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창이 볼다렌 저택의 창문을 산산조각 냈다. 부서져 내린 보호진은 마치 잿가루처럼 바람에 흩어졌다. 몇 달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서야 스텐시아의 공기가 처음으로 밝고 맑아졌으며, 이는 희망에 차 모여든 자들의 목표처럼 맑았다.

오늘 밤, 그들은 이 끔찍한 성의 문을 무너뜨릴 것이다. 오늘 밤, 그들은 낮을 되찾기 위해 이빨, 손톱, 발톱, 검을 총 동원해 싸울 것이다.

Sigarda's Summons
Sigarda's Summons | Art by: Nestor Ossandon Leal

아를린은 최대한 빠르게 지시했다. 그녀는 천사가 내뿜는 빛의 기둥을 보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그러나 그들은 성자처럼 성스러움을 두른 채 검을 치켜들었고 말들을 일으켜 세워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아델린이 무리의 선두에 서서 달렸고 찬드라는 그녀의 뒤에 앉아 있었으며, 테페리는 주변에 있는 보병들의 발걸음을 서둘렀다.관문을 지키던 경비명들은 모여든 군중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를린은 누가 그들을 쓰러뜨렸는지 보지 못했지만 여러 창날이 그들의 가슴을 꿰뚫는 모습과 바람에 실려오는 그들의 피 냄새는 확실히 맛볼 수 있었다.

그녀의 감각들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문 너머를 쳐다보았다: 좁은 길이 심연의 구렁텅이 위로 실처럼 가늘게 뻗어 저택의 메스꺼운 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터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생각이었다. 파이가 얼마나 맛있어 보이든속을 썩은 생선으로 채워넣었다면 여전히 썩은 맛이 날 거라는 그녀의 어머니가 평소에 하던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흡혈귀들은 손길이 닿는 곳마다 어디든 썩은 맛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그녀의 어깨에 카야의 손이 얹히자 아를린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사색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왔다. "나아가야만 해,"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앟으면, 남아있는 게 별로 없을 거야."

그녀의 말이 옳았다. 아를린은 카야가 많은 부분에서 옳은 소리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끝난 뒤,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 있기를 바랬다. 카야는 다른 플레인즈워커들 중에서 이니스트라드의 특징인 삶과 죽음의 미묘한 균형을 가장 잘 이해했다. 그리고 이니스트라드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를린을 이해한다는 의미였다.

"뒤쳐지지 말고 잘 따라와 보세요," 아를린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카야는 눈을 굴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둘은 군중과 합류했다. 말에 타거나 서 있는 성전사들, 왜가리와 아바신의 목걸이를 지닌 사제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잃은 농부들로 구성된 군중이었다.

다리를 건너며 타락의 소굴을 향해 산 자와 필멸자들이 전진했다.

창날이, 망치와 방패가, 횃불과 투구가, 거룩한 고서와 축복받은 칼날들이 전진했다.

박쥐들도 내려왔다. 처음에는 멀리서 잿가루가 떨어져 내리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가 그런 희망을 없애버렸다.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그녀의 예민한 귀를 꿰뚫었다. 아를린은 한쪽 귀를 막고 다른 쪽 귀를 그녀의 어깨에 대면서 그 불협화음을 막으려 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소용이 있었던 것은 그녀의 어깨 너머에서 쏘아올려진 마법 번개들이었다. 연이어 화살들도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피에 굶주린 박쥐들이 지면 가까이 내려오자 마녀들과 궁수들은 열심히 그들과 맞섰다. 털가죽이 지글거렸고 울부짖는 소리가 심해졌다가 잠잠해졌다. 박쥐들은 떨어져 내렸지만 그녀의 귀는 여전히 웅웅대고 있었다. 급조된 군대의 발 아래에서 으스러지는 뼈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발 밑의 감촉이 단순한 돌바닥에서 세심하게 놓여진 대리석으로 바뀌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꼈다. 전면에는 2차 관문의 경비병들이 이미 압도되어 피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엎어져 있었다. 어쩌면 카야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않으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 규모의 군중조차도 관문을 여는 것은 애를 먹었다.

