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법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 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있을 수 없다. 아델린의 훈련은 매일 이를 분명하게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세상의 자연적인 상태는 혼돈이기 때문에 성전사들은 항상 정의를 집행해야만 한다고 말이다. 엔트로피의 소용돌이에 둘러싸인 짐승의 뱃 속 깊숙한 곳— 이때야말로 성전사들이 가장 필요해지는 순간이므로 그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껴야 되는 곳이었다.
어쨌든간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아델린은 자신이 배운 것 중 얼마나 많은 것이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그녀는 생각했고,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생각이 되었다. 그녀를 밤새도록 몰아붙인 유일한 생각이, 지금까지 그녀의 숨을 붙어 있게 한 유일한 생각이 되었다. 이니스트라드의 백성들을 보호하겠다는 신성한 맹세가 그녀의 육체가 지쳐갈 때에도 그녀의 칼에 힘을 빌려주었다.
그 혼돈 속에서 찬드라는 마치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흡혈귀의 발톱이 아델린의 방패를 스쳐 지나갔고, 찬드라는 더 나은 각도를 얻기 위해 테이블 위로 뛰어올랐다. 흡혈귀의 어깨 너머로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비명 소리에도 불고하고, 외설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들 주변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찬드라는 히죽거리고 있었다.
불기둥이 흡혈귀를 집어삼켰다. 그녀는 한줌의 재가 되었고, 그녀의 보석만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아델린은 긴 숨을 내쉬었다.
찬드라는 씩 웃었다. "망치와 모루는 아주 잘—어?"
아델린이 때마침 그녀를 끌어당기며 방패를 들어올리자 그녀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술병이 단단한 나무와 강철에 부딪히며 깨졌다. 공격해 온 자를 향하고 있는 신성한 문양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방패 뒤로 넘친 피는 아델린의 투구를 붉게 물들였다.
"보아하니 내가 모루인 것 같네," 아델린이 말했다.
찬드라는 갑옷 너머로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허리를 빠르게 껴안아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침울한 소리 하지 마. 우린 할 수 있어."
아델린은 뒤로 물러났다. 난전 속에서 촛대로 무장한 노예 한 명이 나타났다. 찬드라는 그가 공격해 오기 직전에 불길을 쏘아보냈고, 촛대는 쨍그랑거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불길이 테이블보로 옮겨붙었고 테이블들 위에서 결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최소한 십수 개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전부 인간과 흡혈귀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흡혈귀들은 이 기회를 통해 오래된 빚을 갚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델린이 그들을 힐끗 쳐다본 그 찰나에, 잘 차려입은 여자가 아름다운 남자를 꿰뚫은 뒤 그를 잡아당겨 입을 맞췄다. 그녀의 검 끝이 그의 등 뒤로 삐죽 빠져나와 있었다. 그는 어째서인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를 보든 비슷한 상황이었다. 말에 탄 성전사 두 명과 훈련된 돼지를 탄 젊은이가 힘을 합쳐 셋이 신선한 피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팔켄라스 흡혈귀를 상대하려 했다. 악마 한 마리가 농부들을 향해 기둥을 휘두르고 있었고, 시가르다는 그곳에서 기둥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어떤 경비병은 전사의 어깨에서 머리를 잘라내 피칠갑을 한 아이에게 던지자 아이는 마치 잘 훈련된 개처럼 공중에서 그 머리를 낚아챘다.
붉은 피가 경비병의 목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는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에 도둑맞은 피를 쏟아내면서 쓰러졌다. 그의 뒤에서는 보랏빛으로 전신을 휘감은 카야가 칼을 거두고 있었다.
"아를린의 흔적이 있어?" 아델린이 물었다.
카야는 고개를 저었다. "우린 전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야."
"어, 카야, 아직 몰랐다면 말인데, 여긴 '선'이라기보단 좀 더
그녀는 다시 말을 멈췄다. 이번에는 그들 세 명 위로 기둥이 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델린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고 간신히 구출해냈지만, 이는 쓰러져 내리던 기둥이 1초 동안 허공에서 멈춘 채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 마법사가 한 일이었다. 찬드라에게 강력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잘 잡았군, 아델린. 나도 동의하네," 테페리가 말했다. 그는 날아드는 도끼날을 몸을 숙여 피한 뒤, 경비병의 옆구리를 그의 지팡이로 두드렸다. 경비병은 성전사가 그를 쓰러뜨릴 때까지 그곳에 계속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 흩어지고 있네. 언제까지나 이렇게 계속해 나갈 수는 없어."
