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나무 사이로 쏟아져 나오면서 늪 위로 잔물결이 일었다. 카이토는 늪에서는 가장 무해해 보이는 꽃조차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네즈미들이 방문객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밀로 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맹독성 지형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했고 그것은 방문객을 억제하는 데 있어 완벽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평소였다면 카이토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들의 영토에 깊숙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테제렛을 찾을 수 있는 열쇠는 네즈미에게 있었다.

Tezzeret, Betrayer of Flesh
Tezzeret, Betrayer of Flesh | Art by: Bryan Sola

타메시가 죽은 후, 카이토는 몇 주 동안 테제렛에 대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추적했다. 그는 오타와라의 도서관에 가서 모든 기록물을 뒤졌고, 카미가와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학자들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테제렛은 어떤 데이터 드라이브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토와시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들 중 한 곳에서 공연을 했던 한 역사학자가 네즈미-카츠로 갱단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언급했다. 그곳은 5년 전에 공격을 받아 불타버렸고, 그곳을 공격한 세력은 절대로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생존자 중 한 명은 나시라고 불리는 아이였는데, 그의 부모는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나시는 마을을 벗어나지조차 못했고, 그는 어머니가 산 채로 불타는 것을,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오두막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아야만 했다.

네즈미 마을은 밤새도록 불타올랐고, 불길이 걷히고 잿더미 근처에 생존자들이 모인 후, 나시는 어른들이 공격을 지시한 사람의 이름을 수근대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그를 테제렛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했으며, 네즈미들은 그 부하들이 뇌사 상태인 테제렛을 불타 버린 마을에 두고 가 버린 것을 발견했다. 네즈미들은 테제렛을 데리고 있었고, 어느 날 용 한 마리가 나타나 그의 시체를 요구했다.

네즈미들은 테제렛의 조직이 보복해 올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네즈미 마을에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군가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네즈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나시가 유령이 되게 도와주었고 그런 뒤에 그들 또한 유령이 되었다.

그들은 여생을 숨어서 살 수 있었지만, 나시에게는 생존한 가족이 없었다. 테제렛의 조직이 그를 찾을 수 없게 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를 늪에서 더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것이 더 나았다.

하지만 이웃 마을들의 네즈미들은 카이토에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나시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쾅 닫았고, 심지어 떠나지 않으면 중독시켜 버리겠다며 그를 위협했다. 길가를 따라 피어있는 유독성 꽃들의 수로 판단해 보았을 때 그는 그들이 정말 그렇게 할 만큼 진지하다는 것에 확신했다.

카이토는 늪에 아무 친구가 없었지만 이곳에는 해답이 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찾기 전에 돌아갈 준비 따위는 되어 있지 않았다.

타누키 가면을 고쳐 쓴 뒤, 그는 탁한 물을 가로지르며 반투명한 에너지 띠가 점점이 늘어서 있는 끊어진 길을 따라갔다. 카이토가 물에 젖지 않기에는 충분했지만, 그는 빛을 발하는 노란색 틈들을 불안한 듯이 쳐다보았다. 길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를 땅 위에 있을 수 있게 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카이토는 자신의 최후가 독장어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일일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장어를 싫어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참기름에 볶아 밥과 김에 싸서 먹는 쪽이라면 장어를 상당히 좋아했다.

카이토는 서둘러서 다음 물가로 갔다. 실타래처럼 엉킨 채로 땅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육중한 뿌리들이 빛을 발하는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자갈과 평평한 뿌리 덮개들로 뒤덮여 있는 작은 오솔길이 전부였다.

흔적을 뒤쫓던 카이토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다른 마을들보다 작았고, 집들은 지푸라기를 엮은 지붕과 미닫이 종이문으로 지어져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쉽사리 무너져내릴 것 같은 집들이었다.

또는 불이라던가, 카이토는 우울하게 생각했다.

나시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매우 잔인했다. 어쩌면 복수심에 차 있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카이토는 그 이유를 알아야만 했고 그것이 어떻게 타메시와, 그리고 그가 부두에서 보았던 그 괴물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아야만 했다.

그것이 어떻게 황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도.

넓은 흙길이 마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길의 반대쪽 맨 끝에는 금속 폐자재와 낡은 기계 조각들이 가득 차 있는 쓰레기장이 있었다.

늪지대의 네즈미들이 규제되지 않은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퍼져 온 소문이었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의 창작물을 네즈미들만으로 이루어진 바이커 갱단인 오키바 응징자들의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장물들과 교환했다.

그러나 카이토는 대의를 위해 기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을 주요한 신념으로 삼고 있는 미래주의자였다.

네즈미가 무엇을 하든 카이토가 이를 판단할 입장은 아니었다.

