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 침입
황제는 카이토의 맞은편에 서 있었고, 근처에 있는 등불의 호박색 빛이 그녀의 가냘픈 체격과 그녀가 쓰고 있는 넓은 모자의 그늘 아래에 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 윤곽을 그려내고 있었다.
십 년 전, 카이토는 황제가 돌아올 때까지 궁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이제 그와 마찬가지로 플레인즈워커인 그녀가 이 곳, 황궁의 성벽에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카이토는 에이간조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았다. 황제의 벚꽃 정원에 서 있는 것은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꿈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잘못된 퍼즐의 한 조각인 것처럼.
황제의 눈가에도 그와 같이 이질감을 느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한 공허함이 있었다.
타미요는 두루마리를 말아서 조심스럽게 주머니 속에 밀어 넣어 몇 시간 동안 그들을 숨겨 주었던 투명 주문을 멈췄다. "저는 여전히 관문에 있는 경비병들에게 당신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카이토가 결코 익히지 못한 비단같은 우아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귀환을 영원히 비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비밀로 할 필요는 없네," 황제는 조용히 대답했고, 이른 아침의 산들바람에 그녀의 하얀 머리가 흩날렸다. "잠깐이면 되니까." 그녀는 현관을 향해 몸을 돌려 쿄다이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뒤, 그 안으로 사라졌다.
카이토는 목구멍 안이 갑갑해지는 것에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그는 거의 십 년 동안 그들의 재회를 꿈꿨지만, 황제는 그녀가 오타와라에서 메크를 저지한 이후로 그를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아마도 시간이 그들을 서로에게 낯선 사람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카미가와의 황제였다. 어린 시절의 우정은 아마도 그녀의 관심사 중 가장 사소한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곳으로 돌아오셨으니 마음이 벅차시겠지요," 타미요의 목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흘러갔다. 황제 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말 없이 덧붙였다, 당신도 말입니다.
카이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운 좋게 맞춘 거야, 아니면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거야?"
"생각은 너무 복잡하기에 읽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눈 뒤에 있는 진실을 느끼죠." 타미요는 그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정원을 향해 손짓을 했다. "당신은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지요. 아마도, 아주 많이."
카이토는 이를 악물고 근처에 있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가 여태껏 보아 왔던 것보다 더 시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카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황제의 정원은 카미가와에서 카이토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잊혀진 묘지나 텅 빈 사당에 지나지 않는 듯했고 그저 생명의 공허함만이 느껴졌다.
카이토는 황제가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지만, 아마도 모든 제국민이 그의 믿음을 공유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우린 어렸을 적에 여기에서 만나곤 했지," 카이토가 조용히 말했다. "난 내가 에이간조에 속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지만, 황제는
타미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또한 당신이 떠난 이유이기도 했지요. 당신이 플레인즈워커가 되게 하도록 이끈 길로."
카이토는 지친 듯한 웃음을 내뱉었다. "나한테 운명이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같은 일장연설을 하려는 거면, 사양할게. 난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간청할 수도 싸울 수도 아니면 훔쳐서라도 그것들을 바꿀 수 있지."
타미요는 감흥이 없다는 듯이 눈썹을 씰룩였다. "당신은 매우 암울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군요, 카이토."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사원 안쪽 깊은 곳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려 왔다. 카이토는 쿄다이의 목소리를 알아챘다. 그것은 외침과 노래와 속삭임이 동시에 들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타미요의 눈이 문 쪽으로 향했고 카이토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너머를 볼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십 년 전, 지금과 똑같은 복도를 달려갈 때 가슴이 내던 쿵쿵대는 소리와 똑같이 나무 바닥을 발로 쿵쿵 박차면서 쿄다이와 황제를 향해 달려갔다.
그날 밤 그가 방 안에서 발견한 사람은 테제렛이었다. 그가 십 년 동안 추적해 온 금속 팔을 가진 남자.
카이토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다가 미끄러지듯이 멈춰섰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테제렛이 아니라 마침내 황제와 재회한 쿄다이였다.
카미의 황금빛 몸은 얕은 물속에 반쯤 가려진 채로 안개 속 깊숙이 뻗어 있었다. 그녀는 아래로 내린 얼굴 위에 황제가 손을 대고 있었음에도 불편한 듯이 몸부림쳤고, 그녀의 이마에 있는 검은 구체는 카이토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칙칙해진 상태였다.
쿄다이는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고, 황제는 움찔하며 그녀의 배를 움켜쥐었다.
