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 다음은 냄새였다: 불타는 이탄의, 오존의 냄새. 그것은 그녀의 입천장에 달라붙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그녀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의 발톱에 돌이 긁히는 소리가 들릴 때쯤, 그녀의 눈이 떠지면서 그녀는 칼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사냥개처럼 긴 발톱과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움푹 패인 눈두덩이를 가진 괴물이 있었다. 소녀는 차가운 돌담에 몸을 파묻으면서 짐승의 맞은편에 웅크렸다. 소녀와 괴물 사이에는 한쪽으로 쓰러져 있는 시체가 있었다: 나이든 여성이었고, 목이 찢겨져 있었다. 괴물의 찍찍대는 턱으로부터 그녀의 피가 흘러나와 소녀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때 그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그녀에게 눈이 있고 볼 수 있다는 사실 이외에—이 모든 것들 중에서 그녀에게 새로운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곳을 알고 있엇다. 그녀는 한때 이곳에 있었다. 이 곰팡이가 핀 지하감옥은 그녀의 옛 가족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이곳에 온 지 일주일, 어쩌면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을—그녀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며 모든 희망을 잃었다는 것을—알고 있었다. 그녀는 땅 위에 쓰러져 있는 여성이 소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소녀는 꿈애서도 생각지 못한 일을 했다. 이번에는, 그녀는 검을 들고 있었다. 그 생물이 소녀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녀가 짐승과 어린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것이 달려들면서 발톱이 갑옷을 긁었다. 그것이 그녀를 물어뜯으려 입을 벌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검을 그것의 입천장에 꽂아넣었다. 상처에서 검은 타르가 거품을 일으키며 그녀의 칼날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녀는 칼을 빼냈다. 그 생물은 꺽꺽거리면서 땅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그녀는 칼을 휘둘러 그것의 머리를 쳐냈다. 그녀는 그것을 발로 차 버렸다.

너무나도 간단했다. 너무나도 간단했었다. 그녀가 이런 종류의 일을 어려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들이 그녀의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 소녀는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그녀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다. 그 여성에게는 제대로 된 장례식이 필요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할 터였고, 그런 생각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 . .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았던가?

그녀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소녀는 그녀를 껴안고 있었다. 그녀는 소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넌 이제 안전해."

"고마워요," 소녀는 어려 보이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은 옳은 일을 한 거에요."

그녀는 생물의 시체와 죽은 여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게 내가 하는 일이야."

"그렇죠. 하지만 당신은 이걸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한 때는, 이것이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복도를 따라 내려오는 발소리—저벅, 딸깍, 저벅, 딸깍.

소녀의 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을 가리켰다. "접합자가 오고 있어요."

그 단어는 그녀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그녀가 기억해내야만 하는 것을—끄집어내었다. 그녀는 빛나는 눈을 가진 소녀를 이상하다고 여겨야 할 터였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 낯익은 데가 있기도 했다—그래서 그녀는 소녀를 더 잘 살펴보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짙고 검은 두 눈썹, 광택이 나는 머리카락—단단하게 땋은 것 외에는 아무 장식도 하지 않은 머리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꼬집곤 했던 둥근 볼. 그녀가 패배했을 때 턱에 났던 상처. 그 때 그녀의 어머니는 뭐라고 말했던가? 그런 상처는 오직 육신의 것일 뿐이며, 흉터를 간직하는 것은 선택이라고 했었다. 그 당시에 그녀는 그 선택을 좋아했었다. 비록 그것이 용감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은 그녀를 더 용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칼이 칼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제 이해하고 있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스페스, 이제 일어날 시간이에요."

바닥이 아래로 떨어져내리고 벽들은 저 멀리 날아가고, 곰팡이가 핀 천장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들 주변에서는 별들이 영원한 비밀들을 속삭였다. 소녀의 얼굴은—그녀 자신의 얼굴이지만, 더 어린—그녀의 어머니의 얼굴로 변했다. 그녀의 찢어진 목에서 피가 흘러나와 그녀의 망토 위로 뚝뚝 떨어졌다.

"네겐 해야 할 선택이 있단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쓰러졌다.

그녀 주변의 세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던 마을—그녀의 마일—이 바위 속에 봉인되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아이가 놀고 있는 것마냥 벽돌들이 조금씩 쌓였고, 나무들은 빠르게 열매를 맺었다 시들기를 반복했다. 공기가 희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어떤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지를 기억하나요?"