"아를린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 카야가 말했다. "그녀가 일을 마무리할 거야—"
"아바신은 항상 그분의 자매들 곁에서 함께 싸웠지. 그녀를 혼자 둬서는 안돼," 아델린이 말했다. "그녀에겐 도움이 필요해."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찬드라가 말했다. "상대할 놈들이 있잖아."
실제로 십여 명의 건장한 흡혈귀 경비병들이 방패를 서로 연결한 채 그들을 향해 곧장 밀고 들어왔다. 해결하기 힘든 일이 최악의 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찬드라는 불덩어리를 날려보냈다. 그들의 망설임은 한 순간뿐이었다.
아델린은 전투 자세를 취했다.
법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성전사는 대혼란 속에서 가장 필요한 법이다.
경비병 중 한 명이 투창을 던졌다.
아델린은 방패를 들어올렸다.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거대한 늑대가 그들 앞으로 뛰어들었다. 투창은 그것에 부딪혀, 옆구리의 탄탄한 근육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늑대는 흡혈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것이 목구멍에서 내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너무나도 낮아 아델린은 그 소리가 자신의 폐 속을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쪽 앞발이 대리석 바닥을 두들겼다. 그런 뒤,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일반적인 크기의 늑대 네 마리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늑대가 창문과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바위만큼이나 큰 늑대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왜 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인가? 늑대들은 얼마 전 수확철 대학살 때에 시민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왜 이번엔 그들을 구하는 것인가?
"어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가장 큰 늑대가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것의 거대한 턱에서 팔 한 개가 삐죽 솟아나와 있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였다. 아델린은 그 흉터들을 알고 있었다.
토볼라르였다.
"도와주러 온 겐가?" 테페리가 물었다.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야는 문 하나를 가리켰다.
"그녀는 저쪽으로 갔어," 그녀가 말했다.
토볼라르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샹들리에의 잔해를 뛰어넘어 아를린이 있는 쪽으로 사라졌다.
고역을 겪는 동안에는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를 알기가 힘들었다. 경계는 희미해졌다. 일생 동안 알아 왔던 사람들에게서 촉수와 등껍질이 솟구쳤다.
지금은 고역만큼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델린은 늑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소린 마르코프는 어둠에 아주 익숙했다. 수천 년 동안 어둠은 그의 최고의 동반자였다. 그리고 이제 피바다로 가라앉은 그는 그것만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동반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옛 플레인즈워커들
나히리. 한때 그가 신뢰했던 소녀. 그를 돌 안에 가두고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게 만들었던 여자.
아바신, 그가 가장 아꼈던 창조물. 미래에 대한 그의 모든 희망이 한데 모인 완벽한 틀. 그녀를 되돌린 일은 아팠다, 진정으로 아팠다. 흡혈귀의 힘조차도 그의 마음 속에 난 그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눈꺼풀을 피가 짓눌렀다. 입을 열기만 하면 잔뜩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힘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피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몸을 꺼낸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칠천 년의 세월이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혈액의 심연 속으로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무엇이 남았는가?
그는 생각하려고 애썼다.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작은 그림이 아닌 큰 그림을 본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를 그렇게 가르쳤다.
이제는 올리비아 볼다렌과 결혼한다는 끔찍한 특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 이유 때문에 그를 이곳에 집어던진 그의 할아버지가. 소린이 품고 있는 흉터들 중에서 가장 첫 흉터를 남긴 사람은 에드가르였고, 그럼에도 소린은 수천 년 동안 그를 사랑했다.
그것 또한 그의 할아버지의 계획이었던 것인가? 편리할 때에만 소린을 이용하기 위해서? 마치 아이들의 다과회에 어울려주는 것처럼 그 모든 긴 대화들을 어울려주었단 말인가?
작은 그림이 아니라, 큰 그림을.
그렇다, 이제 그는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소린의 가슴이 아파 왔다.
그는 입을 열었다.
포도주처럼 달콤하고, 끈적끈적하고, 취하게 만드는 피가 쏟아져 들어왔다. 힘줄들이 다시 서로를 엮어나갔다. 뼈들이 우드득거리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상처들은 아물었다. 그의 근육들은 도둑맞았던, 그의 활력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들은 이 저장고가 그를 익사시키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이곳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소린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바랬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그의 몸은 스스로 치유되었고 상처는 계속 봉합되었다. 그는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는 온전히 오르는 일에 몰두하고 노력했으며, 구덩이의 끝자락에 올라섰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더 이상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무도회장. 그의 할아버지 에드가르는 그쪽으로 향했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그는 포식자의 은밀한 걸음걸이로 혈마법회관의 큰 복도를 지나갔고, 포식자의 코를 통해 웅얼거리는 회랑에서 길을 찾았으며, 포식자의 본능으로 도중에 있던 대검을 집어들었다.