나이든 회색 네즈미가 나무 울타리 뒤에 서 있었고, 그녀의 입가 주변에는 흰 털이 점점이 나 있었다. 그녀의 발톱은 집게처럼 생긴 톱니 모양의 칼날이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금속 상자에 붙어 있는 정원용 도구의 손잡이를 휘감고 있었다.

"넌 여기서 환영받지 못해," 그녀가 소리쳤다.

카이토는 들쭉날쭉한 칼날을 힐끗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그것은 아주 쉽게 무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그 네즈미는 짙은 분홍색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버섯을 수확하기 위한 거야. 줄기를 딱 좋게 잘라서 포자가 분출되는 걸 막아 주지." 그녀의 코가 씰룩거렸다. "허가증을 확인하러 온 거면—"

"아니에요," 카이토는 빠르게 말하면서, 어찌되었든 지금은 자신이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길 바라면서 두 손을 공손히 포갰다.

그의 적은 설치류라기보다는 괴물이었다.

그녀는 허공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 그녀는 노란 이를 드러냈다. "우리에게는 그런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적이 없었지."

"훔친 물건이나 불법적인 프로젝트 같은 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저는 정보를 얻으러 온 겁니다." 카이토는 그 말을 한 후 잠시 동안 침묵했다. 네즈미들을 그렇게 대담하게 비난하는 일은 위험했지만, 그는 토와시에서 그들을 충분히 많이 상대했기에 그들이 사탕발림보다는 잔인한 정직함을 더 존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엇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이다.

짙은 갈색의 네즈미가 그의 뒤로 긴 꼬리를 끌면서 현관에 나타났다. 그는 이웃을 노려보면서 사납게 쉭쉭댔다. "머드테일, 이 이방인에게 너무 많은 걸 알려주고 있잖아."

나이 든 네즈미가 이에 응수하며 입을 벌렸다. "들어가서 네 일이나 신경써, 안 그러면 이 버섯들이 네 집을 통과해서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이웃은 목덜미의 털을 곧추세우며 살짝 으르렁거렸지만, 굴복한 듯이 한 발 짝 물러섰다.

"저는 나시라는 자를 찾고 있어요." 카이토는 그들 사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어렸을 때 여기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었죠."

그 이름이 들리자, 이웃의 현관 아래에서 카미 몇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버섯들과 유독성 꽃들이 머리 주위에서 떠다니고 있는 그 카미들은 늪에 속해 있는 존재들인 것이 분명했다. 그중 하나가 거대한 개구리 같은 눈 여섯 개로 카이토를 응시했다. 물거품 네 개가 그의 주위를 빙빙 돌았고, 그 안에서는 올챙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꿈틀댔다.

네즈미들은 거짓말이 익숙했을 지 몰라도, 카미들은 그렇지 않았다.

현관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머드테일은 그들을 날카롭게 쳐다보면서 말을 막았고, 그들은 그림자 속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카이토를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네."

카이토는 지붕을 힐끗 쳐다보았다. 모서리 부분의 지푸라기가 닳아서 풀어헤쳐져 있었다. "여기서 오래 사신 것 같네요. 화재를 기억하실 수 있을 정도로 오래."

그녀의 꼬리가 치켜올려지더니,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흔들렸다. "인간들은 그때 우리를 도와 주지 않았지. 왜 이제 와서 우리가 널 도와야 하지?"

"아마도 제 잘생긴 외모와 매력적인 성격 때문이려나요?" 네즈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카이토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기—전 그저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머드테일은 나무 손잡이를 문에 기댄 뒤 집을 향해 움직였다.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군." 그리고 현관문에 거의 다가갔을 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네 질문들은 네가 온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다시 가지고 가라. 우리는 네가 이곳에 있는 걸 원하지 않아."

그것은 그가 오늘 하루 종일 받았던 것들 중 가장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녀가 안으로 사라졌을 때, 카이토는 현관에 있는 낯선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루비라기보다는 오닉스와 같이 어두운 색이었다.

"네즈미들이 그를 숨겼다는 건 알아요. 당신들이 그를 보호하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카이토의 손가락은 그의 옆구리를 두드리면서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이. . .카미가와에 있는 우리 모두를 도울 수 있어요."

"나는 전에 인간을 물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우리는 이빨로 공격하는 걸 멈췄지. 너희 인간들에게 더 문명화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말이야. 우린 그게 우리가 동물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 그는 비웃음을 흘렸지만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하지만 우리 중 일부는 우리가 자신이 아닌 무언가인 척을 하는 일에 지쳤지"

카이토가 등 뒤에 있는 칼을 빼내는 데에는 1초가 채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독버섯들을 그 네즈미에게 날려댈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그것은 그가 이번 주 내내 겪었던 일들 중에 가장 재미있었는 일이었지만 그렇게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카이토는 착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아니면 최소한 그러는 척이라도.

그는 한 발짝 물러섰다. "시간 내 주셔서 고마워요." 카이토는 자신의 등에 꽂히는 십수마리의 네즈미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마을에서 등을 돌렸다.

