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시험들
박물관
그녀가 처음에 바랐던 것은 박물관이 전부였다. 박물관은 파크 하이츠에 있는 뉴 카펜나의 고층건물들 중 하나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안헬로는 그녀에게 "방"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신입들을 위한 막사 쪽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보통 엘스페스는 혼자였고 마에스트로스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안헬로가 그녀에게 "패밀리의 일원"이라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엘스페스는 절대로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들의 싸움은 보잘것없었고 방법도 의심스러웠다. 엘스페스는 이런 것들에 자신을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피렉시아를 막아낼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이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었다.
그녀가 박물관에서 하찮은 일을 하는 동안에도 그 피렉시아인의 조각상은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 속 한가운데에 남아있었다. 그녀는 도처에서 그들의 괴물 같은 형체들을 보았다. 때때로 엘스페스는 전사 천사들의 쩍쩍 갈라진 초상화의 배경에서 다가오고 있는 그들의 그림자 윤곽이 스스로가 상상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의 의심이 강해질 때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날개 달린 형체가 기도하고 있는 그림자에서 긴 손톱이 있는 듯한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곤 했다.
엘스페스는 작품을 뒤집은 다음 한숨을 쉬면서 옆에 있는 장부에 몇 가지를 메모했다. 의심스럽게 입수한 미술품을 분류하는 나날이 흘러갔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대답에 다가가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나날이 흘러갔다. 엘스페스는 엄지손가락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액자의 홈을 훑어보았다. 여기에는 옛 뉴 카펜나 시대의 유물들 속에 갇혀 있는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옛 카펜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잘 숨겼고, 그녀는 이 수 세기는 된 수수께끼들을 하나로 엮어내기 위한 정보에 아직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고 꽤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큐레이터였다. 마에스트로스의 지도자는 이 유물들을 우연히 수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이 엘스페스가 계속해서 마에스트로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유였다.
악마도 제 말을 하면 찾아온다더니
목록 작성실의 문이 열렸다. 뿔이 달린 흡혈귀인 마에스트로스의 지도자, 잰더가 걸어들어왔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그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고, 그의 숨죽인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도착했을 때 마에스트로스의 큐레이터이자 보스인 자를 잠깐 만났었다. 안헬로를 통해 소개를 받은 후에는, 그녀는 그를 멀리서만 봤다. 비록 그들의 교류가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엘스페스는 그가 뉴 카펜나와 피렉시아인들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왜 그런 지식과 유물들을 모아들였단 말인가?
그녀가 그를 쳐다봤고 그 시선을 느낀 잰더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엘스페스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몇 주째 튀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열심히 일하며 시키는 것들을 하고 있었지만 영원히 박물관의 장부 담당자로 남아 여러 뒷방 중 한 곳에서 자신이 그냥 잊혀져 가게 놔둘 생각도 없었다.
"가라," 잰더는 엘스페스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자신의 양 옆에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 말했다. "지시대로 해라." 그런 뒤 그는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엘스페스는 먼지투성이인 상자들, 삼베로 싸인 조각품들, 면직물로 덮인 초상화들을 헤치고 나아가 그의 앞에 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를 인정하는 것을 예의 있게 드러내지만 굴복하겠다고까지는 아닌 정도로 간단하게 인사했다. 마에스트로스는 아첨꾼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병사들을 귀중하게 여겼다.
"같이 좀 걷지." 잰더는 지팡이를 땅바닥에 툭툭 쳐서 그의 말에 힘을 실었고, 털로 덮인 넓은 소매는 그의 손을 거의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패밀리는 어떤가?"
"괜찮아요."
"자네에 대한 불평이 전혀 들리지 않더군. 자네는 충실하고, 능숙하고, 기대에 부응하게 일을 해. 그러면서도, 자네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말 또한 없더군."
"전 배우러 온 것이지, 손에 피를 묻히러 온 게 아니에요."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식의 대가는 종종 다른 이들의 혈관 속에서 발견되는 법이지." 잰더의 눈이 상아색 왕관과도 같이, 그의 이마를 덮고 있는 뿔들 중 하나를 덮은 금과 같은 색을 내며 빛났다. 마에스트로스 중, 다른 흡혈귀들은 그러한 특징이 없었기에, 그것이 뉴 카펜나의 지역적인 변종들이 가지고 있는 별난 점은 아니었다.
"제가 찾고 있는 정보를 얻으려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는 건가요?"
"아직은 아니야." 그는 혼자서 흥얼거렸다.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목숨을 없애라고 시키는 일은 보통 비극적으로 끝나지. 하지만 나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야.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지."
