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의 학부인 실버퀼 학생 스물세 명이 장미의 무대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차렷 자세로 서 있었고, 그들 중 여섯 명은 쪼그리고 앉아 고통에 몸을 웅크리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비명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쓰고 있었다. 똑바로 서 있든 아니든, 그들은 원형으로 둥글게 서서 자신들 중 가장 뛰어난 학생인 킬리안 루가 라지네스 교수를 갈갈이 찢어 놓을 저주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늘 아침 수업은 음운의 일곱 가지 속성에 관련한 즉흥적인 결투를 다루고 있었다: 어조, 박자, 음색, 배치, 울림, 반향, 그리고 음량. 킬리안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의도 및 진의 II 과정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감독관인 라지네스가 단순히 훈련을 위해 결투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라지네스는 그의 악랄한 공격에 주저함이 없었다. 약간 누런 색을 띤 얼굴을 한 코르 잉크마스터는 자신의 잉크 팔을 사용해 학생들의 심장 보호 주문을 손쉽게 해제하면서 마치 버터에 뜨거운 칼날을 가져다 댄 것 마냥 젊은이들의 영혼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킬리안의 과제는 음량이었다. 그것은 속성들 중에 통제는 커녕 숙달하기가 가장 어려웠으며,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공격이 이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대한 엠브로즈 루 학장의 아들이라는 명성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당연히, 계산된 과제였고, 당연히 항상 개선점을 찾으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계획한 것이 분명했다.

킬리안은 무릎을 굽히면서 발뒤꿈치를 땅바닥에 딱 붙이고 섰다. 천천히, 그는 가슴 속에 공기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런 뒤, 마치 신비한 춤을 연습하기라도 하는 것마냥, 그는 허공에 팔을 휘두르면서, 그의 주변에서 회오리치는 두껍고 검은 밧줄들을 소환해 무대 위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구체 세 개에 집어넣었다.

"와우," 라지네스가 비꼬는 듯이 말했다. "여름방학 동안 명상에 진심인 사람이 있었나 보군." 그는 쉿쉿거리며 뱀 같이 거슬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의 말은 무대 위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잉클링을 통해 전파되었다.

킬리안은 자신의 잉클링인 도코를 잠시 떠올린 뒤 이번 결투에 같이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다. 엠브로즈는 그것이 방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킬리안에게 결투를 위해 다른 생물에 결코 의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도코는 싸움에 뛰어들지 않고 단순히 도움을 줄텐데 말이다. 킬리안은 좌절감으로 이가 갈리는 듯 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라지네스는 자신에게 제한을 둠으로써 결투장의 수준을 맞추겠다고 했다. 결투에서 무성 자음만 사용함으로써 아주 작은 것들에도 거대한 힘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그에게는 의 간단한 치찰음마저도 그의 마법을 날카로운 단도로 변형시켰고, 의 파열음은 대지를 뒤흔드는 대포의 폭발을 만들어냈다.

"뭐 하고 있나?" 교수가 킬리안이 보여준 것에 감명받지 않은 채로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 "힘은 호흡에 있지, 학생. 호흡해."

킬리안은 그 명령에 자신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불러낸 거대한 잉크 구체들이 시간 속에서 얼어붙은 채로, 바위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마땅히 그래야 하겠지요, 교수님," 킬리안은 속삭였다, "하지만 당신의 입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말이에요!"

라지네스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거미줄보다 더 가느다란 잉크 한 줄기가 그의 등 뒤에서 뱀이 머리를 치켜드는 것처럼 덩굴이 되어 땅에서 솟아올랐고, 킬리안의 날카로운 모욕과 함께 그것은 교수의 목과 팔, 그리고 두 다리를 붙잡았다. 라지네스의 이빨 사이로 빠르게 튀어나온 발음 네 번이 잉크 족쇄를 깨끗하게 잘라냈지만, 그가 빠져나올 때쯤에는 킬리안이 이미 그의 마노색을 띤 구체들 중 한 개를 그에게 내던진 후였다. 구체가 라지네스에게 닿기 직전에, 킬리안은 거기에 대고 소리를 쳤다:

"그 노력은 가상하지만 박수도 못 치겠군요, 우리의 결투는 이제 막 시작이니!"

그 말에, 구체는 터져 흩어졌고, 그 조각들이 떨어져내린 곳에서는 곧바로 망치와 도끼를 든 잉크로 만들어진 트롤들이 튀어나왔다. 그에 대응해, 교수의 입에서는 그칠 줄 모르는 발음이 터져 나왔고, 그의 그림자같은 잉크 팔에서 거대한 잉크의 파도가 쏟아져나와, 그를 거대한 검은 구체로 뒤덮으며 보호했다. 트롤들은 성난 듯이 방어막을 공격했지만, 그러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즉시 구체에 흡수되면서 구체가 더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킬리안은 다른 바위를 땅으로 내리꽂으며 전보다도 더 큰 소리로 외쳤다. "ㅅ?! 그런 물이 흐르는 듯한 달래는 소리는 당신이 그 물에 빠지면 더 좋은 소리가 날 텐데 말이죠!" 그의 욕설에, 구체는 탑만큼 높고 돌덩이만큼 단단한 검은 기둥으로 모습을 바꿨다. 그 검은 오벨리스크는 마치 대장장이의 망치가 형체 없는 뜨거운 금속이 되듯 라지네스의 보호막 위로 내리 꽃히면서, 사방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라지네스는 민첩하게 수많은 들을 쏟아냈고, 그것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수천 개의 검은 화살로 변해 기둥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 그 모습에 킬리안은 말이 턱 막혔다. 빈틈을 본 라지네스는 화살의 목표를 그에게로 돌렸다.

"늙어빠진 기생충!" 킬리안은 욕설을 내뱉으며, 순간적인 재치 있는 말재간에 자신의 목숨을 맡겼다. "병든 뱀!" 부서져 내리던 기둥의 모든 조각들이 순식간에 까마귀들로 변해 그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던 화살들을 모두 낚아챘다. 그런 뒤, 킬리안은 이를 악물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그의 마지막 구체에 독설을 쏟아부었다.