빛나는 길이 앞에 나타났고, 카이토는 그의 가면을 잡아들어, 그 금속이 타누키 모양으로 바뀌게 했다. 그는 드론인 히모토가 그의 손 위에서 날아올라 근처에 있는 나무 사이로 사라져 마을 방향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카이토는 자신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걸었다.

몸을 숙여 버드나무 아래로 들어간 뒤, 그는 낯선 식물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그는 드론의 카메라를 사용해, 늪을 가로질러 날아와 마을의 측면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드론은 시들어버린 식물들 사이에 몸을 숨긴 뒤, 주위에 물거품이 다급한 듯이 떠다니고 있는 채로 다른 오두막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습지의 카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드론은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것의 뒤를 쫓았고, 지붕을 따라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 쪽으로 이동한 뒤 굴뚝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카이토는 카미가 느릿느릿 거실로 들어가면서 안에 있던 누군가에게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알아," 거친 목소리가 대꾸했다. "그놈은 이곳 말고도 다른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어. 나시의 이름을 더 말하고 다닐수록, 그놈은 더 위험해지겠지."

카미가 또다시 깩깩댔다. 이번에 카이토는 한 단어를 알아들었다.

오타와라.

"그래. 그녀에게 경고를 하마.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드론을 내보내는 건 의미가 없어. 낮에는 그놈이 아주 쉽게 추적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인물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그 인간에게 침묵 말고는 아무 것도 주지 않기만 하면 돼."

타누키 드론은 다시 굴뚝을 타고 올라와 돌 뒤에 자리를 잡은 뒤, 기다렸다.

카이토가 늪의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때 쯤, 해가 졌다. 드론은 아직도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내 주고 있었고, 그는 네즈미의 드론이 토끼 모양으로 접혀 어둠 속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타누키가 그 뒤를 따랐고, 카이토는 오타와라 쪽으로 향했다.


카이토가 하늘에 있는 도시에 도달했을 때에는 거의 새벽이 되어 있었다. 네즈미의 드론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동네에서 사라졌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카이토는 걸어다니면서 거리를 뒤질 작정이었다.

자신의 타누키 가면과 합류한 후, 그는 공원을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먼 곳에 있는 집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길모퉁이를 돌아 좁은 이끼 정원에 들어섰을 때에서야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풀밭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순식간에 카이토의 손이 칼자루를 감싸쥐었고, 그는 칼을 앞으로 휘두르며 몸을 한 번 굴려 다가오는 형체를 마주했다.

월인 한 명이 그의 앞에 떠 있었고, 그녀의 보라색 눈에서는 아주 미미한 감정조차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펼쳐지지 않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고,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는 두루마리가 여러 개 더 들어있었다.

카이토가 칼을 비틀자, 톱니 칼날들이 나타났다가 곧바로 십수 개의 별 모양 날붙이가 되어 흩어지면서, 그의 염동력으로 허공에 떠 있었다.

그 여성은 무기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는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지나면 또 모르지," 카이토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날 모르잖아."

그 이방인은 산들바람처럼 미끄러지듯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당신의 탐색은 오늘로 끝내야 합니다.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가 두 번 다시 그 아이의 이름을 말하지 마십시오."

"미안하네," 카이토가 대답했다. "그 아이와 내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아무 데도 안 갈 생각이거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대화에는 이렇게 많은 칼날들이 필요하지 않지요."

"그 사람이 대화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

그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카이토가 신경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그는 네즈미 아이를 해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낮선 사람에게 자신을 설명하고 싶은 기분도 또는 명령을 듣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다면 다른 곳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제 가족에게 접근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말 속에 가시가 서려 있는 것처럼 들리네," 그는 그녀의 말을 지적하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전에 그녀의 것과 같은 두루마리를 본 적이 없었지만, 그것이 마법이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발이 이끼 위로 몇 인치 떠올랐다. "폭력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카이토는 치명적인 웃음을 내보였다. "당신은 최후통첩과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내 뒤로 몰래 다가왔잖아.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믿지 못해도 용서하라고." 그는 칼자루를 휙 튕겼고, 각각의 칼날이 그 여성의 펼쳐지지 않은 양피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빠르고 우아하게 빙글빙글 돌았고, 옆구리 쪽에서 손바닥을 벌리자 두루마리가 그녀의 옆으로 떠올랐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표창들이 하늘에서 긴 호를 그리면서 카이토에게 돌아왔다. 카이토는 근접전으로 그녀의 주의를 흐트러뜨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리호리한 월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춤을 추듯이 뒤로 뛰어올라, 두 팔을 날개처럼 벌린 채로 카이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머물렀다.

그는 앞으로 달려들면서 칼을 거세게 휘둘렀지만, 그 여성이 더 빨랐다. 그녀는 몸을 숙이고 옆으로 빙글 회전했고, 두 손은 마치 공연의 일부인 것처럼 위로 치켜올렸다.