그의 지팡이로 대리석을 두드리는 소리가 박물관의 중앙 홀 안에 메아리쳤다. 솟아올라있는 기둥은 등으로 유리 천장을 받쳐 주고 있는 천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엘스페스는 도시의 기반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잊혀진 창시자들이 이곳을 무리하게 떠받치고 있다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죠?"
"일이 몇 개 있지." 잰더가 멈춰섰다. "하지만 이걸 선택하면 패밀리의 진정한 일원이 되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 두게. 평생 마에스트로스에 소속되게 될 거야. 그러니, 그것이 정말 자네가 원하는 것인지를 잘 생각해 보게나. 그렇지 않다면
엘스페스는 그와 박물관의 육중한 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제 와서 물러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죽음조차 그녀를 어찌하지 못한다면, 잰더도 그러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뭐라고 말하든 그녀는 어디에도 갇힐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준비됐어요."
메지오 거리
엘스페스의 옆구리에 메고 있는 가방에 들어 있는 작은 꾸러미가 부드럽게 달칵거렸다. 그녀는 잰더가 그것을 열지 말라고 명확하게 지시를 내려 준 것이 고마웠다. 그녀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박물관에서 메지오에 있는 특정 건물로 그것을 가져가는 것이 전부였다.
간단했다.
엘스페스는 다른 허브들과 연결되어 있는 박물관 앞 승강장에서 도시의 엘리베이터 중 하나에 올라탔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는 내내 그녀는 소포가 들어 있는 가방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녀는 수월하게 도시를 돌아다녔다. 대로를 벗어나, 옆길로 내려간 다음, 갈림길에서 좌회전, 골목을 지나, 두 건물 사이
그녀는 지시를 따라 갔고 골목의 어두운 불빛 속에서 거의 까맣게 보이는 짙은 남색의 소박한 문 앞에 도착했다. 노커나 손잡이가 있어야 하는 곳에는 문 보다 조금 더 어두운 검정색으로 윤곽만 희미하게 보이는 손바닥처럼 생긴 작은 인장이 있었다. 그 기호는 너무나도 미묘했기에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매번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지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엘스페스가 세 번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면서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금속 모자를 비스듬하게 썼고, 모자의 늘어진 챙이 그녀의 코 끝을 덮고 있었다. 엘스페스는 앞부분에 난 틈새를 통해 그녀의 눈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백단향과 오렌지의 향기가 그녀의 어깨를 휘감고 있는 옅은 연기 위에서 떠돌고 있었다.
옵스큐라로군, 엘스페스는 깨달았다. 그들의 세탁물 가방은 항상 엘스페스에게 사람들이 헬리아드의 신전에서 태웠던 향의 냄새를 희미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 향은 그리움에 대한 아픔을 동반했고, 엘스페스는 닥소스에 대한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떠오르려는 것을 애써 물리쳤다.
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엘스페스는 그녀의 손바닥에 소포를 올려놓고는 곧바로 떠났다.
잰더의 사무실
"소포는 약속된 대로 배달됐다고 들었네. 가는 길에 문제는 없었나?"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잰더가 질문을 던졌다.
박물관 전체가 호화스러웠지만, 잰더의 개인 숙소해 비교해 보자면 별것 아니었다. 샹들리에가 머리 위에서 반짝였고 왕관의 조형물은 우는 천사와 웃는 악마의 초상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반짝이고 있는 모든 것이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제는 전혀 없었어요." 엘스페스는 그것이 배달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벌써 알았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녀가 배달을 마치고 곧장 되돌아왔음에도 그에게는 그만의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을 아는 것은 그녀가 이 계약을 맺은 목적이 아니었기에 별로 상관이 없었다. "자 이제, 뉴 카펜나의 역사는요?"
"이런 것들을 논의할 때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겠지." 잰더는 왼쪽 무릎에 살짝 힘을 주며 천천히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를 들지 않았다. 그가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을 그녀가 본 것은 오로지 그의 개인 숙소 바깥에서만이었다. "이 소중한 도시는 대천사와 악마 군주 사이에 이루어진 있을 법하지 않은 거래에 의해 설립되었다네."
"함께 일한 건가요?" 엘스페스는 그를 따라가 조명 아래에 걸려 있는 날개 달린 천사와 뿔 달린 악마가 악수를 하는 초상화 앞에 섰다.
"적의 적은 친구고, 그 사실은 뉴 카펜나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그 어느때보다도 진실했지."
