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카펜나의 거리

"어떻게 생각해요?" 엘스페스는 정보원을 미행할 때 이용했던 난간에 걸터앉은 채로 동료들에게 물었다. 잰더와 치렀던 시험이 벌써 몇 주 전 일어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어찌된 일인지 그 일들은 어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도시의 장소들 중에서 가장 조용한 지역이긴 해," 비비안이 인정했다.

"지아다는?"

그 소녀는 굉장히 피곤해 보였기에 엘스페스는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에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넌 지아다를 돌봐줘. 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 올 테니까," 비비안이 제안했다.

"고마워요." 엘스페스는 건물 옆쪽을 가리켰다. "너구리들이 바로 옆 골목에 있었어요. 주의해요."

비비안은 난간에서 뛰어내려 짙은 밤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엘스페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작 하나하나가 확실하고 신중했다. 뉴 카펜나는 그녀에게도 처음이었지만 그녀는 뽐내거나 자만하지 않으면서 이 도시의 유리와 콘크리트들에 익숙한 것처럼 걸어다녔다. 그녀와 엘스페스는 거의 비슷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음에도 그녀가 엘스페스보다 더 매끄럽게 이 도시에 적응했다. 이곳은 엘스페스의 고향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엘스페스." 지아다가 침묵을 깼고, 엘스페스는 개인적인 혼란과 의심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응?" 지아다가 곧바로 말을 하지 않자 엘스페스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아다는 난간 바깥으로 몸을 내민 채로 턱밑에 손을 포개고 아랫입술을 이빨로 깨물고 있었다. 엘스페스도 전에 그런 불확실성을 느낀 적이 있었기에 그녀는 위로를 해 주려는 마음으로 십대의 어깨 위에 그녀의 두 손을 살짝 올려놓았다. 지아다는 계속해서 뉴 카펜나의 흐릿한 스카이라인 너머를 응시했다.

"전 무서워요."

"어떤 게 무섭니?" 엘스페스는 지아다가 무서워할 만한 수천 가지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것이 그 소녀의 작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지를 듣고 싶었다.

"저로 충분하지 않으면 어쩌죠?"

"뭐에 충분해야 하는데?" 엘스페스가 부드럽게 되물었다.

"제가 뉴 카펜나를 도울 수 없으면요? 정말 내 마법으로 충분할까요? 만일—언젠가 그게 다 없어지고 나면 그땐 어쩌죠?" 지아다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더 줘야 할 지도 모르겠고 노력한다고 그게 달라질 지도 모르겠어요. 이 도시는 너무. . .망가져 있어요."

단어들이 봇물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나왔다. 마치 지아다 안의 어딘가에서 둑이 무너져내려 내부에서 서서히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던 이 질문들이 이제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운 순간을 찾은 것처럼. 엘스페스는 동료의 가슴 아픈 의문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각각의 질문은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상호간의 경험 중 하나를 엘스페스가 지아다에게서 보았지만 지금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짙은 두려움의 그림자로 채색했다.

지아다에게는 선택권도 아무런 공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그녀의 어깨 위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올려놓아져 있었다. 카바레티도, 패밀리들도, 호적수도, 모두가 그녀를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도구로만 보았다. 그들은 줄어들고 있는 헤일로 공급에 대한 값싼 해결책으로 그녀의 혈관을 흐르는 피와 뼈 속의 골수가 영혼 속의 마법이 없어질 때까지 그녀를 쥐어짤 터였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행복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을 터였다.

엘스페스는 지아다를 위해 더 많은 일들을 더 일찍 했어야만 했다.

지아다는 답을 찾는 표정으로 엘스페스를 바라보았지만 엘스페스는 자신이 그 답을 알려줄 수 있을 지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여태껏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자니 또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찾아 그를 찾아갔을 때마다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가 궁금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 전 자신의 친구를 원망했던 것만큼 지아다 또한 자신의 답을 듣고 자신을 원망할 지가 궁금했다.

"네 말이 맞아," 엘스페스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뉴 카펜나는 망가져 있고, 헤일로는 이 도시의 상처에 붙인 조잡한 반창고일 뿐이야." 진정한 평화, 진정한 번영은 내부로부터 와야 했다. 말 그대로 이 도시를 건설한 악마들과 여전히 이 거리를 떠돌고 있는 비유적인 악마들을 처리함으로써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전 여전히 돕고 싶어요. 제겐 목적이 필요해요."

"성취. . .목적. . ." 엘스페스는 부드럽게 말을 꺼냈고 그녀 또한 이 주제에 대해 몇 달 동안 생각해 왔기에 자신만의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녀의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공허한 느낌은 한때 그랬던 것만큼 더욱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네 안으로부터 나와야만 해. 내가 줄 수는 없어, 아무도 그렇게는 못 하지."

지아다는 낙심한 듯이 턱을 뒤로 젖히고 얼굴을 찡그렸다. 엘스페스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문질렀다.

"하지만 이건 말해 둘게, 지아다. 그 답을 직접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거야. 네가 네 목적을 찾게 될 거야." 나처럼 말이지. "그리고 나는 네가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 네 안전을 지켜 줄 거야. 거기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말이야."

"약속할 수 있어요?" 지아다는 희망에 찬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맹세할게."

그들의 대화는 비비안의 귀환으로 중단되었다. 그녀는 엘스페스와 지아다가 몸을 기대고 있던 난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충분히 버려진 곳인 것 같아. 안에는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없어."