이윽고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금속이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소리가, 천사의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그 모든 소리가 그를 더 화나게 했다. 볼다렌의 영지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 또한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아니—며칠 전이었다면 화가 났을 것이었다.
이제는 비장한 만족감이 그를 휘감았다. 수천 년 동안 흡혈귀들은 조금이라도 더 힘을 얻기 위해 음모와 계략을 꾸미고 목을 찢고 심장에 말뚝을 박아 왔다. 진정한 무리동물인 늑대들이 그들을 궤멸시키려 찾아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는 그의 가족들이 그 무도회장 안에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마치 솜을 넣은 옷감 너머로 속삭이는 소리처럼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린은 혼란의 대소용돌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화살 하나가 휙, 소리를 내며 그의 어깨 너머로 날아갔다. 그는 그 화살을 붙잡아 그에게 달려드는 볼다렌 경비병의 목줄기에 꽂아넣었다. 그 남자는 숨을 쉬려고 애썼다. 소린은 화살촉을 비틀었다.
"조용히 해라," 그가 말했다.
소린이 화살을 당겨 빼내자 남자는 쓰러졌다. 소린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이미 에드가르를 찾아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준비한 사람이 그녀일지 몰라도 그것에 동의한 사람은 에드가르였다. 에드가르는 그것을 위해 싸웠다. 에드가르는 권력처럼 단순하고 덧없는 것을 위해 자신의 손자를 버렸다.
그는 에드가르를 찾고 있었다.
찾았다. 그는 마르코프 결투사들과 함께 테페리와 그의 동료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에드가르는 마치 훨씬 젊은 남자처럼 그의 대검을 휘두르면서 기뻐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가 항상 저렇게 노쇠해 보였던가? 살점은 칙칙한 잿빛에 눈은 툭 튀어나와 있는?
소린과 에드가르 사이를 가로막으려는 자들이 있었다. 자신의 사망 진단서에 스스로 도장을 찍는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가을의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듯이 그들의 사지가 몸뚱이로부터 떨어져 내렸다. 소린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에드가르는 테페리에게 검을 휘둘렀다. 시간 마법사는 공격을 느리게 만들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공격을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성전사는 결투사들 중 둘을 상대하고 있었고, 화염술사의 불길은 에드가르의 옷깃을 태우고 있었다. 두 심령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결투사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전황이 뒤집어지고 있었다.소린이 느끼고 있는 것만큼이나 에드가르도 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소린이 한때 기쁨이 넘치고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역겹다는 듯이 찌푸려졌다. "또 네놈이냐?"
소린의 공격은 인간의 눈으로 쫓기에는 너무 빨랐고, 그것은 에드가르의 방어도 마찬가지였다. 칼들이 계속해서 맞부딛히고 손은 흐리게 보였으며, 그들 주위로 이리저리 불꽃이 날아다녔다. 소린의 맹공격은 잔인했고, 가차없었으며, 평화나 협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에드가르의 힘이 강력하더라도 검술은 오랫동안 소린이 가장 좋아하는 학문 분야였다.
에드가르를 도우러 온 자들 또한 빠른 결말을 맞이했다. 소린은 흘깃 보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들을 다른 사람들이 저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결국 먼저 칼을 떨어뜨리고 뒤로 황급히 물러난 쪽은 에드가르였고, 그의 칼은 땅바닥에 부딪히며 마치 장난감처럼 쨍그랑거렸다.
"소린," 그가 말했다. "넌 이해해야만 해—"
소린은 빌린 검의 칼끝을 에드가르의 목에 가져다 댔다. "이해해요, 에드가르. 작은 그림이 아니라, 큰 그림을. 희생. 힘. 이제는 당신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완벽히 이해하죠."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이 남자를 죽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손목을 한 번 툭 치기만 하면 될 터였다. 잠시 동안의 저항과 죽어가는 자의 헉 하는 숨소리 — 그것이 전부일 터였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그의 손을 주저시키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래 전에 사라진 천사의 보이지 않는 손일지도 몰랐다.