"근육 낭비! 정력 낭비!
반쪽짜리로 태어난 혐오스러운 짐승!
썩어 문드러진 잡일꾼!

좋게 말해 봐야 실패작!"

구체가 납작해지면서 수 마일은 되는 넓이로 회전하는 원반이 되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 한가운데에 갑자기 뾰족한 부분이 나타나면서, 거친 폭풍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아래로 쏟아져 내려와 그 격류 속에 교수를 집어넣었다. 킬리안은 목이 타는 것 같았고 입에서는 피 맛이 느껴졌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썩은 고기, 원한 섞인 패악질,
역겨운 수다쟁이!
역병에 고통받고, 공포에 감염되고
비쩍 마른 갈보 자식!"

그 독설은 그의 마지막 공격을 강화해 주었고,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킬리안은 자신의 힘과 싸우는 라지네스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기고 있었다! 그는 기대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이미 교수의 희생양이 된 여섯 명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표정에서 마침내 복수를 했다는 행복한 표정을 기대했지만, 그들에게서는 오직 슬픔만이—또 다른 불행한 영혼이 그들과 함께 고통받게 될 것에 대한 동정심만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였다.

바로 그때, 킬리안은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그것이 바로 이 격렬한 시합을 끝내게 될 신호였다. 그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린 동안, 라지네스의 혀로부터 부드러운 음이 튀어나왔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잉크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검은 화살이 그의 가슴을 관통한 것을 보았다.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서는, 잉크가 안으로 퍼지기 전에 화살을 뽑아내려 애썼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았고, 파네사 피요른의 충혈된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음색 속성은 라지네스가 불러낸 잉크 야생마들에게 완전히 짓밟혔다. 그들은 친구도 아니었고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녀는 신입생이었고 학기가 시작된 이래로 서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품고 있는 심각함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그에게 이해한다는 듯이 동정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킬리안은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바로 다음 순간, 교수의 잉크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킬리안은 단숨에 절망과 슬픔에 휩싸였다. 굽이 단단한 아버지의 신발 소리가 그에게서 멀어져 가는, 가슴 아프면서도 귀에 익숙한 소리가 그의 상상 속에서 고통스럽게 메아리쳤다. 그는 심지어 아버지가 건내줄 전투 시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긴 공부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며 앞서 쓰러진 다른 여섯 명과 마찬가지로, 그는 몸을 웅크리고선 잔인한 패배에 굴복했다.

킬리안은 오후 한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교수의 잉크가 촉수처럼 파고든 저주를 자신의 척추와 늑골에서 벗겨내기 전까지 끊임없이 우울증과 끔찍한 환각 증세에 시달렸다. 두 번째 화살이 꽂히기라도 했다면, 킬리안은 틀림없이 자신의 살점을 스스로 찢어 헤집었을 터였다.

마지막 환각은 그를 비블리오플렉스의 수많은 회랑 아래에 숨겨져 있는 강도 높은 훈련장인 화술 강연장으로 돌아오게 했다. 이 강연은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지만 실버퀼에서 높은 성적을 보이는 학생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수업으로, 킬리안은 아버지의 권유로 입문 시험을 치렀고, 예상대로,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합격했다. 강연장 안에는 나뭇잎으로 사람을 덮쳐 가두고 질식사시키는, 마법에 걸려 있는 숲이 있었다. 식물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는 것만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엠브로즈를 포함해 십수년 동안 수백 명의 잉크술사가 맞닥뜨린 도전과제였으나, 킬리안은 이를 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저주로 덧씌워진 기억 속에서는, 그가 사정없이 식물들을 제거해 나갈 때 그것들이 마치 부상당한 군인들이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한 파괴를 지켜보는 그의 심장은 찢어질 것처럼 아팠고, 그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수없이 파괴한 자신이 싫었다.

킬리안이 눈을 뜨자, 주변에 황금색 빛이 물결치고 있는 친절한 깃펜술사 간호원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양호실의 푹신한 간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높은 돌 창문으로부터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간호사의 것과 똑같은 황금색 빛—셰일 학장의 하얀 날개에 반사된 광채—으로 방 전체를 빛나게 했다. 그녀는 방 입구에 선 채로 간호사가 킬리안의 풀어헤친 가슴에서 라지네스의 잉크를 한 가닥 더 뽑아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투 시 말인데," 셰일 학장이 말을 꺼냈다. "그런 고대 마술은 실버퀼 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한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지. 네 아버지도. . .일단은. . .나름 만족하시지 않으셨을까?"

킬리안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결투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면서 여러 번 목청을 가다듬었다.

"위대한 엠브로즈 루의 아들인 너 같은 마법사들은," 학장은 거의 냉소적인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잠재력의 깊이 속을 탐험할 수 있지—빛과 어둠 양쪽 모두를 말이야. 하지만, 네게 경고하지. 넌는 이따금씩은 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할 거야. 영혼을 위해서도 그게 더 낫겠지."

"죄송하지만, 백색 마법은 전투에서는 그다지 효과가 없어요," 간호사가 그의 심장에서 다시 깨어난 슬픔의 마지막 실을 빼내기 직전에 킬리안이 대답했다.

"그와 정 반대지," 셰일이 대답했다. "전투야말로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순간이야. 그걸로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어."

킬리안은 학장에게서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그녀의 친절한 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성급한 충고를 제공하는 법이 없었고, 그녀의 목표는 항상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오래 가는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녀와 그의 아버지는 그 부분에서 달랐고, 이는 둘 사이의 논쟁적인 관계를 지속시켰다. 그림자의 학장의 생각에 따르면, 지혜는 부정적인 강화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었다. 이 둘이 어떻게 서로에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천에 난 구멍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빛은 가장 완고한 암흑조차도 꿰뚫을 수 있지. 하지만 암흑은, 때로는 어둡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리 시도한다고 해도 빛을 꿰뚫을 수 없어."

킬리안은 그녀의 말을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이는 곧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방해를 받았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손바닥을 문질렀다.