"좋아요." 엘스페스는 일어섰다. "그러면 오늘 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숨을 돌리죠."

창고

엘스페스는 어깨에 무게가 실리는 것을 느끼면서 깨어났다. 위쪽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새벽의 흐릿한 불빛이 엘스페스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지아다의 얼굴에 따스한 빛을 비췄다. 그들 셋은 창고 뒤쪽의 근처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출입구가 하나뿐이었기에 쉽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창문 반대편 벽에 달려 창고 바닥이 내려다보이는 거울은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움직여야 해.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비비안이 엘스페스에게는 들리지 않은 소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속삭였다. 그녀는 그들의 맞은편에 있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아마도 너구리들일 거에요. 조금만 더 이 아이에게 시간을 주죠." 엘스페스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아다가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전의 모든 대화에서 지아다는 어젯밤이 되기 전까지는 엘스페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혼란에 시달려 왔다.

지아다의 과거는 어땠을까? 언제나 카바레티에게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을까? 그녀가 어떻게 헤일로를 만들 수 있는 힘을 발견했을까?

그 모든 질문에 엘스페스는 그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아다는 이미 수많은 요구를 받아 왔고, 엘스페스가 그녀에게 또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었다. 엘스페스는 자신에게 가능한 한 서약을 지키면서 그녀를 보호할 작정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금속 소리가 날카롭게 드르륵거리며 울려퍼졌다. 지아다가 벌떡 일어났고 엘스페스의 손은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입을 막았다. 엘스페스의 다른 한 팔은 지아다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그 소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조용히 있으렴," 엘스페스가 나지막이 말하면서 거울을 쳐다보며 움직임을 살폈다.

비비안은 무릎을 꿇고 활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리며 창문이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그들 주변으로 쏟아져내렸다.

지니가 문가에 서 있었다.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카바레티 집행관 두 명이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거울 속에서 엘스페스는 검을 빼들고 있는 세 명을 더 볼 수 있었다.

비비안이 화살을 뽑기도 전에, 지니가 비비안에게 단검을 던졌다. 비비안은 팔을 들어 단검을 막았고, 단검은 그녀의 팔뚝에 깊은 상처를 냈다. 남자들 중 한 명이 지니 뒤에서 돌아나와 부상을 입은 비비안의 팔에서 활을 쳐낸 뒤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거 없이는 그렇게 터프하게 굴지 못하겠지, 안 그래?"

비비안의 눈이 활이 없어도 그녀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겠다는 듯이 도발적으로 빛났다. 그녀는 천천히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보게 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약속하는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

"정말로 우리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 그렇지?" 지니가 성큼성큼 걸어와 손에 있는 나이프를 엘스페스의 턱 밑에 가져다 댔다. 지니가 그들을 어떻게 찾은 것인가? 창고는 버려져 있었고, 도시는 거대했다. 지니가 그들을 추적할 수 있게 해 준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생각해 보면, 난 널 믿었어."

지니가 엘스페스를 바라보는 매서운 시선이 칼날보다도 더 차갑게 엘스페스에게 내려앉았다. 그녀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지니에게 있어서 그녀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려던 건—"

"거짓말 따윈 넣어 둬," 지니가 쏘아붙였다. "넌 호적수와 한패야?" 그녀의 칼 끝이 엘스페스의 목을 아주 조금 파고들었다.

"절대로 아니에요."

지니는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았다. 마침내 엘스페스의 말을 믿으면서 그녀는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난 지아다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었어요."

"거짓말. 넌 세례반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거야." 지니는 나이프를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만 더 가면 엘스페스의 목에 있는 혈관에 닿을 터였다. 엘스페스는 침을 삼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니, 반역자를 어떻게 처리할 지는 제트미어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니었어요?" 지아다가 말했다. 상처와 혼란이 지니의 표정 위로 스쳐지나갔다. 엘스페스는 지아다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아다는 그녀가 엘스페스를 변호한다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지아다가 구사하고 있는 교묘한 언어는 카바레티에서 배운 것임이 틀림없었다. "저 둘을 어떻게 할지는 그가 결정하게 해요. 그는 항상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뻐요. 구해 줘서 고마워요."

지니가 손에서 힘을 빼자 엘스페스의 목을 누르고 있던 나이프가 뒤로 물러났다. "나도 반가워. 난 우리가 영원히 세례반을 잃어버린 줄 알았어."

"전 바로 여기에 있어요." 지아다는 약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지니는 분노를 밖으로 내뱉었고 머리가 냉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엘스페스를 되돌아봤을 때에는 전과 똑같은 증오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구속해. 제트미어에게 다시 데리고 간다."

"반톨리오네로 돌아가는 건가요?" 지아다가 일어섰다.

"아니, 그곳은 이미 위험해졌어. 친구에게 갈 거야," 지니가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어떤 패밀리도 호적수가 뉴 카펜나를 차지하게 그냥 둘 생각은 없어. 그리고 이제 세례반을 다시 확보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는 협상 카드를 가지고 있는 거지."

세례반. 협상 카드. . .그녀에겐 이름이 있어, 엘스페스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 모두 이 사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지니의 상냥한 말투는 엘스페스와 비비안에게 거칠게 수갑을 채우는 남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엘스페스는 손목이 고정되는 것과 동시에 손목이 마법으로 그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비안은 엘스페스의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항의하는 말 없이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자신의 검을 줍는 카바레티 남성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지아다의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면 그땐 네가 이 차원에 균형을 가져다줄 수 있지," 지니가 말을 끝맺었다.

