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 69년

타우노스의 인부 공장은 인간과 기계가 한데 뒤섞여 언제나 불협화음을 내뿜고 있는 소음 덩어리였다. 모든 계급과 지위를 가진 기능공과 노동자들이 드넓은 공장을 가로지르며 카트를 밀고 새롭게 가공된 베어링, 볼트, 모듈식 도금, 캔버스 피복, 그리고 새로운 무기들이 장착된 인부들을 데리고 갔다. 전쟁을 위해 개조된 새로운 인부들의 모습은 달그락거리는 컨베이어 벨트와 천천히 움직이는 선반에 매달려 있었다. 사람과 기계를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로 안내하기 위해 탄탄한 돌바닥과 색을 칠한 선들로 구성되어 있는, 타우노스가 설계한 엄격한 생산 환경에서는 여태껏 그렇게 광란적이고 무질서한 소동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위쪽에 있는 사무실의 유리 뒤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기계화된 평화라는 그의 꿈의 베일이 벗겨지며 피비린내 나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르자와 미쉬라는 살인을 하기 위한 기계 이외에는 설계를 하지 않았다. 타우노스는 미쉬라의 지도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없었지만, 우르자는 모범적인 교사였다. 젊은 시절의 타우노스는 영리했고,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난감 제작자였으며, 크게 성공한 기술자였지만, 우르자의 태양과도 같은 탁월함에 비교했을 때 그는 촛불에 불과했다. 타우노스는 그가 우르자의 가르침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리한 장난감 제작자부터 기능공의 대가까지, 우르자의 꾸준한 손은 그가 세계의 표면을 바꿔 놓은 것처럼 능숙하게 타우노스를 형성해 나갔다.

타우노스는 마치 사무실 전망대의 금속 난간에서 물을 짜내려는 듯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떻게 그의 인부들인 그 기계들이 전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펜레곤의 인부들을 위한 디자인 원안은 타우노스가 스케치했지만, 그 디자인을 구축하는 이론은 우르자가 고안한 기계들, 즉 불태우고 부수고 파괴하는 기계들을 그 기반에 두고 있었다.건설 도구를 보관하고 수확한 자원을 운반하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인부들의 섬세하면서도 튼튼한 조작기는 처음에는 우르자의 복수자들을 위해 설계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무기를 사용하는 일에도 매우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인부들의 이음새와 설치 연결점이 범용성을 가졌던 것은 그것들이 펜레곤의 비축물로부터 대체 부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르자가 그의 전쟁 기계들을 전장에서 수리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타우노스는 고독한 관찰에서 몸을 돌려, 분노와 고통의 기괴한 반전에 직면했다. 가장 끔찍한 폭로가 흔들림 없는 명료함으로 그를 덮쳤다. 기계의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전원 공급부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었다. 트란의 마법석. 조심스럽게 쪼개지고 다듬어진 이 마법석들은 우르자와 미쉬라의 전쟁 기계를 움직였던 것처럼 인부들을 움직였다. 잠시 후, 타우노스는 펜레곤의 비축량이 앞으로 몇 년 안에 고갈될 것이라는 쓰라린 사실을 깨달았다. 펜레곤에 동력을 공급할 대체 자원이나 방법이 없다면, 사람들의 욕심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분노할 터였다. 그가 도움을 제공하고자 했던 열정은 단지 그가 무대를 재설정하게 했을 뿐이었다. 형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세계가 처해 있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피해 보였다.

불을 계속해서 켜둘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 겨울이 오는 것과 함께, 전쟁은 다시금 격렬해질 터였다. 그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타우노스는 의자에 깊숙이 주저앉아 책상 위에 놓인 서류와 문서 더미를 응시했다. 이미 사라진 지가 오래인 세상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유일한 도서관. 그는 오래된 대형 서첩, 둘둘 말려 있는 청사진들, 공책들, 그리고 묶은 다발을 쳐다보았다. 세상이 끝을 맞이하기 전에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그의 스승의 작품들이란 무엇이든. 이러한 찬란한 기록 보관소 앞에서, 타우노스는 수맥을 찾는 점쟁이였다. 기술자가 아니라, 점술가였다. 더 나쁘게, 무기 제작자였다. 타우노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깊게 가라앉는 느낌이 그를 끌어당겼다. 젊은 시절에, 그의 야망은 그를 하늘 높이 치솟게 했다. 그의 자존심은 그가 그저 장난감 제조자로 남아 만족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제 그는 둔한 고통과 함께, 자신이 한 일이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개선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세상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 덜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약 그가 잘 속아넘어가는 왕과 왕비들을 위해 도살된 황소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기들로 점을 치며 일생을 보냈더라면, 그 편이 피해를 덜 입혔을 터였다.

Art by: Matt Stewart

타우노스의 시선이 책상 위에 일부가 파묻혀 있는, 그에게 익숙한 작은 공책의 한 귀퉁이로 떨어졌다. 그것은 우르자의 것이 아니었고 그의 공책이었다. 그 안에는 기계적인 매와 뱀, 섬세하고 복잡한 기계 장치, 마법석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기계구조, 그리고 찰흙과 마법공학을 한데 섞어 살인 장치로 만드는 생체 무기의 디자인같은 그의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있었다. 타우노스는 그 책을 종이 더미 밑에서 끌어낸 뒤, 펼쳐서 훑어보았다. 그것은 멋진 도표와 정확하게 그려진 선들, 그리고 합리적인 수치들로 가득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잉크와 빛이 바랜 흑연으로 빠르게 적어내린 메모는 영감, 수정, 반복의 번개 같은 순간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젊었을 때 더욱 빠르고 자신만만했던 그의 글씨체에는 의심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디자인한 무기의 우아함에 만족했다. 왕국의 방어와 적들의 패배라는, 그것들의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달라진 것이 적들의 복장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세계가 바뀌었다. 그가 바뀌었다.

타우노스의 뒤에서는 그의 사무실을 둘러싼 커다란 유리창에 가려 약해진 창조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인부들의 취약한 관절 위에는 방수 처리가 된 두꺼운 캔버스 천을 동여맸고 중요한 부품들 위에는 무거운 장갑판을 용접했다. 뛰어난 젊은 기능공들은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인부들을 지휘하기 위해 사용할 지휘체계와 명령어를 정리하고 검토했다. 정찰대와 도시 경비대의 장교들은 작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기술자들로부터 이렇게 개조된 전쟁 기계들의 한계와 가동 능력을 익혔다. 도시 전역에서 기술자들이 인부들의 가슴에, 동력 톱날검의 손잡이에, 그리고 눈부시게 밝은 창의 핵에 들어갈 마법석을 회수하기 위해 가로등과 도시 난방기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조각들까지 회수하면서 이것들이 꺼지기 시작했다. 타우노스의 지휘 아래, 다시 한번 평화가 전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는 노트를 덮은 뒤 우르자의 설계도 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바다로 보내 버려라," 타우노스가 속삭였다. 그는 케일라를 생각했고 그녀가 약속을 지키기를 바랬다. 그는 또 다른 여자, 애쉬노드를 생각하면서, 세상이 끝나고 난 뒤인 지금에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우선 그는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용감한 행동을 취할 작정이었다. 타우노스는 그의 최초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마침내 지휘를 할 작정이었다. 그는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작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찢어낸 페이지 몇 장을 내려다보았다. 기계 뱀, 새, 쥐. 그의 장난감들. 다른 방법. 그는 그것들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어둠 속에서, 타우노스는 미소를 지었다.

공장 1층에 있던 사람들이 불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불은 타우노스의 사무실을 집어삼켰다. 불길이 유리창을 핥았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불타는 종이와 잉크의 냄새나는 불덩어리가 되어 그 안으로 사라졌다.