"경계하는 자에게는 쉴 틈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다른 실버퀼 학생들에게서도 이런 반응을 많이 보아 왔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킬리안은 그 즉시 두 발로 서서, 자신의 로브를 챙기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나가기 전에, 셰일이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그를 멈춰 세웠다.

"우주는 넓어," 그녀는 약간 모성애가 담긴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모양을 빚어내는 사람들은 웅변가만이 아니야. 네 마법을 한 곳에 모두 써 버리지 마."

킬리안은 비블리오플렉스로 가는 가장 빠른 루트인 부두로 향했고, 그의 아버지는 해자 부근에 있을 터였다. 그 모임 장소는 부모의 잉크라고 불리는 패트리스크리트로 그의 손바닥에 쓰여져 있었는데, 이는 웅변 선생님들과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곧 있을 약속이나 자주 잊어버리는 물건들을 상기시켜주는 데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쓰여져 있는 것을 크게 말할 때까지 몹시 근질거렸다.

"의미론," 킬리안이 말했다. 패트리스크리트가 사라졌다.

그가 17번 부두에 도착하자, 의미론용 보트가 마침 스스로 부두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즉시, 그는 보트를 향해 달렸다. 그런 뒤, 그는 부두의 가장자리를 박차면서 한쪽 발로 공중으로 뛰었다.

"튼튼하고 검은 징검다리처럼,
내 발밑의 수면은 버티리라."

킬리안은 공중으로 솟구치면서 큰 소리로 주문을 읊조렸고, 수면은 이에 반응해 흰색 에너지를 발하며 물결치면서, 공중에 뜬 발이 내려앉을 수 있게 여기저기에 단단한 장소를 만들어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는 마지막에 크게 뛰어서 보트의 갑판 위에 내려앉았다.

킬리안은 혼자 있는 것을 선호했지만, 실망스럽게도 그가 혼자 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트의 반대쪽 끝에는 다른 실버퀼 학생이 앉아 있었고, 그녀는 그가 낸 쿵 하는 소리에 몸을 돌려 후드를 벗었다.

"그게 위대한 킬리안 루가 항상 약속에 늦지 않는 비결이구나," 파네사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툭 쳤다. "빛 마법이 좋을 때도 있어 보이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할 법한 말이었다.

킬리안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반대편에 앉았다. 파네사는 등을 뒤로 기댔고, 양쪽으로 길게 땋은 그녀의 검은 머리칼은 어깨 너머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으며, 그녀의 마호가니색 피부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라벤더색 눈동자로 그를 살펴보았다. 그는 그녀가 아무 힘들이지 않고 쾌활하고 활기찬 상태에서 계산적이고 신비로운 상태로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할 수 있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라지네스 말이야, 응?" 그녀가 말을 꺼냈다. "자기 수업을 정말로 진지하게 여기잖아, 안 그래?"

"진지한 수업이야," 킬리안이 겉치레 없이 말했다.

"맞아. 하지만 심장에 화살을 박아넣는 건 너무 가차없잖아."

"그건 성과가 있는 결투였어."

"성과가 있었다고?"

"난 새로운 약점에 대해 배웠어. 망설였지. 그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파네사는 그의 대답에 감탄했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자비는 멍청이들을 위한 거지," 그녀가 말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아버지도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해 왔다. 하지만, 얼마나 노력을 했든 상관없이, 그것은 킬리안이 이뤄낼 수 없는 좌우명이었다.

"어느 쪽이든, 넌 오늘 정말로 놀라웠어. 그렇게 사악한 정제되지 않은 힘이라니. 수준이 낮은 마법사였다면 죽었을 수도 있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볼만했을 텐데 말이야."

"그를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어," 킬리안이 재빨리 말했다. "난 죽이고 싶지 않아. . .난 그저 이기려고 했을 뿐이야."

파네사는 그녀의 의자 가장자리로 미끄러지며 더욱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가 불편해하는 에너지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그의 목을 주무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친 거야?"

"아니," 킬리안이 빠르게 말했다. "난. . .괜찮을 거야."

그녀는 마치 멋진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했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있잖아, 목이 아픈 걸 몇 분 만에 고쳐 주는 영약이 있거든. 이물의 끝에 있는 사람을 아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한 개 정도는 뚝딱 만들어 줄 거야."

"이물의 끝은 게으르고 일을 미루는 녀석들이나 가는 곳이야," 킬리안이 말했다. "루 가문 사람들은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만 해."

"그 말은 들었어,"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씩 웃으며 거의 노래를 부르듯 말했다. "그 규칙을 깨야 할 수도 있지. 아니면 다시 양호실로 가던가. 루 학장님은 그걸 좋아하시지 않을걸."

"난 못 해."

"그래." 그녀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 등을 기대고 앉았다. "따지고 보면, 스트릭스헤이븐은 배우기 위한 시설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그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경계하는 사람은 쉴 틈이 없는 것 같네."

마지막 말이 킬리안의 허를 찔렀다. 그 말은 그가 양호실을 떠나기 직전에 셰일 학장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보트가 갑자기 의미론 부두를 들이받았다. 파네사는 우아하게 뒤로 뛰어서 지나가던 보트로 넘어갔다—이물의 끝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보트였다.

"가끔은 바깥에서 햇빛도 좀 쐬고 해, 킬리안 루," 그녀는 땋은 머리를 어깨 너머로 넘기면서 말했다. "우린 그림자 속에선 잘 자라지 않으니까."


킬리안은 그녀가 탄 보트가 사라지는 것을 쳐다보며 그녀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잠시 앉아 있었다. 그녀가 말한 그림자가 누구를 말하고 있던 것인지는 명확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 말을 생각하다가 피부에서 불편한 열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아직 내리지 않아 짜증이 난 보트가 다시 한번 흔들리면서,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부터 그를 구해 주었다.

그는 비블리오플렉스로 연결되는 돌 계단을 뛰어 올라가 넓은 중앙 홀을 가로질렀다. 그는 유쾌하고 비학술적인 대화를 나누는 학생 무리들을 거침없이 헤치고 나아가 높은 돌 아치길에 의미론의 전당이라고 새겨져 있는 곳에 도착했다.