지아다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고 지아다가 엘스페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네게 한 맹세를 지킬 거야, 엘스페스는 조용히 맹세했다. 그녀는 지아다가 이해했기를 바랬다. 하지만 지니가 그들을 창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동안 지아다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기색도 읽을 수 없었다.

점쟁이

엘스페스와 비비안은 메지오를 통과하며 호송되는 동안 경계하는 시선을 교환했다. 엘스페스는 카바레티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동안에는 아무 말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이 "안전한 장소"에 도착하고 난 뒤에 비비안과 다시 모일 조용한 순간을 찾을 작정이었다.

백단향과 오렌지의 향기가 엘스페스의 코를 간지럽혔다.

"지니," 엘스페스가 소리치면서 걸음을 멈췄다.

"계속 움직여." 카바레티 중 한 명이 그녀를 밀쳤다. 엘스페스는 비틀거리면서 평소보다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가 지니와의 간격을 좁히려는 것을 숨겼다.

"이곳은 옵스큐라의 은신처에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지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 친구들이 누구라고 생각하지?"

엘스페스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크레센도에 있었잖아요. 마에스트로스, 카바레티, 리베티어즈, 모든 패밀리가 침투되어 있었어요. 이건 함정일 수도 있어요."

"너와는 다르게 정말로 충성스러운 사람도 있다고." 지니는 문 앞에 멈춰서서 노크를 했다. 그것은 엘스페스가 잰더의 소포를 배달할 때 사용한 방식과 동일한 것이었다.

엘스페스는 뒤로 물러서서 비비안 옆에 선 다음 그녀를 쳐다보았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요," 엘스페스가 중얼거렸다. 비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스페스는 충성스러운 추종자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관련해 지니의 능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엘스페스가 열렬한 아첨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니가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면서 금으로 장식된 남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세팔리드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의 옷과 모자는 엘스페스가 소포를 배달했던 옵스큐라가 착용하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엘스페스의 뒷목에 있는 털이 곤두섰다.

"카미즈," 지니가 안도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제트미어는 어때?"

Art by: Chris Rallis

"약해져 있긴 하지만 안정을 취하고 있어. 세례반을 확보했구나. 멋져, 너라면 그럴 줄 알고 있었지. 누가 보기 전에 안으로 들어와."

"몸을 숨길 곳를 제공해 줘서 고마워." 지니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저들은 누구지?" 카미즈가 엘스페스와 비비안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배신자들이야, 세례반을 데려갔던 자들이지. 제트미어가 저들에 대한 처분을 결정할 거야."

그들은 책상과 의자 몇 개가 있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커튼 뒤에는 남색 비단 천으로 덮여 있는 정사각형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중앙에는 커다란 수정구와 카드 뭉치 한 개가 놓여있었다. 카미즈가 커튼을 한쪽으로 걷어내자 더 큰 뒷방으로 통하는 비밀문이 드러났다. 귀중한 비밀들이 들어 있는 상자들과 책장들로 미루어 보아 그곳은 옵스큐라 스파이들의 휴식처였다.

"성공했구나." 제트미어는 아래쪽 침대에 누워 있었고 카바레티 치유사가 그를 돌보고 있었다. 지니가 달려오자 그 여성은 옆으로 비켜섰다.

"아버지, 기분은 어때요?"

"넌 걱정이 너무 많아."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방 건너편에서조차 엘스페스는 제트미어의 눈에 생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기에는 짙은 피 냄새가 서려 있었고 그의 머리맡에는 피가 흥건한 천이 버려져 있었다. 그가 살아나려면 기적이 필요할 터였다.

"지아다, 어서, 이리 와." 지니는 젊은 여성에게 손을 흔들면서 보급품이 든 가방을 뒤적여 작은 병을 꺼냈다. "부탁해, 그를 낫게 해 줘."

지아다는 유리병을 받아들고 떨리는 눈을 감았다. 작은 빛이 반짝인 뒤 지아다는 비틀거리면서 지니에게 헤일로를 내밀었다. 그 병은 반대쪽 손으로 건네지지 못했다.

그들이 들어간 문과 뒷문이 동시에 쾅 하고 열리면서 앞치마를 두르고 중노동자 복장을 한 싸움꾼들 한 무리가 들이닥쳤다. 혼란이 퍼져나갔다.

"리베티어즈라고?" 몸을 돌리는 지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순수한 증오로 가득 찼다. "리베티어즈의 배신자들이로군."

비비안은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녀는 양 손으로 주먹을 쥔 뒤 자신의 활을 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마치 공성추처럼 팔을 쭉 뻗어 몸을 날렸고 주먹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그녀의 활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수갑을 찬 채였기에 활을 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활로 다른 카바레티 사람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엘스페스는 자신의 두 손에 힘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그녀의 족쇄를 둘러싼 공기가 희미하게 빛났다. 이내 그녀의 마법이 자물쇠를 부쉈고 그 금속은 바닥에 떨어지며 쨍그랑 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손을 휘둘러 비비안 쪽으로 주문을 시전했고 그녀의 동료의 족쇄 또한 떨어져나갔다.