젊은 소녀의 그림자. 희뿌연 공기 속에서 그녀를 향해 웃고 있는 얼굴. 엘스페스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 또한 이 장소의 빛을 받아 유백색을 띠고 있었다. 이상한 따끔거리는 느낌이 그녀의 어깨죽지를 따라 흘러내렸다; 어디에선가 반짝이는 깃털이 떨어져내려 그녀의 앞을 떠다녔다. "그래,"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정말 잘 해냈단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것이 하나 남았어. 너는 먼저 예전의 자신을 버려야만 한단다."

"그래서 절 여기로 데려온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너는 네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왔단다. 불가능함에 직면했을 때, 너는 다른 사람들은 주저하는 선택을 했어. 너는 운명을 다시 썼지. 너의 일부분은 네가 깨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 선택의 결과가 펼쳐지는 것이란다—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써내려가는 자보다 조금 더 앞에서 네가 그 이야기에 참여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피렉시아의 짐승을 죽이는 일에서? 아니 . . . 또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성배, 그녀의 친구들이 다투는 모습, 쉽지 않을지는 몰라도 분명하고 올바른 방법. 그것은 폭발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마 죽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환각일지도 몰랐다.

"아니다."

"전 누군가가 제 생각을 읽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아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네 생각은 너무 크게 들리거든,"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녀는 이 기이한 육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앞에는 돌들이 점점 더 높이 쌓여 가고 있었다—그것은 하늘 높이 솟은 바늘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 정점에 달했을 때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뉴 카펜나.

"내가 무엇을 해야 하죠?"

"히나 더 선택을 해야만 한다—그리고 그러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 필멸자로서의 욕구와 욕망이 그 방정식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분히 단순한 것처럼 들렸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뭘 선택해야 하는 거죠?"

"모든 차원이 불타고 있다. 너는 무슨 일어났는지 그 일부를 보았겠지만, 전부는 아니다. 곧, 너는 그 나머지를 보게 될 것이다. 너는 어디에 개입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목소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 . . ? 아. 오두막집, 그 바깥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오랜 친구; 하늘의 배 위에서 불안하게 몸을 휘청이고 있는 여성; 한때는 용이었던 것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젊은 남자. 그 조각들은 마치 불경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그녀의 마음 속으로 모여들었다.

피렉시아.

이것은 피렉시아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그녀의 위에 있는 세상이 산산조각났다. 뉴 카펜나의 하늘은 석류처럼 붉게 물들었다; 거대한 하얀 구조물이 구름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그 구조물—마치 신의 촉수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창문들이 깨지고, 기념물들은 무너져내렸으며, 대들보들이 부러졌다. 탑의 측면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촉수로부터 기름이 흘러나와 표면을 번들거리는 검은색으로 뒤덮었다. 썩은 벌레같은 부화낭들이 도시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뉴 카펜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수는 없었다—도시 전체가 공격에 대비해 요새화되어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그것을 알아냈다.

엘스페스는 더 보고 싶었다. 곧 그녀는 불길과 잔해로 둘러싸였다. 뉴 카펜나의 거리에는 피가 발목까지 차 있었다. 도로변의 가죽더미가 너무 느린 시민들의 쭈글쭈글해진 피부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주위에는 인간보다 피렉시아인들이 더 많았다.

더 나쁜 것도 있었다: 그들의 위에 떠 있는 것은 한때는 천사였던 무언가였다.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메스꺼워지게 했다.

Art by: Gaboleps

"그들은 그녀를 아트락사라고 부르지." 그 목소리는 달랐지만, 모르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신빙성 있는 모방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에 엘스페스의 마음 속에는 약간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네 총독의 손에 의해 타락한 천사다. 그들의 가장 광적인 장군 중 한 명이고."

허공에서 휘파람이 울려퍼졌다. 무언가가 아트락사의 투구에서 폭발했지만, 그 여파로 . . . 아무 일도 없었다. 금조차 가지 않았다. 그녀는 밀을 수확하는 농부처럼 손쉽게 생존자 무리들 사이로 낫을 쓸어넘겼다.