"그들의 적은 누구였죠?" 엘스페스에게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그건 내가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수수께끼지." 그는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하려는 듯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좌절했다는 듯이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천사들이 이 차원을 방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느낄 정도로 충분히 심각한 위협이었다네. 그 시기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자네가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잰더의 두 눈이 빛났다. "가장 흔한 이야기는 악마들 또한 싸움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는 것이지. 그들이 싸움에 참여했을 때, 악마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도시를 차지할 다섯 패밀리를 임명했고, 각각의 패밀리의 수장들과 함께 조약의 초안을 작성했다네."
그녀의 시선이 빠르게 그의 뿔로 향했다. 잰더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 내가 바로 그때 서명을 해서 내가 가진 다른 피의 재능에 더해 기꺼이 부분적으로 악마가 된 자들 중 한 명이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에 있었던 거로군요?"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었는지는 모르고요?"
"내가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고, 시간과 계약의 마법이 내 기억을 왜곡시켰다네. 게다가 나는 그때 발생했던 전투에도 참여하지 않았지
엘스페스는 흡혈귀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그 일을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천사들이 떠난 것에 대해 안헬로가 내보였던 씁슬한 감정을 기억해내고 다른 접근법을 선택했다. "천사들과 악마들이 사라진 뒤에 위협도 같이 사라졌나요? 그들이 승리했나요?"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있지, 그렇지 않은가?"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엘스페스는 아자니에게 가지고 돌아갈 좀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질문을 꺼내기 전에 잰더가 말했다.
"이정도면 오늘 할 역사 이야기는 다 한 것 같군." 잰더는 여전히 한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면서 책상으로 돌아갔다.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게, 그때 다시 얘기하지."
메지오 창고
엘스페스는 감각을 회복하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 발가락들은 첫 30분만에 감각이 무뎌졌고, 일어서지 않고는 그것들의 감각을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녀가 난간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그녀의 위치를 노출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아래에 있는 거리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으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원은 해가 지고 약 2시간 후에 카바레에서 나와 다음 장소로 향할 것이네. 보면 그녀가 누군지 알게 될 게야. 그녀는 우리 중 한 명이니까. 눈에 띄지 않게 그녀를 지켜보면서, 그녀가 방해를 받지 않게 하게, 잰더는 그렇게 지시했다.
이제는 예정된 시간보다 몇 분이 지나 있었지만, 카바레티의 흡혈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녹색으로 칠이 되어 있는 카바레 문이 열리자, 무릎가에서 펄럭이는 치마를 두른 젊은 여성이 걸어나왔다. 그녀는 웃으면서 아직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미소가 사라지면서 그녀의 표정이 격해졌다. 그녀는 목적이 있다는 듯이 성큼성큼 거리를 걸어갔다.
이 사람이 바로 엘스페스가 기다리고 있던 정보원이었다.
엘스페스는 그림자 속에서 그 여성을 따라갔다. 그녀는 건물의 화려한 장식을 따라 가볍게 뛰어 이동하면서, 머리 위의 불빛들이 어떤 식으로 그녀의 그림자를 드러낼지를 신경썼다. 정보원은 갑자기 멈춰섰고 엘스페스는 조각상의 등 뒤에 매달렸다.
그 흡혈귀는 홱 하고 방향을 틀었다. 엘스페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들켰나? 그 여성이 피해야만 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던 엘스페스는 건물들을 뚫고 지나가 큰 창고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터널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엘스페스는 조각상에서 두 건물을 연결하는 아치길로 뛰어내리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몸을 낮게 웅크리고 지붕에 바짝 붙은 채로, 재빨리 그곳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이 창고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볼 수 있을 터였고, 그녀가 매우 수상해 보인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시선을 끄는 일을 피하기 위해 빨리 거리로 나와야만 했다.
엘스페스는 서둘러 채광창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그녀의 정보원이 텅 빈 창고를 지나가고 있는 것을 힐끗 보았다. 아직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 여성은 그녀가 들어간 곳의 맞은편에 있는 문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엘스페스는 지붕의 반대편 가장자리까지 달려갔다. 두 건물 사이에 나 있는 골목은 대부분 매끄러운 벽면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가 위쪽에서 추적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옆에는 또다른 골목길이 있었다
될 것 같아.