펜레곤 공성전은 하루 동안 지속되었고, 해질 무렵에는 두 번의 소규모 전투로 이어졌다. 첫 번째는 예상되었던 대립으로, 탈 십자군이 외부에서 도시를 탈취하려다 실패한 것의 피비린내 나는 여파였다. 태양이 회색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자, 펜레곤의 수비대는 탈 십자군 보병을 우회하기 위해 피칠갑을 한 도시의 성벽 틈새로부터 기어나왔다. 십자군들은 그들의 유일한 구멍을 활용하는데 실패했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을 내버려두고 밤의 어둠 속으로 떠났으며, 부상자들은 신음소리를 내며 그들을 뒤따라 기어갔다. 멀리서, 서둘러 떠나려는 행렬의 거대한 본체와 펜레곤의 승리한 방어군들 사이에서, 중갑을 입은 음울한 기마병들이 깨끗한 무기를 들고 대기하면서 어두운 시선으로 도시를 쳐다보았다. 무장한 인부들은 오래된 마법석의 잔열로 자신들의 무기와 핵을 빛내면서, 파괴된 돌덩어리들을 가로질렀다. 기계와 그것들의 동료인 인간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던 탈 교도 기병대는 펜레곤의 수비대가 포로를 잡고 전사자를 수습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Art by: Ryan Pancoast

두 번째 전투는 더 광범위하게 퍼졌다.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작년부터 라딕의 군대는 펜레곤의 거주지와 상인 지구에 그들의 신앙을 가진 광신자들을 몰래 숨겨두었다. 겨울의 길고, 어둡고, 추운 몇 달 동안, 이 전도사들은 사람들을 개종시켜 가며 비밀스러운 종교 집단을 양성했다. 탈의 말을 추종하는 이 사람들은 기계와 마법사 모두를 저주했다. 복음주의적인 열정에 고무된 이들은 타우노스의 인부들이 가진 부드러운 금속 골조로부터, 소수만이 남아있는 길의 학자들로부터 악마들을 보았다. 펜레곤에는 마법은 없었지만, 신자들에게는 마법공학이 충분한 연료가 되어 주었다. 그들이 전쟁을 겪으며 살았든 아니면 전쟁의 여파 속에서 태어났든 상관없이, 그들의 삶의 상태는 완벽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탈 십자군들의 본대가 도착하면서 대화재가 촉발되었다. 라딕의 선언이 거부되고 성문이 닫히자, 도시의 탈 교도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공성전 당일 아침 새벽이 되기 전에 탈 교도 군대가 펜레곤 앞의 들판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폭발과 화재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타우노스의 공장, 많은 주택가, 그리고 항구에 있던 몇몇 상선들이 불타올랐다. 검은 옷을 입은 광신도들이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불을 끄러 온 도시 경비대와 오래된 인부들을 공격했다. 도시의 수비대는 대응이 느렸지만, 성벽의 증원 부대에 힘입어 수가 점점 더 늘어났다. 탈 교도들은 열정에 이끌렸지만, 펜레곤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위해 싸웠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펜레곤의 인부들과 민병대가 탈 교도들을 그들의 은신처로 몰아냈다. 한낮이 되자 수백 명이 사망했고, 도시 전체에 화재가 발생했으며, 의용 소방대 대대가 이에 맞서 악전고투를 벌였다. 저녁 무렵이 되자 최악의 전투는 끝났고, 극소수의 죽음도 불사하려는 숭배자들만이 도시에 남아 바리케이드를 친 채로 포위되었다.

케일라는 도시 경비대와 민병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잘 방어된 초소에서 잔혹한 하루를 보냈다. 자르실은 그녀와 함께 있었다. 이런 위험 속에서 손자를 그녀의 곁이 아닌 다른 곳에 두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었고 자신의 핏줄이 또다시 칼날의 이슬이 되게 둘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르실이 자신을 그의 할머니가 아니라 여왕으로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도시의 지도자로서, 케일라는 그저 군대의 냉정한 계산을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지휘관들이 내부의 광신도들과 싸우기 위해 재무장한 인부들을 성벽에서 데려가려고 할 때, 그들은 그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케일라에게로 향했다. 정찰병들이 증원을 요청했을 때, 펜래곤의 민병대를 돌파구로 보내기 위해 케일라에게로 향했다. 동이 트고 벽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을 때, 그녀의 부관들에게는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포획된 탈 교도들을 처형할 것인가, 감옥에 가둘 것인가, 아니면 추방할 것인가? 정확한 전술은 그녀의 지휘관들의 몫이 되었다. 케일라는 도시의 양심, 펜레곤의 연설자,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케일라는 입과 코에 천을 묶은 채로 서서, 불에 타 검게 변한 타우노스의 공장 폐허를 살폈다. 흠뻑 젖은 채로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거대한 건물의 새까맣게 탄 뼈대가 잿빛 하늘 위로 뻗어나와 있었고, 불에 탄 기름과 역한 화학물질의 냄새가 자욱했다. 슬래그 더미와 부분적으로 녹은 인부들로 이루어진 얼룩덜룩한 덩어리들이 건물의 발자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야간 근무 시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마이렐은 두르고 있는 천 마스크에 목소리가 가려진 채로 말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눴던 관리자는 그 불길이 타우노스의 사무실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이렐은 달리 식별할 수 없는 금속과 슬래그가 엉켜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그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에서도, 그의 숙소에서도, 사망자들 사이에서도 말입니다."

케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우노스는 사라졌다. "그리고 일꾼들은 어떻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피난이 가능했습니다," 마이렐이 말했다. "불을 끄려던 사람들 중 일부가 연기를 들이마셔서 고생했지만, 휴식하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1층에 있던 인부들을 잃었습니다. 최소한 열 둘은 될 겁니다."

"이건 공격이 아니군," 케일라가 말했다.

"불길은 갑작스러웠습니다," 마이렐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회수한 우르자의 예전 설계도와 타우노스의 작업물들이—"

"주위를 둘러보게, 마이렐," 케일라가 대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다른 아무것도 불타지 않았네. 다른 아무도 죽지 않았네. 작업자들은 타우노스가 그의 사무실에 있는 동안 화재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네. 이건 폭발이 아니었고, 연기가 위층으로 넘쳐오를 때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

마이렐은 툴툴대면서 동의했다.

"이건 타우노스의 짓일세," 케일라가 말했다. 그녀는 정찰대 대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폐허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녀가 쓴 천 마스크는 냄새를 다소 막아주었지만, 불은 아주 크게 났고, 불탄 금속의 찌릿한 냄새는 여전히 그녀의 코를 찡그리게 했다. 축축한 폐허 속을 조사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작업자들이 일을 멈추고 각자의 연장에 기대어 케일라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케일라는 타우노스의 사무실이었던, 지금은 밤새도록 탄 후 무너져내린 뒤 김이 나오고 있는 엉겨붙은 재와 금속 덩어리의 더미 앞에 멈춰섰다. 서류나 책은 전혀 없었고, 그가 책상 위에 두었을 것으로 보이는, 희미하게 빛나는 더러운 마법석 조각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이기적인 늙은이 같으니," 케일라가 재 앞에서 속삭였다.

불에 탄 금속이 딱딱 소리를 내며 식어 갔다. 물방울이 아직도 뜨거운 잿더미 위로 떨어지며 쉿쉿거리는 소리를 냈다.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오면서 돌에는 삽의 생채기가 났다. 이것들만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밝은 웃음도 엄숙한 중얼거림도, 공손한 기침도 강한 어조의 목소리도 없었다. 그녀의 옛 생활과의 또다른 연결 하나가 끊어졌다.

"자네는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네," 케일라가 말했다. 펜레곤이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의 인부들을 재현하거나 새로운 자동 장치를 고안할 수 있게 해 주는 반쯤 타버린 일지나 훌륭하게 보존된 설계도 같은 것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앞으로 한동안은 좋은 날씨와 수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남아 있는 인부가 수십 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는 다시 인간의 노동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지난 겨울 내내 타우노스의 사무실을 드나들었던 케일라는 몇 남지 않은 인부들의 수명이 거의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들이 사용하는 마법석은 수십 년 전에 동력을 거의 다 사용해 버린 전쟁 기계에서 수확된, 낡고 닳아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전날의 전투가 그것들에게 가했을 부하를 생각했고, 시큼한 반전이 그녀를 휘감았다.