"그런 기술은 어디에 숨겨 두고 있던 거지?" 비비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쓰러진 남자에게서 엘스페스의 검을 주워 그녀에게 던졌다.

엘스페스는 칼집 부분을 잡아 검을 낚아챘다 "기술들은 정말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눈에 띄지 않게 아껴 두려고 했죠. 지금이 그 때인 것 같구요."

"드디어 싸움에 제대로 참여하게 된 게 기쁘네." 비비안은 활을 다른 손으로 옮겨잡은 뒤, 화살통에 있는 화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아다를 데려와, 나는 길을 틀 테니까."

"고마워요." 엘스페스는 앞으로 달려나갔고 그녀가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녹색 빛이 번쩍였다.

지아다는 지니와 제트미어와 함께 궁지에 몰려 있었다. 지니가 잘 싸워 주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에스트로스의 암살자들과 리베티어즈의 싸움꾼들에 비해 수적으로 매우 열세에 처해 있었다.

이 괴한들은 지아다를 죽이려는 것인가? 그들도 자신들을 위해 세례반을 원하지 않았던가?

엘스페스는 그 답을 알아내기 위해 마냥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오른쪽으로 달려가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올리고 있는 리베티어즈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칼날이 그의 어깨에 닿았고 그는 공격을 하지 못하고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주변에서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 그를 무장해제시켰다. 그녀는 신발 끝으로 그의 단검을 낚아챈 뒤 위로 차올린 다음, 칼자루를 잡아 또다른 공격을 튕겨냈다. 엘스페스는 세 번째 남자가 그녀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을 피하면서 그녀의 팔꿈치로 그의 복부를 가격한 다음 몸을 뒤로 젖히며 첫 번째 공격자의 갈비뼈 사이에 칼날을 밀어넣었다.

그 싸움은 좁은 밀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엘스페스는 움직일 때마다 다른 여러 명의 행동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아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엘스페스는 자신이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지아다를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녀는 적과 아군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엘스페스가 실수를 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녀는 몸을 숙여 어떤 남자가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피한 뒤, 무거운 칼을 휘두를 수 있을 만큼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망치를 보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엘스페스가 검을 들어올리려고 애쓰는 것과 동시에 망치가 그녀의 갈비뼈에 적중했고, 엘스페스는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엘스페스는 피를 토했고 단검이 그녀의 어깨에 꽂혔다. 지아다의 비명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그녀는 이 차가움을 알고 있었다. 차갑고 뼈만 앙상한 에레보스의 손가락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그녀의 목에 감은 뒤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녀의 목을 조를 터였다.

지아다, 미안해. 난 널 보호하려고 했어.

그녀의 시야가 흐려지려는 것과 동시에 엘스페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고 몸을 뒤로 젖히던 남자가 맥없이 쓰러졌다. 비비안이 입고 있던 실용적인 코트의 짙은 녹색이 작업복이 있던 자리를 대신 채웠다. 전투 소리가 사그라들면서 새로운 형체가 나타났다.

한 팔이 엘스페스의 어깨를 감싸안아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낯익은 검은 눈동자가 걱정스러운 듯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아다?" 엘스페스는 눈을 깜빡이면서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p>"이걸 마셔요." 지아다는 엘스페스의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었고 그녀는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따스함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며 서로 엮여졌고 상처들이 아물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산산조각난 몸을 다시 이어붙이고 천천히 의식과 명료함을 되찾게 해 주면서 에레보스의 손아귀를 떨쳐냈다. 세상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빛은 더 환하게 느껴졌고—

"지아다. . ." 엘스페스는 젊은 여성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넌 눈부시구나."

지아다는 놀라서 입을 살짝 벌렸다. "당신에게도 보여요?" 그녀가 속삭였다.

"나는—" 엘스페스는 "그것"이 지아다를 둘러싸고 있는 희미한 오라인지를 물어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쪽이야!" 카미즈가 소리쳤다.

지니가 지아다의 팔을 붙잡아 그녀를 들어올렸다. "저들을 돕고 있을 틈 없어, 도망쳐야 해."

"기다리세요." 엘스페스는 몸을 일으켜세웠고 이제는 그녀의 혈관 속에서 흐르는 헤일로가 그녀를 다시 한 번 민첩하고 강인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도 같이 갈 거에요."

"네가—" 지니는 분노를 쏟아내려다가 공격을 피하면서 말을 멈췄다. 그녀는 큰 소리로 욕을 하면서 엘스페스와 쓰러진 카바레티 병사들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좋아. 널 쓰레기장에 처박아 두는 게 아깝긴 하지. 잘 따라오고 수상한 짓은 하지 마."

그들은 카미즈를 앞장세워 뒷골목으로 도망쳤고 리베티어즈와 마에스트로스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엘스페스와 비비안이 후방을 맡아 공격자들을 물리쳤다. 결국에는 더이상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따돌린 것 같네." 지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이 안이야." 카미즈가 문을 열었고 그들은 모두 거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건 옵스큐라의 터널들 중 하나야," 그녀는 뉴 카펜나 안에서 굽이치고 있는 동굴 속을 터덜터덜 걸어 올라가고 있는 그들에게 설명했다. "우리가 눈에 띄지 않고 돌아다니는 데에 사용하지."

"이곳이 발각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지?" 비비안이 엘스페스가 하려던 질문을 훔쳤다.