엘스페스는 아래쪽에 있는 여성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면서 창고의 오른편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정보원이 향하는 길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좁은 길이 있었다. 그녀가 본 것이 맞다면, 그녀는 건물들의 작은 틈을 뚫고 나간 뒤에 다시 돌아와서 정보원을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녀는 석조물들의 틈새로 몸을 밀어넣었다. 엘스페스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각 벽에 발과 손을 얹은 뒤 몸을 기우뚱거리면서 조심스럽고 빠르게 땅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떨어지지 않는 일에 너무나도 집중해 있었기에 근처에서 끽끽대고 허둥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갑자기 근처의 어두운 벽감에서 그림자가 격렬하게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다 뭐야?" 그 짐승은 털이 무성한 아가리를 그녀의 코 근처에 대고 으르렁댔다. "신선한 고기인가?"
"내게서 떨어져, 이 쥐야!" 엘스페스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 생물을 밀어냈다. 사실, 그것은 쥐라기보다는 너구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엘스페스는 으르렁대고 있는 그것 앞에서 말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우린 쥐가 아니야, 얘들아, 본때를 보여 주자!" 그 너구리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단도를 뽑아들었다. 그 골목은 답답할 정도로 좁아서 싸우기는 어려웠다. 그녀에게 처음 달려들었던 녀석과 같은 모습을 한 셋이 더 나타나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싸우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엘스페스는 칼날을 피한 다음 그 생물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너희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어!" 그녀는 빙빙 돌면서 그 너구리를 다른 녀석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공성 망치처럼 이용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너구리 같은 생물들이 기절해 있는 동안 그녀는 기회를 잡아 그들에게서 빠져나와 골목길로 달려갔고 낮은 담벼락을 넘어 이전에 보았던 건물들의 틈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정보원 쪽을 쳐다보고 기다리면서 귀를 기울였다. 너구리들은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를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엘스페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신 뒤 계속해서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갔고 정보원이 지나가자 잠시 멈춘 뒤, 다시 계속 전진했다.
더 이상의 사고는 없었다. 엘스페스는 정보원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벽감에 멈춰설 때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흡혈귀는 문을 두드린 뒤에 기다렸다. 마법이 번쩍였고 문이 열리면서 안쪽에서 섬뜩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엘스페스는 그들이 주고받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은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여성은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잰더의 사무실
"무기가 필요해요." 엘스페스는 잰더의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말을 돌리지 않았다.
"왜지, 말해 보겠나?" 잰더는 평소처럼 책상 뒤에 앉아, 엘스페스가 전에는 보지 못했던 먼지투성이인 서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에스트로스의 박물관을 드나드는 모든 것들을 목록화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였기에 이것을 보았을 때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특별했다. 그것은 그의 사무실 근처에 소문으로만 들리던 기록보관소가 있다는 것을 추가로 증명해 주는 사실과 이어졌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찾고 있던 진짜 보물이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는 있지만, 내가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니라네." 잰더는 아직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속아넘어갈 뻔했군요."
"좋아. 그건 내가 내 일을 잘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는 마침내 책을 덮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정보원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저는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오?"
"너구리에게 공격당했죠."
"예상해 보건데, 자네가 감당하지 못할 일은 없었겠지?"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전 괜찮아요." 엘스페스는 그의 책상 맞은편에 있는 의자 두 개 중 하나에 앉았다. 잰더는 그녀의 대담함에 당황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 번에 어둠 속에서 뭔가가 덮쳐 올 때는 그렇게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주먹보다 나은 무언가가 필요하죠."
그는 손가락을 깍지낀 채로 생각에 잠겨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기를 가지고 싶다면 스스로 얻어내야 하고 거기다 장교의 지위에 올라야만 하지. 그때까지는 있는 걸로 견뎌내야 할 게야," 그의 입가에 교활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면 철근을 찾아서 그걸 사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엘스페스는 그의 말이 재미있는 것인지 모욕적인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거래에서 제가 맡은 일을 했어요, 이제는 당신 차례죠."
그는 목에 걸린 사슬을 따라 펜던트를 미끄러뜨리면서 킥킥 웃었다. "항상 일 얘기만 해야 하는 겐가? 난 자네에게 목이나 축이라고 권해 볼까 했는데."