"자네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네," 케일라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녀는 타우노스의 작업장의 폐허를 둘러보았다. 펜레곤은 그녀가 그를 필요로 했던 것보다도 더 그를 필요로 했다. 그렇다, 그가 그녀에게 제공한 옛 삶과의 연결고리는 나아 가고 있는 화상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익숙했다. 그 상처가 그녀의 영혼으로부터 단절되었으니, 그녀는 치유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시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살거나 죽거나의 둘 중 하나였다. 타우노스는 자신의 평생의 업적과 우르자의 마법공학에 대해 수집된 지식을 없애 버린 것으로 펜레곤을 없애 버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당장은 아니고, 앞으로도 몇 년 동안도 아니겠지만, 겨울은 멈추지 않을 터였다. 얼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만약 계절이 계속해서 압축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겨울밖에 없는 시대가 오게 될 터였다. 인부와 마법석이 없는 펜레곤은 죽게 될 터였다.

케일라는 잿더미로부터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녀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제는 불가피해 보이는 종말로부터 구해야 할 도시가 있었다.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작동은 하는 인부 한 쌍이 이날 오후에 노동자들과 합류했다. 펜레곤의 거리에서 눈을 치우기 위해 타우노스가 디자인한 넓은 삽이 장착되어 있는 그것들은 폐허를 청소하는 짧은 작업을 했다. 재는 펜레곤 항구에 버려졌고, 공성전에서 파괴된 인부들과 마법석 심장이 꺼내진 기계들도 그 재와 운명을 같이했다. 어둠이 드리워진 펜레곤의 만에서, 부드러운 파도 아래, 겨울이 오기 전에, 마법공학의 시대가 죽었다.


p>AR 79년

펜레곤의 종말은 공성전의 10년 후에 찾아왔고, 케일라의 가장 희망적인 예측을 능가하긴 했지만 그녀의 확신만큼은 넘어서지 못했다. 그 사이의 세월은 혼돈과 공포의 짧은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공성전만큼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첫 속삭이는 여름이었다. 펜레곤의 정원과 과수원은 일반적으로 매미 울음소리가 무성했지만 아르기브인들은 그것들이야말로 펜레곤의 진정한 포효하는 사자들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 해 여름에는 그것들이 아무런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 다음에 찾아온 조용한 여름에는 아무도 농담을 하지 않았다. 새들이 곤충들의 뒤를 따랐고, 여름의 고요함은 그 다음으로 고요한 봄을 불러들였다.

불길한 징조가 누적되었다. 공성전이 벌어지고 나서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에, 펜레곤의 항구는 처음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만의 바닷물이 얼어붙어, 도시의 어업 및 무역 함대가 빽빽한 얼음 속에 갇혔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절망했다. 폭동이 일어났다. 일이 부족했고, 식량이 부족했다. 시위가 진정되자, 사람들은 얼어붙은 선체의 옆에 오두막과 간이 집을 지으면서 점점이 흩어져 있는 비공식적인 어민들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배를 바다로 몰고 나갈 수 없다면 스스로 바다에 나갈 작정이었다. 처음에는 상인들과 선주들이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도시 경비대를 고용했지만, 얼음이 깨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지자, 그들은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게 했다. 그 이후에는 매번 찾아오는 겨울마다, 만은 지주들이 임대하고, 공급자는 장비를 제공하고, 노동자는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이 되었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찾았고, 집주인은 사람들의 노동을 너무 많지는 않은 금으로바꿨으며, 삶은 계속되었다.

내륙에서는, 펜레곤의 정찰병들이 원정을 계속했다. 그들은 탈 교도와 관련된 사건의 여파 초기에는 멀리 떨어진 위험들을 정찰했다. 겨울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정찰병들은 더 따뜻한 땅을 찾아다녔다. 케일라는 정찰병의 임무를 옹호했고, 펜레곤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그들의 모험을 바라보았다. 겨울의 잔혹함에 맞서는 정찰병들은 펜레곤 항구의 지주들, 봄의 곡창지대장들, 여름의 선장들에게 영웅이었다.

Art by: Sam Burley

그 희망은 보상을 받았다. 거의 끝나갈 무렵, 정찰병들은 먼 서쪽의 녹지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커 산맥의 남부 끝자락 너머에 있는 풀은 여전히 무성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는 옛 요티아, 코를리스, 토마쿨의 후손들이 만든 마을과 취락이 있었고, 산봉우리보다 낮은 곳에서 눈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들은 정찰병들에게 더 멀리, 대 사막의 오아시스와 모래를 지나 토마쿨 폐허의 서쪽에도, 도시가 있다고 장담했다. 대 사막의 너머는 대격변의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격리된 세계였다. 정찰병들은 그것을 확신했고, 그랬기에 케일라는 상인들, 지주들, 길드장들, 그리고 병사들의 말다툼에 싫증이 나 있었기에 펜레곤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원이 먼 서쪽에 있다고 선언했다.

그 소식은 광범위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대상단이 조직되었고, 물자들이 협상되고 물물교환되었으며, 집은 해체되어 손수레와 마차에 실렸다. 수천 명의 정착민들과 난민들이 서쪽을 향해 떠났고, 그 길을 떠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펜레곤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도시는 조용해졌다.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이 파멸을 마주하기 전에 신들이 분명히 이 추위를 없애 줄 것이라는 실속 없는 결의 또는 비장한 체념으로 고수했다. 그들은 도시를 떠날 수 없든 떠나지 않든 둘 중 하나였다.

겨울은 점점 더 여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단 따뜻해지면, 그 중간에 있는 달들은 건조해졌다. 징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온화한 날씨였지만, 때로는 눈보라가 일주일 내내 펜레곤을 어둡게 뒤덮으면서, 주택가의 2층 건물보다 더 높은 눈 속에 도시를 잠기게 했다. 펜레곤에 남은 몇몇 인부들은 도시의 거리에서 쌓인 눈을 삽으로 떠 가며 따뜻한 건물을 찾아 허둥지둥 돌아다니는 외로운 보행자들을 위해 자갈길을 치웠다. 그 인부들이 죽는 경우에는, 그것들은 단순히 노동 중에 작동을 멈췄다. 균형이 잡혀 있었기에, 그것들은 위에서 쏟아져내린 뒤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는 눈의 기둥이 되어 주었다.

아르기브의 마지막 여왕인 케일라가 통치하는 펜레곤의 종말은 가을에 찾아왔다. 정찰병들이 전쟁이 끝난 후 테리시아에서 잊혀졌던 사악한 집단의 잔재인 긱스 교도들의 위협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던 테리시아의 먼 북쪽으로 향했던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곳에서 귀환한 정찰병들은 그곳에서는 걸어다니는 얼음 산 아래에, 시간보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시간과 마찬가지로 멈출 수 없는 거대한 빙하 아래에 대지가 묻혀 있다고 말했다. 겁에 질린 정찰병들은 커 산맥의 최북단이 무너지고 있고, 그럴 때마다 굉음이 때때로 며칠씩 울려퍼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은 북동쪽 해안으로 도망쳤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바다 자체가 얼어붙어 지저분한 회색 땅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공포에 휩싸였다. 바다는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다시 얼어붙는, 케르 산맥만큼이나 높은 얼음 산맥을 토해 내고 있었다; 얼어붙은 바다가 갈라지고 터지는 소리는 마치 신들의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들렸다. 튀긴 생선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에 몸을 녹인 정찰병들은 케일라에게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얼음은, 비록 몇 세대가 지나야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멈출 수 없을 터였다.