카이토의 눈은 떠 있는 두루마리에 고정되었다. 그가 마음 속으로 지시하자 모든 표창들이 양피지를 향해 원을 그리며 날아들었고, 그 여성은 자신의 염력을 이용해 양피지를 뒤로 물렸다. 카이토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리를 놀렸지만 그녀는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그는 균형을 잡은 뒤, 여전히 정원을 맴돌고 있는 표창들로 정신을 뻗어내 그것들을 자신의 칼로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그 여성의 눈이 두루마리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찰나의 시간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그 기회를 붙잡을 생각이었다.

카이토는 다시 한 번 표창들에게 공격 명력을 내렸고, 이번에는 여성이나 두루머리가 아니라 허리에 묶인 밧줄을 노렸다. 목표에 적중한 것은 단 한 개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밧줄이 끊어져 주머니가 땅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루마리들이 떨어지기 전에 팔을 휘저어 밧줄을 잡았지만, 그로 인해 흐트러진 집중력은 그녀의 첫 번째 두루마리를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시켰다. 카이토는 손을 내밀었고, 두루마리는 허공을 날아와 그의 주먹 안에 놓였다.

여성은 눈을 깜빡였고, 두 번째 두루마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녀의 앞에서 펼쳐졌다.

그녀가 그 단어들을 읽는 순간, 카이토는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칼은 그의 손에서 떨어졌고 날아다니던 칼날들은 부서진 장난감처럼 이끼 위로 떨어져내리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두루마리는 위로 떠올랐고, 낮선 사람의 발이 지면에 닿을 때쯤에는 다른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는 주머니로 되돌아가 있었다.

카이토는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의 뼈가 무겁고 구부러지지 않는 쇠로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마법에 저항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 .그 애를. . .해치려는 게 아냐."

그녀는 신기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녀가 입을 열자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카이토의 정신 속에서만 들려 왔다. 당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군요.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내 아들이 발견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당신의 아들이라고?" 카이토는 여성이 옆으로 이동하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의 몸은 돌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그의 두 눈만이 그녀를 뒤쫓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후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내게 뭘 하려는 거지?" 카이토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물었다. 그는 여전히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간단한 기억 주문이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정신을 통해 덧붙였다. 당신을 다른 길로 보냄으로서 당신과 제 가족 모두가 안전할 겁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이토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황제를 찾아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 .그가 지금까지 애쓴 모든 노력들이. . .

그는 그 모든 것을 헛된 일이 되게 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가 그의 기억들을 가져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무모한 분노에 휩싸여 말을 쏟아냈다. "나는 황제를 구하려는 거고, 당신의 아들은 카미가와에서 이걸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그 여성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잘못 아셨습니다. 나시는 황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테제렛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카이토는 여전히 마비 주문에 저항하면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색이랄 것이 거의 없었지만, 그 순간에는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두 눈이 카이토를 관찰하면서 그에게서 거짓을 찾아내려 노력했지만, 그녀는 한 점의 거짓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진실을 두고 서성이다가 두루마리를 부드럽게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카이토의 육체에 움직임이 되돌아왔고, 그는 쓰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신음 소리와 함께 그는 욱신거리는 몸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이끼들 위에 떨어진 칼날들을 불러들인 뒤, 그는 다시 칼 모양을 형성한 검을 등에 꽂고 몸을 돌려 월인을 바라보았다.

"자," 카이토는 여전히 약간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테제렛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말해 줄 거야, 아니면 다시 싸워야 하는 거야?"

"당신이 전투에서 진 이유의 일부는 그 오만함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을 휘저었다. "그것은 당신이 집중하지 못하게 하죠."

그는 목 뒷부분을 문질렀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카이토라고 부르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녀석'도 맞긴 해." 에이코와 가벼운 발은 거의 확실하게 맞장구를 칠 터였다.

그녀의 시선에서 희미하게 재미있다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저는 타미요입니다," 그녀는 강철처럼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당신과 저는 서로 협력하게 될 예정이었던 것 같군요."


카이토는 방의 디테일에 흠뻑 빠져들었다. 방 안 곳곳에 수채화들이 점점이 퍼져 있었다. 카미가와의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하지만 카이토는 그것들을 알아보았다. 그것들은 다른 차원의 실존하는 장소들이었다.

그는 타미요를 향해 돌아섰고, 그녀는 찻잔 두 개에 녹차를 따른 뒤 도자기 주전자를 낮은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카이토는 눈을 깜빡였다. "당신은 플레인즈워커로군."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타미요는 반대쪽 의자에 앉은 뒤 컵을 입술 가까이 들어올려 피어오르는 김을 부드럽게 불었다.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 몇 점만 보고도 그런 발견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플레인즈워커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죠."