잰더는 책상에 있는 서랍에서 작은 병과 가늘고 작은 잔 두 개를 꺼냈다. 병 안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물질이 들어 있었다. 위쪽 부분은 햇빛처럼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뒤 그것은 짙은 주황색에서 한밤처럼 어두운 보라색으로 색이 변해 갔다. 그것은 마치 우주가 증류되어 체로 걸러진 뒤 액체도 고체도 기체도 아닌 용액 속에 기본적인 요소만이 남겨진 것처럼, 마치 순수한 마법이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헤일로지," 잰더가 짧게 말했다. 그가 크리스탈 병뚜껑을 따자 병이 반짝이는 한숨을 내쉬었고, 허공에 둥근 원을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이 도시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아직까지 맛도 보지 못했다는게 아쉬운 일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는 두 잔을 가득 채웠다. 가특 채웠음에도 한 모금 거리도 되지 못했다. 엘스페스는 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면서 그 기이한 혼합물을 살펴보았다. 한순간의 망설임. 그런 뒤 그녀는 그것을 들이켰다.
그녀는 그것이 따뜻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닥소스와 함께 했던 만족스럽고, 길고, 나른한 오후의 맛이었다. 그것에서는 그녀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감성과 고향의 맛이 났다. 그것을 마시는 것은 마신다기보다는 흡수하는 것에 가까웠다. 에일로는 그녀를 힘과 목적으로 채워 주었다. 그녀의 근육들은 활기를 되찾았고, 그녀의 감각은 더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밖으로 나갈 곳을 찾으면서 그녀의 몸 안에서 솟구쳐오르는 마법이었다.
"왜 매력이 있는 지를 알겠네요." 그녀는 다시 잔을 내려놓으며 인정했다.
"사람들이 이걸 두고 싸우기에는 충분하지. 또 그렇기에 이걸 위해서 싸워 왔고." 그것은 잰더의 얼굴을 희미하게 찌푸리게 만든 씁쓸한 사실이었다. "헤일로는 천사들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네."
"왜 그런 선물을 준 거죠?"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가능성의 연결고리가 형성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려면 그녀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누가 알겠나? 아마도 뉴 카펜나를 끝나지 않는 성대한 파티장으로 만들려고 했을 수도 있지." 잰더는 마치 자신조차도 그 설명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낄낄대면서 고개를 저었다.
엘스페스는 그 말을 털끝만큼도 믿지 않았다. 헤일로처럼 강력하고 희귀한 것은 값싼 오락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에는 목적이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목적이 피렉시아인들을 물리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파크 하이츠 중심부
오늘 밤의 일은 적당히 쉬웠다. 그녀의 가슴에 달린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헤일로 병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엘스페스는 그것이 따뜻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들이켰던 때의 감각이 다시 생각나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헤일로를 파크 하이츠의 숲이 우거진 접선 장소 중 한 곳으로 가져가 내려놓은 다음 아무런 질문도 서성거림도 없이 할 일만 하고 바로 떠나기만 하면 됐다.
잰더가 그녀에게 맡겼던 다른 일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것은 말 그대로 공원을 산책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있을지도 모르는 위협을 계속해서 경계했다. 늦은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했지만 특별히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엘스페스는 다른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로 물건을 둘 지점까지 크게 돌아서 가는 어둡고 외딴 길을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 벤치의 발치에 누군가 점심을 잊고 간 것처럼 갈색 종이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관목과 나무들을 재빨리 훑어본 뒤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엘스페스가 봉투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어떤 손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녀의 시선은 내뻗은 팔을 타고올라가서 인간 여성의 에메랄드빛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검은색이었고, 하얀색인 나머지 절반은 머리 옆쪽으로 단단하게 땋아져 있었다. 그녀는 잰더처럼 옷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좀 더 실용적이었다. 엘스페스는 그녀의 옷 이곳저곳에 드러나 있는 화살촉 모양의 모티브를 놓치지 않았고,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등 뒤에 있는 화살통과 그녀의 옆구리 쪽에 있는 활처럼 보이는 물건 덕분이었다.
"누가 이걸 가지러 올 건지 궁금해하던 중이었지." 그녀는 멋있는 낮은 음조로 말했다.
"아까 잊고 간 물건이에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이 여성은 엘스페스가 배달하는 중인 헤일로를 가지고 가야 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무언가가 뉴 카펜나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연과 공명을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그녀는 엘스페스와 같은 플레인즈워커였다.
"거짓말하지 마," 그 여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그런 일이 어울리는 것 같지 않으니까." 그녀는 엘스페스를 휙 훑어보았고, 그 시선은 의심의 여지없이 마에스트로스의 색채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런 패밀리들과 일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고 말이야." 그 말에는 비판보다는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엘스페스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렇겠지."
"저는 이 차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엘스페스는 이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결정하고 이렇게 말했다. 동료 플레인즈워커가 그녀의 명분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마도 이 여성이 이미 뉴 카펜나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왜지?"