카야와 아를린은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과거 지도자와 그녀의 동료에게 길을 비켜 주어 쉽게 나아갈 수 있었다. 아델린, 테페리, 그리고 찬드라가 큰 문 앞에 선봉으로 서 있었다.

테페리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본 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취향 한 번 끔찍하군."

"전부 태워버리기 딱 좋네," 찬드라가 말했다.

"문 이야기하는 거지?" 아델린이 물었다.

찬드라는 긴장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돌아보았다. "맞아. . .그냥 문만."

불길이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팔을 감쌌다. 그녀는 뽐내듯이 전진하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를린은 그녀를 멈추고 싶었다. 불길은 다루기 힘들었고 흡혈귀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해로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화낼 수는 없었다. 올리비아의 우쭐한 얼굴이 불타는 것을 상상하는 데에 무언가 만족감이 느껴졌다.

테페리는 자신의 지팡이로 땅을 두드렸다. 그는 그 광경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불길은 더 뜨겁게, 더 밝게, 더 빠르게 불타올랐고 앞에 서 있던 문은 곧 재가 되었다.

진정한 공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들 앞에 볼다렌 저택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를린은 이 곳에 직접 와 본 적은 없었지만, 저택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 왔다. 한 번 방향을 잘못 틀기만 해도 다시는 소리소문조차 들리지 않게 사라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서 방황할 때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아를린은 언제나 무리와 함께 이동했다. 아픈 슬픔이 곧바로 그 생각을 뒤따랐다. 줄무늬, 바위, 인내심, 그리고 붉은이빨. 원한다면 그녀는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발밑에 탄력적인 흙이 있는 곳. 소나무 냄새가 나는 곳.

그녀는 자신이 외톨이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에서 보이는 빛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Resistance Squad
Resistance Squad | Art by: Joshua Raphael

말에 탄 성전사들이 군중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며, 검과 창으로 정의를 구현할 채비를 한 뒤 마당과 정원으로 전진했다. 찬드라와 아델린이 그들을 동행했고, 아델린은 말에 올라탄 다음 찬드라를 끌어올려 그녀의 뒤에 앉혔다.

기능적인 용도보다는 장식만 요란한 갑옷을 입은 경비병들이 황금 무기로 무장한 채 그들의 돌격에 맞섰다. 화살과 번개가 급조된 방패를 든 농부들과 그들 옆에 서 있는 나이든 병사들로 구성된 첫 번째 방어선과 충돌했다. 응수하는 일제 사격이 곧 그 뒤를 따랐다. 아를린은 활 한 개를 집어든 뒤 빠르게 화살들을 날렸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그녀의 화살이 어디에 적중하는지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적들을 맞히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솜씨 좋은 사수인 줄은 몰랐는걸," 카야가 말했다.

아를린은 그녀를 흘낏 쳐다보았다. 카야의 두 눈이 희미한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를린의 혀에서는 이상한 맛이 났고 알 수 없는 고음이 들려왔다.

"사냥하는 데 항상 이빨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를린이 말했다. "다 괜찮은 거죠?"

그들이 있는 쪽으로 투창 하나가 날아오며 카야를 통과해 머리가 날아간 동상으로 부딪히며 쓸데없이 쨍그랑 소리를 냈다. "이곳에는 영혼들이 있어, 아를린. 그리고 그들은 아주 화가 나 있지."

아를린은 씩 웃었다. "좋아요. 그들이 우리를 도와주게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들을 풀어줄 수 있을지 알아볼게," 카야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미소지었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빛이 나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기다려. 난 혼자가 아닌 것 같아. 누군가가 날 부르고 있어."

아를린은 어깨 너머를 쳐다보았다. 빛은 무도회장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했고 복도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저 경비병들도 어디선가로부터 오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누군데요?"

"내 생각에는. . .카틸다 같아."

아를린의 가슴 속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마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에일을 들이켰을 때처럼. "더 좋네요."

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계속 앞으로 나가. 난 지원군을 찾아볼게. 볼다렌 녀석들이 빚을 갚을 때가 됐군."

그리고 유령들과 마찬가지로 아를린에게는 두 번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카야를 믿었다. 그녀는 테페리를 믿었다. 그녀는 찬드라와 아델린을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린 또한 믿었다. 그녀는 그가 이니스트라드를 구해야 하는 때가 되면 옳은 일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저 그녀는 만일을 위해 그곳에 있고 싶었을 뿐이었다.