그 모든 와중에, 케일라는 침착했다. 그 불길하고 멈출 수 없는 변화가 세계에 축적될 때 펜레곤이 하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그녀의 냉정한 태도가 필요했다. 절망적인 사임을 하는 대신 공공의 보루가 되는 일에는 엄청난 양의 작업이 필요했고, 케일라가 모색해 보지 않은 길은 없었다. 그녀는 옛 신과 새로운 신을 가리지 않고 요티아의 신들에게 심지어 한 번은 탈에게까지도 기도를 했지만, 아르기브인들은 누구 못지 않게 신을 믿지 않았고, 그녀 또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에 이를 멈췄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예와 침착함을 본받겠다는 생각으로 전사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몸을 단련시켰지만, 그녀는 달리기에서도, 승마에서도, 검술에서도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케일라는 무예에서 벗어나 서적과 학문, 예술, 그리고 다른 훈육법들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펜레곤 외곽에 웅장한 저택을 건설하는 일을 지휘했는데, 이는 아르기브에 대한 그녀의 헌신을 증명하는, 미래의 통치자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완성되고 자신이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그것이 무의미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장원을 버리고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대중들과 그녀의 참모들에게 있어, 이 모든 일이 아르기브의 여왕인 케일라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어떠한지를 말해 주었다. 공공장소에서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었다. 금욕주의의 냉정함이 없는 금욕주의자이자, 죽지 않고 봉화처럼 불타오르는 순교자였다. 그 모습은 감옥이었다. 케일라가 두려워할 수 있었던 시간은 어두운 한밤중에 혼자 있을 때뿐이었다. 이 어두운 시간에, 케일라는 자신의 두려움을 세상에 쏟아놓았다. 이것만이 그녀가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펜레곤 공성전과 타우노스의 죽음 이후 초반 몇 년 동안은, 이러한 공포가 생소하고 집중되지 않았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불안함은 그녀에게서 잠을 앗아갔다. 하얗게 달아오른 분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베개 속에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고통과 분노와 슬픔을 결코 비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그녀는 폐가 따끔거리고, 턱은 욱신거리며, 머리는 아픈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무게추가 달린 바늘로 된 왕관과 못으로 된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고, 그것들의 뾰족한 부분이 몸 안으로 파고드는 곳만을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위안은 찾아오지 않았다. 맨손 격투나 산타기를 얼마나 하든 그녀의 머릿속은 전혀 맑아지지 않았다. 어떤 그림이나 시도 그것을 포착해낼 수 없었다. 웅장하고 공허한 장원의 복도를 수도 없이 이리저리 거닐었지만 그녀의 두려움은 가실 줄 몰랐다. 케일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통, 슬픔, 두려움은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며, 펜레곤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세상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고 확신시켰다. 그녀의 조언에는 진실됨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고, 손자에 대한 사랑조차 불러일으킬 수 없었으며, 자신의 슬픔이 자신를 죽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성전 이후 수 년이 흐른 어느 추운 겨울 밤에, 그 일이 거의 일어날 뻔 했다.


홀로, 추위에 떨면서, 땀에 흠뻑 젖은 케일라는 둥글게 뭉친 망토를 얼굴에 가져다 댄 뒤에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귀족 의회와 펜레곤의 돈 많은 왕자들의 사소한 말다툼들로부터 마음을 비우기 위해 혼자 눈을 헤치며 터벅터벅 걸어 자신의 장원으로 후퇴했다. 세상은 끝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그 악당들은 월세와 임대료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근시안적인 진드기들, 탐욕스러운 바보들. 케일라는 그들을 싫어했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는데 저들은 어떻게 살게 된 것일까? 그녀는 요티아와 그녀의 가족, 그녀의 미래, 그리고 심지어 빌어먹을 매미들까지도 그리워했다. 더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케일라는 그녀를 추적하는 정찰병들을 보내지 않도록 마이렐 대장에게만 쪽지를 남겼다. 그녀의 허름한 장원에서 한동안 모든 일을 잊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

낡은 망토와 크룩에서 건져낸 먼지투성이의 진홍색 옷을 입은 케일라는 장원의 웅장한 입구 바닥에 공 모양으로 엎드린 채로 목청 높여 비명을 질렀다. 도시를 떠난 후 이제 하루가 지나 있었고, 그녀는 장원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끔찍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사랑스러운 감정들 또한 그와 함께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우르자, 타우노스, 하르빈, 자르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불타는 크룩과 빛나는 크룩, 라딕과 얼음에 대한 모든 기억을 멈출 수 없었으며, 더이상 소리가 나지 않아 흐느끼기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비명을 질렀고, 그때 무언가가 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열기가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녀의 뱃속 깊숙한 곳에 있는 매듭으로부터 불길이 치솟아, 온몸의 신경을 타고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그녀는 겁에 질려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고, 손에서 불꽃이 튀기 전에 간신히 망토를 벗어 던졌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용광로의 열기가 환하게 타올라, 축제의 불꽃놀이처럼 펑펑 터지는 소리는 그녀의 귀를 멍하게 했고 불꽃의 열기는 그녀의 얼굴을 붉게 익혔다.

마법.

그녀의 귀에서 웅웅대던 소리가 사라졌다. 그녀는 그 일이 일어난 순간 그것을 알았다. 소녀였을 때, 그녀는 이와 같은 놀라운 일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평생 동안, 그녀는 마법공학을 넘어서는 어떤 힘에 대한 소문들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우르자조차도 세계의 한귀퉁이에서 조종되는 난해한 힘에 대해 중얼거리면서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연합 왕국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환상이라고 일축했지만, 그날 밤 그녀의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우르자가 세계를 죽였을 때 마법이 세계로 터져나왔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케일라는 불을 뿜어냈다.

홀로, 화상을 입고 벌벌 떨던 케일라는 자신이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손바닥 위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공기에서는 냄새가 났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수 년 만에 최초로, 케일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새롭고 개인적인 계획이 그녀가 절망에 빠져 보낸 밤들을 대체했다. 그녀는 도시로 돌아와 임무를 재개하고, 펜레곤의 도서관에서 마법에 관한 책이나 두루마리를 찾기 위해 그녀의 시종들을 파견했다. 놀랍게도, 그들이 발견한 것은 아주 많았다. 테리시아 시의 생존자들, 소수 조직인 제3의 길의 조직원들이 펜레곤에 정착해 있었고, 그들은 문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는 라트-남 대학의 학자이자 제3의 길의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전쟁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한때 테리시아 시를 공격하던 미쉬라 군대의 제1연대를 사라지게 한 허킬의 기술을 탐구한 사본이 있었다. 케일라는 전쟁 중에 이 소식을 들었지만, 오랫동안 피비린내 나는 공성전에서 살아남은 자들로부터 유래한, 희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마법을 경험한 후, 그녀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케일라의 새로운 야간 연습은 책에 기술된 허킬의 명상 기법에 대한 구절들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집중을 통해 마법에 대한 통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읽었고, 그래서 그녀는 펜레곤의 기록 보관소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크룩의 돌을 가져와 그것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법을 배웠으며, 그 돌이 환하게 빛나며 들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질 때까지 이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고통을 없애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연습할 때 자주 화상을 입었지만, 이것이 그녀를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깨끗한 헝겊으로 손을 감싸고 이 에너지의 통로가 더 이상 그녀의 살갗을 태우거나 고통을 유발하지 않을 때까지 연습을 계속했다. 그런 뒤, 그녀는 더 나아가 이 열기의 방향을 바꾸고, 그것을 거친 불꽃과 차가운 빛으로 만들어내, 그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익혀 나갔다.

이러한 연습은 기운을 차리게 해 주면서도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허킬이 묘사한 대로 영혼을 활용하는 일은 기억과 감정의 분수 앞에서 자신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이었다. 눈물이 마르고 연습을 위한 돌이 식었을 때에도, 케일라의 절망의 기미는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 마지막 감정을 불태워 없애 버릴 수 없었다. 이 유령은 그녀의 자신감이 초심자의 불안한 실천으로부터 대가의 확신으로 변해 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건드려 초에 불을 붙이거나, 종이에 베인 손가락의 상처를 고치거나, 손바닥에 놓인 돌을 불타는 석탄만큼 뜨겁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으며, 그녀는 자신의 숙련도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케일라는 깨달았다. 그녀가 거칠고 갑작스러운 마법을 다룰 수 있다면,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되찾을 수도 있을 터였다. 양쪽 모두 똑같은 노력을 요구했고, 그녀는 부지런한 학생이었다.