"알 수 없어," 카미즈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게 우리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이유지."

"어딜 향해서 가고 있는 거야?" 지니가 물었다.

"파크 하이츠. 옵스큐라의 주요 거점인 구름 첨탑으로 가는 중이야. 거기가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안전할 수 없을 걸."

Art by: Sam White

파크 하이츠 대성당

엘스페스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면서 지아다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구해 줘서 고마워, 엘스페스는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고 지아다가 벽 위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띠가 발산하고 있는 푸른 빛을 통해 그것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랬다. 지아다는 지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스페스의 손가락이 그녀에게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고 지아다의 시선은 자신의 손에 남아 있었다.

지아다는 자신의 손목에서 천천히 팔찌를 꺼내 지니와 엘스페스를 번갈아 힐끗 쳐다보았다. 지니가 앞쪽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팔찌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두 단어를 말했다, 추적 주문이에요.

엘스페스는 신발로 팔찌를 밟아 부숴 버렸다. 지아다 또한 지니가 어떻게 자신들을 찾았는지에 대해 엘스페스가 고민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엘스페스는 자부심이 들었다. 지아다는 영리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강해지며 더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팔찌를 제거한 행동은 지아다가 엘스페스와 여전히 함께 가고자 한다는 것에 대해 엘스페스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엘스페스는 그녀를 다시 탈출시킬 작정이었다.

통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카미즈가 문을 열어제끼자 파크 하이츠의 익숙한 흙 냄새가 그들을 반겼다. 엘스페스는 오후의 눈부신 빛에 눈을 깜빡였다.

"얼마 안 남았어," 카미즈가 조심스럽게 다듬은 생울타리를 지나가면서 말했다. "바로 이 근처야."

비비안이 갑자기 멈춰섰다. 엘스페스도 발자국 소리와 무기가 철컹대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만요, 이건 함저—"

지아다와 지니는 이미 울타리의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지니가 소리쳤다.

비비안은 활을 꺼내든 뒤 그들의 뒤에서 모여들고 있던 옵스큐라 집행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엘스페스는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그녀가 자신의 등 뒤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공터에는 더 많은 옵스큐라 집행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니는 이미 그들과 교전하고 있었고 부상을 당한 카미즈는 지니의 발 아래에서 기어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지니는 카미즈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자신의 분노를 그녀에게 돌린 것이 틀림없었다.

전부 함정이었디. 옵스큐라 또한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침투당해 있었다. 은신처에서의 싸움은 그들을 다른 카바레티와 분리한 뒤에 함정으로 유인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엘스페스와 비비안이 여전히 주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가자." 엘스페스가 지아다를 붙잡았다.

"하지만 지니는—"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한 거야." 엘스페스는 말 그대로 지아다를 들어올렸다. "떠나지 않으면 죽게 돼."

지아다는 그녀의 말에 따랐다.

비비안은 뒤에서 쫓아오면서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공원을 질주했고, 이리저리 뻗어나와 있는 나뭇가지들이 그들의 얼굴과 팔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이 도시에 단 한 곳이라도 안전한 피난처가 있기를, 엘스페스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신들에게 조용히 간청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길은 천사상 아래에 매달려 있는 성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들어가자." 엘스페스는 결심한 뒤에 대기실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신도석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소리가 메아리치는 것과 함께 점점 느려졌다.

대성당은 걸작품이었다. 수많은 천사 조각상들이 익랑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늘어서 있었다. 각각의 조각상은 손을 위로 들어올려 성당이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를 가르는 햇빛 기둥들이 자신들을 비추고 있는 채광창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엘스페스는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이 조각상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지아다와 같이 엄청나게 눈부셨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응시했다. 어떻게 여태껏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다른 것들보다는 어두웠지만. . .엘스페스 또한 희미한 황금빛 안개를 내뿜고 있었다.

"들려요?" 지아다가 속삭였다.

"들려."

그 합창은 모든 조각상의 안쪽으로부터 사방으로 울려퍼지면서 성당 전체를 엄숙한 진혼곡으로 가득 채웠다. 어떠한 가사는 없었고 소리만이 있었다. 그 노래에서 느껴지는 너무나도 깊은 혼란과 고통이 엘스페스의 눈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높은 소프라노 소리가 나머지 음색들 위로 치솟으면서 그들 모두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무모한 희망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따스함과 선량함이었다. 그것은 만족스러웠지만 그리운 것이었다. 그것은. . .

"저게 뭐지?" 엘스페스가 속삭였다.

"내 가족이에요. 여기가 내 고향이에요," 지아다는 예상치 못한 명확함에 놀란 듯이 경건하게 말했다.

갑자기, "고향"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엘스페스는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지아다와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녀는 대성당의 천사들과 똑같이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온 조각처럼 그녀의 모습 그대로가 이곳에 있어 마땅한 것 같았다.

"고향이라," 엘스페스가 되뇌었다. 고향은 목적이었고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켜 주는 것이었다. 아자니가 옳았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엘스페스는 자신이 소속된 장소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목적을, 자신이 믿고 지켜 줄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찾은 것이었다.

낮은 굉음이 대성당을 가득 메우면서 노래를 중단시켰고 그 뒤를 따라 우레와 같은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엘스페스가 몸을 돌리자 거기엔 뿔이 나 있는 거대한 남자가 있었다. 핏빛을 띤 얇은 막으로 된 날개 두 개가 그의 등 뒤에 펼쳐져 있었다.