경비병들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흡혈귀들과 싸우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지만 평소보다는 쉬웠다. 그들의 창백한 피부 여기저기에 형형색색의 유리 조각들이 박혀 있었고 이리저리 몸을 휘청이고 있어 아를린은 그들 사이를 통과해 지나가며 단 한 번의 공격조차 맞지 않았다. 볼다렌 저택의 대리석 바닥으로 피가 미끄러지듯 흘렀고, 이것은 흡혈귀들의 피였다.

쓰러진 것은 흡혈귀들뿐만이 아니었다.

석상들이 넘어뜨려지며 잘 연마되어 반질반질했던 돌덩이들이 산산조각 났다.

피가 가득 담긴 분수들이 박살났고 사제들은 짝을 지어 타락한 자들을 정화했다.

태피스트리, 샹들리에, 고급 카페트, 호화로운 가구들이 모두 불타올랐다. 불같은 분노가 이니스트라드의 심장부에서 피어올랐다. 복도를 따라 울려퍼지는 고함 소리는 단순히 전쟁의 외침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고통에 찬 비명이었고 삶에 대한 확신이자 너무 오랫동안 두려움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카타르시스을 느끼며 울부짖는 소리였다.

흡혈귀들은 필멸자들의 고혈을 착취해 이곳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필멸자들이 이곳을 갈기갈기 찢을 터였다.

그들이 무도회장으로 들어갈 때쯤 아를린 또한 자신이 품고 있는 정당한 분노를 느꼈다. 그녀의 내면의 짐승은 자신을 구속하는 목줄에 맞서 몸부림쳤다. 토볼라르였다면 그녀에게 이 피를 빠는 자들에게 분노를 풀어놓으라고 말했을 터였다.

그녀는 그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하지만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녀는 거의 자제력을 잃을 뻔 했다.

피투성이가 된 시가르다의 날개를 보며, 분노에 집어삼켜져 낫으로 흡혈귀들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아를린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생기를 불어넣는 것만큼이나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아를린의 입천장에 비릿한 맛이 달라붙었다. 교회도 어떤 늑대인간 무리처럼 피투성이가 될 수 있었다.

거기에는 다른 이들도 있었다: 경비병들이 더 있었고 그중 몇몇은 대담하게도 시가르다를 직접 공격했다. 침입자들을 마주하며 난폭해진 파티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녀는 열쇠와 소린을 찾으려 방을 둘러보았지만 감당하기 힘든 광경이 너무나도 많았다. 찢어진 가운들, 핏자국과 함께 공중에 소용돌이치는 박쥐들, 산산조각 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 부서진 분수대, 그리고 두 동강이 난 뷔페 식탁.

금방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그것들을 돌파해야만 했다.

앞에서 마르코프 결투자가 뛰어오르며 칼날을 휘두르자 그녀는 몸을 숙여 피했고, 팔을 휘둘러 비단과 레이스 장식을 찢으며 그 공격자의 몸에 발톱을 박아넣었다. 그녀는 전에 이런 자와 싸워 본 적이 있었다. 화려한 검술은 여러모로 쓸모 있지만, 아를린은 싸우는 데 검이 필요 없었다.

그는 옆구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데도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에 너무 많이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수많은 목숨이 한데 뒤섞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붉은 색이 짙게 칠해져 있었다. "아무도 패션 파괴자들을 초대한 적 없어."

그의 다음 번 칼질은 재빨랐다. 만약 그가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면 반응하기에 너무 빨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를린은 혼자가 아니었고 그 공격을 느리게 만드는 마법의 파도가 이를 증명했다. 그녀가 무릎을 그의 배에 꽂아넣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흡혈귀는 몸 속의 공기를 모두 토해내며 꺽꺽댔고 그의 칼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그를 죽일 수 있었다. 그의 목줄기를 뜯어내 버릴 수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그는 그렇게 되기에 충분했다. 흡혈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고통받는 것이 필수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토볼라르가 할 법한 일이었다.

아를린은 그를 머리 위로 힘껏 들어올려 돌기둥에 던져 버렸다.