"내 고향일 수도 있거든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어려서 지하감옥에 있었을 때부터 그녀의 마음 속에서 고향이라고 생각해 왔던 장소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영원히 방황할 터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위협이 다가오고 있고 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는 거죠."
"그건 확실하고 우리는 같은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 아, 난 비비안이야."
"엘스페스에요." 그녀는 속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엘스페스는 항상 자신이 사람들의 특징을 꽤 잘 판단한다고 여겼고 비비안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누구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거지?" 비비안이 물었다. 엘스페스는 계속해서 대답을 망설였고 비비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맞춰 볼게, 관문수호대야?" 엘스페스는 이미 비비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엘스페스의 온 정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당신도 그들을 위해서 이곳에 온 건가요?"
"원래는 아니야. 하지만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잘 알잖아. 우리는 아마도—" 비비안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홱 돌렸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널 따라오는 녀석들이 거리를 좁히고 있어."
잰더가 항상 그녀가 어디에 있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라면 그녀를 미행하라고 사람들을 보낼 터였다.
"저 녀석들이 나에 대해 질문을 하기 전에 가봐야겠어." 비비안은 그녀를 놓아 주었다. "하지만 내게도 이 위협에 관련된 정보가 있을 수 있지."
"그래요?" 엘스페스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면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곧바로 너무 많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흥미로울 수도 있는 단서가 하나 있어. 나랑 같이 가면—"
"그럴 수는 없어요," 엘스페스가 황급히 말했다. "뉴 카펜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전에—" 그녀는 곧바로 '피렉시아인들'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 위협을 물리쳤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그 정보를 얻어낼 때까지는 떠나지 않을 거에요."
"좋아." 비비안은 더이상 그 일을 강요하지 않았고, 엘스페스는 그것이 고마웠다. 그녀는 아자니가 준 임무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나도 이 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정보가 더 생기면 네게 연락할게."
"왜 도와주려는 거죠?" 엘스페스는 뉴 카펜나에 너무 오래 있었다. 낯선 사람이 순전히 이타적인 마음으로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 준다는 생각이 이제 낮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 차원의 문제에 너무 깊이 파고들기 전에 그에 관련된 모든 자세한 내용을 아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 만날 때를 고대하지."
"그게 언제죠?" 엘스페스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 되물었다.
"뭔가 쓸만한 걸 찾았을 때지.." 비비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만나서 반가웠어."
나뭇잎이 비비안의 주의에서 움직이면서, 그녀를 위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길을 덤불 사이로 만들어냈다. 마법인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움직이는 방법과 자신감에 넘치고 망설임이 없던 것과 관련된 기술인 것인가?
이제는 그녀도 잰더의 부하들이 길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엘스페스는 몸을 웅크리고 봉투 안에 헤일로 병을 넣었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그녀는 박물관으로 돌아갔다.
잰더의 사무실
"늦어서 미안해요," 엘스페스는 일부러 그것을 무시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사람들을 보내 그녀를 미행하게 한 뒤로는 말이다.
"아무 문제도 아니네." 그는 책상 뒤에 있는 높은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엘스페스는 그가 조각상처럼 냉정하면서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에게는 손쉽게 공중에서 찾아오는 죽음을 선사할 수 있는 커다란 맹금류 같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기다려 줘서 고맙군요." 그녀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 멈춰섰다.
"자네과 의논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네." 그는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며 그녀를 힐끗 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무 문제도 아니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가 이 장소나 이곳의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대부분의 일에서 잰더와 의견이 일치할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굳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불친절하지 않았고, 기껏해 봐야, 그녀는 자신이 늙은 철학자 혹은 암살자와 어울리지 않는 친분을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아니, 친분이라는 단어는 너무 관대할 지도 몰랐다
"중요한 문제라는 게 뭐죠?" 엘스페스는 그가 자신이 지각한 것에 대한 원인을 캐묻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물었다.
"호적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있어요." 그녀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너무 크게 말하기만 해도 그가 나타날 것만 같아서 항상 속삭이는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숙소에서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이 도시의 구조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라네." 잰더는 창문 너머로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보이는 들쭉날쭉한 스카이라인의 파노라마를 손으로 가리켰다. "뉴 카펜나에 평화가 있는 이유는 이곳의 다섯 패밀리 사이에 균형, 이해 관계가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협력적인 경쟁을 하고 있지."
"협력적이라구요?" 엘스페스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말하자면, 모두가 다른 모두의 예산 안에서 운용을 하고 있는 거지."
"질서와 구조를 만드는 방법 치고는 대단하네요."