케일라는 그녀의 연습용 돌처럼, 매일 밤마다, 매 훈련마다 냉정해져 갔다. 그녀의 슬픔을 따라 분노하는 대신, 케일라는 그녀의 돌에 불을 주입했고, 그것을 촛불에 가져다댄 뒤, 촛불이 타오르는 것과 함께 그녀의 분노를 제어했다. 그녀는 그 익숙한 아픔을 마주하고,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그것을 한켠으로 치웠다. 절망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지만, 대신 케일라는 그것을 끝까지 들어준 뒤에 작별을 고했다. 뒤덮인 얼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에는 해가 떠올랐고, 매일 아침마다, 그녀보다 더 겁에 질렸고 그녀보다 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도움과 지도, 원조, 그리고 위안을 청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왔다. 매일마다, 그녀는 그들을 돕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매일마다, 그녀가 케일라 영주가 아니라 케일라 빈-크룩이라고 알고 있던 여성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변했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웠지만, 더이상은 희망이 없지 않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자신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이상 밤이 두렵지 않았다.

그랬기에, 정찰병들이 서쪽에서 희망적인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케일라는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식량과 보호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마이렐과 정찰대에게 명령해 그 순례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길드장들과 곡창지대장들의 창고에서 가져가게 해 주었다. 케일라의 명령에 저항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일부는 저항을 시도했다. 그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금과 용병들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살아남은 귀족들은 굴복했다. 대부분의 정찰병들은 이주를 위한 선봉대가 되어 펜레곤을 떠났고, 도시 인구의 거의 절반이 긴 마차의 띠를 이루며 그 뒤를 따랐다. 마이렐은 그들과 함께 갔다. 케일라는 그들을 배웅했고,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하듯이 마이렐의 양 볼에 입맞춤을 하면서, 언젠가는 서쪽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펜레곤은 마지막 마차들의 행렬이 출발한 후에 조용해졌고, 긴 겨울이 다가오면서 어두워졌다. 폭풍이 도시를 강타했다. 특히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던 때에, 탈 십자군들이 다시 찾아왔다. 케일라는 성문을 열라고 명령하고 그들을 펜레곤의 어두운 거리로 초대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기계를 어디에 숨겼는지 말하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성전사들에게 그것들이 얼음 건너로 걸어갔다고 알렸다. 케일라는 그들에게 펜레곤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며, 악마 따윈 없고 이곳에 있는 것은 굶주린 사람들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탈 십자군들은 마침내 펜레곤 안으로 들어왔다. 불굴의 십자군들 속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라딕이 궁금해진 그녀는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죽었소," 그들의 새로운 지도자가 말했다. 그는 라딕이 가지고 있었던 매력과는 전혀 동떨어진 수척하고 차가운 남자였다. 케일라는 시장 거리에서 술과 포도주를 사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무쇠 탑 이후에 우리는 미쉬라의 주조소로 행진했소,"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곳에 있던 악마들은 숫자와 분노가 대단했지만, 탈의 은총으로 모두 죽였소. 많은 신자들이 죽었지, 라딕도 그들 중 한 명이었고." 그는 술병들을 안장 자루 안에 집어넣었다. "당신에게 특별한 사람이기라도 한 거요?"

"아니, 전혀," 케일라가 말했다. "그저 옛 세계를 상기시켜줄 뿐이네."

수척한 남자와 그의 수행원은 떠났고, 수 년 동안의 원정 후에 남은 자들인 검은 옷을 입은 탈 교도들의 긴 행렬이 눈을 헤치며 하얀 공허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지막 해가 서서히 멈춰 갔다. 첫 날부터 매일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빠져나가며, 도시에서 생기를, 열기를, 소리를 없애 나갔다. 거리는 황폐해졌고, 도시는 축소되었다.

케일라는 펜레곤을 마지막으로 떠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곳은 그녀의 도시였지만, 그녀는 춥고 텅 빈 거리에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 슬픔을 자신의 크룩 돌멩이에 쏟아넣었다. 그녀는 떠나야 할 때 떠났다. 그녀의 정찰병들은 마른 풀잎과 납작하게 누른 꽃을 가지고 돌아왔고, 눈이 덮인 커 산맥과 동쪽의 폐허 너머, 그리고 사막 너머에 있는 활기찬 세계인 초록의 바다를 약속했다. 그녀의 정찰병들은 마을과 도시들이 있다고 그녀에게 장담했으며, 다른 것 또한 있었다. 그것은 서쪽 하늘을 날아다니는 남자와 비행 기계에 대한, 부드러우면서도 잔인한 이야기였다.

하르빈이었다.

케일라는 이미 자신의 슬픔을 모두 쏟아냈다. 그와 함께 희망으로 변할 수 있는 슬픔 또한 사라졌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케일라는 냉정을 유지했다. 그녀는 아들을 찾기 위해 펜레곤을 떠나 혼자서 산과 강을 건너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들의 비참한 장원에서 움직이기를 거부한 펜레곤 항구의 음침하고 피투성이인 지주들만을 남겨둔 채로, 그녀의 시민들을 위한 마지막 대상단을 준비해 그들과 함께 서쪽으로 떠났다. 남은 지주들은 얼음이 그들을 데려갈 때까지 자신들의 돈을 세고 있었다.


케일라는 펜레곤과 자신의 영지를 뒤로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제는 잘 닦여 있는 길을 따라 행진했다. 울부짖는 커 산맥 위로 올라간 그녀의 대상단은 고갯길 중 가장 낮은 곳을 골랐음에도 여전히 추위와 어둠, 그리고 그곳에 있는 끔찍한 생물들에게 인원수의 4분의 1을 잃으며 고군분투했다. 그 쓰라린 고갯길에서, 그들은 몇 년 전에 이 경로에서 죽어 돌처럼 얼어붙은 수백 구의 시체 옆을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고도가 낮아지자 마침내 녹색 서쪽의 해안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약간이나마 안도했다. 쓰라린 커 산맥의 그늘 속에서, 케일라는 다시 한번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대지 위에 서 있었다. 요티아, 그녀의 합당한 영토이자, 언젠가 여왕으로써 다스렸을 대지. 그녀는 항상 피비린내 나는 전쟁군주 호칭을 싫어했다. 그들이 얼마나 비열했고,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신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칭호가 전쟁의 대가라면 그들이 어떻게 나라를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을 것인가?

케일라는 자신이 좋은 여왕이 되었을 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봄에 녹아내린 샘물로 불어난 마르둔 강은 그녀의 기억보다 더 크고 더 넓게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된 강의 새로운 둑을 따라 굽이굽이 돌면서 그곳에서 마주친 작은 개울과 수송선 마을을 거쳐 가며 이동했다. 아직 아무도 다리를 건설하지는 않았지만, 케일라의 계산에 따르면, 그리 먼 일은 아니었다. 눈과 얼음은 그것들이 펜레곤과 동부를 위협했던 것만큼 커 산맥 서쪽의 대지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대륙의 벽에 의해 지연되었을 뿐인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산의 그늘 속에서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녀의 대상단 구성원 중 피곤하고 아픈 일부 사람들은 이 움트기 시작한 마을에서 그들의 이주를 멈췄다. 이곳에는 경작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 채취할 수 있는 사금, 회수할 수 있는 고철, 덫으로 잡을 수 있는 사냥감, 그리고 수확할 수 있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문명 시대의 삶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구릉과 울창한 숲을 지나니 곧 메마른 대초원이 그들을 맞이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펜레곤의 마지막 피난민 백여 명은 이끼로 뒤덮인 낡은 전쟁 기계와 버려진 보루의 폐허를 지나 계속 서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경로는 죽은 마을들의 부서진 돌 폐허와 오래된 전쟁터를 가로질렀다. 참호와 분화구는 이제는 저녁에 개구리들이 노래하는 얕은 연못이 되어 있었고, 죽은 사람들의 뼈는 이제 썩어 그 위에서 백합과 갈대나무 가지들이 자라나 작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도로만큼이나 무덤이기도 했다. 때때로 그들은 썩어가는 마차와 수레, 그리고 그것들을 끌던 짐승과 그들의 주인의 뜯어먹히거나 묻혀 있는 시체를 지나치곤 했다.