그에게 상식이란 게 있다면 더 이상 그녀를 뒤쫗지 않을 터였다.

그가 정말로 그렇게 할 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수확철 때의 기억을 떨쳐버리려 최선을 다하며 다시 난전 속을 헤쳐나갔다. 이번에는 그때와 똑같지 않을 터였다. 달라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을 멈출 최선의 방법은 열쇠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냄새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킁킁대며 공기를 들이마셔 보았지만, 너무나도 많은 마법이 섞여 있어 냄새를 찾기 어려웠다. 시가르다의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은 그녀가 대다수의 경비병들과 싸우는 동안 물결처럼 그녀에게서 퍼져나오고 있었다.

아를린은 대신 눈으로 찾아야만 했다.

그녀가 올리비아를 찾아낸 순간 기병대가 도착했다. 성전사들은 창문을 깨며 안으로 진입했고 그들의 전투마들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일부 사제들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마법의 번개들이 시조 흡혈귀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그리고 사제들이 무도회장 안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자 환호성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올리비아는 전혀 환호하지 않았다. "너희들. . .너희들 모두! 너희들은 내 결혼식 날을 망치고 있어!" 그녀는 계단 맨 꼭대기에서 소리쳤다.

"열쇠를 넘기세요!" 아를린이 답했다. 수백 명의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메아리치듯 반복했다. 열쇠, 열쇠!

수많은 소리에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쇠, 열쇠, 여. . .. . .죽여.

잠깐. 그것은 군대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있었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 주위의 모든 공기가 합쳐져 다른 무언가의 형체를 이뤘다. 무언가 오래된.

심령들이었다. 아를린은 이제 그들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 시종과 기사, 공작과 농부들이었다. 수백 정도는 되어 보이는 심령들은 모두 한꺼번에 실체화해 분노로 유령의 불길을 밝게 빛내고 있었다.

네가 우리를 죽였다.

망자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들의 무기 또한 또렷하게 보였고, 그녀는 그 광경에 안심이 되었다. 마치 영계의 힘이 파도치는 것처럼 심령들은 그들의 옛 압제자들을 향해 돌격했다. 그 무리 사이에서 낯익은 머리 장식이 눈에 띄었다: 카틸다였다. 아를린은 그녀를 따르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아를린의 앞에 마치 보름달이 뜬 밤의 이끼처럼 희미한 녹색으로 빛나는 길이 생겨났다.

아를린은 계단을 달려올라갔다.

올리비아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니, 날아오르려 했다. 머지않아 그녀의 뒤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허공에 나타났다. 카야가 올리비아의 사악한 옷자락에 영계의 단검을 찔러넣었다. 보통의 옷감이었다면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이 마법의 옷감도 마찬가지로 찢어졌고 옷자락 안에 갇혀 있던 심령들이 마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듯 터지면서 풀려나왔다.

올리비아의 비명소리는 아주 끔찍했다. 그녀가 몸부림치자 카야는 튕겨져 나갔다. 그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피를 보게 될 터였다.

아를린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허공으로 뛰어올라서 떨어져 내리던 카야를 붙잡고 곧바로 착지했다. 이는 올리비아가 도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를린이 고개를 쳐들자 그녀의 누더기가 된 옷자락이 복도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싸움은 우리에게 맡겨," 카야가 말했다. "가."

Kaya, Geist Hunter
Kaya, Geist Hunter | Art by: Ryan Pancoast

아를린은 어깨 너머로 천사들, 필멸자들, 불멸자들, 그리고 유령들을 흘끗 보았다. 저 소란 속 어딘가에 소린이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는 그를 포착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를 찾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세요."

그건 꽤 어려운 요청이었고, 그녀 또한 이를 알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사람들이 죽을 터였다. 그녀는 그들이 죽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를린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희생이 가치없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이럴 필요는 없었어."

느리고 신중한 목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쳤다. 그 목소리는 피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소리를 압도했다. 이는 소린이 이미 그 목소리를 너무나도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목소리는 한때 그에게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할아버지, 이게 바보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여기서 이상하게 들렸다. 바깥에 있는 명판에는 "혈마법회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스꽝스럽지만 정확한 이름이었다. 이곳은 볼다렌 가문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비축물들을 저장해 놓은 곳임이 틀림없었다.