카이토는 다차원에 다른 플레인즈워커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미가와에도 다른 플레인즈워커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의 시선이 가죽으로 철한 책들과 바닥에 흩어져 방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두루마리 뭉치들로 향했다.

그는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군."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째서?"

타미요는 차를 홀짝 들이켰다. "저는 다차원의 진실을 보존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믿습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덧붙였다. "지식은 우리가 개인으로서, 또한 사회로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것은 제가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 선물이지요."

카이토는 컵을 두 손으로 집어들어 컵의 온기가 그의 몸에 스며들게 했다. "테제렛에 대해 이야기해 줘. 그는 누구지? 대체 그는 뭘 원하는 거야?"

타미요는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카이토 뒤에 있는 어딘가를 향했고, 그녀의 얼굴은 미소로 부드러워졌다. "제 아들, 나시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요."

Nashi, Moon Sage's Scion
Nashi, Moon Sage's Scion | Art by: Valera Lutfullina

카이토가 몸을 돌리자 문가에 젊은 네즈미가 서 있었다. 회색 점이 여기저기 나 있는 밝은 흰색 털가죽을 가진 그는 날렵하게 재단이 되어 있는 검은 가죽 외투를 입고 귀에는 은으로 만든 귀걸이들을 달고 있었다.

나시는 카이토를 한 번 훑어보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멋진 마스크네요! 그거 드론이에요?" 그는 픽셀이 깜박이고 있는 장치 하나를 들어올렸다. "저도 재활용 부품들을 사용해서 직접 하나를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었죠. 아시잖아요. 옛 것을 다시 새롭게 만든다던가 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그건 직접 만든 거에요? 카메라랑 연동하는 데에는 어떤 칩을 사용했어요? 초소형 임플란트를 사용하는 건지, 아니면—" 나시는 잠시 굳었다가 부끄러운 듯이 씩 웃었다. "미안해요. 한 번에 질문이 너무 많았죠."

카이토는 가면을 얼굴에서 떼어내, 그것이 다시 접히고 또 접혀 종이접기 타누키 모양이 되게 했다.

"우와," 나시가 눈에서 빛을 발하며 말했다. "멋지네요."

타미요는 온화한 즐거움이 가득한 눈으로 턱을 치켜세웠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니, 나시?"

그는 금속 덩어리를 들어올렸다. "구식 데이터 칩이 필요해요. 제 건 망가진 장치에 연결하려다가 태워먹었어요. 중고시장에 가도 되나요?"

"루미요와 히로쿠를 데리고 가거라. 저녁 식사 전에 만두와 코코넛 빵으로 배를 채우는 건 자제하고." 타미요는 아들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카이토의 머리 속에는 그녀의 생각이 울려퍼졌다. 저 아이에게 테제렛에 대해 물어보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대부분의 것들은 저 아이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이에게는 비밀로 했습니다. 저 아이가 그토록 도망치려고 했던 어둠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카이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나시를 향해 씩 웃었다. "드론 잘 만드렴."

나시는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은 뒤 서둘러서 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걸음이 희미해지면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리까지 멀어지자, 카이토는 컵을 내려놓고 타미요를 응시했다. "전부 말해 줘."

그녀는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카이토는 테제렛이 단순한 플레인즈워커가 아니라 여러 해 전에 카이토가 쿄다이의 방 안에서 봤던 금속 팔을 가진 플레인즈워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사람.

카이토의 눈이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의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거기에는 짧은 순간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슬픔과 명쾌함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흔들리고 차원이 기울어지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타미요는 테제렛이 나시의 마을 근처에 위치한 늪에 있는 마법적인 유물을 얻기 위해 카미가와에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네즈미들은 자신들의 땅을 팔지 않았고 테제렛은 보복에 나섰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었고, 그 결과로 마을 전체가 불타버렸다.

카이토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것처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자가 쿄다이와 뭘 하고 있던 거지? 그가 원하는 게 뭐야?"

"저는 그가 카미를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것을 알아낼 작정이지요." 타미요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다른 차원들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제 바램이 아닙니다. 하지만 테제렛은 그의 실험을 이곳, 제 고향으로 가져왔습니다. 가족은 제게 있어 중립을 지키겠다는 제 바램보다 더 중요하고 제 전부였습니다."

카이토는 잠자코 있었다. "그를 막으려고 하는 거야?"

"그의 연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아니지만요."

"카미들을 위협하고 황제를 납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 감정이 복받치기 시작하자 카이토는 뺨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난 그자를 이해할 필요가 없어. 난 그가 내 친구를 어디로 데려갔는지를 알고 싶어."

타미요는 아주 잠시 눈길을 돌렸고, 카이토는 그녀의 눈에서 불안함을 감지했다.

그는 절박한 듯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말해 주지 않은 게 뭐지?"