타미요가 다급하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당신의 불꽃은 아직 불안정합니다. 도움 없이는 카미가와에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황제의 손끝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이 차원에 머물기 위한 싸움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건데?" 카이토가 허리에 양 손을 댄 채로 그들에게 걸어왔다. "내가 뭘 하면 되지?"
타미요의 보라색 시선이 황제의 시선과 맞물렸다. 그들은 카이토가 끼어들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소외되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친구에게 최선인 것을 원했을 뿐이었다.
황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타미요는 카이토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현실 칩을 주십시오."
카이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주머니에서 그 물건을 꺼내 타미요의 손바닥 위에 들이밀었다. "이게 그녀가 차원 이동을 하는 것을 막아 줄까?"
타미요는 그것의 해파리 같은 전선들을 잠시 살펴본 뒤 황제의 손을 잡았다. "당분간은 당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지만, 이것이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연구해 보지 않으면, 완전한 효과가 아니면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황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의 위에서 쿄다이가 혼란스러워하며 울부짖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게."
타미요는 현실 칩을 황제의 손등에 올려놓았다. 순식간에 패널은 빛으로 번쩍였고, 전선은 에너지로 맥박치는 정맥처럼 그녀의 살에 융합되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현실 칩이 그녀의 존재의 연장선이 된 것처럼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고통에 맞섰다.
쿄다이는 잠자코 있었고, 잠시 동안 황제는 평온해 보였다.
카이토는 그녀가 다시 한 번 얼굴을 찡그리면서 괴로워하는 듯이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감싸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타미요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가서 가벼운 발을 찾아. 그녀에게 황제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야 해. 어쪄면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
타미요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말 없이 문을 향해 날아갔다. 황제가 무릎을 꿇고 쓰러지자 카이토도 무릎을 꿇었고, 예의 따위는 더이상 차리지 않겠다는 듯이 양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대련 이외에는 황제를 이렇게 만지는 일이 금지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카이토에게 보이는 것은 카미가와의 황제가 아니라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였다.
"뭐가 필요해?"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 "그게 널 고통스럽게 한다면, 제거해 줄게."
"아니," 황제가 숨을 고르며 재빨리 말했다. "그—그게 아니네. 환영 때문이야." 그녀의 손가락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실험실이 보이네. 그 괴물이 보여."
진-기탁시아스. 카이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어떤 기계 옆에서 현실 칩을 발견했다. 그 두 개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었던 것일까?
황제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몇 초가 지나고 나자 그녀의 찌푸린 눈썹이 조금이나마 완화되었고 그녀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카이토의 팔에 손을 올렸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했던 것 중 가장 포옹에 가까웠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았고, 눈을 깜빡이면서 혼란스러움을 떨쳐냈다. "카이토?"
"그래, 나야." 그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십 년을 기다렸다.
황제는 얕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 괴물, 그자가 리소나와 아사리 반란군에게 내 귀환을 알렸네. 그들은 즉시 궁전을 공격할 계획이야. 그들은 황제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카미가와 전역에 퍼지기 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제국민들을 급습하려 하고 있네."
카이토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반란군이 오고 있다면 제국의 사무라이들에게 경고해야 해. 에이간조가 위험해."
황제가 카이토의 팔을 꽉 쥐었다. "우리는 그 괴물을 저지해야 하네. 그자는 카미들에게 실험을 하고 있었어. 무고한 자들을 고문했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자가 필멸자의 세계와 신령 세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을 그냥 두지는 않을 걸세."
"그게 진-기탁시아스가 원하는 거라고 생각해? 전쟁을?" 카이토는 금욕주의자였다. 카미 전쟁은 수천 년 전에 일어났다. 살아있는 역사학자들과 기록 보관소들이 그 이야기들을 보존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고대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더 가까운 신화와도 같았다.
그것이 정말로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인가?
카이토는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카미와 인간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려면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을 터였다. 진-기탁시아스는 병합 관문을 공격할 수도, 대낮에 카미들을 학살할 수도 있었다.
아니. 이것은 전쟁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대한 것이었다. 진-기탁시아스가 카미들에게 한 짓은 결코 발각되기 위해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비밀리에 진행했고, 너무 많은 질문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타메시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진-기탁시아스가 하려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그것은 테제렛과 관련되어 있어." 카이토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 위 높은 곳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쿄다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쿄다이의 몸 아래에서 수 백개의 황금빛 팔다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카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네가 사라진 날 밤에 테제렛이 쿄다이에게 현실 칩의 프로토타입을 사용했어. 그자는 카미를 통제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게는 상관없네," 황제가 말했다. "하지만 그가 내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기 전에 그를 막을 것이야."