"그게 자네의 방식은 아닐 지 몰라도 효과가 있다네." 잰더는 손을 그의 지팡이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만들어냈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의지하고 번역할 수 있는 구조를
"재미요," 엘스페스는 나지막이 코웃음쳤다.
잰더는 그것을 들었다. "그래, 재미. 자네도 이 인생을 좀 즐기려고 노력해야 해. 아주 스릴있지. 자네가 정상에 있는 한은 말이야."
"기대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엘스페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걱정 말게, 그러진 않을 테니." 그는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표정은 곧 다시 심각해졌다. "호적수는 모든 것에 대한 위협이네. 그는 헤일로 거래를 옥죄고 사람들을 절박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수 세기 동안 유지해온 균형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어. 호적수가 헤일로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면 우리들 나머지는 찌꺼기를 두고 싸우게 될 거라네. 그건 곧 전쟁을 의미하지."
"제가 뭘 하길 바라죠?"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자네는 유능하고, 지략이 풍부하고, 영리하고, 부지런해 보여.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건 자네가 아직 이 도시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걱정 말게, 가서 호적수에게 맞서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니. 자네는 카바레티에 침투해 줬으면 하네."
"카바레티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죠?"
"카바레티는 자신들이 헤일로를 무한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세례반이 있어서 호적수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그리고 그걸 훔쳐 오라는 건가요?"
"아니, 물론 아니야. 그 소문이 사실인지를 알아봐주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세례반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를 내게 알려주고 문은 열린 채로 놔두게.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
"정말 확실한 건가요?" 엘스페스는 그의 희뿌연 눈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그건 패밀리들 간의 균형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요?"
"자네가 일을 제대로 하고 마에스트로스에 대한 충성을 비밀로 하면, 카바레티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내 속임수를 알아차린다고 해도 그건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이라네. 시대는 변하고, 지금은 어려운 시기지. 오래된 규칙만 따르고 있으면 그 규칙들과 함께 죽고 말 거라네. 전쟁을 해야 한다면, 나는 먼저 공격하는 쪽이 되겠어," 그는 조용하고 무시무시하게 다짐했다. "그 말이 나왔으니
"나이프인가요?" 그녀느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네가 원했고, 얻어냈지. 내 마에스트로스의 장교로써 말이야."
엘스페스가 이 패밀리에서 지위를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일을 성취했다는 생각에 조그마한 자부심이 솟아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고마워요."
"감사는 자네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서 해 주게. 자네가 성공하면 돌아왔을 때 그것보다 더 좋은 칼을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러죠, 하지만 제가 돌아오면
"뭐지?" 그녀의 단호함은 항상 그를 즐겁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칼은 더 필요하지 않아요. 당신의 기록 보관소에 들어가고 싶어요. 이게 당신을 위한 마지막 일이고, 정보를 주는 일도 끝이에요. 나는 전부 다 팔요해요. 지금 호적수보다도 더 큰 위협이 있어요. 내가 찾고 있는 정보를 당신이 준다면 그 위협을 알아낼 수 있어요."
잰더는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그의 평가의 무게가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추적자들이 자신과 비비안이 나눈 대화를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 그 정보를 알려줄 것인지를 알고 있는지를.
"알겠네," 그가 마침내 말했다. "이 일을 해 주면 내 기록 보관소에 있는 모든 지식은 자네 것이네."
"좋아요." 엘스페스는 떠나려 했지만 그가 그녀를 막았다.
"오, 우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네?"
잰더의 얼굴이 활짝 펼쳐지며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카바레티의 카바레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입고 갈 수는 없지."
에필로그 – 카바레
엘스페스는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두른 깃털 달린 망토를 고쳐입었다. 그녀는 잰더가 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카바레까지 가는 내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무랄 데 없이 잘 다듬어져 있었고, 갑옷은 그녀의 가슴, 어깨, 엉덩이에 완벽하게 맞으면서 그 아래에 있는 하얀 비단 옷감을 돋보이게 해 주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아마도 그녀의 다리를 감싸 안는 그물 스타킹처럼 만들어진 사슬 갑옷일 터였다. 그녀의 이마에 올려진 티아라는 그녀에게 자신이 마치 여왕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잰더가 그녀에게 지시한 카바레티의 신입들이 모이는 장소인 카바레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주었다.
엘스페스는 사람들이 붐비는 방 안을 재빨리 훑어본 후, 바로 바 카운터로 갔다.
"헤일로?" 바 뒤에 있는 엘프가 카바레티 인장이 새겨진 작은 냅킨을 그녀의 앞에 놓으면서 물었다.