호적수였다.

"내 뒤에 있어, 지아다." 엘스페스는 검을 뽑아들었다.

"정말로 내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직접 나타나 줘서 고맙군, 오브 닉실리스." 비비안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첫 번째 화살을 날려보냈다.

오브 닉실리스는 주먹으로 유령 늑대의 얼굴을 곧장 찍어눌렀고 캑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더 많은 집행관들이 그의 뒤에서 나타나자 비비안은 새로운 화살 두 개를 더 쏘아냈다.

"저자를 맡아 줘,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그리고 조심해, 저자는 우리와 같아!" 비비안이 소리쳤다. 플레인즈워커야, 라고 한 것이 분명했다. 엘스페스는 검을 더 꽉 쥐었다.

"도망쳐라," 비비안이 지나가자 오브 닉실리스가 으르렁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사포와 불길이 맞닿은 것 같았다. "내가 널 괴롭혀 줄 준비가 될 때까지 내 요원들과 놀고 있어라."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오로지 엘스페스와 지아다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불타오르고 있다는 듯한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 내 능력을 방해하려고 감히 맞서려고 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보여 주마. 세례반이 내 손에 들어오고 나면 너희 둘 모두 끝장을 내 주마. 한 번에 한 명씩, 천천히."

엘스페스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지아다, 일이 잘못되면 도망쳐. 내가 쓰러지기 전에 그렇게 해," 엘스페스가 속삭였다. "가능한 한 오래 붙잡아 두겠지만 그의 주의를 산만하게 해 둘 수 있는 동안 도망쳐야 해."

오브 닉실리스는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엘스페스는 그의 울퉁불퉁한 근육이 속도를 늦춰 줄 것이라고 잘못 판단했지만 그는 날개를 사용해 균형을 잡음으로써 놀라운 속도로 나아갔다.

"널 파괴하는 일을 즐기도록 하지!"

엘스페스는 방어적인 공격에 집중했다. 우선 그를 지치게 만들어야 했다. 그는 힘과 속도에서 그녀보다 우위에 있었기에 그녀의 유일한 기회는 그가 자신을 상대로 그것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빈틈이 보일 때마다 가벼운 공격을 날리거나 칼로 베었다. 그녀의 공격은 그다지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걸리적거리고 짜증이 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느리게 만들거나 멈추게 하기에는 모자랐다. 그 칼은 그녀가 휘두르기에는 너무 크고 제멋대로였기에 적절한 빈틈이 생겨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그녀의 시도에 인내심이 바닥나면서 오브 닉실리스는 자신의 폭발적인 힘을 분출했다. 그 힘은 오브 닉실리스에게서 쏘아져 나와 엘스페스를 뒤로 날려보냈다. 그녀의 머리가 돌에 부딪혔고 모든 것이 빙빙 돌았다. 그녀의 뱃속에서는 구역질이 밀려올라왔다.

"지아다," 엘스페스가 쌕쌕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그 행동은 그녀의 시야에 더 많은 별들이 나타나게 했을 뿐이었다. "도망쳐."

"싫어요, 도망칠 곳도 없어요." 지아다는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의 모습은 전보다도 더 밝게 빛나면서 흐릿해지고 있었다.

오브 닉실리스의 우르릉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의 거친 웃음소리가 엘스페스의 뼛속에 사무쳤다. "가장 처음은 네놈이고 그다음은 세례반이다. 그런 뒤에는 다른 플레인즈워커지. . .그러고 나면 아무 것도 날 막을 수 없어."

"도망쳐," 엘스페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청했다. 그녀는 지아다를 보호하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녀는 의무와 목적을 발견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실패와 맞닥뜨렸을 뿐이었다.

"더이상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엘스페스. 저는 이제 가족과 함께 있을 거에요." 지아다는 엘스페스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이제 물질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반짝이는 마법의 윤곽에 더 가까웠다.

가족. . .그것은 한때 엘스페스가 아자니와 닥소스를 통해 알고 있었던 무언가였다. . .지아다의 말이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에 불을 붙였다. 그것은 그녀가 전에 본 자신을 뒤덮고 있던 희미한 빛과 같은 꺼질 듯이 흔들리는 희망의 촛불이었다. 오브 닉실리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지아다의 시선은 여전히 엘스페스만을 향하고 있었다. "전부 다 고마워요. 저는 답을 찾았어요. 이제는 제가 당신을 지켜줄게요." 턱을 치켜든 그녀의 모습은 다른 조각된 천사들과 똑같아 보였다. "준비됐어요," 그녀는 보이지 않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빛은 지아다의 몸에서 모든 방향으로 뿜어져 나왔고 그 폭발적인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 오브 닉실리스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엘스페스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녀는 경외가 담긴 눈빛으로 지아다가 빛나는 마법의 헤일로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엘스페스는 그것을 들이마셨고 그것이 그녀의 피부를 갑옷처럼 감쌌고 그녀의 뼈 속으로 스며들었다. 노래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모든 부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합창이 되어 있었다. 그 노래는 진정한 기쁨의 크레센도에 달했고 마치 감히 같은 이름을 내걸고 있던 카바레티의 축제에서 들었던 비명을 덮어쓰려는 것 같았다.