카이토의 두 눈이 그녀의 두 눈과 마주쳤고, 그때 그는 갑자기 자신이 옛 친구의 모습을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황제는 그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자네는 나를 찾고 있었지,"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알았어?"
"나는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차원을 여행했네. 사라진 황제를 찾아다니는 카미가와 출신 플레인즈워커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잊지 않더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때로는 나와 자네의 거리가 한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었던 적도 있었지. 내가 내 불꽃을 통제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재회는 훨신 더 빨리 일어났겠지."
카이토는 자신의 가슴에서 다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여태껏 그녀를 찾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그를 찾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너를 고향으로 데려오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미안할 따름이야." 카이토가 말했다.
"달리 기대하지는 않았네," 황제가 대답했다. "자네는 모든 일에 늦었으니까. 우리의 대련 수업마저도 말이지."
"뭐라구? 그건 아니—" 카이토는 말을 하려다가 그녀의 목소리에 희미하게 담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말을 멈췄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딱 한 번 늦었다고."
황제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을 빛내며 미소지었다. 마치 그녀가 진정으로 만족감을 느낀 적이 오래되었다는 것처럼.
세월이 흘렀기에 둘 다 변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카이토는 자신들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그들은 이 차원의 그 어떤 규칙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 황궁의 두 친구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천 장막도 없었다.
쿄다이가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네," 황제가 인정했다. "우리의 유대 때문이야. 내 불꽃의 불안정함이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네."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카이토가 물었지만,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쿄다이의 뒤를 바라보면서 카미가 방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깥에서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사원의 문이 활짝 열렸다. 회랑에는 가벼운 발과 에이코가 서 있었고, 그들의 바로 뒤에 타미요가 가볍게 떠올라 있었다.
가벼운 발의 입이 충격으로 벌어졌고, 그녀의 검은 눈이 황제에게서 카이토에게 향했다가 다시 황제에게로 돌아갔다. 카이토는 즉시 황제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고, 그들은 둘 다 몸을 일으켰다.
황제는 변함없는 우아함을 보이며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만나서 반갑네, 가벼운 발. 내가 부재 중인 동안 카미가와를 돌봐주어 고맙군. 자네들이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네."
가벼운 발은 그냥 허리만 숙이지 않았고 말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지다시피 했다. 에이코 또한 밝은 빛 아래에서 창백해진 얼굴로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황제는 입술을 비틀었다. "됐네,격식을 차릴 시간이 그리 없네. 리소나와 아사리 반란군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에이간조로 다가오고 있네. 즉시 병력을 준비시켜야 하네."
가벼운 발이 혼란스러움에 코를 씰룩이면서 일어났다.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황제는 카이토를 잠시 쳐다 본 뒤, 현실 칩이 박혀 있는 손을 들어올렸다. "이 장치가 아직도 이것을 훔쳐내 온 장소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네."
타미요의 발이 지면에 닿았다. "현재에 대한 환영을 보셨다는 말입니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이 반란군에게 내 귀환에 대해 알렸네. 그들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동안 공격해 오려고 하고 있다네."
"진-기탁시아스가 에이간조를 공격해서 뭘 얻으려고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아." 카이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자는 왕좌가 아니라 실험 대상을 원한다고."
"전쟁을 교란으로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황제의 눈이 유리처럼 반짝였다. "쿄다이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네. 아니면 도둑맞은 것을 되찾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녀는 현실 칩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그것을 매우 잘 숨기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전투는 피할 수 없고, 우리는 싸울 준비를 해야만 하네."
"현실 칩은 아무리 숭고한 자의 손 안에 있다고 해도 위험한 물건입니다." 타미요는 두 팔을 내밀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실린 경고를 강조했다. "카미가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우리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을 때 그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건 절대로 아니지," 카이토는 머리로 피가 쏠리는 것을 느끼면서 반박했다. "저 칩은 황제가 차원 이동을 하지 않게 막아 주고 있는 유일한 물건이야. 저게 없으면, 그녀가 또 다시 십 년 동안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고." 그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해."