마침내, 그들은 서쪽의 첫 번째 도시인 뉴 요티아에 도착했다. 서쪽의 광활한 대지가 내려다보이는 메사의 꼭대기에 나무들이 제멋대로 퍼져나가 있는 뉴 요티아는 옛 마르둔의 굽이치는 강물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큰 노가 달린 바퀴가 강에서 회전하면서, 공장을 가동하고 강변의 모든 산업에 동력을 공급했다. 도시는 메사의 자연적인 고저차와 산 쪽을 향한 토목 공사 이외의 별다른 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곳은 경작된 밭과 농부들의 소규모 집단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높은 신호탑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도시를 향해 늘어서 있었고, 그것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마차의 행렬을 보자 덜그럭거리기 시작했다.

뉴 요티아는 한때 펜레곤이 자신들의 관문 앞을 찾아온 자들을 환영했던 것처럼 그들을 환영했다. 케일라의 시민 중 대부분은 그 도시에서 따뜻하고 친숙한 편안함을 느끼며 그곳에 정착했다. 케일라도 거의 그렇게 할 뻔했다. 그녀는 피곤했고 뉴 요티아는 그녀에게 그녀의 젊은 시절을 상기시켜 주었다. 향기, 음식, 음악, 언어, 심지어 단순한 목조건물이기는 했지만 건물들까지도 그 모든 것이 완전히 요티아식이었다. 크룩의 페허는 앞으로 수십 마일은 더 가야 만날 수 있었고, 뉴 요티아는 크룩이 아니었지만 거의 똑같았다.

케일라는 남은 겨울 동안 뉴 요티아에 머물면서, 도시의 번화한 지역에 위치한 작은 찻집 위에 있는 비교적 안락한 장소에서 지냈다. 여름이 되자, 그녀는 서쪽으로 계속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결정했다. 뉴 요티아는 커 산맥의 서쪽을 오르내리는 덫사냥꾼과 광부, 그리고 농부들이 들락거리는 분주한 항구였다. 몇몇은 그보다도 훨씬 더 먼 곳에서 찾아왔고, 케일라는 서쪽 더 멀리에도 다른 도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트-남, 수미파, 그리고 동부를 멸망시킨 대격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여러 다른 도시들이 있었다. 또한, 케일라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거울 같은 은색을 발하며 빛의 섬광처럼 빠른 날렵한 기계에 대해, 그리고 서쪽의 푸른 하늘을 나는 마지막 비행사에 대해.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영웅이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태양으로 날아가 금을 훔쳐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대격변에서 죽었고 바람의 전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르빈, 그녀의 아들, 서쪽 하늘의 전설.

죽었든 살았든, 유령이든 영혼이든, 케일라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대륙을 횡단하기로 결심했다. 테리시아에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타우노스처럼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과 자르실에게서 마법을 보았다. 옛 세계는 죽어 가고 있었고, 기억하고 있었고, 떨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고 있었다.


p>AR 80년

케일라가 서쪽으로 출발하기 전날 저녁, 그녀의 손자인 자르실이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바쁜 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세련된 요티아 요리를 즐겼고, 케일라는 마지막 접시가 차려진 후 시중을 들던 하인을 물렸다. 그것은 가벼운 식사였고, 두 사람은 아래쪽에 있는 저녁 인파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게 한 채로 침묵 속에서 식사를 했지만 케일라가 더 이상 손자의 침울함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자르실," 케일라가 식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식사가 입에 맞지 않나 보구나."

"죄송해요, 할머니," 자르실이 말했다. 그는 곧게 앉은 자세가 허락하는 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형식적인 칼질 몇 번을 제외하면 그는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나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이 없지 않니," 케일라가 말했다. "근심이 있구나. 연인이니, 훈련이니, 아니면 그것도 아닌 다른 것이니?"

"다른 거에요," 그녀의 손자가 말했다. 자르실은 시장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 장소를 고르셨죠?" 그가 물었다. "할머니는 여왕이시잖아요. 새로운 궁전에 숙소를 잡으실 수도 있었어요."

"그래," 케일라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내 백성들로부터 떨어져 있었단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살고 싶었지." 그녀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엔 경비병이 없잖아요."

"나는 노인이란다," 케일라가 말했다, "그리고 난 항수 냄새가 나지 않는 지금이 행복하단다. 난 향신료와 기름, 그리고 향초의 냄새를 맡고 싶단다. 경비병들은 필요하지 않고, 내가 바라지도 않아."

"그러면 탈 교도들은요?" 자르실이 말했다. 그는 아래쪽 시장을 훑으며 차를 판매하는 상인과 흥정하고 있는 탈 교도 병사 한 쌍을 가리켰다. "그들은 이제 마도사를 사냥하고 다닌다고 해요."

"그렇더구나." 케일라는 음식을 한 입 베어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되진 않으세요?"

케일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안 한단다. 모든 노파는 누군가에 의해 마녀라고 불려 왔지. 국가를 이끌 만큼 운이 나쁜 노파는 특히 더 그랬고. 거기다가 그들이 우리 모두를 잡아들일 수는 없지 않겠니." 그녀가 윙크를 하자, 부드러운 에너지가 아파트를 가득 채웠다. 케일라가 타게 두었던 기름 램프들이 한꺼번에 꺼졌다가, 다시 불타올랐다.

자르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아래쪽 시장에 있는 탈 교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탈 교도들은 날 신경쓰지 않는단다." 케일라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거의 그대로 있는 자르실의 접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식욕이 없는 게 걱정이구나. 그리고 네가 말을 돌리고 있는 것도. 뭐 때문에 그러니?"

자르실은 식은 음식을 쿡쿡 찔렀다.

"말해 보려무나," 케일라는 상냥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전 같이 갈 수 없어요."

케일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르실이 남자였기는 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학생처럼 소심했다. 그녀는 잠시 동안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얼굴을 찌푸리기 전에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르실은 그의 아버지를 아주 많이 닮았다. 하르빈은 딱 한 번, 그가 날틀 부대에 합류할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하던 날, 그녀에게 대들었다.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뒤엉킨 공포가 그 오래 전 하르빈이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르실의 목을 메이게 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전쟁은 없었다. 자르실은 영리한 소년이었고, 하르빈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르실이 말을 꺼냈다, "북쪽에 있는 로놈 호수 기슭에 학교가 있다고요."

"로놈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케일라가 말했다. "수십 년 전에 탈 교도들이 첫 성전을 벌일 때 긱스 교도들은 모두 쫓겨났어."

"네, 맞아요," 자르실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무언가 다른 게 있다고 들었어요. 그 학교는 . . . 우리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요."

"마법을 배우는 학교라고?"

자르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과 마법공학 양쪽 다요. 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더 나아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어요. 더 강해지는 방법을요."

케일라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자르실은, 옛 세계의 관습과 새로운 세계의 요구에 의해, 어른이 되어 있었다. 다만 그녀는 그를 여전히 어린 소년으로 여길 때가 많았지만 말이다. 그는 그녀의 곁에서, 아버지에게는 버림을 받고 세계의 끝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세계의 끝에서. 그의 세계는, 위험하기는 했지만, 젊었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가 뒤쫓아온 소문은 그녀가 여태껏 따라온 이야기들보다 덜 신뢰할 만한 것이던가?

"마법과 마법공학이라," 케일라가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녀는 궁금했다. 그럴 수 있을까? "누가 이 학교를 운영한다고도 말해 주더니?"

"마법공학자 여성인 노드와 그들은 덕이라고 부르는 마도사였어요," 자르실이 말했다. 그는 그 이름들을 큰 소리로 말하기가 부끄럽다는 듯이 목덜미를 문질렀다. "제 생각에는 그가 서쪽에서 온 것 같아요, 웃긴 이름이라서요."