엘스페스는 전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결코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난투극의 한복판에 있는 일은 그녀에게 익숙했다. 알라라에서, 테로스에서, 그리고 미로딘에서, 그녀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평화를 찾기 위해 검을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피렉시아 짐승의 깃털이 그녀의 몸을 통과해 쏘아져나갔다. 그녀가 느낀 것은 희미한 따끔함 뿐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그것의 먹잇감은 죽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한때는 마에스트로스였던 것 같은, 박쥐 날개가 달린 생물이 도망치고 있는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그 남자를 구하려 했지만 그녀의 손은 그 남자의 몸 안으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네가 들은 것들을 기억해, 엘,"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디를 도와야 할 지를 선택해야만 해."

엘스페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위를 올려다보자, 아트락사가 다시 한 번 광장을 쓸어냈다. 대천사의 시선 아래에서 머리와 상반신이 땅에 떨어져내렸다.

"이곳은 한때 고향이었지. 물론,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고향이었어,"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카펜나 사람들은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했지. 수십 년 후, 그들은 너도 다시 환영해 주었고."

아트락사는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늘에서, 날개 달린 생물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정렬했다.

"침략자는 정확한 명령을 받았어. 뉴 카펜나에 그 어떤 생존자도 없게 하라는 것이지. 오직 우리의 장기와 뼈만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될 거야."

날개 달린 짐승들이 마치 화살처럼 파크 하이츠의 상층부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리베티어즈들이 그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었고, 손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도구들을 들고 있었다. 표면에서는 암나사와 수나사가 마치 떨어지는 꽃잎처럼 떨어져내렸다.

"싸우는 자들도 몇 있지,"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타락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더 많고. 힘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지, 그렇지 않니? 하지만 불가능한 역경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어 주는."

더 가까이. 파크 하이츠의 뱃속에서는 기계들의 불협화음에 뒤섞여 명령들의 외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뿜어져나오는 증기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침략자들의 갑옷을 녹였다. 하지만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목숨을 구한 리베티어즈 한 명 마다, 두 명은 그들의 금속 아가리 사이에 명을 달리했다.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터였다.

"너는 그들을 위해 그렇게 될 수 있었어. 이곳은 한때 우리의 고향이었지. 네 두 손으로 이곳을 구할 수 있었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

그럴 수 있었던가? 비록 그녀는 자신을 환영해 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녀가 쓰러지는 것을 보기 위해 그 어떤 이유도 가져다 붙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여성의 말이 그녀의 정신 속에 울려퍼졌다: 그녀는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필요한 일을 해야 했다. 엘스페스는 몸을 돌렸다. 그녀는 대천사들을 한 번 더 쳐다보고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지만, 뉴 카펜나에는 그곳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이곳은 그곳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벽들은 다시 날아가 그림처럼 평평해졌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더 오래 떨어질 수록 그녀는 그런 것들을 더욱 많이 보았다. 학생들은 변화한 교수들을 피해 복도를 살금살금 지나갔다; 검은 신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은 좀비 무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코르가 가오리에 올라타 거대한 흰색 구조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 하늘과 붉은 바다 사이에서 급작스럽게 멈춰섰다. 머리 위에서는 별들이 미세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공기에서는 소금 맛이 났다.

테로스였다.

"고향에 잘 왔어."

엘스페스의 입이 벌어졌다. 곧 그녀는 공허 속에서 몸을 돌리며 그 말을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닥소스?"

"내가 새로운 신분이 되고 나서도 날 잊지는 않았구나,"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꿀처럼 달콤했다.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영혼의 긴장이 풀리기에는 충분했다.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그녀가 말했다. "널 잊는 건 노력을 했어도 안 됐을 걸." 하지만, 그녀가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가슴이 조여 왔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이 멜레티스를 향했을 때에도.

이곳에서도, 불길이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잔해와 폐허가 있었다. 그녀가 차를 마셨던 집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시장은 이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더미에 불과했다.

"지금은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시기야,"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 필요한 시기지."

그들 주변의 시야갸 다시 바뀌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엘스페스의 허락이 없었다. 그들은 멜레티스를 떠나 신전의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밝은 흰색 조각상들에는 이제 기름이 덧칠해져 있었고, 그것들의 얼굴에는 피렉시아의 가면이 채색되어 있었다. 짙고 검은 연기가 내실을 가득 메웠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도자기 가면 과 뼈가 드러난 돌기가 그들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레오닌이 서 있었다.