황제는 자신의 생각을 숙고하는 것처럼 그 장치를 관찰했다. "고향에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잃은 채로 다차원을 떠돌아다니기를 바라지는 않네. 하지만 그것이 카미가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카미가와에는 황제 폐하가 필요합니다," 가벼운 발이 끼어들었다. "당신이야말로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옆에서 에이코가 두 손을 포개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여러 해 동안 반란에 대비해 왔습니다. 제국의 사무라이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황제 폐하와 쿄다이를 수호할 것입니다."
카이토는 타미요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진-기탁시아스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현실 칩이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현 상황에서 더 즉각적인 위협은 저희가 남겨 두고 온 연구일 것입니다." 타미요는 생각에 잠겨 입술을 오므렸다. "우리가 연구실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연구해온 모든 것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고, 현실 칩과의 연결을 파괴하면 아마도 황제님께 더 많은 통제권을 줄 지 모릅니다."
방 안에 불안과 희망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내가 하겠어," 카이토가 주장했다. "타메시의 건물을 파괴하면 되지." 그의 두 눈은 가벼운 발을 지나 그의 누이를 향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했다. "제국의 지하 창고에 있는 기폭장치 몇 개만 있으면 돼. 실험실로 폭탄을 가져간 뒤에 바깥에서 터뜨릴게."
에이코는 못마땅한 듯이 얼굴을 뒤로 젖혔다. "그 무기들은 압수된 거야, 카이토. 그것들은 규제에 의해 승인되지 않았어. 네가 그걸 아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아."
카이토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그녀를 도발했다. "절대로 사용할 일이 없으면 왜 그것들을 꽁꽁 가둬 두는 거야?"
"그것들은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을 때까지 관리를 받고 있는 거야." 에이코가 간결하게 그의 말을 정정했다.
카이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게 바로 내가 제안하는 거잖아! 타메시의 건물 안에서 안전하게 기폭장치들을 처분하겠다고. 가급적이면 현실 칩의 기계 옆에서가 좋겠지."
에이코가 쏘아보았다. "건물을 날려 버리는 건 안전한 게 아니—"
"카이토의 말이 옳아," 황제가 끼어들자, 에이코와 가벼운 발이멈칫했다. "건물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연구도 파괴해야만 하네." 그녀는 가벼운 발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온 적을, 카미가와에서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위험을 상대하고 있네. 허가되지 않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이상적인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제국민들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에이간조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있을 것이네."
에이코와 가벼운 발은 수긍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숙였다.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타미요가 자신의 옆구리에서 섬세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카이토를 향해 말했다. "저들은 지난번에는 메크를 보내 당신을 뒤쫓게 했지요. 얼마나 많은 심복들이 오타와라에서 아직도 당신을 찾고 있는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카이토는 눈썹을 비틀어올렸다. "자원하는 거야?"
"플레인즈워커 하나보다는 둘이 낫겠지요." 타미요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나도 자네들과 함께하겠네." 황제는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였다. "건물 안에서 본 환영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걸세. 그리고 그곳에는 풀어주어야 하는 카미들도 남아 있고."
"외람되지만 황제 폐하, 이곳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가벼운 발이 귀를 납작하게 내리누르며 말했다. "국민들이 당신께 가르침을 청할 것입니다."
"가르침은 궁정에 청하면 되네, 내가 오랫동안 부재 중일 때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네," 황제가 대답했다. 그녀의 말에 악의나 분노는 없었다. 그녀는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카이토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또 다시 변화를 감지했다. 카미가와는 더이상 그녀가 떠난 고향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는 카이토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인지를 궁금해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에이코는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진-기탁시아스가 찾고 있는 것이 현실 칩이라면 당신께 가장 안전한 장소는 당신을 지키겠다는 사무라이들과 이 벽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가벼운 발의 꼬리들이 이에 화답하며 그녀의 뒤에서 펄럭였다. 이는 찬성의 표시였다. 카이토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누이는 풍족하게 받았던 반면, 그는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이것 말고는 에이코를 질투했던 적이 없었다.
황제는 자신의 선택지를 저울질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 서 있었다. 그녀는 카미가와의 황제이자 방랑자 모두였지만 아마도 각각의 역할은 서로 달라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여기에 남겠네," 그녀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가벼운 발과 에이코는 고개를 끄덕였고, 경비병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원을 떠났다. 타미요는 그들의 뒤를 따라 움직이다가 방 반대쪽에 있는 문간에서 잠시 멈춰섰다.
카이토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친구의 침묵 뒤에 숨겨져 있는 말을 읽어내려 하고 있었다.