볼다렌 가문에 힘든 시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시가르다가 하늘로 날아올랐을 때, 에드가르는 도망쳤다. 그는 누구보다도 천사의 분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소린은 그를 뒤따라갔다. 그때쯤에는 아를린과 그녀의 일행이 이미 문을 뚫고 들어와 있었다. 열쇠를 되찾는 일은 그들이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에드가르 마르코프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그들은 혈마법회관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통들 사이에 서 있었다. 이 붉은 기둥들 사이 어딘가에서 그의 할아버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쳐다보면서.

"넌 이걸 그렇게 보는 게냐?"

소린은 손에 든 칼날을 과장되게 흔들었다. "궤변을 들이대시겠다고요? 할아버지, 예전엔 이러지 않으셨잖아요."

그는 공격이 날아오기 직전에 소리를 듣고 먼저 알아챘다: 에드가르의 갑옷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이를 알려주었다. 소린은 오른쪽으로 피했고 에드가르는 병들이 가득 든 선반을 전투망치처럼 휘둘렀다. 그것들은 땅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조각났다. 소린의 눈을 마주하는 에드가르의 시선에는 경멸만이 가득했다.

마르코프의 혈통이 마침내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인가? 착각에 빠진 노인이 손자에게 가구를 휘두르는?

"최소한 무기다운 무기를 사용하세요!" 소린이 버럭 화를 냈다. 그는 에드가르를 향해 거칠고 지저분하게 칼을 그었다.

그 공격은 쉽게 반격되었다. 에드가르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소린의 손목을 굳게 붙잡았다. 팔뚝의 가는 뼈들이 부러지며 소린의 팔에 고통이 전해졌다. "네가 예절에 대해 뭘 안다는 게냐, 소린? 넌 한 번도 가족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없지 않느냐."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에드가르는 소린을 멀리 던져버렸다. 소린은 통에 부딪혔고 그의 등 뒤의 나무들이 와그작거리며 부서졌다. 피가 흘러나와 이미 끈적끈적해져 있는 그의 피부를 뒤덮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에드가르가 말했다. 그는 마치 아이에게 설교를 하는 것마냥 소린에게 손가락질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를?"

소린은 피가 담긴 손을 입으로 가져왔다. 피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면 그 또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할아버지의 망상에 귀 기울이는 것보단 나았다. 에드가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올리비아의 통제력이 생각보다 더 깊은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사이가 언제나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에드가르가 바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말이 올리비아의 조종에 의한 것일 수는 없었다.

"마치 저는 당신을 위해 희생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소린이 대답했다. 칼은 이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일어서면서 손에 처음 붙잡히는 것을 집어들었다— 기다란 파이프이었다. 그의 혈관을 따라 흐르는 강력한 피의 힘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그것을 원래 있던 곳에서 뽑아들 수 있. 심지어 더 많은 피가 그에게 흩뿌려졌기에 더 좋은 상황이었다.

이 힘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소린은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 강력한 공격으로 인해 에드가르의 갑옷이 신음소리를 내며 움푹 찌그러졌고 그의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내뱉는 고통스러운 쌕쌕거리는 소리는 그가 마치. . .재미있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렴, 얘야, 네 희생에 대해 말해 보거라," 그가 말했다. "네가 마르코프 가문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 이니스트라드에는?"

"저는 아바신을 만들—"

에드가르의 손이 목을 조르며 그 대답을 막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연금술의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비웃는 듯이 벌려진 입에서는 경멸이 흘러나왔다.

"네 하찮은 장난감 병사 말이냐?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지난 천 년 동안, 넌 그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왔지. 심지어 그것조차도 연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말이다. 난 네가 한 번이라도 독창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네가 생각해낸 것들 중에 효과가 있던 게 있기나 했는지도 궁금하고."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그가 소린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그 깊이를 알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에드가르는 그를 한 손으로 손쉽게 들어올렸다. 그것은 실수였다. 소린은 에드가르의 머리를 향해 강철 봉을 휘둘렀다. 할아버지의 갈라진 두개골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고 엄습해오는 고통에 노인은 먹잇감을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났다.