노드와 덕. 옛 친구들과 새 친구들. 케일라는 항상 그 날에 타우노스가 정말로 죽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자르실을 향해 미소지었다. "북쪽으로 가려무나. 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다면, 찾아 보렴"

자르실은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는 것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케일라는 일어나 테이블 주변을 빙 돌아가 자르실을 끌어안아 주었다. "우리 손자," 그녀가 그를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와 나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단다. 내 이야기는 끝나 가는 것일 지 모르지만, 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하려 하고 있지."

"가는 게 무서워요," 자르실은 품에 안겨 잦아들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렇단다," 케일라가 말했다. 그녀는 손자의 뺨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이나 신이 나기도 한단다. 그 신나는 기분이 우리를 이끌게 하자꾸나, 알겠지?"

자르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뒤로 물러나 코를 문질렀다. "그분에게 저에 대해서 말해 주시겠어요?" 그가 물었다. 케일라는 그가 누구를 말하려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는 그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렴," 케일라가 말했다. "너도 덕 교장에게 내 이야기를 해 준다면 말이지. 자, 언제 떠날 생각이니?"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할머니의 소원이 사라지는 것보다도 호기심이 앞선 자르실은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서둘러서 옷가게에 가야 하겠지만, 이미 길잡이들에게 제 관심사에 대해서 말해 두었어요. 절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의 눈물은 말라 있었고, 이미 고른 숨소리와 함께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신나할 때에, 그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불타올랐다.

케일라는 마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정말로 있다면 학교 교육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체하면 안 되겠구나," 케일라가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가라고 손짓했다. "빨리 짐을 챙기고, 길잡이들에게 네가 확실하게 내일 아침에 합류할 것이라고 알리려무나"

"작별인사를 하는 게 힘들어요, 할머니," 자르실이 말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요."

케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작별 인사는 하지 말자꾸나,"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껴안으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우리 손자."

"다음에 또 봐요," 자르실이 속삭였다.

케일라는 손자를 떠나보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동이 트기 전에 떠났다.


서쪽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은 마르둔 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강은 크룩의 폐허를 지나 사막의 가장자리에 그들을 내려주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토마쿨과 그 너머의 폐허를 통과하는 큰길을 따라갔다.

케일라는 그녀의 옛 고향이 궁금했다. 뉴 요티아 사람들은 오래 전에 테리시아를 뒤흔든 엄청난 대격변의 폭발로 인해 마르둔 강이 강둑을 넘어 범람해 도시를 침수시켰다고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한때 도시의 왕궁과 귀족들의 거주구가 있었던 크룩의 남쪽 지역을 제외하면, 도시의 많은 부분은 물 속에 남아 있었다. 그 웅장하고 오래된 수도는 이제 멀리 커 산맥 남부에서 녹은 눈이 흘러내려와 만들어낸 강이 흘러들어오는 호수가 되어 있었다.

케일라는 전쟁군주가 다시금 크룩을 통치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번 사람은 옛날의 강력한 지도자들을 본떠서 자신을 꾸민 무뢰한이었다. 그의 습격자들은 도시 주변의 도로와 들판을 위협했기에, 뉴 요티아의 궁수들과 탈 교도 용병들이 지키고 있는 빠른 강 보트를 타는 것이 더 나았다. 탈의 교회는 뉴 요티아에서 번성해서, 대초원의 야생화만큼이나 많이 퍼져 있었다. 그 음울한 참회자들과 악마 사냥꾼들은 뉴 요티아의 밝은 기쁨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었지만, 교단의 규모가 컸고 도시의 공동 방어에 손을 빌려주기도 했다. 케일라는 크룩의 습격자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그들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또한, 그녀는 그녀 혼자서는 그들을 뿌리뽑아 그녀의 고향이 될 수도 있던 이 도시에서 쫓아낼 수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심지어 그녀의 마법으로도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검은 옷을 입은 군인들이 그녀의 강 보트에 줄지어 올라탔을 때 거기에 항의하지 않았다. 탈 교도들은 짙은 남색의 깨끗한 제복을 입고, 갑옷은 검게 칠했으며, 칼에는 기름을 먹여 녹이 슬지 않게 해 두고 있었다. 그들은 한때 펜레곤을 공격했던 필사적인 폭도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첫 패배가 그들의 믿음을 단념시키지는 못한 듯이 보였다.

탈 교도들은 맨 아래 갑판과 선반을, 승객들과 뉴 요티아의 궁수들은 맨 위 갑판을 차지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최악의 상황은 탈 교도들에게 닥칠 터였다. 그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고, 케일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래쪽에서, 탈 교도들은 기도하고, 먹고, 무기를 관리하고, 자고, 망을 보았다. 아무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몰랐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케일라는 이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출항한 뒤, 케일라는 저녁 시간 동안에는 각자의 선실로 돌아가라는 선장의 명령을 무시한 채 강 보트의 두 번째 갑판을 거닐었다. 그녀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았고 대화는 거부했다. 뉴 요티아 사람들은 케일라의 구세계적인 억양과 태도를 알아보고 케일라가 그들과 거리를 두는 것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그저 늙은 괴짜이며 세계의 종말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노인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뉴 요티아 사람들은 강 위에서 처음 며칠 밤을 보낸 뒤부터는 질문과 접근을 중단했다. 홀로 남겨진 케일라는 자유롭게 쉬면서 세계가 그녀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크룩의 폐허가 하루 앞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그녀가 쓰고 있던 시의 마지막 페이지들이 있었다. 세계를 죽여 다시는 잊혀지지 않을 그리고 용서받지도 못할 남자들의 역사를 다룬 서사시였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뉴 요티아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그들이 훈련을 통해 시합을 하기 위해 둑을 따라 목표물들인 나무, 오래 전에 버려진 농장의 울타리 기둥, 전쟁으로 녹슨 기계들을 향해 쏘아내고 있는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활시위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아래쪽 갑판에서는 탈 교도들 중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곧 나머지도 함께 노래에 참여해, 그들의 목소리가 합창이 되어 소리를 높였다.

한 주 정도 이렇게 더 보낸다고 해도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카일라는 토마쿨을, 그 웅장한 도시가 이제는 폐허만 남아있다고 해도 보고 싶었고, 그녀가 이야기에서만 들어본 적이 있는 서쪽의 땅을 탐험하기를 열망했다.

케일라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발로 갑판을 톡톡 두들겼다. 그녀는 오늘 하루는 글쓰기를 쉬기로 결심하면서, 서첩을 닫았다. 강 보트의 잔잔한 흔들림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햇볕이 그녀의 얼굴을 따스하게 비춰 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미소지었다.

케일라는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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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룩 그 자체는 한때 대도시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돌탑들은 이제는 새들의 둥지가 된 텅 빈 돌기둥 몇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호수의 외딴 보초병들은 크룩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들로 남아있었지만 그곳에서 생겨난 새로운 도시의 일부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격변 이후의 크룩은 수면 위로 세운 나무기둥들의 숲 위에 지어진,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과 산책로들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도시의 모든 것은 둘 중 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수의 풍족한 자원을 수확하거나 강을 위아래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습격해 동전과 포로, 그리고 인양품을 크룩의 폭군인 전쟁군주 파스크의 재산에 더했다.

파스크는 영리한 무뢰한이었다. 호칭에서도 태도에서도 전쟁군주였던 그는 대격변 이후 10년 동안 정상을 향한 살육의 길을 걸어갔다. 이제 파스크는 테리시아 남서쪽 해안에 있는 제곤의 폐허에서부터 북쪽의 사막 경계에 녹음이 우거진 곳까지 펼쳐져 있는 작은 왕국을 다스렸다. 동쪽으로는, 그의 칼날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뉴 요티아 사람들과 탈 교도들이 있었기에, 그의 영토가 불명확했다. 그의 국경 안에서는 모두가 그에게 공물을 바쳤고, 이는 간단한 "십분의 사" 체계였다. 물건 중 네 개는 국가의 재정과 그의 개인 금고에 바쳐졌고, 나머지는 그의 충직한 신하들에게 나눠졌다. 그는, 그의 통치를 겪은 백성들로써는 원통하겠지만, 이 땅을 차지한 전쟁군주들 중에서는 가장 공정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파스크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총애하는 전사들에게는 충성할 것을, 나머지 신하들에게는 복종할 것을 명령했다.