황제는 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안개 속을 응시했다.
"카미가와에서 너보다 현실 칩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어떤 벽도 그 사실을 바꾸지는 않을 거야," 카이토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넌 이미 그걸 알고 있는 것 같네."
그녀는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카미가와에 대한 내 의무는 단순히 내가 가진 힘을 보여 주는 것 이상의 것이네. 때로는 내 국민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더 강력할 때도 있지."
"그들이 널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놔두는 걸로 말이야?"
"사람들은 싸워야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연합하지. 역사학자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던 그 예전부터 그래 왔다네." 황제는 쿄다이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리고 보호해야 할 다른 것도 있지. 그자들이 쿄다이를 뒤쫓고 있는 거라면, 내가 그녀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해. 하지만
"약속할게." 카이토가 대답했다.
타미요는 사생활을 지켜주겠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의 생각이 카이토의 정신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제는 가야 합니다. 긴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이토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는 어깨 너머로 뒤돌아보았고, 쿄다이가 숨어있는 안개 속에 황제가 발을 들여놓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했다.
카이토와 타미요가 오타와라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살구색과 자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햇빛이 희미해지는 징조였다.
거리는 한산했지만 유난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하도시의 심복들이 옥상에 올라가 있거나 골목길에서 지켜보고 있는 흔적은 없었다. 카이토와 그의 친구들을 찾아 대지를 수색하고 있는 메크도 없었다.
마치 아무도 그들을 추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카이토는 찌푸린 얼굴을 펼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진-기탁시아스의 심복들이 떠 다니는 도시를 뒤덮고 있지 않는 것이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외부인이었고, 대부분의 미래주의자들이 지지하는 사상의 바깥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너무 쉬운 것 같은데, 카이토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타미요의 얼굴에도 의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마도 오타와라에 있는 우리의 적들이 아사리 반란군과 연합해 에이간조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생각이 들려 왔다.
카이토는 제국민들에게 곧 들이닥칠 일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최고의 명문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카미가와에서 손에 꼽는 투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1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을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 왔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 이외에는 전쟁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반란군들은 달랐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무엇이며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눈 덮인 화산성 기후조차도 혹독했다. 그들은 진정한 인내심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승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카이토는 제국민들이 기술 면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희생이라면?
그들은 황제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현실 칩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황제가 사로잡힌다면
가벼운 발은 절대로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겠지, 카이토의 정신이 웅성거렸다. 그녀는 항상 왕좌가 그 이상의 것이며 지위를 나타낸다고 말해 왔다. 또한 왕좌를 포기하면 카미가와를 하나로 붙들어 주는 상징을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말이다.
카이토는 제국민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지만, 황제는 가벼운 발과 에이코를 곁에 두고 있었고 카이토는 그들을 신뢰했다.
카이토와 타미요는 들키지 않고 타메시의 건물로 빠르게 이동했고, 안으로 들어가 연구실을 향해 질주했다. 지난 번에 카이토가 방문했다는 증거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의 장치가 여전히 카메라를 방해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그를 뒤쫓던 심복들이 낸 것이 분명한 긁힌 자국들도 있었다.
그리고 연구실의 문도 열려 있는 채였다.
카이토는 얼굴을 찡그린 채로 패널 근처에서 머뭇거렸다.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치 모든 방벽이 보호되지 않고 있는 상태로 방치된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진행된 진-기탁시아스의 실험이 문 너머에 있었다. 그는 결코 그것들을 이렇게 무방비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터였다. 그것들을 이미—
카이토는 얼어붙었다. 그것들을 이미 옮겼다면.
카이토는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기다리라는 타미요의 날카로운 경고를 무시한 채로 실험실 문 사이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연구실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는 여전히 네온 색으로 빛나고 있는 긴 유리 창문 너머로 그 장비를 보았다.
하지만 카미들은
카이토는 창문에 다가가기도 전에 그들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로 금속성 재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텅 빈 금속 침대들을 살폈다. 카미가 비물질화되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죄책감이 카이토의 온몸을 파고들었고, 그는 유리창에서 몸을 돌려 현살 칩을 발견한 옆방으로 들어갔다. 기계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살아 있는 것처럼 깜빡이며고 있었지만, 전선들이 부착되어 있던 카미는 이미 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타메시를 죽인 바로 그 자들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두 주먹을 꽉 쥐면서, 카이토는 타미요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들을 구하기엔 우리는 너무 늦었어." 그는 카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두 번 보았고, 그때마다 자신만의 이유로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었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황제를 찾는 것이며 그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왔다.
