에서 당겨 떼어 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의 전선들은 그의 머리 전체를 감싼 채로, 그의 목덜미 부근에 두껍게 뒤엉켜 있었다. 그 생물의 이빨이 카른의 입술에 걸렸다. 그것은 마치 그에게 어떤 물질을 주입하려는 것처럼 바늘처럼 튀어나온 물체를 찔러넣으려 했고, 그 바늘은 부러졌다.

"카른한테서 너무 가까워," 자야가 소리쳤다. "폭파시킬 수가 없겠어."

"내가—" 아자니가 말했다.

그 생물로부터 점액이 뿜어져 나와 카른의 피부를 태우면서 그의 금속을 부식시켰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그 생물은 마치 그를 조각조각 분리하려는 것처럼 카른의 목과 옷깃 주변의 관절 사이에 촉수를 밀어넣었다. 카른은 끙끙거리면서 그 생물의 미끄러운 몸체와 그의 얼굴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는 그것을 억지로 떼어내 방 반대편으로 집어 던졌고, 그것은 맞은편에 있는 벽에 부딪힌 뒤 미끄러지듯이 떨어져 내렸다. 그 생물은 애벌레가 움직이는 것처럼 문 쪽으로 기어갔다.

테페리가 두 손을 들어올려 흐릿한 역장을 만들어, 그 생물의 속도를 늦춰 빨리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아자니가 앞으로 달려나가 발톱으로 그 생물을 찔러, 그것을 땅바닥에 고정시켰다. 그것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상처에서는 산성 용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 생물의 부식성 점액으로 인해 여전히 얼굴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카른은 한 손을 다른 손 위에 포갠 채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철창을 만들어냈고, 쇠창살이 솟구쳐올라 위쪽에서 합쳐져 반구형 지붕이 되었다. 아자니가 괴물을 바닥에서 뜯어내 그것을 철창 안에 던져넣었다.

그것은 끽끽대는 소리를 내면서 철창을 흔들었다.

자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지금 조다가 걱정해야 할 게 세금이 아니로군."


카른은 화강암 협상 테이블 위에 피렉시아의 새를 올려놓았다. 조다는 눈을 크게 뜨며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철창 안에 있는 생물이 그를 바라보며 쉭쉭대는 소리를 냈다. 아론 카파셴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베날리아 기사들은 철통같은 규율을 유지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라다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그것을 응시했다. 그녀의 전사들은 중얼거리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텐은 자신의 말이 옳았다는 만족감에 두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곳에 있군," 조다가 중얼거렸다. "우리들 사이에."

"내가 진작에—" 스텐이 말했다.

베날리아 기사 세 명이 갑옷 안에서 폭발하듯이 터져나왔다. 반짝이는 검은 기름의 소나기 속에서 눈이 터져나오고 턱은 부풀어 올랐으며, 살점에서는 금속 이빨이 튀어나와 벌어져 있는 아가리에 자리잡았다. 그들이 두른 갑옷의 틈새에서는 금속성 섬유들이 꿈틀거렸다. 그 생물들 중 하나가 발톱이 달린 두 손을 모아 쥔 채로 화강암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것은 화강암 테이블에 손을 내리쳐 테이블을 둘로 쪼갰다.

"협상은 끝났다," 그것이 말했다.

그것의 동료가 꿈틀대는 촉수로 아론을 붙잡아, 거미가 파리를 감싸는 것처럼 그를 옭아맸다.

카른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테페리와 아자니가 그의 옆에서 함께했다. 자야는 두 손을 치켜올려 손바닥에서 불을 뿜어냈다. 조다는 에너지를 모아 주위의 공기를 다양한 색의 리본으로 일그러뜨린 다음, 그것을 역장으로 구체화시켜 변하지 않은 베날리아 병사들을 피렉시아인들로부터 보호했다.

"제라드를 위해," 한 여성이 검을 치켜들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조다의 방어막을 피해 지나가 전 동료에게 달려들었다. 피렉시아인 기사는 자신을 반으로 쪼개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그것은 두 개의 고기 조각으로 분리되어, 이전에는 내부 장기였던 것으로부터 다리들이 뻗어 나왔다. 두 반쪽 모두가 공격해 왔다.

"승천의 첫 바람은 단련하는 자의 바람이다," 라다가 문을 향해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그녀도 아론과 마찬가지로 맨몸으로 협상 테이블에 왔다.

"불순함을 태워 없앨지니!" 그녀의 전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 주변을 에워쌌다. 그들은 그녀를 붙잡으려고 뻗어오는 촉수들을 물리치면서, 피렉시아인들의 사지를 잘라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부속물들은 그것 대로 저절로 생명을 얻는 것처럼, 다리와 이빨이 돋아나더니 후퇴하는 켈드인들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아르기브인들도 뒤로 물러나 켈드인들과 합류하면서, 이제껏 전투를 본 적도 없었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귀족들의 무기인 레이피어들을 들고 싸웠다. 스텐은 단검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던 그는 깨진 테이블 파편 사이로 물러나다가 자야의 보호 불꽃이 만들어내고 있는 고리에 닿았다. 카른은 아론에 거의 가까워져 있었다.

그를 데리고 있던 피렉시인이 마치 증기 밸브를 여는 것과 같은 낮은 소리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아론을 휘감은 다음 근처에 있는 발코니로 뛰어내렸다. 아자니는 짜증 섞인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 뒤를 쫓았다.

아자니! 카른은 따라갈 수 없었다. 그가 가볍게 움직이는 아자니의 뒤를 따라 발코니 위로 뛰어내리려 한다면 발코니가 그의 무게로 인해 부서질 터였다. 카른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테페리가 욕설을 내뱉었다.