파스크의 종말은 그의 영토가 폭동을 일으키는 지역과 굶주린 전쟁군주들로 조각조각나는 것과 함께 찾아왔다. 뉴 요티아 사람들과 탈 교도들은 그의 영토의 동쪽 절반을 정복하고 합병한 반면, 파스크의 경쟁자들은 서쪽 절반을 조각조각 나눴다. 그 곳의 전투가 멈췄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기록들이 보관되기라도 했다면시간과 얼음에 의해 소실되었거나, 탈 교회의 기록 보관소에 묻혔을 터였다. 폭군이자 유령이었던 파스크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 또한 소실되었다.


크룩의 폭군인 전쟁군주 파스크는 깊은 한밤중에 깨어났다. 그의 방 안에서 소리가 났다. 깡통, 동전, 메달들이 다같이 덜컥거리고 있었다.

파스크는 얇은 시트로 된 담요를 집어 던진 뒤 침대에서 막 일어나 벌거벗은 채로 칼을 움켜쥐고 소리가 나는 곳을 겨눴다. 그의 방은 다른 사람들처럼 간소하지 않았고, 그는 그 안을 다른 창고나 금고와 마찬가지로 가득 채우라고 명령했다. 그의 경비병들은 전쟁군주의 편집증과 광기에 대해 수군댔지만, 파스크는 필사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를 증명해야만 했다.

큰 방에는 여러 줄이 그물처럼 얽혀 있었고, 각 줄에는 모든 종류의 작고 밝은 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깡통, 동전, 은과 양철 식기, 메달, 칼, 사슬 셔츠, 화살촉. 무엇 하나 사람이 만지게 되면 크고 확실한 소음을 만들어낼 물건들이었다. 이것은 파스크가 만들어낸 함정으로, 그가 미치지 않았고 제정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몇 달 동안, 파스크는 밤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달렸다.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발소리와 대화 소리에. 그는 이것이 그가 경보 시스템을 만든 이유라고 경비병들에게 말했고 겉으로는 암살자를 두려워했지만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것을, 더 치명적인 것을, 즉 운명을 두려워했다.

피스크는 눈에서 땀을 닦은 뒤 다시 한번 영매의 말을 떠올렸다.

죽은 자는 죽인 자를 잊지 않는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이빨 사이로 낄낄댔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네가 입힌 칼자국은 천 배가 되어 네게 돌아가리라!

파스크는 검의 행군으로 정벌을 떠났던 당시 어느 어둡고 비가 오는 밤에,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에게 저항하던 이름 모를 마을을 파괴할 때에 그 영매를 만났다. 그녀가 그에게 저주를 내린 파멸은 10년 동안 그를 괴롭혔다; 비록 그는 전쟁을 통해 그가 만들어낸 왕좌에 올랐지만, 대격변 이후로 그것만큼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잠에서 깬 뒤 조용한 몇 분 동안, 파스크는 땀에 젖은 그의 등 뒤로 수치심이 마치 장막처럼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늙은 노파를 두려워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의 칼은 면도칼처럼 날카롭게 날이 선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무기였고, 그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크룩의 폭군이자 옛 요티아의 전쟁군주인 파스크였다! 바람, 그것은 호수 위로 부는 바람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의 침대 발치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냐?" 파스크는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두려움이 그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는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네가 누구인지를 말해라," 파스크가 강요했다. "영혼아, 누가 너를 보냈느냐?"

정적만이 흘렀다. 파스크가 혼란에 빠지기에는 충분히 긴 정적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바람이었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강한 바람이어야 하겠지만, 그저 그것뿐일 수도 있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이 줄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바깥에서는 돌풍이 불고 있어야 할 터였다. 그것들을 건드린 것은 살아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것들은 가슴께에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깡통과 부서진 유리가 흩뿌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파스크의 방 안에서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침대 발치에서 다시 한번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가 난 듯한 무언가가 짧게 쉿쉿대는 소리를 냈다. 마치 짐승이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다가오는 것처럼.

파스크는 허둥지둥 일어나 벽에 등을 대고 그 소리로부터 최대한 멀리 움직였다. 밝은 달빛이 좁은 창살을 통해 그의 방 안으로 스며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검을 한 손으로 바꿔쥔 뒤, 그는 침대 너머에 보관하고 있는 등잔이 있는 기름 램프로 손을 뻗었다. 램프의 손잡이를 비틀자, 가림막이 확 펼쳐졌다. 한 줄기 따뜻한 빛이 어둠을 뚫고 나와, 그의 침대 발밑을 비췄다.

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름 램프의 빛에 만들어진 어슴푸레한 그림자였다. 그것은 반쯤 실체화된 영혼이었고, 사람의 모습을 한 형체가 없는 연기와 단단한 형상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안개였다. 파스크는 그 영혼의 짧게 깎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다듬어진 수염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영혼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았다.

파스크는 비명을 질렀다. 크룩의 폭군은 칼을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왕국의 세워져 있는 묘지인 크룩의 차가운 물 아래로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죽은 자의 유령이 찾아오는 것이야말로 그가 두려워했던 파멸이었다.

영혼은 뒤로 물러났고, 그의 하반신이 안개에서 형태를 갖추며 걸음걸이를 하는 모습을 띠었다. 그는 깡통과 메달들이 달려 있는 다른 줄에 부딪혔고, 그것은 부드럽게 짤랑거렸다.

경비병들이 칼을 뽑아들고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군주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할퀴고 있는 모습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몇몇은 파스크를 돕기로 결심하고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험상궂은 얼굴 위에 어두운 표정을 드리운 채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볼 만큼 보았다.


"카야," 테페리가 그림자 속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속삭이며 말했다. "날 꺼내 주게."

"테페리, 당신은 거기에 몇 분 밖에 들어가 있지 않았어요," 카야는 멀리서 불어오는 미풍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뭘 한 거죠?!"

"아무것도!" 테페리가 말했다. "내 생각엔 그가 나를 본 것 같네." 그는 벌거벗은 채로 침대 위에서 뒹굴며 비명을 지르는 남자가 자신을 진정시키려던 보아하니 그의 경비병들을 향해 맹렬히 비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군," 테페리가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함정 줄 중 하나를 잡아당겨 그의 이론을 시험해 보았다. 그것은 마치 미풍이 선을 옮긴 것처럼 부드럽게 튀었다. 그것은 그가 안심하기에는 너무 많은 움직임이었다. 그는 실체가 없어야 했고,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영혼에 지나지 않아야 했다. 테페리는 고개를 저었다. "닻이 정확하게 계측되지 않았네, 카야, 그리고 내 생각엔 목표를 낮춰서 잡은 것 같더군. 우리는 충분히 뒤로 가지 않았어. 날 꺼내 주게."

카야는 테페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카야가 말했다. "사힐리가 생각이 좀 있는 것 같던데요."

테페리는 카야의 눈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좋아요," 카야가 말했다. "꺼내 드릴게요."

테페리의 영혼은, 크룩의 폭군의 비명 소리를 제외하고는 밤을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로, 안개 속으로 녹아들었다.


수 세기가 지난 후, 한 고대인이 그날 밤의 이야기로 손자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그 뒤를 이은 갈등, 유령 때문에 흥망성쇠한 왕국들, 그리고 징조와 마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손자들은 누구도 그의 말을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해 줄 때 내는 표정과 소리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 이야기를 해 달라고 자주 요구했다. 이야기들은 테리시아의 빙하 위에서 보내는 몹시 추운 밤 동안에 기운을 차리게 해 주었다.

빙하의 시대가 도미나리아에 찾아왔고, 이 손자들은 모두 장수했고, 이 이야기의 다양한 버전을 그들 자신의 후손에게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얼음보다 오래 살지 못했고, 폭군과 유령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