하지만 그는 카미들이 이렇게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황제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타미요의 얼굴은 잘 통제된 무표정을 띄웠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카이토.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몰랐을 겁니다."
그는 어깨를 돌려 기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전부 다 파괴해야 해. 다시는 카미들을 해칠 수 없게."
"우리가 정말로 뒤쫓고 있는 건 카미들이 아니지," 낮은 목소리가 느리게 말했다.
카이토와 타미요는 몸을 돌렸다.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분홍색 눈과 금속 팔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테제렛.
카이토의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 이놈."
카이토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테제렛의 얼굴에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이 퍼져나갔다. "그 지붕 위 궁전에 있던 소년이로군." 그의 말투에는 조롱의 빛이 역력했다. "넌 그때도 지금만큼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지."
타미요가 한 발 앞으로 걸어나갔다. "당신이 카미들을 뒤쫓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이렇게 많은 카미들을 죽인 것입니까?"
"우리는 존재의 물질적 측면과 비물질적 측면, 즉 몸과 영혼 사이의 유대를 연구하기 위해 카미와 신령 세계의 연결성을 시험할 필요가 있었지. 그리고 카미들은 피렉시아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구할 수 있더라고." 테제렛은 눈을 들불처럼 번쩍이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네게 감사해야 하겠군."
카이토는 쏘아보았다. "뭐 때문에?"
금속이 긁히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고, 어둠 속에서 진-기탁시아스가 나타나 마치 걸어다니는 악몽처럼 테제렛 곁으로 다가갔다. 테제렛은 진-기탁시아스가 금속 발톱을 펼치며 몸을 앞으로 숙이는 동안에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플레인즈워커들을 우리의 연구실로 데려와서 연구가 아주 잘 진행되게 해 준 것에 대해서지," 진-기탁시아스가 섬뜩한 기쁨을 드러내면서 맞받아쳤다.
카이토는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타미요와 경계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그녀의 말이 그의 정신에 파고들었다. 저 실험들은 카미가 아니라 플레인즈워커에 대한 것입니다.
카이토가 손에 칼을 빼들자, 지하도시의 심복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카이토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이곳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함정이었고 카이토와 타미요는 그 안으로 곧장 걸어들어왔다.
카이토는 타미요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을 압박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그의 톱니 모양 칼날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정신으로 칼날을 분리시켜, 각각의 조각들을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날려보냈고, 모든 칼날 조각들은 테제렛의 가슴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금속 팔을 가진 남자에게서 몇 인치 떨어진 공중에서 멈춰섰다.
테제렛의 눈이 검게 변하였고 그는 카이토를 비웃으며 표창들을 향해 손을 튕겨 그것들을 카이토와 타미요에게 다시 날려보냈다. 그들은 일제히 물러나면서 충격에 대비했지만, 칼날은 그들에게 부딪혀 오지 않았다.
칼날들은 그들에게 움직이기만 해 보라는 듯이 그들의 피부 위에 멈춰선 채로 떠 있었다.
타미요는 두루마리 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바로 그 때 길쭉한 금속 장비가 천장으로부터 떨어져내려 거대한 구속구처럼 그녀의 손을 감쌌다. 그녀는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테제렛은 혀를 쯧 하고 찼다.
"나라면 그러지 않겠어. 네 친구가 살아있기를 바란다면 말이지," 테제렛이 경고했다.
타미요는 표창 모드인 칼날 두 개가 카이토의 목에 조금씩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피부를 뚫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나 때문에 망설이지 마," 카이토가 거친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게다가 저자에겐 우리가 필요해. 나는 저들이 카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봤어. 카미들을 저 기계에 얼마나 오래 매달아 놓았는지를 말이야. 저자는 우리를 저 수술대에 올리기 전에는 우리 중 아무도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진-기탁시아스의 목소리가 기계 곤충처럼 찰칵거렸다. "실험 대상이 여러 개라면 우리의 지식을 넓힐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살덩이 중 하나가 생산성을 위협한다면 표본 하나로도 충분하다."
테제렛은 카이토를 깔보는 듯이 쳐다보았다. "네가 나에 대해 캐묻고 다녔던 플레인즈워커지. 다차원에서 황제를 찾아다니고 있는 놈."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카이토는 철제 칼날이 금방이라도 그의 갑옷을 꿰뚫을 것처럼 갑옷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정해야겠군, 나는 그자가 좀 덜
카이토의 목이 화끈거렸다. "걱정 마, 이제 막 준비운동을 끝냈으니까."