소린은 성난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가세요. 제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에드가르의 분노와 그가 가진 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두 번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마치 겁에 질린 고양이처럼 황급히 도망쳤다. 소린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그의 할아버지가 방금 있었던 곳에, 그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괜찮아?"
아마도 화염술사일 것이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걱정스러운 기색에 놀랐다. 그녀는 그를 마음에 들어했던 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으니까.
"응," 그는 거짓말을 했다. 소린은 검을 깨끗이 닦았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 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흡혈귀의 시체들이 마치 잔치 후의 쓰레기처럼 바닥에 널려 있었다.
"소린, 나도 안다네. 이 일이 자네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고 있지만, 자네는 옳은 일을 한 게야," 테페리가 말했다.
소린은 그를 노려보고 싶었다. 그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자신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테페리 또한 오래 살았다는 것을. 테페리 또한 상실을 알고,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너머의 것들을 보아 왔다는 것을.
다른 자들은 그보다는 짧은 인생을 살았을테지만 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쉼없음을. 방랑벽을.
"고맙군."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그 말이 전부였다.
아를린 코르드는 숲의 꿈을 꿨다.
그녀는 푹신한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나뭇가지의 꿈을, 가을 낙엽이 느리게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꿈을, 바람이 털가죽을 스쳐 지나가며 부는 꿈을 꿨다.
바위와 인내심이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렸다. 줄무늬는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붉은이빨이 그들의 뒤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팍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가 늑대들을 곁에 두고 느끼는 자유로움만큼이나, 진실은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떠났다.
그녀는 외톨이였다.
"아를린."
늑대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할 수 있지만 그녀와 가장 가까운 동료들은 그녀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아를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속도를 늦추고 싶었지만 그녀의 무리동료들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아를린, 사냥할 시간이다."
그것은 끔찍하게 느껴졌다. 마치 그녀의 머리는 대성당의 종이고, 그 목소리는 망치인 것처럼.
그녀는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녀의 옆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단단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익숙한 냄새.
수사슴은 나중에 사냥해도 됐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토볼라르였다. 그는 여전히 그들이 지난 번에 마주쳤을 때 입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부드러운 표정은 그의 강력한 몸으로부터 안도하게 해 주었다.
"왜 여기에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네가 도움을 요청했으니까," 그의 주둥이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바위 또한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들 모두가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감싸안았고, 안도와 기쁨의 감정이 그녀가 입은 부상의 통증을 대신했다 . 그녀의 늑대 무리였다! 그들 또한 그녀와 만난 것을 기뻐하며 그녀의 얼굴을 핥았고 코를 들이밀면서 특툭 쳤다.
하지만 그 포옹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쁨도 잠시, 그녀는 정신이 들기 시작했고, 정신이 들자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이렇게 다치게 만든 자는 올리비아였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은달빛 열쇠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바위와 인내심이 그녀가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녀는 여기서 그녀의 인간 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다시 변신했다.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치유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늑대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토볼라르의 어깨가 멋쩍은 듯이 굽어 있었다.
"토볼라르," 그녀가 말했다, "이런다고 우리 사이가 바뀌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한 일은
"오늘 밤, 마무리를 짓지," 그가 말했다. 그 모습으로는 단어들을 형성하기 어려웠지만 토볼라르가 그녀만큼 모습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날 찾아와라. 무리동료들처럼 마무리를 지을 테니까."
아를린은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토볼라르는 그녀의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무리는 이 늑대들 셋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은가? 볼다렌 가문이 다른 흡혈귀들과 천사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는 것은 늑대들에게도 좋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그의 말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올리비아의 향기가 짙게 서려 있었고 대리석에 떨어진 그녀의 피는 신선하고 매혹적이었다. 그녀를 추적하는 일은 매우 쉬울 터였다.
아를린은 토볼라르에게 따라오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늑대들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 다섯은 볼다렌 저택의 복도를 뛰어다녔다. 그들은 비틀거렸고, 귀에서는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물론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은 올리비아가 이니스트라드의 모든 천사들을 지배하게 됐을 때 생기는 일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흔적을 따라간 그들은 다시 무도회장이 아닌, 어딘가 더 높은 곳에 도착했다. 계단은 네 발로 오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되게 했다. 지금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 아래로부터 에드가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고 약속했지 않소."