"테로스의 신들은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의 명령을 받아 섬긴다. 너희들은 이제 피렉시아의 영광을, 진정한 연합의 영광을—모든 삶 사이의 끝없는 유대감을—알게 되었다. 그것이 더 위대한 신성이 아니더냐?"

"언제나처럼 설득력이 있지, 그렇지 않아?" 닥소스가 말했다.

엘스페스는 목이 메였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컵이 보여? 거기엔 기름이 가득 차 있어. 그리고 저 곳에 있는, 그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성은 어때?"

아자니의 모습이 그녀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그 여성을 보지 못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매끄러운 천과 그것을 장식하고 있는 금세공 장신구로 보아, 그녀는 여사제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현실 감각이 등에 꽂힌 칼처럼 찾아왔다. "신들을 개종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시도라는 단어는 사태의 엄중함이 담기지 않은 말이지. 그는 이미 그들 중 셋을 바꿔 놓았어.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었지. 피렉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너무나도 열정적이어서 신들에게는 맞서 싸울 희망이 거의 없었거든," 닥소스가 대답했다.

"피렉시아의 신이라," 그녀가 되뇌었다. "그런 힘이 있으면, 아주 손쉽게 . . ."

"숨을 곳이 별로 없을 거야," 닥소스가 동의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 누구의 신전인지? 잘 봐."

잔해 속에는 조각상의 잘린 머리도 있었다. 그녀가 그것에 관심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헬리아드였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그녀를 위한 시험임이 분명했다—그리고 그녀를 시험하기에 이 둘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까? 테로스에서, 엘스페스는 자신을 인도할 새로운 빛을 찾았다. 그들은 사이가 나쁘게 헤어졌다—하지만 그녀는 아자니가 그에게 이 사악한 기름을 바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없앴다. 아자니의 손에 든 그릇이 산산조각났다; 흩뿌려지는 파편이 여사제의 얼굴을 베었다. 아자니가 화살을 쏜 자를 향해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여사제는 도망치려고 했다. 군중들 중 두 명이 그녀를 높이 들어올렸다.

또다른 화살이 아자니의 어깨에 박혔다. 그는 그것을 뽑아낸 뒤, 짜증을 내며 그것을 부러뜨렸다. "놈들을 찾아라!"

"테로스에는 여전히 영웅들이 있는 것 같네," 엘스페스가 말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닥소스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봐."

어둠이 그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린 뒤, 그들을 사원의 약간 다른 곳으로 되돌려보냈다. 사냥꾼들이 복도 중 한 곳에서 젊은이를 뒤쫓고 있었다. 그들의 대장—여러 개의 금속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이 그에게 그물을 던졌다. 다른 자들 중 하나가 붙잡힌 젊은이를 제단으로 데려갔다. 아자니는 한 손으로 그물을 높이 쳐들었다.

"보아라, 무리를 외면하는 자다! 우리를 모함하는 자다!" 젊은이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자는 그물을 잘라 그를 풀어준 뒤, 곧바로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반대의 씨앗을 뿌리려고 획책하는 자의 정신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엘스페스는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하지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나 그에 뒤따르는 환호성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저 자가 아자니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가 저런 일을 할 수 있단 멀인가?

"그는 강요당했어," 닥소스가 말했다. "너는 이 일에서 그를 구할 수 있었어. 그가—진정한 그가—이곳에 있었다면, 그는 석방을 환영했을 거야."

"그렇게 간단한 건지 모르겠어."

그녀는 안간힘을 내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여사제는 다시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억지로 기름을 마시게 하려 하고 있었다.

신전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장밋빛으로 물드는 새벽도 아니었고, 보랏빛이 뒤덮인 황혼도 아니었다—그것은 주조소의 불타는 듯한 하얀 빛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이었다. 사원 안의 불타오르는 광륜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의 가죽 없는 살점에서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용감한 여성이고, 넌 항상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지. 내가 테로스를 구해 줄 누군가를 신뢰해야만 한다면—그건 바로 너일 거야."

그녀는 다시 돌아섰다. 그녀의 생각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녀가 테로스를 선택한다면, 그녀는 아자니와 싸와야만 했다. 그녀가 그와 싸운다면—더이상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터였다. 타락이 이렇게까지 뿌리내리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 그녀는 신들을 죽였다. 그렇다, 그녀는 이 곳을 사랑했고 이곳을 고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렇다, 그녀는 닥소스를 다시 보고싶어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욕구와 필요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테로스를 구하는 것에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그 생각은 그녀를 고통스럽게 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자니가 이곳에서 쓰러져도, 침략은 계속될 터였다. 피렉시아의 신들은 테로스에 큰 피해를 입힐 터였다—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뉴 카펜나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둘로 갈라졌다. 한편에서는 그녀의 감정이 신전 바깥의 바다처럼 몰아쳤다. 다른 한편에는, 잔잔한 물이 있었다.