그녀의 시선이 마치 몰아치는 파도처럼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라브니카에서 방랑자라고 불리는 플레인즈워커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테제렛에 대해, 그리고 그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던 무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지요."

카이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무기?"

"현실 칩이라고 불리는 물건인데, 카미가와뿐만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황제가 실종된 날 밤, 테제렛은 궁으로 가서 칩의 프로토타입으로 쿄다이를 통제하려 했지요." 타미요는 엄숙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것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테제렛이 의도한 대로는 되지 않았지요. 대신 그 칩은 방랑자의 불꽃에 불을 붙였습니다."

카이토의 심장이 그의 갈비뼈에 세차게 부딪혀댔다. 그의 귀가 너무나도 심하게 웅웅거렸기에, 그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타미요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방랑자와 황제는 동일 인물입니다."

황제. 그녀는 카이토가 여태껏 믿어왔던 것처럼 아직 살아있었다.

그 진실을 듣자 그의 가슴이 안도하며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내내 플레인즈워커였다고?"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은 거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타미요가 설명했다. "현실 칩이 그녀의 불꽃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방랑자는 당신이나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통제하지 않아요."

카이토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현실 칩의 프로토타입이 그녀를 멀리 보냈다면, 아마 그 반대도 가능할지 몰라. 테제렛을 찾아서 현실 칩을 훔치고, 황제를 고향으로 데려오는 거지."

"시도해 봐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협력해야만 해요. 지금은 테제렛이 우리에 대해 예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는 한 번 뿐일 수도 있어요." 타미요는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리 둘 모두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연구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테제렛과 연루되어 있는 자는 방랑자보다 더 큰 무언가를 노리고 있어요. 이건 카미가와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카미들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고,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작정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현실 칩을 뒤쫓아 지하에서 그를 추적하기 전에 말이지요."

"황제에겐 우리가 필요해." 카이토가 반박했다. 그는 두번 다시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인내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타미요가 주장했다.

카이토는 갑자기 일어섰고, 그의 맥박은 펄떡이고 있었다. "나는 십 년을 기다렸어."

"카미가와에 있는 모든 이들이 황제가 귀환하기를 기다렸지요."

"나처럼은 아니지. 그녀는—" 카이토는 맞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타미요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도 이해했다. 그녀는 당신의 친구였지요, 그녀의 정신이 말했다. 당신이 느꼈던 상실감도, 그것을 희망으로 대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은 이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카이토는 입을 꾹 다물고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쓴 뒤, 문가로 향했다. "차는 고마워," 그가 어깨 너머로 말했다. "하지만 난 가 봐야 할 곳이 있어."

그는 현실 칩이 그의 친구가 되돌아오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뒤쫓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타미요가 허락해 주기를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카이토는 타메시의 연구실 밖에 서서 단단한 문과 벽의 빛나는 패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창고가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에 카이토가 타메시의 주머니에서 꺼냈던 키 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는 결코 타메시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황제를 고향으로 데려오게 해 주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 .

카이토는 완강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는 그런 타협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타메시가 그에게 왔다면그들의 여정에 함께 협력하는 또 다른 결말이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다해 타메시를 믿었었다. 하지만 타메시의 믿음에는 그를 죽게 만든 비밀들이 딸려 있었다.

카이토의 가슴에 남겨진 고통은 영원할 터였다.

그가 패널 위에 키 카드를 긋자 녹색 불이 번쩍였다. 문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열렸고, 카이토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입모양으로 다시는 보지 못할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보냈다.

그것은 타메시가 얻을 수 있는 구원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카이토는 이미 카메라에 마법을 걸어 두었지만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방의 그림자를 따라 마치 그가 그림자 그 자체인 것처럼 움직였다. 그는 분홍색 액체가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유리관들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연구실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몰랐지만, 안을 보았을 때 그것이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그는 앞 유리창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는 그가 부두에서 봤던 것과 같은 유리 튜브들로 뒤덮인 테이블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다. 그것은 그저 하룻밤 동안 진행했던 실험이 아니라 완전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네온색 액체와 금속 장비가 탁자 위에 널려있었음에도 카이토가 눈을 돌릴 수 없었던 것은 바닥에 있는 형체였다.

그것은 신체들이었다. 카미의 신체들.

십수 개는 되어 보이는 카미의 신체들은 살아는 있었지만 마치 자신들의 정수가 빨려나간 것처럼 칙칙하게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카이토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부두에 갔던 날 밤에 비명소리를 들었음에도 그걸 막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카미들이 들어있었고 화물처럼 훔쳐내져서 실험 대상이 되기 위해 타메시의 실험실로 데려와진 것이었다.

카미들은 카이토의 목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보고 있자니, 그는 끔찍한 죄책감이 온몸으로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에이코가 이곳에 있었다면, 카이토가 비명소리를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가 알았다면 그녀는 그를 비난했을까?