"그랬죠. 이 모든 게
늑대들은 회랑의 구석을 돌았다. 그곳에, 방 반대편 끝에, 자신의 동상들로 둘러싸인 올리비아 볼다렌이 있었다. 피칠갑을 한 채로 숨을 헐떡이는 에드가르 마르코프도 그녀의 곁에 있었다. 올리비아의 얼굴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고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에드가르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올리비아, 다 끝났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쳐냈다. "당신은 내가 허락할 때만 만질 수 있어요."
늑대들이 가까이 다가갔다. 아를린은 그들 앞에 멈춰섰고, 그녀의 목에서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올리비아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토볼라르가 에드가르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아를린이 날카롭게 짖으며 그를 말렸다.
이 엉망진창인 상황은 올리비아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것을 올바르게 되돌려놓을 기회는 줄 수 있었다.
아를린은 마지막에 무엇이 이기게 될 지 확신하지 못했다: 올리비아의 상처입은 자만심일지, 아니면 그녀의 부족한 인내심일지 말이다. 그녀의 칭얼거리는 비겁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열쇠를 떨어뜨렸다.
그것은 별다른 일 없이 쨍그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따위 하찮은 장난감은 가져가라, 그게 그렇게 소중하다면 말이지," 그녀가 비아냥댔다.
아를린은 길게 찢은 커튼으로 열쇠를 감싼 뒤 그녀의 이빨 사이에 끼워 집어들었다. 올리비아는 이미 창문 하나를 통해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에드가르도 곧 그 뒤를 따랐다. 토볼라르가 벽으로 뛰어올라 그들을 붙잡으려 달려들었지만 에드가르가 입은 외투의 꼬리 부분을 입에 문 채로 다시 내려왔을 뿐이었다.
그는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을 두동강내서 이 위협을 영원히 끝내길 원했을 테니까.
아를린 또한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나중에도 있을 터였다.
아를린은 인간의 형태로 모습을 되돌리면서 토볼라르와 시선을 마주했다.
"제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에 불만이 있으면, 나중에 저를 찾아오세요," 그녀는 말했다. "저와 제 무리가 정리해 줄 테니까."
은달빛 열쇠가 지친 발에 새로운 속도를 불어넣어 주었다. 스텐시아에서 케시그까지 가는 내내 그들은 쉬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다. 테페리는 속도를 더 내려고 노력한 덕분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마차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모든 순간이 힘겹게 얻어낸 것들이었다. 모든 순간이 승리였다.
하지만 의식이 완료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터였다.
카틸다는 그들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녀의 영혼은 은달빛 열쇠에 매여 있었기에 그녀도 그들의 여행을 줄곧 동행하고 있었다. 카야는 여행의 대부분 동안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지만 아를린도 그녀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어떻게 이게 효과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죠?"
"그게 효과가 없다고는 어떻게 확신하지?" 카틸다가 말했다.
영혼이 되면 더욱 미스테리에 관심 갖게 되는 것이 분명했다.
"전 그저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 뿐이에요," 아를린이 대답했다. 그들은 숲속을 거닐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마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델린의 군마는 카야가 빌린 말과 함께 마차에 매여 있었다. 그 무리에서 깨어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성전사와 늑대, 그리고 영혼뿐이었다. "그걸로 절 나무라시면 안돼요."
"넌 너 자신에 대해 잘 몰라," 카틸다가 대답했다. "네가 확실할 때에만 행동을 했다면,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겠지, 그렇지 않니?"
자신의 두 손으로 키우는 강아지에게 가장 심하게 물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를린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마차를 향했다. 그녀는 그 안에 타고 있는 모두를 생각했다. 찬드라는 벤치 하나에 몸을 웅크리고 있고, 카야는 벽에 기댄 채로 잠들어 있고, 테페리는 다른 벤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온통 그녀의 늑대들이 배부른 채로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졌니?"
그 질문은 생각 중이던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를린은 카틸다를 흘낏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가장 강력한 마법사들인걸요. 어떻게 확신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마법사들을 말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않니."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마녀는 속아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가? "소린이 우리를 돕고자 한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어요. 그는 실수를 했지만, 결국엔 저만큼 이니스트라드를 사랑했죠. 전 그가 돌아올 줄 알았어요."
언급되지 않은 부분은 소린이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수수께끼같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단지 그의 음울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쓰러진 자들과 부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뒤에 남았다.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마르코프 저택에서 몇 달 동안 지내도록 옮겨졌다. 그는 그것이 단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의학 문헌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랬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일 수도 있었고 그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내겐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그 생각은 그녀를 미소짓게 해 주었다. 그녀는 그의 어딘가에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카틸다의 다음 말에 찔리며 쪼그라들었다: "그자를 말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밤의 숲은 사랑스러웠고, 소나무의 맑은 향기가 좋은 위스키처럼 기운이 나도록 해 주고 있었다. 아를린은 잠시나마 그 냄새가 자신의 코 안을 간질이게 두었다.