"킬리안 루!" 남자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들려 왔다. 아치길의 어둠 속에서 로어홀드의 학생인 퀸토리우스가 느릿느릿 나타났다.

"안녕, 퀸트," 킬리안이 말했다.

"실버퀼 애들은 오늘 죄다 너와 네 결투 얘기만 하네," 퀸토리우스가 눈을 강렬하게 반짝이며 대답했다. "로어홀드도 마찬가지고." 그는 부드럽게 킥킥대며 웃었다. "뭐, 나 혼자긴 해. 음량은 좀 심각한 주제지. 듣자 하니, 넌 타고났던데."

"넌 연구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킬리안은 그가 지난 여름에 책 무더기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를 되새겨 보며 말했다. 그는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품에 거대한 책더미를 안고 있는 채로, 퀸토리우스는 그의 코끼리 코로 얇은 고서 한 개를 집어든 뒤 킬리안에게 건넸다.

"언어장애인 깃펜술사, 오바리우스 에골트," 킬리안이 큰 소리로 읽었다. "언어장애인이라고?"

"그는 음량으로 목소리를 잃었을 때 자신의 모든 주문을 고대의 수화로 발동했어," 퀸토리우스가 소리쳤다. "그는 엄청났지. 사실, 그는 군부대 전체가 무기를 내려놓고 휴전을 하게 마법을 걸기도 했어. 그는 죽음과 파괴는 어떤 악기로도 연주할 수 있는 악보라는 것을 이해했지." 그는 자신의 코로 책을 두드렸다. "창조의 교향곡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고."

그는 자신 스스로가 한 말에 놀라기라도 한 듯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이렇게 실버퀼스러운 말을 할 줄이야," 퀸트는 또다시 키득대면서 말을 마쳤다.

킬리안은 자신의 손바닥이 또다시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난 가야 해," 킬리안이 그를 지나치며 말했다. "명상이 곧 시작되겠어."


의미론의 전당은 항상 달빛이 비치고 있으며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다. 촛불 한 개가 우윳빛 안개 속에서 빛나며 킬리안을 앞으로 끌어당겼고,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그 빛을 따라갔다.

책들이 위협하려는 듯이 높이 쌓여 만들어내고 있는 그림자 아래에 엠브로즈가 서 있었고, 그의 검은 로브는 안개를 흩어 놓으려는 듯이 강하게 부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은달빛을 받은 그의 피부는 회색으로 보였지만, 그의 눈의 하얀 부분은 흐릿한 안개 속에서 마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나무로 된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킬리안을 그곳까지 이끌어 준 촛불이 놓여 있었다. 촛불의 불길은 두껍게 제본되어 있는 책의 페이지들을 비추고 있었다.

"네 약점을 그대로 드러냈어, 그렇지?" 엠브로즈가 주변의 땅마저도 흔들거리게 하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 교수님의 화살을 모두 막았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킬리안은 대답했다. 그 어떤 대답도 아버지의 훈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잘못 생각한거야, 그렇지?"

"도코가 저와 같이 싸울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면—제가 어려울 땐 항상 도와주거든요."

"킬리안, 이건 그 빌어먹을 마도사의 탑 경기가 아니야. 잉클링에게 기대면 의존적이고, 약하고, 집중하지 못하게 돼." 그는 눈을 번뜩이며 앞으로 걸어왔다. "우주 최고의 중재자이자 모든 마법 계약의 집행자인 웅변가들은 자신의 말에 있어 단호하고 흔들리지 않아야만 해. 네가 이곳을 졸업한 후에 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역할인 웅변가는 산만함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겠죠. 알고 있어요." 킬리안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킬리안은 아버지의 굳은 얼굴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오늘은 호흡에 깊이가 없었다. 어깨는 귀까지 치켜들었었고. 계속해서 목을 빼내 들어서 어디 광활지의 대모고스처럼 보이더구나. 그런 식으로 하면 다칠 수도 있다고!"

"사과드릴게요, 아버지," 킬리안은 갈라진 목소리를 어떻게든 숨기려 노력하며 말했다. "이렇게 빠르게 결투를 할 줄은 몰랐어요. 거기다 선생님과 하게 될 줄은 더욱 몰랐고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예상해야 해," 엠브로즈가 매몰차게 말했다.

"예상하지 못하는 거라면 빛 마법도 있겠죠," 킬리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뭔가를 만드는 게 파괴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고요."

"깃펜술사들과 광휘술사들의 그럴싸한 말이 네게 닥쳐올 죽음을 막아 주진 않는다!" 엠브로즈가 고함을 쳤다. "오리크의 마음은 전투 중에 구부러지지 않고, 마도사 사냥꾼의 영혼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파괴되어야만 해!" 마치 화산에서 검은 용암과 하얀 불꽃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엄청난 양의 잉크가 그에게서 터져나왔다. "너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잉크술사들을 배출한 루 가문의 후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적들이 그 위대함을 훔치려고 할거야. 절대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어서는 안 돼!"

"알겠어요.” 킬리안은 바닥을 보며 날카롭게 속삭였다.

그 뒤에 이어진 확연한 정적 속에서, 킬리안은 학장의 턱 근육이 여러 번 움찔거리는 것을—굳게 다문 입술 뒤에서 몰래 이를 가는 것을—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느꼈다.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기를 바라며, 킬리안은 테이블로 다가가 책 앞에 앉아, 의미심장하게 "애가와 진혼곡: 잊혀진 전투 시" 부분을 펼쳤다.

"네 말들은 톱니가 달린 단검처럼, 뼈에서 살점을 잘라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워야 한다. 네가 사냥한 사냥감의 내장을 빼내 그것을 먹어 치워라. 그것만이 네 적을 무찌르는 유일한 방법이다. 알겠느냐?"

"네, 엠브로즈 학장님."