무언가가 소린의 내면에서 차올랐다.

다른 차원들이 있다. 다른 계획들이 있다.

이 단어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그의 두개골 속에서 메아리치는 합창이 되었고 사악한 신을 소환하는 함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불러들인 것은 진정으로 사악했다. 그는 목줄이 풀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몇 번이고 봉을 휘둘렀고 그의 할아버지는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강철이 유리를 산산조각 냈다. 피가 폭포수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한때 살아있는 자들의 혈관 속을 달렸던 피가, 한때 더 많은 것을 갈망했던 피가, 이제는 죽기를 바라는 피가.

"할아버지는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린이 소리쳤다. "할아버지가 저희의 존재에 식탐을 즐기는 파티나 방탕한 과잉 섭취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깨달으셨을 거라고 생각했다구요!"

그는 계속해서 봉을 휘둘렀고 너무나도 많이 휘두른 탓에 강철이 구부러졌다. 그는 땅바닥을 향해 낮게 몸을 숙였다. 사용하기 충분한 훨씬 큰 파이프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은 그 순간 에드가르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마치 말을 듣지 않는 양을 들어올리는 농부처럼 그의 머리칼과 허리를 붙잡았다.

"넌 애송이다. 지금까지도 항상 애송이였고," 그는 낮게 읊조렸다. "정말로 안타깝구나. 수천 년 전에, 난 네게 선물을 주었지. 이제 나는 네가 그것을 허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야만 하는구나."

"달라고 한 적 없어요" 소린이 말했다.

"오, 얘야, 그래서 선물인 거란다."

에드가르는 그를 휘두르며 통에 그의 얼굴을 처박았다. 그의 콧구멍 속으로 피와 쪼개진 나무 파편들이 들이닥쳤다.

기억이 현실을 집어삼켰다. 그는 가족이 모두 모이는 방에 불려온 청년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식탁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천장에는 천사가 매달려 있었고 그녀의 피가 와인잔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 이모들, 삼촌들, 그의 부모까지. 모두 그에게 손을 얹으며 이것은 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은 그것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기근은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갔고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어서는 안 됐다. 그것은 아주 합리적이었다.

그는 어지러웠다.

그의 머리가 다시 나무에 부딪히자 기억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이니스트라드는 우리의 것이란다, 소린," 그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나이든 것 같았고 어쩐지 피곤해 보였으며 그의 말과 입술의 움직임과 일치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합당해."

그의 주변을 둘러싼 세상이 휘청였다. 무언가가 그의 목을 갈랐고 피가 그의 쇄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두방망이질쳤다.

"넌 너무 오랫동안 네 괴로움과 편집증이 네 행동을 이끌게 두었다. 그것들이 너의 잠재력을 갉아먹었지. 이제 남은 것은 이 애처롭고 부서진 껍데기 뿐이로구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어린애 말이다."

기억이 여전히 현실을 흐릿하게 뒤덮고 있었다. 그의 뒤통수에 올려진 손. 그의 앞에 놓인 와인잔. 그는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은 강제로 마시게 했고 컵의 가장자리가 그의 잇몸에 날카롭게 닿았다.

끔찍하고 환희에 찬 피의 맛. 그의 몸 구석구석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의 일부가 될 더러운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이것을 원해 온 것처럼 행동할 터였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이것이 항상 계획의 일부였던 것처럼 행동할 터였다. 시간이 지나면 그를 인간과 혼동하는 일이 그에게는 모욕이 될 터였다.

필멸자라고 혼동하는 일이.

"마시고 영원한 삶을 얻어라."

그는 그날 추락했다. 그들 모두가 그러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몸 속에서 불꽃이 타오른 것이 구원의 은총이었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가 느낀 것은 정반대였다. 소린은 은총이나 종교를 한번도 믿었던 적이 없었다. 그가 직접 은총을 만들어낸 적이 있었기에 그에게는 낭만적인 관념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날 그들이 추락했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지금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게 이상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뜨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큰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서서 그를 혐오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린 마르코프는 계속해서 추락했다.