"그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거에요," 그녀가 말했다.
"수확철 대학살이 지난지 몇 년 뒤가 되겠지," 카틸다가 말했다. 그녀의 영체가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거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것이 진정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나면, 그를 추적할 거에요."
"하지만 그가 어떻게 대가를 치른다는 게지?" 카틸다가 물었다. "그가 자신이 앗아간 목숨들에 대한 대가로 어떤 화폐를 낼 수 있을까? 넌 야수의 가죽을 두른 인간이야. 그는 그가 어떤 모습을 둘렀든 상관없이 야수지."
그것은 그녀가 나누고자 했던 대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토볼라르는 두려움에 몬드로넨 표효떼를 재건했어요," 아를린이 말을 꺼냈다. "그는 그것 말고 다른 이유들도 있다고 하겠지만, 결국에는 두려움이었죠. 그의 친구들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길을 걸었고, 그들의 솜씨가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살해당했어요."
숲속에서 한 남자가 그녀보다 앞서 걷고 있었다. 그는 그리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아를린은 그 기억을 마음 한켠으로 치웠다.
"늑대인간이 되면, 그냥 자신으로 있을 수 없어요. 자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짐작하게 돼요. 아무 늑대가 죽인 아무 마을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하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죠. 두려워져요. 도망가고. 무리를 찾게 되죠. 무리는 내가 누구인지로 나를 판단하지 않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죠. 그래야만 한다고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할 테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충분히 맞는 말이기도 하구요."
늑대의 눈을 통해서 본 아바브룩.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를 궁금해하는 그녀의 부모. 그녀가 알릴 수 없는 비밀.
"거리를 좀 두고 나서야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죠. 다른 길도 있어요. 결코 쉬운 길은 아니죠. 인간에 대해 기대하는 것들을 바꿔야 하고, 인간도 우리에 대해 기대하는 것들을 바꿔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길은 분명 있어요. 모두가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 단계씩 차례로, 각자가 벽돌이 되어 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여러 해가 걸리겠죠.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늑대인간일 때는 지금 당장에 대해서 고민을 하죠. 무엇을 먹고, 누구에게 사냥을 당하고 있고, 낮 동안에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 무엇을 할지 같은 것들을요. 더 큰 그림을 보는 게 힘들고, 거기에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는 더 힘들죠."
토볼라르가 불 주위를 빙빙 돌면서 마치 그녀가 거만해졌기라도 했다는 것마냥 그녀를 쳐다보았다.
"전 그에게 수 년 전에 이 이야기를 전부 다 해 줬어요. 다른 길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죠. 그는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는 인간들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항상 우리를 괴물이라고 생각할 거고, 그러니 우리가 왜 괴물이 되면 안 되겠어요? 그가 생각하는 위대함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속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그녀는 침을 삼켰다.
"수확철 같은 일은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에요. 그에게 물어보셨다면, 그는 여러 해 동안 그보다 수백 배는 많은 늑대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겠죠. 수확철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라고요."
그 단어들은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서조차도 역겨운 맛이 났다. 아를린은 자신이 이 말에 동의하는 세계관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의가 뭐냐고 물으셨지요. 사실을 말하자면, 저도 모르겠어요. 평생 두려움과 분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벌하면 좋을까요? 전 그가 자신이 한 일에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 그가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전 그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우리가 더 나은 날을 향해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하지만 수확철이 우리 모두를 수십 년은 뒤로 후퇴시켰죠. 그 사건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우리를 죽이게 만들 거에요."
아를린은 시원한 밤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생각처럼 머릿속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그가 올 것을 확신했냐고 물으셨죠. 그렇지 않았어요," 그녀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함께 왔다면, 우리가 협력할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전 그가 자신이 도와줬을 때 사람들이 고마워할 거라는 걸,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 했어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카틸다는 그녀의 옆에서 떠 있는 채로 달을 올려다보았다. 오랫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이 가진 무게감이 곰 가죽보다 더 무겁게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솔직히 어느 것도 그녀가 미리 생각해둔 것은 없었다. 단지 그녀의 마음 속에서 옳다고 여긴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이제 그녀의 정신도 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곱씹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이에 대한 결론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카틸다가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은 명백한 만큼 말하기도 어려웠고, 각각의 음절은 마치 걸레에서 물을 짜내는 것처럼 그녀에게서 쥐어짜듯이 새어나왔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도는 해 봐야죠."