테제렛은 어깨 위로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면서 몸을 움직였지만, 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카이토가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벨트에 감춰져 있던 단검 한 자루가 천장을 향해 날아가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전등 중 하나를 붙들고 있던 전선을 잘랐다.
불꽃이 튀면서 전등이 천장에서 테제렛을 향해 떨어져 내렸고, 테제렛이 옆으로 피하자 반짝이는 유리 파편이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카이토는 주의를 산만하게 한 틈을 타 몸을 비틀어 칼날들로부터 빠져나온 뒤, 이미 공격해오려고 검을 치켜든 가장 가까운 닌자에게 달려들었다.
카이토는 몸을 낮게 숙이면서 닌자의 무릎을 다리로 후려친 뒤, 팔꿈치를 뒤로 휘둘러 그의 턱을 부쉈다. 그리고 그는 앞쪽으로 뛰쳐나가면서 벨트에서 연막 장치 하나를 꺼내 진-기탁시아스를 향해 던지려 했지만, 바로 그때 그의 생각 속에서 타미요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카이토, 그녀가 말했다. 그것은 간청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가 어깨 너머로 타미요를 바라보자, 그녀는 전보다 더 많은 금속에 휩싸여 있었고, 은 조각 같은 것이 길게 뻗어 그녀의 눈을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루마리를 읽을 수 없었고, 카이토는 저렇게 많은 구속구들로부터 그녀를 풀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싸우면서 이 시설을 탈출한다면 타미요는 남겨둬야만 할 터였다.
"말했지만," 테제렛이 쉭쉭대는 소리로 말하면서 양손을 옆으로 내뻗자 그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장치들이 그것에 응답하기라도 하는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희들 중 단 한 명이야."
카이토는 타미요를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었다.
이런 운명에게는. 죽을 때까지 고문을 당한 카미를 보고 난 뒤에는.
카이토는 그가 먼저 죽지만 않는다면 남아서 싸우고 붙잡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황제에게는 어떤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폭발물로 손을 뻗었다. 아직 연구실을 그리고 진-기탁시아스와 테제렛을 그와 함께 파괴할 시간은 남아 있었다. 그는 카미가와를 지킬 수 있었다. 황제와 쿄다이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안전할 터였다.
현실 칩이 기계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황제가 자신의 불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카이토의 손가락이 기폭제를 움켜쥐었다. 사람들은 전쟁에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하지만 이건?
그는 친구 한 명을 위해 이 희생을 하려는 것이었다.
카이토는 재빠른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장치를 꺼내 그것을 기계가 있는 방으로 던져넣었고, 그것은 휘파람같은 소리를 내며 공중을 날아갔다.
하지만 그 무기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것은 유리창에 닿기 직전에 멈춰선 뒤 천천히 허공을 움직여 테제렛의 손 안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사악하게 낄낄댔다. "네 문제는," 테제렛이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이미 숙달한 기술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기폭제는 쓸모없는 금속과 마이크로칩 덩어리로 나눠질 때까지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카이토의 뒤통수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새까맣게 변했다.
방랑자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미간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그녀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안개가 낀 사원의 바닥을 그러잡았다.
에이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왜 그러시죠? 무엇을 보신 겁니까?"
방랑자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쉬면서,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내려는 듯이 방 안을 훑어보았다.
그녀가 낯선 방 안에서 깨어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을 터였다.
하지만 쿄다이의 느린 신음소리는 그녀가 자신이 여전히 카미가와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든간에 그녀는 여전히 고향에 있었다.
방랑자는 자신의 외투를 움켜쥐면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카이토와 타미요가
에이코의 눈이 공포에 휩싸이면서 휘둥그레졌다. 방랑자는 카이토에 대해 아는 것처럼 에이코를 알지는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누이에 대해 해 준 이야기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유대가 카미와 전달자들의 유대보다도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랑자가 건물 안에서 엿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에이코의 걱정은 당연했다.
가벼운 발이 안개의 가장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떤 곤경 말입니까?"
"테제렛과 진-기탁시아스가 매복하고 있었네." 방랑자는 그 기억에 몸서리쳤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직접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돕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탈출할 수 없을 것이야."