닥소스의 두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네가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그 말을 하게 하지 마," 그녀는 그에게 등을 기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계는 다시 한 번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산과 같은 크기의 도마뱀이 깃털 달린 은빛 상대와 싸우고 있는 풍경에 떨어져내렸다. 그들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피가 푸른 대지를 따라 강처럼 흘러내렸다.

그녀는 한때는 빛을 발하던 곳이 이제는 잔해만 남은 성에 떨어져내렸다. 한 젊은이가 부서진 무기고 너머로 총을 쏘고 있었다. 그를 덮고 있는 갑옷은 이 잔해에서 그러모은 것이었고, 이미 검은 얼룩이 배어 있었다. 그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인장을 발견했을 때, 그는 행복에 차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제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갑옷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그의 칼은 그의 몸에 맞지 않는 크기였다; 그는 쓰러지게 될 터였다. 그녀는 제대로 된 인장의 기사를 찾으라고 그에게 소리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다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기에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피렉시아의 적을 사냥하기 위해 사냥개를 풀며 전쟁의 북을 울리고 있는 기마병들 사이로; 우뚝 솟은 기계 수호자들이 지키고 있는 네온 도시 사이로; 이상한 늪과 비틀린 언덕 사이로, 그녀는 계속해서 떨어져내렸다.

그녀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침략의 나무가 엘레쉬 노른의 끝없는 승리를 자랑스럽게 증거하듯이 서 있었다. 그것의 하얀 장갑판에서는 붉은 맥동이 하늘로 뻗어나가고 있었다—그리고, 하늘을 실제로 꿰뚫고 있었다. 파도와도 같은 군대가 그 앞에 있는 다리들 중 하나에 꽉 들어차 있었다. 그들의 깃발과 그들의 형체는—기이하게 구부러져 있고, 튜브와 통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그들이 진 기탁시아스의 창조물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족히 수천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새롭게 형성된 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그녀가 방금 보았던 장소들에서 온 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네겐 해야 할 선택이 있다."

절망이 그녀를 나무 밑바닥으로 더 가까이 데려갔다. 그녀는 떠났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남아 있어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 중요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터였다. 분명이 누군가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가 나무 아래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본 생물은 엘레쉬 노른이었다. 양 측면에 불편할 정도로 가시들이 빽빽한 도자기 왕좌에 앉아, 그녀는 자신의 창조물을 조사했다. 그녀의 앞에는, 우라브라스크가 기계에 매여 있었다. 양쪽에 한 명씩 서 있는 두 백부장들은 자신만큼이나 큰 바퀴를 감고 있었다. 바퀴를 감을 때마다, 우라브라스크의 사지가 그의 몸에서 더 멀리 떨어져나갔다. 이제, 그는 울부짖고 있는 힘줄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노른의 옆에는 급조된 합창단이—피렉시아의 영광을 노래하는 살아 있는 악기들이—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성하지 못한 목에서 나오는 것은 노래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들은 통곡하고, 비명을 질렀으며, 목청을 높였다. 그들은 한 번도 곡조 비슷한 것에 다다르지 못했다. 죽어가고 있는 우라브라스크의 비명소리도 조화를 이루는 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수가 존재할 여지는 없다."

노른은 손가락을 퉁겼다. 합창이 멈췄다. 또다른 손동작으로 그녀는 우라브라스크를 끝장냈다—백부장들은 그를 4등분한 뒤 치웠다. 세 번째 손동작으로, 그녀는 힘을 합쳐 큰 화물을 나르고 있는 비행 생물들 한 무리를 소환했다. 그들이 착지한 후에야 엘스페스는 그것이 카른의 유린된 몸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째서인지, 그의 눈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그러나 그 안의 고통은 훨씬 더 강했다.

Art by: Artur Nakhodkin

엘스페스와 마찬가지로, 노른이 축하하고 있는 것을 보는 그의 두 눈은 더욱 그래 보였다.