엠브로즈는 킬리안의 형식적인 말투가 거슬려 잠시 멈춰 섰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아들. 언젠간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킬리안은 나머지 오후를 전투용 시구를 외우고 암송했지만, 이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그의 목소리를 계속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요청하자 물이 담긴 잔이 나타났고, 그는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물은 그의 목을 회복하는 일에는 거의 아무 효과도 없었지만, 그의 작은 방광을 활성화하는 데는 효과가 탁월했다. 이제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있었고, 그의 목에서 퍼져나오는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백색 마법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 텐데,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양호실에 한 번 더 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밖에 되지 않을 터였고, 그는 가장 기본적인 주문 이외에는 더 공부하는 것을 금지당했다.

그는 테이블에 이마를 대고 엎드린 채로 힘없이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그의 번쩍이는 검은 신발 사이로, 퀸토리우스가 그에게 주었던 책이 완전히 혼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마침내 멈췄을 때에는, 그것으로부터 대량의 검은 잉크가 빠져나와, 머리가 큰 잉크색 생물을 만들어냈다—킬리안의 잉클링인 도코였다.

도코의 마노빛 피부 위에는 그가 들어 있던 책 속의 글자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전투 시를 읽는 게 아닌 다른 것으로 킬리안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는 듯이 그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킬리안은 거기에 미소로 답해줄 수 없었다. 사실, 책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큰 공포에 휩싸였다. 그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고 있는데, 그는 실버퀼이었다. 목소리 없이 어떻게 실적을 낼 수가 있겠는가?

그의 걱정은 파네사에게로 옮겨 갔다. 아마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었다. 그에게 다른 어떤 선택지가 있겠는가?

그는 결심을 하고서는, 책과 도코를 챙겨 자신의 로브 속에 집어넣고, 방을 빠져나갔다.


마지막 새벽이물 바위의 그늘 아래에서, 킬리안은 위더블룸 학생 세 명이 이물의 끝 주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무거운 나무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문 안쪽에 있는 돔형 구조물로부터 활기찬 프리즈마리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입구 너머로 사라지기 전에, 세 번째 위더블룸 학생이 뒤를 돌아보고 그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녹색 피부, 빛나는 금빛 눈, 그리고 젖은 나뭇잎들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이 그녀가 누구인지를 곧바로 알려 주었다. 그녀는 그의 친구이면서 마찬가지로 2학년인 디나였다. 두 사람은 지난 학기에 벌 받는 늪지에서 꽤 힘든 시련을 겪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는 말을 주고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킬리?" 디나가 여전히 멀리 서 있는 채로 물었다.

킬리안은 자기를 애칭으로 부르자 얼굴을 찡그렸다. 귀엽게 들려서라기보다는 병든 것처럼 들려서였다. 킬리. 그는 이미 목에서는 가려움이 올라오려는 것을 느끼면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대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있을 수도 있는 것 같아?" 그녀가 물었다.

킬리안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네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자, 그는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나도 밀린 얘기 하고 싶은데, 지금 좀 바쁘거든," 디나가 그를 위해 열린 문을 붙들어 두고 있는 채로 말했다. "데이트가 있어. 세 번째 데이트지. 새로운 걸 좀 시도해 보고 있어—친구들을 사귀는 것 말이야. 그 사람 이름은 비쿠스야. 4학년이고, 거의 괜찮아."

"거의?" 킬리안이 물었다.

"나한텐 잘해주지만, 조금 난폭할 때가 있거든. 그 사람을 위해서 차를 좀 만들어 봤어." 그녀는 자신의 어깨 위에 덩굴로 고정시킨 녹색 통을 내밀며 말을 이어 갔다. "원하면 너도 마셔 봐. 꽤 독해. 안에 들어 있는 건 물어보지 않는 게 좋아. 덩굴타기 이빨 맛을 좋아하면 상관없지만."

"안에 들어있는 게 그거야?" 킬리안이 물었다.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니까. 들어가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물의 끝은 높은 돔형 천장으로 덮여 있는 크고 둥근 건물이었다.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와 주변을 다른 방들로 연결되는 통로를 비추고는 있었지만, 원 안에 있는 공간은 어두컴컴했고, 음악의 음에 맞춰 색이 변하며 타오르는 양초들만이 희미하게 빛을 비추며 떠다니고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메인 바가 위치해 있었고, 그 위에는 프리즈마리 밴드가 연주하고 있는 무대가 떠 있었다. 그 주변에 펼쳐져 있는 둥근 테이블과 의자들에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에 둘러앉아 거품이 흘러넘치는 잔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양념한 고기를 먹고 있었다.

킬리안이 파네사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축제에 참석한 여왕인것마냥 긴 테이블의 한쪽 끝에 앉아 있었다.

"내가 찾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봤어, 킬리," 디나가 말했다. "가도 괜찮지?"

"그래—" 킬리안이 대답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킬리안은 파네사에게로 다시 눈을 돌린 뒤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거 봐, 누가 여길 다 오기로 했는지 놀랄 만하네," 파네사가 소리를 쳤다, "킬리안 루, 규칙 파괴자. . .거기다 여자친구도 같이?"

"오 아니야! 디나는. . .아니야. . .걔는. . .아니라고," 킬리안은 말을 더듬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파네사의 다 안다는 듯한 웃음까지 더해지니 더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관심 없다는 듯이 그녀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래서. . .들었어?" 파네사가 다시 말을 걸었다. "라지네스가 우리랑 일주일에 한 번씩 결투하려고 계획 중이래."

"정말?" 킬리안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보아하니 널 증명하고 또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할 것 같네."

킬리안은 자신의 마법이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사실에 좌절하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웅변가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거겠지?" 그녀가 말을 이어 갔다. "의무로 가득 찬 삶. 자유라고는 없는. 거기다, 넌 엠브로즈 학장님의 유일한 아들이잖아."

"가능하면, 전에 이야기했던 음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킬리안이 말을 가로막았다.

파네사는 그의 절박함이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만 말해도 돼, 킬리. 그거면 됐어."