가벼운 발의 꼬리가 마치 부채처럼 그녀의 등 뒤로 활짝 펼쳐졌다. "에이간조에는 황제 폐하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통치자 없이 너무 오랜 세월을 보냈고, 이는 황실 내부와 카미가와 전역에서 마찰과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사리 반란군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성문으로 들이닥칠 수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방랑자는 가벼운 발과 눈을 마주쳤다. "자네는 십 년 동안 내가 없는 궁전을 관리하는 일에 힘써 왔지. 앞으로 십 분 정도는 더 해낼 수 있을 게야."
가벼운 발은 반박하며 방랑자에게 남아있기를 간청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녀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에이코였다.
"당신이 부재하신 동안 저희가 궁전을 지키겠습니다," 에이코가 살짝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카이토를 데려와 주세요." 그녀는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에이코에게는 언제나 궁전에 대한 충성심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무를 위해서 가족의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었다. 가벼운 발이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방랑자와 에이코가 공유한 감정이었다.
방랑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멀리에 있는 쿄다이를 향해 몸을 돌린 뒤, 손을 들어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옛 친구여, 방랑자는 자신의 생각을 안개 속으로 날려보냈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쿄다이가 즐거운 듯한 외침 소리를 내면서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내게서 무엇이 필요한가, 황제여? 다른 사람들에게 쿄다이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겹겹이 쌓인 소리들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들렸다. 하지만 방랑자의 머리 속에서는 마치 텅 빈 방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가볍고 맑은 소리로 들려 왔다.
나는 내 불꽃을 통제할 수 없네. 하지만 아마도 자네의 도움, 우리의 유대가 있다면 건물 안으로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꽃을 안정화할 수 있네, 방랑자가 설명했다.
위험할 텐데, 쿄다이가 경고했다. 그 괴물은 현실 칩과 자네를 차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걸세.
내가 볼 수 있는 괴물들은 두렵지 않네, 방랑자가 대답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나를 뒤쫓는 적들보다는 내 눈 앞에 있는 적을 상대하는 걸 선택하겠네.
방랑자는 어깨 뒤로 손을 뻗어 검을 뽑아든 뒤,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녀는 안개 속에서 멍하니 흔들거리며 흥얼거리고 있는 쿄다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방랑자의 가슴에 에너지가 차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불꽃이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소리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곳에 함께 있는 쿄다이의 따스함이 그녀를 진정시켜 주었고 마치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그녀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비록 그녀조차도 더 이상 그곳이 어디인지를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마음 속 어디에선가는 고향이 애초에 장소일 필요조차 없는 것이 아닌지를 궁금해했다.
아마도 고향은 그녀가 아끼고 그녀를 아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카이토는 방랑자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를 찾기 위해 여러 차원들을 돌아다녔고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오기 위해 기꺼이 괴물과 맞섰다.
이제는 그녀가 그를 포기하지 않을 차례였다.
가벼운 발, 에이코, 그리고 쿄다이를 사원에 남겨 둔 채, 방랑자는 번쩍이는 빛과 함께 에이간조에서 타메시의 건물로 차원을 이동했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고 카이토가 방 안 어디에 있는지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크롬 같은 괴물이 눈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을 때 주저하지 않았다.
방랑자는 천상에서 내려친 공격처럼 검을 아래로 휘둘러 진-기탁시아스의 목부터 가슴까지를 반으로 갈랐다.
그 상처는 심했고, 그의 목에서 터져나온 금속성 외침이 그녀의 고막을 떨게 했다. 방랑자는 실험 준비를 하듯이 수술대에 묶여 있는 카이토와 타미요를 향해 싸우며 나아갔다. 그녀는 구속구들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것들도 갈기갈기 잘라 버렸다.
그녀는 카이토를 한 팔로 끌어당겨, 그가 눈을 깜빡이며 의식을 되찾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는 혼미한 목소리로 물어보면서 무기가 있어야 할 곳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렸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뒤로 물러나, 내가 할게."
그것은 그녀가 기억하는 카이토였다. 자신이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바로 그 소년이었다.
"내 생각엔 내가 자네의 목숨을 구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 내 계산이 맞다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벌써 두 번째지." 그녀의 두 눈이 유머로 반짝였다. "내 관심을 받고 싶은 거라면, 다른 방법도 있다네."
방랑자는 근처에서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카미가와의 황제는 카이토에게 자신의 허리띠에서 단검 한 자루를 건네 준 뒤 씩 웃었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던 동안 훈련에서 심하게 뒤쳐진 것이 보이네만 뒤쳐지지 않게 노력해 보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