그는 창문에서 몸을 떼낸 뒤 옆방을 수색하기 시작했지만, 의식을 잃은 또 다른 카미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카미의 몸은 종이 등불과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고, 작은 촛불 네 개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채로 금속제 수술용 침대에 구속되어 있었다. 그것의 얼굴에는 잊혀지지 않는 회색빛이 감돌았고 초 심지에 손가락을 대 보니 차가웠다.

하지만 카미의 뒤에 있는 물체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카이토의 손바닥만한 크기도 되지 않는 얇고 네모난 금속 조각이 거대한 기계 옆에 놓여 있었고, 그것의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전선들이 해파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카이토는 예전에 타메시의 사무실을 수색했을 때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청사진은 암호화된 데이터 드라이브 안에 들어있었다. 그 당시에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계로부터 카미의 몸에 연결된 전선의 흔적을 따라 빛이 그 주위를 도는 것을 지켜보면서 카이토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현실 칩이었다.

카이토는 칩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혼수상태인 카미를 지나 문을 빠져나갔다. 기계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을 뜯어내는 손가락으로부터 숨겨 줄 보관 장치도 없었다.

그것은 그냥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카이토는 손을 뻗어 거치대에서 현실 칩을 붙잡아 그것을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봤어, 타미요? 카이토는 우쭐대며 인내는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방을 나와 문을 닫은 뒤,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어렴풋이 비치는 그림자가 그를 멈추게 했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괴물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카이토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타메시를 죽인 괴물이.

Jin-Gitaxias, Progress Tyrant
Jin-Gitaxias, Progress Tyrant | Art by: Chase Stone

카이토는 분노로 두 눈을 불태우면서 이를 악물었다.

"살덩이, 네 두 눈은 익숙함을 암시하고 있지만, 내 기억에는 우리의 만남에 대한 지식이 없다. 이 차원에 두 번째 진-기탁시아스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므로, 네 인식은 진실한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괴물은 머리를 갸우뚱했고, 그의 금속 등뼈에서는 인공적인 빛이 반짝였다. "이런 경우 절차는 중요하지 않다. 절도는 신속한 보복을 필요로 하는 범죄이다."

카이토는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현실 칩의 무게를 무시하고 괴물에게만 집중했다. "그래, 좋아. 이건 네가 타메시에게 한 짓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해."

진-기탁시아스는 걸걸한 금속성 소리를 내뱉었다. "네 목표는 복수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추정으로 인한 것이다. 네 살덩이 동료는 자원해서 참여한 것이었으며 자신의 종말을 맞이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질문들이 그를 비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작업은 보호되어야만 한다."

괴물의 곁에 무장한 닌자 여섯 명이 나타났다. 지하도시에서 고용된 심복들은 돈만 받는다면 누가 시키는지를 마다하지 않고 더러운 일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카이토는 검을 뽑아들었다. "잡담이 필요없으니 다행이로군."

첫 번째 닌자가 앞으로 돌진했고, 카이토는 복면을 쓴 인물의 칼에 자신의 무기를 내리쳤다. 그들이 내비치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그 이방인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칼의 무게에 몸을 떨었다. 카이토는 다음 인물이 공격해 오자 그를 세게 밀쳐 땅으로 쓰러뜨렸다.

카이토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가 칼을 휘두르자, 다가오던 공격자는 양갈래 단검 두 개로 카이토의 칼날을 붙잡았다. 카이토는 발을 뒤로 뻗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칼의 손잡이를 튕겼다. 칼날은 수많은 표창들로 분리되었고, 카이토는 그 인물이 놀라며 앞으로 쓰러지는 것을 피해 오른쪽으로 몸을 굴렸다.

표창들은 그 이방인의 갑옷을 뚫고 지나갔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카이토는 심복들이 다가오면서 공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지만 그것은 카이토도 마찬가지였다.

표창들을 다시 자루로 불러들이자, 그것들은 아주 길게 뻗은 칼날처럼 허공에서 일렬로 늘어섰다. 다음 닌자 두 명이 다가오자 카이토는 칼을 아래로 휘둘렀고,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표창들이 채찍처럼 허공을 가르면서 심복 중 한 명의 얼굴에 맞았다.

다른 한 명은 카이토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는 몸을 숙이고 다리에 힘을 준 뒤, 칼날들을 다시 제자리로 불러들여 검으로 만들었다. 그는 칼을 위로 휘둘러 닌자의 단검에 맞부딪혔고, 그와 동시에 지하도시 닌자 두 명이 더 그에게 돌진해 왔다. 금속과 금속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고, 카이토는 계속해서 막아냈다.

그는 진-기탁시아스가 저 앞쪽에서 싸움이 거의 끝났다고 믿고 있는 듯이 침착하게 서성이고 있는 것을 희미하게 눈치챘다. 자신이 이겼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카이토를 몰랐다. 이것은 복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10년 동안 지켜온 약속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오늘 밤 그는 실패할 생각이 없었다.