소용돌이치는 불빛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엘스페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오브 닉실리스는 여전히 땅바닥에 엎드린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비비안과 밖에 있는 남자들 또한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엘스페스는 지아다가 변신한 것이 뉴 카펜나에 있는 모두를 기절시킨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엘스페스, 희미해지는 합창 소리 속에서 지아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여 왔다. 그녀는 사라지고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지아다는 그녀처럼 빛나는 윤곽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걸 끝내고 뉴 카펜나를 지켜요. 당신에게는 필요한 무기가 있어요. 그건 계속 당신 곁에서 당신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당신을 따라다녔어요.

난 충분히 강하지 않아.

충분히 강해요, 지아다는 단언했다. 당신의 실패가 당신을 정하는게 아니에요. 지금 당신이 원하던 모든 것에 이렇게 가까워져 있는 때에 포기하면 안 돼요. 싸워요!

엘스페스는 지아다의 말 속에서 아자니를 보았다. 그녀의 친구는 여전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눈을 감으며 부드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향은 의무였다.

가족은 그녀가 지키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항상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엘스페스는 눈을 뜨고 일어섰다. 그녀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옆에 있던 검을 집어들었다. 그 무기는 더이상 투박한 브로드소드가 아니었고 길이와 무게가 그녀의 체격에 훨씬 알맞은 더 가느다란 무기로 변형되어 있었다. 칼자루는 실용적인 강철 보호대는 아니었지만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하는 헤일로의 구체가 달려 있었다.

헤일로가 검의 홈을 타고 올라가면서 칼날에 스며들었다. 중심부에서 부터 가장자리까지 그 무기는 지아다와 똑같은 희미한 빛을 발했다. 엘스페스는 칼자루를 코 높이까지 들어올리면서 칼날을 위로 치켜세웠다. 엘스페스는 지아다가 어떻게든 어디에선가 그 경례를 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서약을 지킬 것이니 그녀가 변신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랬다.

엘스페스는 뉴 카펜나를 지킬 작정이었다.

Art by: Volkan Baga

그녀는 새로운 검을 양손으로 휘두르면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오브 닉실리스는 옆으로 구르면서 그녀의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그는 몸을 피하면서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 그녀는 허공에 마법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지아다가 선물한 검과 헤일로와 목적에 힘입어 엘스페스는 강력한 호적수와 호각으로 맞설 수 있었다. 그녀의 공격들은 더 이상 어설프고 간지러운 것이 아니라 목적이 담겨 있고 능숙했다.

그녀는 예전의 자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건 예전의 그녀가 보였던 움직임이 아니었다. 더 강하고 더 나은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그녀가 앞으로 될 존재에 비하면 그녀가 지금까지 누구였는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오브 닉실리스는 그녀가 그에게 공격을 가할 때마다 점점 더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뒤로 몸을 피한 후, 한 번 더 공격하기 위해 손을 치켜올리려 했다. 하지만 엘스페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틈을 파고들어 그의 턱을 똑바로 찔렀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공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공격을 피할만큼 빠르지 못했다. 강철이 살과 맞닿았고 그녀는 그의 목덜미에 상처를 냈다. 오브 닉실리스는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지만 그것은 상처를 더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헛되이 핏줄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엘스페스는 다시 베어낼 작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일을 마무리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의 손가락도 같이 잘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브 닉실리스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대기가 흔들리면서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뒤틀렸다. 그것은 스스로 접혀들면서 오브 닉실리스의 형체를 지각의 영역 밖으로 밀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차원 이동을 해서 사라져 있었다.

엘스페스는 방금 전까지 오브 닉실리스가 서 있던 텅 빈 공간을 응시했다. 갖가지 욕설이 그녀의 입을 빠져나오려던 순간 신음 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비비안! 엘스페스는 입구로 돌아가 그녀의 친구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비비안은 머리를 문질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아다가 우리 모두를 구했어요. 하지만 오브 닉실리스는 도망쳤죠.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

에필로그 – 박물관

엘스페스와 비비안은 박물관의 계단을 올라갔다. 당연하게도 재는 이미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메인 홀의 대리석에는 아직도 구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에스트로스는 박물관을 제 모습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안헬로가 이제는 훨씬 더 규모가 작아진 패밀리의 젊은 구성원들에게 지시를 하다가 그녀 쪽으로 건너왔다.

"날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엘스페스는 허리띠에 꽃혀 있는 헤일로 검의 칼자루에 가볍게 손을 얹은 채로 물었다. 그녀는 싸우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잰더의 기록 보관소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들으러 와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

"그래. 크레센도 날 밤에 내 코트 안에 이게 꿰매져 있더라고. 이걸 읽자마자 바로 돌아왔지만, 이미 너무 늦어 있었지. . .그 덕분에 반톨리오네의 학살극을 피해 갈 수 있긴 했지만 말이야. 안헬로는 주머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편지에는 잰더의 봉인이 붙어 있었다. 엘스페스는 편지를 펼쳐 내용을 읽었다.

안헬로,

수 년 동안 헌신적으로 일해 준 것에 감사하네. 자네는 훌륭한 암살자인 것 만큼이나 훌륭한 인물이기도 하지. 하지만 친구여, 이제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쉽군.

마에스트로스를 자네 손에 맡기려 하네. 나는 이 긴 밤이 지나고 나면 자네가 마에스트로스를 새로운 시대로 데려가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네. 내가 여러 해 동안 모아 온 모든 것들이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걸세. 우리 패밀리는 자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나가게나. 오래 전부터 젊은 지도자의 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으니 말이야.