"조언을 해 주마, 아를린," 카틸다가 말했다.
아를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들어 볼게요."
"범죄의 배후에 있는 남자를 잊지 않는 것도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그녀가 말했다, "범죄 자체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거란다. 토볼라르에 대해 네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는 그것들을 들어 주는 것만큼이나 배신도 했지. 언젠가는, 너도 그걸 고려해봐야 할 거다. 단순히 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야."
또 다시 말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그녀를 찔러 왔다. 아를린은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발 아래에 있는 흙은 시원하고 푹신했다. 이니스트라드는 지금 밤이었고, 그들은 이니스트라드를 구하러 가는 중이었다.
"저도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알아요."
"자, 이거 효과가 있는 게 확실한 거지, 그렇지? 찬드라가 말했다.
아를린은 씩 웃었다. "네, 확실해요."
그녀는 셀레스투스의 중앙에 섰고 다른 사람들은 바깥쪽 분침 한 곳에 모여들었다. 이제 자신의 육체로 돌아온 카틸다가 그녀 앞에 있었다. 아를린의 손에는 태양황금 자물쇠가, 그리고 이전에 의식이 갑자기 중단되었을 때 있었던 피와 제물들이 함께 들려 있었다.
승리의 상징인 은달빛 열쇠는 마녀의 손 안에 놓여 있었다. 희미한 마법의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뿌리와 영혼, 피와 송곳니," 그녀는 낮게 읊조렸다.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모여든 모든 마녀들의 목소리였고, 이 차원 자체의 목소리였다. "이니스트라드가 태양의 따스함 아래에서 단결할 수 있기를."
새벽수사슴 집회가 하나가 되어 내보낸 마법으로 들어올려진 은달빛 열쇠는 태양황금 자물쇠를 향해 둥실거리며 떠올랐다. 아를린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그것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녀의 걱정 중 하나는 그것이 복제품이어서 서로 들어맞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황금이 은과 만나는 순간 사라졌다.
밝은 빛이 셀레스투스 안을 가득 뒤덮었지만 두려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태양빛처럼 따스했고, 약속처럼 따스했으며, 아를린의 피부는 그것을 마음껏 흡수했다. 심지어 그녀는 눈을 감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 주위에서 셀레스투스가 수 세기 동안 무성하게 자라난 수풀들을 떨쳐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전하기 시작한 분침들에는 나무 몇 그루가 아직도 매달려 있었다. 아를린은 이제까지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나무를 본 적이 없었고 그것은 그녀를 마치 아이와 같은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그녀의 동료들이 떨어지기 전에 한 분침에서 다른 분침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그랬다. 너무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라 정말로 위험하지는 않았고 테페리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지만,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테두리가 있는 자리는 고맙게도 훨씬 안정적이었다.
머리 위로 분침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 주변의 빛이 더 환해졌다. 마침내 빛은 그들이 서 있는 플랫폼에서 달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 그것을 보며 영원함 말고 다른 것을 느끼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아를린은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이것에 대해 해야 할 말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그저 입을 다물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 자체의 부조리를 감상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대장장이의 딸이 고대 장치 아래에 서서 이니스트라드에 낮이 되돌려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빛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희미해지자 달은 이미 지기 시작해 마치 수평선의 파도 밑으로 떨어지는 동전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 카틸다가 열쇠를 주워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를린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게 필요한 거 아니었나요?"
카틸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게 잘 되기만 하면, 앞으로 천 년 정도는 괜찮겠지. 이걸 우리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단다."
마녀들과는 말씨름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달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자 아를린은 카틸다와 함께 셀레스투스의 테두리를 향해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다리를 가장자리 바깥으로 내놓고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케시그의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그 숲을 자신의 피부만큼이나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숲이 밤에, 아침에, 그리고 모든 나뭇가지가 분홍색으로 칠해지는 소중한 새벽 시간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은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눈물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그들과,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 함께 앉았고 그녀의 늑대들은 재빨리 그녀를 둘러쌌다. 인내심은 그녀의 무릎에 누웠다. 카틸다도 그들과 함께 앉았다.