역사는 볼다렌 저택의 복도를 질주하는 아를린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를린의 역사는 아니었다. 이곳에는 아바브룩의 흔적도, 거친 연철도, 아바신의 상징도, 나무보다 오래된 이야기를 가진 이웃도 없었다. 이곳에는 황금 샹들리에와 볼다렌 가문의 문장이 있었고 이곳의 모든 것은 나무보다 오래된 것들이었다. 사람들마저도.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녀가 올리비아를 뒤쫓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피에 너무 취해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 밀을 가르듯이 그들을 쉽게 밀어냈다. 싸움을 걸어 오는 경비병들이 있었지만 아를린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들의 검과 화살이 계속해서 그녀를 향해 날아왔고, 그녀는 계속해서 이리저리 피했으며, 가까이 다가온 자들은 어깨로 밀쳐냈다. 아무리 흡혈귀라고 해도 균형을 잃으면 쓰러졌다. 그녀는 그들을 영원히 눕혀 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눕혀 두면 됐다. 그녀의 뒤에 있는 심령들이 일을 마무리해 줄 터였다.

하지만 다른 눈들도 있었다.

회랑 아래쪽에 있는 올리비아의 시선이 그녀에게 따라오라는 듯이 도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상화들이 있었다.

이곳에는 초상화가 수없이 많았다. 이 길게 뻗은 복도에만 수십 개가 있었고 어쩌면 저택 전체로는 수백 개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를린은 굳이 그것들을 세지 않았다. 그들은 난감할 정도로 멋진 옷을 입은 채 무릎에 노예들을 올려두고, 입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초상화 속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자들은 그녀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자들로부터 빼앗는 것을 의미했다. 흡혈귀에게 있어 그것이야말로 힘이었다: 가장 높은 지위에서 가장 많은 것을 빼앗는 것이.

아를린이 살고 싶은 세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죽음으로부터 자라난 이 장소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서 올리비아를 따라잡았을 때, 그녀는 문득 이 복도에 그녀 말고는 살아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병사들도. 다른 플레인즈워커들도. 심지어 그녀의 늑대들조차도.

아를린의 심장은 전쟁의 북소리처럼, 전투의 외침처럼, 죽음에 대한 격렬한 저항처럼 두근댔다. 올리비아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 입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을 먹어치웠고, 아를린은 더 이상 어떤 말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인간의 고함 소리를 외치며 공격했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올리비아가 입은 가운의 고운 천과 그 안에 그녀의 살점을 찢어냈다. 피의 향기가 아를린을 더 야성적으로 만들며 그녀의 이빨이 송곳니로 자라나려고 시큰거렸으나 그녀는 아직 자제력을 잃을 수 없었다.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 올리비아가 조롱했다. "네가 뭐 때문에 온 거지?"

물론 그 질문에는 답이 있었다. 올리비아가 열쇠를 훔쳐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지금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거칠게 공격하면서 올리비아를 밀어붙였다. 올리비아는 그녀의 옷자락 어딘가에 열쇠를 숨겼고, 아를린은 그것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들의 시조는 그녀의 도둑질에 대한 대가를 치를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흡혈귀들은 스스로 대가를 치르는 법이 거의 없으니. 아를린은 무심코 지나쳤기 때문에 복도의 부자연스러운 건축물을 고려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복도는 막다른 골목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이곳에는 여러 방어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기들도.

올리비아가 집어든 보석이 박혀 있는 황금색 검 같은 것이.

아를린은 휘두른 팔을 제때에 거둬들이지 못했고, 신이 난 올리비아는 그 공격을 맞받아쳤다. 강철이 아를린의 손가락들을 파고들었다. 싸움의 흥분감이 주요 감각들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무디게 해 준 덕에 예상했던 것보다 덜 아팠지만 자신의 뼈가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모습은 그녀의 공격을 늦추기에 충분했다.

"열쇠를 우리에게 줘," 아를린이 말했다.

"우리라고?" 올리비아가 말했다. "오, 참 불쌍한 강아지로구나." 한 바퀴 도는 동작이 앞으로 달려드는 공격을 위장해 주었고, 아를린은 그 공격을 팔로 방어하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올리비아는 사악하게 즐거워하며 칼끝을 아를린의 가슴 속에 밀어넣었다. 차디찬 금속이 아를린의 쇄골을 긁었고 올리비아는 한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기서 넌 혼자란다."