카이토는 금속과 정밀함의 소용돌이가 되어, 가벼운 발을 자랑스럽게 할 만한 집중력으로 모든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적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카이토의 힘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공격해 강제로 물러나게 한 뒤, 그의 허리띠에서 도토리처럼 생긴 작은 금속 장치를 꺼냈다. 그가 그것을 바닥에 던지자 맹렬한 빠직소리가 울려퍼졌다.

검은 연기가 퍼져나오며 군중을 뒤덮었고, 카이토가 재빨리 구름의 사거리 밖으로 빠져나오자 전기가 구름을 훑고 지나갔다. 심복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며 소리를 쳤지만, 그것은 이내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변했다.

카이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실험실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건물에서 나와 도망쳤고, 차가운 공기가 그의 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자신이 어디를 향해 도망치고 있는지 몰랐고, 가능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빛을 발하고 있는 도로를 따라 가로등이 늘어서 있었지만 카이토는 그 대신 낮은 벽을 뛰어넘어 건물 사이로 난 길을 택했다. 지금쯤이면 카이토가 현실 칩을 가지고 달아났다는 사실을 진-기탁시아스가 거의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아직 그의 뒤를 쫓지 않고 있다면, 곧 그렇게 될 터였다.

Reality Heist
Reality Heist | Art by: Mila Pesic

발로 콘크리트를 박차면서, 카이토는 울타리가 쳐진 승강장 한 곳의 근처에 미끄러지듯이 멈춰섰다. 그는 어두웠지만 그곳이 아래에 있는 구름 쪽으로 급경사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카이토가 숨을 곳을 찾아 몸을 돌렸을 때, 고용된 심복들이 그를 찾아 길 위로 늘어선 지붕들에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위로 거대한 메크가 나타났고 금속은 스스로 접힘을 반복하더니 용 모양으로 변했다. 그것은 가까운 건물을 뛰어넘어 카이토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착륙한 뒤, 강력한 포효를 내뿜었다.

그것의 핵을 채우고 있는 마법이 안쪽에서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공격을 충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이토는 차원 이동을 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하면 메크와 진-기탁시아스의 심복들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현실 칩이 여전히 그의 주머니 안에 있었다.

그가 그것과 함께 차원 이동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겠는가? 그것이 황제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가 카미가와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아내 그가 시작했던 것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그는 발뒤꿈치로 땅을 단단히 딛고 주먹을 움켜쥔 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할 준비를 했다.

메크가 큰 턱을 벌려 에너지가 파직거리는 구체를 드러내면서 그에게 다가오던 바로 그 때, 카이토는 그의 주머니 안에서 현실 칩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카이토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그것을 꺼냈고 현실 칩의 전선들이 밤하늘 아래에서 생명으로 충만해 요동치는 것을 공포에 질려 쳐다보았다.

그리고 용이 울부짖었다.

카이토가 다시 뒤를 돌아보자 메크의 턱 안에서 빛나던 빛이 희미해져 있었고, 주황색으로 빛나는 긴 선이 갑옷으로 뒤덮인 목을 가로질러 쭉 그어져 있었다. 잠시 동안, 메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두 조각이 서로 분리되어 땅과 충돌했고, 더이상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고장난 기계 뒤에는 눈처럼 하얀 머리에 손에 칼을 든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들자 넓은 모자 아래로 그녀의 이목구비가 보였고, 카이토는 그녀의 갈색 눈을 즉시 알아챘다.

그가 마지막으로 카미가와의 황제를 보았을 때,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세월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그녀의 눈빛 속에서 보이는 깊이는 백 년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이만 먹었을 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사였고 플레인즈워커였다.

방랑자였다.

The Wandering Emperor
The Wandering Emperor | Art by: William Arnold

카이토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는 듯이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안도.

친구가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것이었다.

황제는 지붕을 기어오르는 형체들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그를 향해 걸어왔다. 그녀는 카이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처에서 펄럭이는 움직임 소리가 들렸고, 카이토가 황제와 마주치고 있던 시선을 돌리자 가벼운 불만을 드러내며 입을 오므리고 있는 타미요가 밤하늘에 떠 있었다.

"제가 계획을 세우자고 제안했을 때 의미했던 것은 이런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타미요는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펴고 황제에게 간단하게 목례를 해 인사를 건넸다.

타미요의 눈이 두루마리 위를 훑고 지나가자, 건물 위에 있던 그림자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진-기탁시아스의 심복들은 더이상 달리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땅바닥을 열심히 수색하고 있었다.

"오래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타미요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회를 기념하기에는 더 좋은 장소들이 있고, 투명화 주문은 오래 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타미요의 마법으로 몸을 숨긴 플레인즈워커 세 명은 조용히 오타와라에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