"나도 저런 거리까지는 뛸 수 없네," 테페리가 말했다.

켈드인들이 문에 다다랐다.

"당신을 두고 가지 않을 거야, 대마도사," 라다가 소리쳤다. "켈드는 도미나리아의 편에 서서 도미나리아 사람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너희와 함께 이 신성 모독에 맞서 싸울 거다. 모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가게나," 조다가 소리쳤다. "함께 싸우는 건 다른 날로 하지!"

"저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이 방에 저것들을 가두십시오!"

라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황동으로 된 이중문이 쾅 하고 닫히면서, 플레인즈워커들과 마법사들이 피렉시아인들과 함께 방안에 갇혔다.

자야는 두 손을 휘둘러 피렉시아인들을 조다로부터 차단해 그를 보호했다. 그녀의 불꽃이 맹렬한 열기를 발하며 하얗게 타올랐다. 카른은 자야의 마법이 이것들도 태워 없앨 수 있다는 데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는 억지로 열기를 뚫고 움직였다. 열기는 그의 몸 속 관절로 들어가려고 꿈틀거리는 촉수들을 태워, 그것들을 끝장냈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야가 금속과 살이 몸부림치는 덩어리에게 화염구를 던지며 말했다, "조다?"

"에너지를 소환냈네." 조다의 눈이 에너지로 빛을 발했고, 그의 피부가 눈부시게 밝아졌다. "하지만 차원문을 만들려면 그것을 어디로 향하게 해야 할 지를 알아야만 해. 안전한 장소 말이네."

"아르기비아," 스텐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는 칼날로 촉수 하나를 튕겨낸 뒤 그것을 발로 밟았다. 그의 장화 아래에서 피와 기름이 뿜어져 나왔고, 그는 밀려들어오는 다음 촉수를 향해 몸을 돌린 뒤 그것을 꿰뚫었다. "신 아르기브의 망루요."

"그곳은 다른 어떤 곳보다 안전합니다." 카른은 테페리와 함께 조다 쪽으로 물러났다.

조다의 차원문이 그의 뒤쪽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허공을 가르는 문처럼 열려, 작은 원형 방을 드러냈다.

조다는 그곳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 반대편에서 그것을 유지했다.

"내가 막고 있겠어," 자야가 몸부림치는 케이블들을 불길로 태우면서 말했다. "차원문을 통과하면, 피렉시아인은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불길로 이 방을 날려버릴 테니까. 어서 가!"

"감사합니다," 스텐이 말했다. 그 또한 차원문 너머로 후퇴했다.

"나도 마찬가지네," 테페리는 그렇게 말하며 소용돌이치는 회오리 속으로 사라졌다.

자야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불타오르는 두 손을 치켜들어 방 전체에 불을 붙였다. 축축하고 부자연스러운 피렉시아인들의 비명 소리가 휘파람처럼 울려 펴젔다.

카른은 차원문 안에 발을 들였다. 따끔거리는 마법이 그의 피부를 훑고 지나가면서 그를 집어삼킨 다음, 그를 반대편에 내려놓았다. 어떤 형체가, 공중에 떠서, 그를 스쳐 지나갔다. 카른은 그것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는 작은 방 안에서 자신과 함께 도착한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볼 수 없었다. 스텐, 조다, 자야, 테페리, 그리고 그 자신.

자야가 마지막으로 차원문을 지나, 카른의 옆에 합류했다.

조다는 차원문을 닫고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일은 심지어 조다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모두 땀을 흘리고, 헐떡이고, 피를 흘리면서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카른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깜빡이는 그림자를 찾아 방 안을 수색했다. 탑의 방에는 작은 아치형 창문이 있었고, 빈 방 한가운데에는 제어판이 있는 듯한 받침대가 위치해 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수정에서는 황금색 빛이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수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법석이었다.

그림자가 마법석의 표면을 휙 하고 스쳐지나갔다.

"하나가 저희를 따라왔습니다," 카른이 말했다.

"그걸 도망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도시에 대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스텐은 중앙 제어판의 스위치를 올렸다. 기어들이 생명을 얻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감시탑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는 쇠사슬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벽의 내부에 메아리쳤다. 철제 덧문과 방풍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면서, 모든 빛을 차단했다. 방 안은 그 즉시 더 답답하게, 더 비좁게 느껴졌다. 스텐은 카른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타락시킬 수 없는 자는 자네 뿐이니, 이건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겠군."

자야는 조다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부딪쳤다. "당신은 옳은 소리를 하는 일에 질리는 법이 없잖아, 안 그래?"

"수 천년이 흘렀을 지 모르지만, 맞네. 질리지 않지." 조다의 미소가 사그라들었고, 그는 카른에게 시선을 돌렸다.

"탑이 폐쇄되어 있는 동안은 아무 것도, 그리고 누구도 떠날 수 없네," 스텐이 말했다.

테페리는 철제 덧문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갇혀 있는 피렉시아인을 사로잡아 파괴해야만 하네. 그리고 우리 중에 그자들의 손에 떨어진 사람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그들을 어떻게 물리칠 지를 계획하기 전에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부터 알아야만 해."

"동의하네," 조다가 말했다.

일행은 방을 점검했다. 그들과 함께 건너온 작은 피렉시아인은 방에서 도망치고 없었다. 카른은 그것이 돌 틈새 같은 곳을 비집고 나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점술 장치와 웨더라이트를 소환하는 봉화가 걸려 있는 것과 같은 사슬에 열쇠를 매단 뒤 동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마치 전류가 호를 그리며 그의 몸 안을 통과하듯이, 불안감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조다, 자야, 테페리, 스텐 . . . 그가 누구를 믿을 수 있을 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피렉시아인들이 이미 도미나리아에 있었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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