아를린은 무시할 수 없이 커지는 고통과 올리비아의 가증스러운 목소리 중 어느 쪽이 더 나쁜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야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녀의 안에 있는 늑대는 자유를 외쳤다. 아를린은 그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 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를린의 맑은 정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하기도 전에 올리비아는 악의로 가득한 기쁨에 차서 칼끝으로 그녀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를린은 무릎을 꿇었고 그녀의 상처는 카페트 위로 피를 한 웅큼 쏟아냈다. 초상화 속 흡혈귀들은 변함없는 흥미를 보이며 그들의 시조인 올리비아가 깔깔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인정할게, 나도 이해가 안 돼. 늑대들이 앞뒤 사정을 생각하는 걸로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너희는 무리를 짓는 동물이잖아, 안 그래?" 올리비아가 말했다. 그런 뒤 그녀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뭐, 대부분은 말이야."

과장된 몸동작이 한번 더 날아왔다. 아를린은 충격에 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리비아는 도중에 쏜살같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를린이 이번에는 몸을 숙여 공격을 피했다. 그것은 올리비아가 균형을 잃기에 충분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아를린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올리비아의 손톱이 아를린의 창자에 박혔다.

숨쉬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알겠지만, 이게 최선이야," 올리비아가 말했다. "너희 부류에게 있어서도 말이야. 인간은 재미있는 장난감이지만,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너를 이해했던 적이 있어?"

아를린은 올리비아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그녀의 목구멍에 피가 차올랐고 그것을 모두 올리비아의 가운 위에 뱉어냈다. "아마도 당신이 그들을. . .이해하려고 해야 할 것 같네."

올리비아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느끼는 모든 고통이 가치있게 여겨졌다. 그녀는 역겹다는 듯이 아를린을 뒤로 밀쳐냈다. "난 음식들을 친구로 사귀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자. 부탁할게. 용감하게 버티고 싶다면, 제대로 하라고. 넌 네가 무엇인지 알잖아, 안 그래?"

아를린 코르드, 대장장이와 제빵사의 딸.

생각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넌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어."

열쇠를 되찾기 위해서. 이니스트라드에 낮을 되돌려놓기 위해서.

수확철 대학살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올리비아는 칼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녀는 그 손가락을 핥은 뒤 얼굴을 찡그렸다. "넌 맛이 끔찍하구나. 그럼. 계속 할 작정이라면, 속박에서 벗어나는 게 어때, 강아지 양?" 모습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녀의 말이 옳았다. 아를린은 그 말이 싫었지만, 그녀는 맞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자제력을 잃기 위한 마지막 분노의 한 조각이었다.

감각들이 날카로워졌다. 몸집이 커지면서 힘이 되돌아왔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힘이었다.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숲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소나무 냄새를 맡았고 피를 맛보았다. 그녀가 제정신일 때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 길을 잃은 사냥꾼의 외침처럼 들려왔다: 이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야. 하지만 숲속에는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은달빛 열쇠만이, 올리비아만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얼굴들만이 남아 있었다.

Sure Strike
Sure Strike | Art by: Lie Setiawan

순수한 본능이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는 달려들었고, 올리비아는 빙글 돌아 공격을 피했다. 황금빛이 번쩍였고 칼날이 다시 날아들었다. 아를린은 그것을 맨손으로 붙잡아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올리비아를 그녀의 동상에 집어던졌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열쇠는 그녀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되찾자. 이 모든 것을 끝내자.

하지만 그곳에는 얼굴들이, 그 끔찍한 얼굴들이 있었다.

아를린은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드는지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동물적인 분노였으리라. 아니면 짐승만이 방출할 수 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분노였으리라.

아주 잠깐 동안 그녀의 관심이 그림들로 옮겨갔다. 그녀는 그들의 우쭐한 얼굴에 깊은 고랑을 내며 캔버스를 찢었고, 그들을 쳐다보며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결국 그들은 너무 많았고 그녀는 이곳에 혼자 있었다.

올리비아가 그녀의 뒤를 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흡혈귀가 힘을 주어 단단하게 만든 손이 완벽한 말뚝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아를린의 목에서 애처롭게 낑낑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