"그건 됐어요. 일을 찾아서 왔어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려 노력했다.
"여기에 일을 쌓아 두고 있지는 않은데, 헤일로 뿐이야." 그는 키득대며 웃었다.
엘스페스는 이미 일을 망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은 뒤 다른 접근 방법을 시도했다. "얼마 안 있으면 크레센도이고 카바레티는 도와 줄 사람들을 더 찾고 있을 텐데요. 저는 패밀리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넌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죠."
"내가 왜 낯선 사람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겠어?" 바텐더는 곧바로 엘스페스의 왼쪽에 도착한 레오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언제나 마시던 거지, 종달새?"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로코," 그녀는 들고 있는 악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가운의 두꺼운 깃털 소매와 옷깃 너머로 오선지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내 세트가 시작되기 전에 긴장만 가라앉힐 정도면 돼, 너무 많이는 말고."
"알았아." 그는 헤일로를 아주 조금 따라서 음악가에게 건넨 뒤에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일 말인데—" 엘스페스는 다시 그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면서 말을 꺼냈다.
로코는 몸을 돌려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듯이 그녀를 쳐다본 뒤에 곧바로 가 버렸다.
엘스페스는 입술을 깨물며 장갑의 솔기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녀는 너무 직설적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너무 앞서나갔다. 이것이 그녀가—
레오닌이 웃음을 터뜨렸고, 엘스페스가 그것이 자신을 두고 그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일을 하고 싶어, 응?" 그녀의 목소리는 서정적이고 거의 노래와도 같았다.
"누구시죠?" 엘스페스는 짜증을 내지 않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를 모른다니 놀랍네." 그녀는 입고 있는 드레스의 스팽글 장식을 쓰다듬었다. "위대한 여가수인 키트 칸토에 대해서는 들어본 게 틀림없겠지?"
"미안해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엘스페스는 그 즉시 키트의 자존심을 위해 거짓말을 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키트는 별로 동요하지 않는 것처러 보였다. "그렇다면 아주 잘 됐네.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내 차례니까 꼭 들어보라고, 이름이
"엘스페스에요."
"엘스페스? 정말로?"
"네." 엘스페스는 왜 자신의 이름을 듣고 키트의 귀가 움찔거렸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이젠 무조건 날 따라와야 되겠어. 그런 이름을 들으면 재미있어할 사람을 알고 있지." 키트가 앞장을 섰고 엘스페스는 마지못해 그녀를 따라갔으다. 둘이 카바레의 벽에 늘어선 부채꼴 모양의 벽감 중 하나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다른 여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키트, 이 사람은 누구야?" 두 여성 중 나이가 많은 쪽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테이블 앞에 웅크리고 있던 개가 그것과 함께 고개를 쳐들었다.
"네가 말해." 키트는 장난스럽게 엘스페스를 쿡 찌르고 나서 미끄러지듯이 벤치로 가서 앉았다.
"엘스페스에요."
"엘스페스," 앉아 있던 여성이 재미있다는 듯이 따라했다. "묘비에 새겨지지 않은 엘스페스를 보는 건 처음이네. 현대사회에 온 걸 환영해, 이쁜이. 드레스가 마음에 드네. 그 이름에 걸맞게 유령들이 옷을 재단하지 않은 게 다행이야. 난 지니야."
지니. 카바레티의 수장인 제트미어의 오른팔. 운명이 엘스페스에게 미소를 지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반가워요." 엘스페스의 시선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옷을 덜 화려하게 입은 것 같았다. 그녀의 옷은 몸매에 비해 너무 커서, 마치 그녀가 그 안에 숨으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이쪽은 지아다야." 지니는 무릎 위에서 그릉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그 아이를 소개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지아다," 엘스페스는 그녀에게 직접 말하기로 했다. 지아다는 고개를 끄떡였을 뿐이었다.
"엘스페스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네, 특히 크레센도를 돕고 싶다고 말이야," 키트가 말했다.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네. 이름도 그렇고 패션 센스도 그렇고, 플로어 팀에 합류해도 되겠어."
"이런 일에 대해선 보통 네가 나보다 더 감이 좋잖아," 지니가 인정했다. 그녀는 엘스페스를 쳐다보았다. "이 말이 사실이야?" 엘스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몇 가지 사소한 일을 맡길 수 있을 것 같네. 누가 알겠어, 네가 제대로만 한다면 크레센도에 맞춰 카바레티와 함께 일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날 믿어, 놓치고 싶지 않은 파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