킬리안은 그녀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바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또다시, 그녀는 그가 사석에서 들었던 무언가를 말했지만, 그녀의 시원한 미소가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아마도 그저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리며, 그는 로브 속에서 퀸토리우스의 책을 꺼냈다. 도코가 페이지 사이에서 실체화하며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 잉클링은 킬리안의 기분이 약간 나아져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듯이 미소를 지으며 윙크했다. 그런 뒤, 그것은 자신의 잉크색 앞발로 손과 손가락들이 수많은 서로 다른 모양과 위치로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가득 차 있는 부분까지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각각의 묘사 아래에는 그것이 가리키는 단어가 쓰여져 있었다: 마음이 따뜻한, 고결한, 사랑, 그 밖에도 수없이 많았다. 킬리안은 테이블 아래에서 "빛"을 뜻하는 수화를 만든 뒤 눈을 감았다. 뭔가 만들어 봐, 그는 자신의 의지에 집중하면서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곧바로 그는 자신의 눈꺼풀로 덮여 있어 검은색만 보이는 시야 너머가 주황색으로 빛나며 테이블 위에 있는 촛불의 열기가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 효과가 있었다.

"전에 여기서 널 본 적이 없었는데, 루," 그의 어깨 너머에서 감상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킬리안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도 그것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위더블룸 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늪지의 냄새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이 학생은 그것을 가리기 위해 꽃 향기 같은 무언가로 자신을 온통 뒤덮고 있었는데, 아마도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책을 다시 로브에 밀어 넣으면서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디나가 네가 자기랑 친하다고 나한테 그러던데," 위더블룸 학생의 의심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둘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던데, 맞아?"

"보냈죠," 킬리안이 대답했다. "늪지에서요. 그녀가 하던 일을 좀 도와줬을 뿐이에요."

그가 파네사 쪽을 쳐다보자, 그녀는 무슨 일이 생길지가 궁금하다는 듯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 말이지." 위더블룸 학생의 어조가 그의 잔인하고 질투심 많은 본성을 드러내는 듯이 위협적으로 바뀌었다. "그건 현재 진행형이야?"

"비쿠스," 킬리안은 디나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킬리안은 일어서서 완전히 몸을 돌렸다. 그 4학년생은 키가 크고 건장했다. 덩굴 같은 녹색 머리카락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그의 에메랄드빛 눈은 킬리안의 잉크처럼 검은 눈동자와 마주치며 번뜩였다. 그의 손에는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여기저기 가시가 돋친 해충이 들려 있었다.

"아니오," 킬리안은 그의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해 보았다. "걔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비쿠스는 자신의 흡혈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고, 갑자기 그의 옷이 녹색 빛을 발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하루만에 두 번째네, 킬리." 파네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 뒤 그녀는 보랏빛 액체가 부글거리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그가 있는 쪽으로 밀었다. 그는 그 컵을 잡았다. "인기 있어서 좋겠다."

"이러지 말죠," 킬리안이 말했다. "부탁이에요."

"아니," 비쿠스가 말했다. "이러자고."

해충은 생명력이 자신을 떠나 자신의 주인에게로 들어가는 것과 함께 비명을 질렀다. 4학년생의 등 뒤에서 녹색 마법이 마치 이리저리 비틀린 나무처럼 자라나면서 그것의 나뭇잎들이 구부러지면서 죽은 해충의 거대한, 형체가 없는 상반신 모습을 만들어냈다.

마법 결투가 발생하는 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물의 끝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공중으로 띄우며 투기장으로 변했고, 디나와 파네사를 포함한 학생들은 여전히 그 위에 앉아 있었다. 바와 무대 또한 공중으로 떠올랐으며, 결투자들 사이에 저주들이 잘 오갈 수 있도록 뻥 뚫린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킬리안은 이번 결투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승리자라고 알려지는 것이 좋을 터였고, 특히 실버퀼과 그의 아버지에 귀에 들어갈 일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는 목이 좀 편해지길 바라면서 재빨리 컵 안에 든 내용물을 들이마셨고, 효과는 그 즉시 나타났다.

꿀맛이 첨가된 액체의 따스함이 그의 목을 감싸면서, 취기와 함께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는 평소같은 자신이 된 것을 느끼면서 놀라서 숨을 헉 들이쉬었다. 아니. . .평소보다도 더 나았다—취기가 그를 감싸면서 그의 첫 공격에 힘을 더했을 때에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좋은 느낌이었다.

"야만스러운 늪지 애송이 같으니, 이제 와서 질투로 얼굴이 초록색이 됐다고 하는군. 난 네가 매일 자기의 악취를 들이마셔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의 입에서 단어들이 쏟아지자, 그의 등 뒤에서 검은 마법의 격류가 쏟아져나와, 거미의 몸통과 긴 다리들로 변했다. 다리들이 그를 비쿠스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렸고, 비쿠스는 그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는 위에 있는 학생 관중들이 즐거워하고 놀라워하는 소리를 들었다.

"시드는 꽃처럼, 너도 시들게 될 거야, 위더블룸," 킬리안이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그런 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거미 몸통에서 두꺼운 잉크 거미줄을 뱉어내 상대의 주변에 거미줄 막대기들을 만들어냈다. 비커스는 공격들을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가시 돋친 주문 구체들을 쏘아내면서 그에게 반격했다. 킬리안은 공격을 피한 뒤 저주를 자신의 잉크색 저주로 되받아쳤다.

킬리안은 자신의 힘과 그 위험성에 충격을 받았다. 공격할 때마다 그 공격은 바로 직전에 한 공격보다 더 파괴적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들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방을 향해 날아갔다. 이윽고 모든 곳이 그의 거미가 만들어낸 두터운 검은 거미줄로 뒤덮였다.

이제 비쿠스는 지쳐서 헐떡이고 있었다. 해충의 에너지도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다. 킬리안을 쓰러뜨리려는 마지막 노력으로, 그 위더블룸 청년은 땅속에서 한 무리의 나무뿌리를 소환해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 동작은 그를 잠시동안 노출되게 만들었고, (라지네스가 수업 중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헛점을 간파한 킬리안은 자신의 혀로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검은 잉크의 화살이 주점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비쿠스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킬리안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비쿠스를 거미줄로 칭칭 휘감아, 그를 마치 거미에게 붙잡힌 파리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질투나 하고 하찮은, 구역질나게 우울한 녀석아," 킬리안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속삭였다. "네 소중한 디나가 널 불쌍하게 여기겠네. 쟤는 네가 얼마나 그 악취를 가리려고 하든 간에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을걸!"