마지막으로 그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엘스페스가 이 밤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녀가 내 기록 보관소를 찾아서 마에스트로스를 방문할 걸세. 그녀가 접근할 수 있게 해 주고 질문은 너무 많이 하지 말도록 하게.

마지막으로,

잘 부탁하네,

잰더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네요." 엘스페스는 편지를 두 번 더 훑어본 뒤에 안헬로에게 그것을 돌려주었다.

"잰더는 종종 뉴 카펜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 중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알고 있었지." 안헬로는 허리에 뒷짐을 지었다. "이쪽이야."

그녀는 안헬로를 따라 박물관을 지나 잰더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는 방 한쪽 구석에 있는 커튼을 열어젖혀 문을 드러냈다. 그는 잠긴 문을 열면서 비비안과 엘스페스에게도 손짓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잰더의 기록 보관소에 있는 건 뭐든 네 거야.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라고." 안헬로는 그들을 두고 떠났다.

그들은 찾고 뒤지면서 하루를 보냈다. 넘겨 보지 않은 페이지가 없었다. 안헬로는 친절하게도 그들에게 점심을 가져다 주었고. . .땅거미가 도시에 내려앉자 저녁도 가져다 주었다.

잰더의 사무실에 숨겨져 있던 카펜나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먼 과거에 피렉시아인들은 이 차원에 침략을 시도했고 천사들은 침략을 막으려 했지만 위협이 너무나도 커서 그들만으로는 맞서기 힘들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악마 군주들과 동맹을 맺었다. 피렉시아인들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카펜나 안에서의 경쟁 관계는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쟁 관계는 또한 잊혀지지도 않았다. 악마들은 궁극적으로 천사들을 배신했고 천사들의 육체를 잰더가 그녀에게 말해 줬던 것처럼, 도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수인 헤일로로 전환할 수 있는 일종의 정지 상태에 그들을 가뒀다. 그것은 지저분했지만 효과가 있었다. 악마 군주들은 헤일로를 사용해 피렉시아인들을 물리친 뒤 사라졌다.

헤일로가 열쇠였다. 헤일로로 이곳에서 피렉시아인들을 막아냈다면. . .이것이 아자니가 찾고 있던 답이 될 수 있었다. 헤일로의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다행히도 기록 보관소에는 잰더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모아둔 헤일로도 약간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만일의 경우인 것 같았다. 엘스페스는 아자니와 관문수호대에게 모든 정보를 가져다 줄 작정이었다.

엘스페스와 비비안은 잰더가 서 있던 곳에 나란히 서서 거대한 창문 바깥을 응시했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알아낸 사실과 지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뉴 카펜나는 헤일로를 두고 계속해서 싸우겠죠," 엘스페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공급된 것은 거의 다 사용했고 헤일로가 고갈되면 이들은 스스로 분열할 거에요." 그녀는 잠시 지아다를 그리고 그 젊은 여성과 함께 떠난 그 빛나는 형체들을 생각했다. 도시가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 천사들이 뉴 카펜나로 돌아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줄 것인가?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위해 모두 떠난 것인가?

"이 차원에는 도시 한 개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 뉴 카펜나의 운명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자연이 그걸 되찾게 되겠지. 이 차원에서 생명은 지속될 거야." 비비안의 말은 차갑지 않고 사려 깊었다. 심지어 도시가 몰락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언가가 다시 번창하리라고 안도감을 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저는 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요."

"남는다고 해도 이들을 안전하게 해 줄 수는 없을 거야. 피렉시아인들은 이제 모두에게 위협이니까."

"알고 있어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들과 싸울 수 있어," 비비안이 엘스페스의 검과 잰더가 숨겨 뒀던 헤일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라브라스크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 ."

"그자가 무슨 말을 했죠?"

비비안이 팔짱을 꼈다. "혁명."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기며 눈썹을 찌푸렸다. "뉴 피렉시아에서 말이야. 그게 우리가 그놈들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지도 몰라."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최고 수도사의 도자기로 만들어진 그녀의 옛 감옥과 피렉시아의 수도가 엘스페스의 기억 속에 크게 남아 있었다. 뉴 카펜나를 떠난다는 것은 다시금 그 금속의 지옥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코스, 멜리라, 카른. . .돌아간다는 것은 그녀의 악몽과 마주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또다른 전투와 전쟁을 의미했다.

그녀는 충분히 강했던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인가? 그런 사람이 있었기는 한 것인가? 그녀는 그저 쉬고 싶었을 뿐이지만 이제 어떻게 전투에서 물러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도미나리아로 돌아가 아자니에게 자신이 알아낸 모든 것을 알려 주고 헤일로를 보여준 뒤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구나. 엘스페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허리에서 흔들리고 있는 헤일로만큼이나 뜨거운 결의가 그녀의 몸 속에 차올랐다. 목적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향은 그것으로 향하는 와중에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최선인 길이었다.

"가야겠어요," 엘스페스가 말했다.

"어다로?"

엘스페스는 비비안이 자신과 함께 이 여행을 계속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기뻤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강한 동맹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될 터였다.

"도미나리아에요." 엘스페스는 뉴 카펜나의 스카이라인에서 시선을 돌렸다. "오랜 친구들을 만날 때가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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