그들은 함께 이니스트라드에서 몇 달만에 처음 맞이하는 해돋이를 함께 지켜보았다. 그것은 다른 모든 해돋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해돋이 하나하나가 모두 선물과도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금빛 불덩어리가 수평선 위로 올라오고 그것만으로도 세상에 빛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는 것, 그것은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믿음조차 초월하는 것이었다.
몇 달만에 맞이하는 첫 해돋이였다. 다른 모든 해돋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것은 더욱 완벽했다.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아를린도 여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의 영혼 속에도 그들이 축하하고 있는 황금빛 태양과도 같은 기쁨이 가득했다. 늑대들도 여기에 동참했고 이번 한 번만큼은 태양을 향해 울부짖었다. 연인들은 입을 맞췄고 친구들은 얼싸안았다. 익숙한 선율을 가진 고대의 노래가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물론, 마실 것도 있었다.
누군가가 아를린의 손에 그녀도 모르게 술잔을 살짝 쥐어 줬다. 향신료를 넣은 포도주는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고, 한 모금 들이킨 그녀의 가슴을 따끈하게 덥혀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깨닫자 이를 뒤따르는 냉기도 있었다.
이제는 파티가 된인파 속에서 그녀는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들은 찬드라와 아델린이었다. 그녀는 예상했던 대로 둘이 버드나무 가지 아래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뭇잎으로 가려진 장막이 이별의 비밀을 지켜 주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아를린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포옹하는 모습만을 간신히 알아보았을 뿐이었다. 이 정도로 거리를 두는 게 맞는 듯 했다. 찬드라는 나중에 그녀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전할 테니 지금은 그들을 그냥 놔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녀가 몇 발짝 옮기지 않았을 때 카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훔쳐보기야? 네가 그런 데에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냥 어떤지 확인하려고 했어요," 아를린이 말했다.
"그랬겠지," 카야가 대답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버드나무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이곳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
"이니스트라드에 우울함과 절망만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를린이 말했다. "당신도 그걸 알기를 바래요."
카야는 씩 웃었다. "아마도. 아니면 내가 우울함과 절망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걸수도 있고," 그녀가 말했다. "같이 일해서 좋았어, 아를린."
"저도 당신과 같이 일해서 좋았어요," 아를린이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겠죠."
"물론 아니지. 이곳에는 해결되지 않은 일을 품은 유령들이 아주 많아. 머지않아 내 전문 지식이 필요하게 될 거야. 내가 공짜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만 기억해 두라고," 그녀가 말했다.
"물론 그렇겠죠," 아를린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카야는 이미 빛을 발하며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테페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는 누군가와 같이 있었다. 카틸다가 그와 함께 있었다. 아를린이 다가가자 둘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테페리의 손에는 은달빛 열쇠가 들려 있었다.
"아, 열쇠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아를린이 말했다.
테페리는 씩 웃었다. "그녀가 아주 친절하게도 내게 열쇠를 빌려주었지. 은달빛은 매력적인 특성을 여럿 가지고 있는데, 주로 시공 마법에 대한 것들이라네."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그걸 되돌려 주지 않으면 제가 당신을 쫓아 나설 테니까요."
테페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껴안아 주었다. "난 늑대가 내 뒤에 따라붙으면 절대로 도망치지 못하겠지. 만나서 반가웠네, 아를린."
"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직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테페리는 그녀를 붙들은 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안 좋은 소식인가요?" 아를린이 물었다.
"아마도. 잘 지켜보아야 할 거야. 최근에 문제가 있었다네. 아주 오래된 문제지."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심각한 일인 것 같네요," 아를린이 말했다. 그녀는 약간의 농담이 분위기를 더 가볍게 만들어 주길 바랬지만 테페리는 전혀 즐거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위협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우리는 그들은 피렉시아인이라고 부른다네. 이상한 검은 기름에, 살점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보게 되면
테페리는 한때 자신이 전에 알았던 곳, 자신이 실패한 곳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눈에 서린 표정으로 미루어 그녀는 그 둘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네. 준비를 확실히 하고 있어야 해."
"그렇게 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든, 이니스트라드는 견뎌낼 테니까요."
그는 그녀에게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의 그가 보여 주는 즐거움의 일부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지?. 몸조심하게나, 아를린."
곧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녀는 케시그 숲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숲은 상록수 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통해 여전히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눈이 꽃잎처럼 숲 위에 내려앉았다. 밝아진 하늘에서는 겨울의 냄새가 났다.
그녀의 친구들은 곧 떠나고 사라질테지만, 아를린 코르드에게는 그녀의 무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