그가 말을 하는 것과 함께, 잉크 화살을 포함한 방 안에 있는 모든 잉크가 비쿠스 쪽으로 길게 늘어나면서 비쿠스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킬리안은 상대의 눈이 황금색에서 검은색으로 희미해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킬리!" 디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고, 더 이상 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듯한 그녀의 겁에 질린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런 뒤 그의 시선은 파네사에게로 옮겨 갔고, 그녀는 이와는 정반대로 악마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빠를 자랑스럽게 해 드려, 킬리안 루!" 파네사는 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라고 응원을 했다.

킬리안은 비쿠스를 향해 몸을 돌렸고, 그는 마치 그의 영혼이 산산조각나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검게 변한 두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의 희생자는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그는 실패했다고 느끼는 일이—어둠 속에서 홀로 고통받는 일이—얼마나 끔찍한지를 다시 생각해냈다.

난 이런 걸 하려는 게 아니야, 킬리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생각했다. 난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킬리안은 입을 열어 저주를 되돌리려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그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마치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가—파네사가 그에게 준 물약으로 깨어난 사악하고 악의적인 무언가가—그의 노력을 제지하는 것처럼 그의 선의가 목에서 가로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파네사를 다시 쳐다보았고, 이번에는 그녀가 그가 마지막 일격을 내리치지 않았다는 것에 짜증을 내며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그녀가 한 일인 것이 분명했다.

비쿠스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다른 대체 수단도 없었기에, 킬리안은 로브에서 언어장애인의 이야기를 꺼내 페이지를 펼쳤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도울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도코는 곧장 행동을 개시해 자신을 잉크가 가득찬 한 쌍의 손으로 만들어 수화로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넌—충분해.

그들이 가졌던 첫 대화로부터, 킬리안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질투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은 남자를 보았다. 킬리안이 디나와 손을 잡고 있던 것을 보고 이 두 감정 모두가 불타올랐다.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킬리안이 그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었다. 그것이 그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것일 터였다.

킬리안은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그 문장을 반복하며 그의 의식을 집중했다. 즉시, 흰 빛이 그에게서 물결치듯 퍼져나오면서, 거미 다리들을 그의 몸으로 후퇴시켰다. 그런 뒤, 간호사가 그에게 해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몸부림치는 잉크 주문을 뽑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는 그 주문에 순수한 백색 마법을 주입하면서 주문을 그의 선한 의도로 가득 채운 뒤, 위더블룸 학생의 가슴으로 돌려보냈다. 비쿠스의 눈은 마치 빛나는 태양이 두 개 뜬 것처럼 빛을 발했고, 그의 몸에서는 회복의 황금빛이 물결치듯 퍼져 나왔다. 그의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어 있었다. 킬리안은 심지어 그가 머리를 숙이고 정신을 잃기 전에 그 청년의 입술에 작은 미소가 깃드는 것을 보았다. 그것으로 결투는 끝이 났다.

위에서 박수가 쏟아져 내렸고 주점이 예전과 같은 상태로 다시 변형되기 시작하면서 음악도 연주를 재개했다. 킬리안은 테이블들이 내려앉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안에 들어간 그는 개수대로 달려가, 수도꼭지를 틀고 두 손으로 물을 가득 받아 마셨다. 그의 목은 마치 불이 붙은 것 같았고, 그 불은 물을 마실 때마다 더 거세지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 .아까 저기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를 뒤따라 방에 들어온 파네사가 거의 사악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 있는 문을 잠갔다. "끝장을 내 버릴 수 있었잖아."

"그건. . . 틀려," 킬리안은 수도꼭지 아래에 입을 가져다 댄 채로 헐떡이며 말했다.

"'네가 사냥한 사냥감의 내장을 빼내 그것을 먹어치워라.' 그게 네 아버지가 네게 했던 말 아니니?"

킬리안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가 사적으로 들었던 말을 그녀가 인용한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였다. 그녀가 미행을 하고 있었던 건가?

"맞아, 널 따라다녔어," 그녀가 인정했다. "우린 널 아주, 아주 오랫동안 관찰해 왔지."

킬리안은 이제 혼란스러운 채로 공포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음료엔—뭐가—들었지?" 그가 캐물었다.

"별거 없어—에일 약간, 허브, 네가 느끼는 죄책감을 억눌러 줄 오리크 마법 조금 정도지."

파네사는 두 손을 내밀고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밝은 불꽃이 그녀의 손 위로 튀어나와 보랏빛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회전하는 구체로 변했다. 그 구체는 계속 커지면서 일그러졌고, 마지막에는 빛나는 검은 투구의 형상이 되었다. 킬리안은 그것이 오리크의 가면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파네사 또한 그 보랏빛 불길에 집어 삼켜졌고, 불길은 그녀의 실버퀼 로브를 태워 버리면서, 그 아래에 있던 들쭉날쭉한 잿빛 오리크 방어구를 드러냈다. 그가 가장 약해져 있을 때 적이 찾아온 것이다.

"양심을 가진 잉크술사는 웅변가의 재목이 못 되지," 파네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투구가 그녀의 손에서 떨어져나와 킬리안 쪽으로 둥실둥실 떠 갔다.

"우리의 지도자께서는 네 안에서 큰 미래를 보고 계셔,"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네 진정한 운명을 위해서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은 스트릭스헤이븐에 있는 그 누구도 준비해줄 수 없는 공포로 가득 차 있지. 네 자신을 봐—네 목소리는 희생된 거야. 라지네스, 네 아버지의 기대심. 그런 훈계와 허풍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네가 그 하찮은 위더블룸 자식과 결투를 벌이고 있을 때 수많은 훈련 없이, 공포 없이, 동정 없이 불러낸 그 힘이야말로, 네가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거야."

"그게 뭔데?" 킬리안이 가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자유지."