그녀의 앞에 있는 필멸자들은 너무나도 작아 엘스페스는 처음에는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란인들이 한데 모여 족쇄를 찬 채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몇몇은 이미 팔다리를 잃은 상태였다. 접합자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원하지 않는 팔다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식했다. 엘스페스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싸웠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이런 운명을 맞이해서는 안 됐다.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을 너희들의 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노른이 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우리는 영원한 연민을 표한다. 너희는 너희 피부의 배신을 비난해도 좋다. 그것이 없다면 너희는 모든 짐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엘스페스는 검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네가 무엇을 하려는 지 생각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또다시 그 여성의 목소리였다. "잘못 선택하면 모든 것이 여기에서 끝나."

"노른은 죽어야만 해요," 엘스페스가 대답했다.

"아주 예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하얀 옷을 입은 자애로운 여성이 있었지," 목소리가 말을 꺼냈다. 그녀는 기억해냈다. 신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지하감옥에서 이름을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자가. 그녀가 어렸을 때 기도했던 대상이. "아름다운 곳이었지—밝고, 평화로웠어. 천사들이 살던 곳. 그녀는 그곳을 너무나도 즐겁게 만들어서 그곳을 떠날 생각도, 그 너머를 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 수 년이 흘렀고, 어떤 마법사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려 찾아왔지. 그녀는 그를 뒤따라 찾아올 위협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하지 못했어." 그녀는 주변을 가리켰다. "이 위협을. 그리고 이건 노른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그녀는 자신이 피렉시아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믿지만, 그녀는 틀렸어. 그녀를 죽인다고 이 일이 끝나지는 않아."

백부장들이 엘레쉬 노른 앞에 죄수 세 명을 더 데려왔다. 그들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중 둘은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도, 심지어 무릎을 꿇을 수도 없었다. 그들을 알아본 엘스페스의 속이 울렁거렸다: 잔뜩 구타당한 코스; 그녀의 나무로부터 뜯겨져나온 드라이어드 렌; 그리고 피투성이인 찬드라 날라르였다.

"반역자들을 보십시오," 백부장들 중 한 명이 말을 했고, 그제서야 엘스페스는 그 말을 한 사람이 니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또는, 최소한, 한때는 니사 레베인이였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의 새로운 육체의 일부는 녹아내려 슬래그가 되어 있었다. "기계들의 어머니시여, 이들에게 당신의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체포한 것에 박수를 보내지, 니사," 노른이 말했다. "네가 겪은 시련과 시험은 네 옛 삶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지금 그들을 보아라, 어떤 느낌이 드느냐?"

"경멸합니다. 동정하지요."

"바로 그렇다. 하지만 그들을 오래 동정할 필요는 없다. 곧 그들도 모습을 바꾸고 완전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완성의 황홀감은 너를 정화한 것처럼 그들도 정화할 것이다."

그들 뒤에 낮게 떠 있는 카른이 신음했다.

엘스페스의 손이 칼의 손잡이 주변에서 움찔거렸다.

"우리는 이 반군들을 포용하여 우리가 더 작은 존재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님을 온 피렉시아에 증명하겠다. 피렉시아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피렉시아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한다. 너희의 정신에서 개인이 벗겨내지고 나면, 너희는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노른은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진-기탁시아스. 와서 코스의 작은 반란에서 남은 것을 거둬라. 네가 그들의 완벽함을 이루는 설계자가 되리라."

군대가 갈라졌다. 한 형체가 벌린 입에서는 튜브들을 흔들며 그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이내 진-기탁시아스는 노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대총독이 분부하시면, 피렉시아는 그리할 것입니다."

그는 모여든 자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그리고 멈췄다.

모든 것이 멈췄다. 반란군은 숨을 쉬는 도중에 얼어붙었다; 군대는 더이상 바글거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섰다. 그녀는 이것이 테페리가 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가 지팡이를 손에 들고 나무 꼭대기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피렉시아와 관련된 일인 만큼, 엘스페스는 그런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 멈춘 거죠?"

"시간이 되었어," 여성이 말했다. 반짝이는 모양이 진-기탁시아스와 그의 첫 번째 목표물인 코스 사이에서 형상을 이뤘다. 그녀는 상냥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평온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분명한 슬픔이 보였다. "나는 네 결정을 들어야만 해."

"당신은 누구죠?" 그녀는 무의식중에 그 말을 내뱉었다.

"내 이름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지만, 너도 한때는 알고 있었지,"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죄수들 사이를 걸어다니다가, 찬드라 앞에서 멈춰섰다. 그 화염술사는 자신의 힘으로 무릎을 꿇을 수조차 없었다—여성은 그녀를 진정시켰다. "잘 생각해. 너는 아직도 노른을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노력해도, 엘스페스는 노른이 살아 있는 한 평화로운 다차원을 상상해낼 수 없었다. "사지가 망가지면, 잘라내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기이하네.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 여성이 말했다. 그녀는 렌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녀를 부축했다. 드라이어드는 침략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니, 엘스페스?"

그녀가 그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그 말은 익숙했다. 이전에 그 말을 어디에서 들었던가? 그녀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면서,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살폈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그녀에게 돌아왔다 가지가 썩으면 . . .

렌이었다. 그들 둘은 단지 시간과 장소가 떨어져 있었을 뿐, 같은 말을 했었다. 엘스페스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듯이, 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인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무를 보고 있다면 . . .

무언가가 변화했다. 그녀가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노른은 마치 영혼인 것마냥 반투명해져 있었다. 진-기탁시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주위를 더 둘러볼수록 더 많은 유령들이 보였다. 니사와 렌만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이들이 핵심 인물이었던 것인가? 렌은 앞선 계시에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니사는 어째서인 것인가? 뉴 피렉시아로 떠난 후, 엘스페스는 그녀와 그리 많이 말을 나누지 않았다. 엘스페스가 도착했을 때, 니사는 이미 없었다.

"여기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어," 그녀가 말했다. "너는 대답해야만 해."

"알아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그냥 . . .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어째서 니사인가?

이미 쓰러진 누군가여야 한다면—어째서 아자니가 아닌가? 어째서 그녀의 옛 스승에게 그가 그녀에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보답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아직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다면, 왜 뉴 카펜나를 그 장소로 삼지 않은 것인가? 그녀가 아트락사를 쓰러뜨리면, 그곳에 있는 천사들이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몰랐다—그리고 그들이 돌아옴으로써 차원이 정화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읽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분명한 답이 있었다: 그녀가 아자니를 구한다면, 그녀는 오직 한 사람만을 구하는 것이 될 터였다. 그 한 명으로는 형세를 역전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뉴 카펜나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렌과 니사, 그리고 그들을 잇고 있는 빛나는 실이 남게 된 이유였다.

그렇다—그녀는 이해했다.

결정은 니사를 살릴지 아니면 렌을 살릴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렌이 나무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니사의 주의를 끄는 것이었다.

"확실해?" 여성이 물었다.

엘스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모든 신경이 한 번에 불타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육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옳은 일이에요."

"그렇구나. 무척이나 그러고 싶지만, 난 너와 함께 이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없어. 하지만 나는 네가 원래 되어야 했던 존재로 너를 만들어낼 수 있어."

엘스페스는 이 장소의 에테르로부터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톱이, 그녀의 굳은살이, 그녀의 손금이 보였다. 점쟁이들은 그 손금에서 운명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들 중에서 자신이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될 지를 안 사람이 있을까가 궁금했다. "무서워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다시 한 번 그것은 무의식중에 그녀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자신이 두려워하는 지를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슬금슬금 퍼지고 있는 무감각함이 있었다. 그녀는 닥소스를, 테로스를, 그녀가 한때 상상했던 고향을 생각했다. 그 모두가 즐거운 꿈처럼 여겨졌다.

여성이 그녀를 포옹했다.

"두려움은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지," 여성이 말했다. "너는 그것을 몇 번이고 쓰러뜨렸고. 주저하지 마, 엘스페스."

그 말이 세라가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자신이 한꺼풀 벗겨지며 변화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 달린 날개는 판금 갑옷처럼 무거웠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날개가 없었던 시절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 육신은 달랐다—그럼에도 그것은 항상 이런 모습이었다. 그녀는 엘스페스였고, 엘스페스가 아니었다.

더 이상 우유부단할 틈은 없었다. 다차원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Art by: Rovina Cai

그녀는 평생 동안을 잠들어 있었다. 지금은 일어나야 할 때였고, 그녀가 원래 되어야 했던 존재가 될 때였다.

진-기탁시아스가 발톱을 들어올렸다.

엘스페스의 검이 그의 발톱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