가면이 아래로 내려와 킬리안의 손 가까이 다가왔다. 천천히, 그는 그것을 받았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녀가 준 음료가 단순히 그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 이상의 효과를 낸 것 같았다—그것은 그가 그녀의 제안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납득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압력이 거세지며 마치 두개골이 폭발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 모든 것—후회, 실망, 기대—을 끝내고 싶었고, 침묵 속에서, 그는 오리크의 보랏빛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가면을 써, 킬리안 루." 그녀는 이제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그녀의 변신에 마지막 한 획을 그어 줄 검은 투구가 생겨났다. "우리와 함께하자. 함께하면 우린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파괴할 수 있어."

그 순간, 도코가 여전히 언어장애인의 주문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채로 나타났다. 그 잉클링은 킬리안과 헬멧 사이를 맴돌면서, 필사적으로 답을 찾고 있는 친구의 고통에 찬 눈을 응시했다. 도코는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잉크 방울로 녹아내리더니 그의 앞에 있는 허공에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파괴하지 않아. 우리는 만들어내지.

킬리안은 어깨에서 무거운 짐이 덜어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자신이 되고자 했던 것을 마침내 누군가가 인정해 주자, 그는 갑작스러운 자유를 느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오리크의 제안을 거절했다. 가면은 그 즉시 킬리안의 손에서 증발해 사라졌다.

"한심한 녀석," 파네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잉크 마법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자 잉크가 철벅이는 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잉크 방울들이 날카로운 쉿쉿 소리를 내면서 그의 머리 위에서 들쭉날쭉한 종유석 모양을 만들어냈다. "넌 오리크가 될 자격이 없어. 넌 정말로 실망스러운 실패작이야."

갑자기, 킬리안은 바깥에서 비명 소리와 주문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문밖에서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앞선 싸움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내가 혼자서 왔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렇지?" 파네사가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지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고, 그녀의 몸은 잉크를 휘감은 채로 보랏빛 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마도사 사냥꾼들이 저들을 모두 쓸어내 버릴 거야. . .네 귀여운 여자친구도 함께 말이지."

도코는 다시 세 가지 수화 표기로 몸을 변형했고, 킬리안은 몸도 돌리지 않은 채로 그 동작들을 따라했다. 빛—전달—빛. 방 안은 순식간에 눈부신 백색 마법으로 물결쳤다. 휘황찬란한 금빛 구체가 그를 에워싸면서, 파네사가 그를 향해 발사한 날카로운 창을 밀어냈다. 빛에 닿은 모든 것들은 태양처럼 빛났다. 그리고 태양처럼, 그는 하늘 위로 높이 떠올랐다.

파네사는 그를 향해 저주들을 쏟아냈지만, 그중 어느 것도 빛을 뚫어낼 수는 없었다. 킬리안은 보호막을 만들어낼 때 했던 것과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빛으로 만들어진 구체는 계속해서 커져 그녀를 붙잡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킬리안은 그녀의 거칠고 겁먹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이빨의 뒤쪽을 혀로 두드려 가벼운 소리를 내보냈다. 선한 의도가 실려 있는, 금빛을 발하는 화살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허공을 부드럽게 날아가 그녀의 몸속에 파고들었다.

네게 자비를 불어넣겠어.

그녀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비명을 내질렀고 이내 그녀의 눈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잔잔한 금빛 웅덩이로 변했다. 그런 뒤, 갑자기, 방문이 폭발했다. 마치 바위를 투석기로 날린 것처럼, 절지생물 같은 사지를 가진 단단한 껍질을 가진 생물이 킬리안을 지나치며 방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파네사 위로 날아올라 접혀 있던 사지를 펼쳐, 딸깍거리는 다리 여러 개로 그녀를 붙들었다. 그것은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하면서 벽을 부수고 방을 나가 하늘로 도망쳤다.

킬리안과 도코는 그들이 건물에 남긴 거대한 구멍을 따라 황급히 그들을 쫓아갔다. 그들은 구멍을 나와 멈춰선 뒤 적이 도망치며 흐트러뜨린 구름 흔적을 올려다보았다. 파네사와 마도사 사냥꾼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마도사 사냥꾼 두 마리가 남아 공격을 하고 있었기에 여전히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낸 이 흉측한 생물들은 창처럼 생긴 꼬리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휘둘러, 자신들과 싸우고 있는 학생들을 베고 있었다. 괴물들을 향한 공격은 마치 그 공격들이 올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간단하게 회피되었다. 스트릭스헤이븐의 시민들은 이 전투에서 빠르게 패배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킬리안은 이 생물들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하게 만들었다. 두꺼운 껍질로 덮인 채로 빛을 내고 있는 등뼈가 그것들이 마법을 감지하며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도코가 행동을 개시해, 스무 개의 잉크 방울로 자신을 늘린 뒤 킬리안 주변을 맴돌았다. 잉크방울 각각은 킬리안의 앞을 지나가면서 책에 그려진 수화의 모양으로 모습을 바꿨고, 킬리안은 자신의 손으로 그것들을 따라했다. 모양들은 점점 더 빠르게 그의 눈앞을 지나갔고, 그는 점점 더 빠르게 그것들을 복사했으며, 마침내 도코는 회전하는 검은 잉크의 고리가 되었고 킬리안의 수화는 유창해졌다.

네게 평화를 불어넣어 빛이 어둠을 몰아내게 하겠어.

바로 그때, 강렬하게 빛을 발하던 마도사 사냥꾼의 등뼈가 어두워지면서 물결치는 백색으로 변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마도사 사냥꾼들은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발톱으로 허공을 마구 훑었다. 킬리안의 주문은 마치 물처럼 그것들의 등과 꼬리를 따라 흘러내려 가면서, 그것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킬리안 루다! 쟤가 저것들을 잡았어!" 비쿠스가 소리를 치면서 그것들을 향해 가시가 돋친 나뭇가지들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그는 킬리안과 시선을 교환했고, 둘은 짧게나마 서로에게 전사의 경의를 보냈다—새롭게 싹튼 동지애였다. "있는 힘 전부를 써서 공격해!"

부상당한 마법사들이 그 명령을 따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주문을 동원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야수들 주변에 거대한 원을 만들어냈다. 학생들 50명이 스트릭스헤이븐에 있는 모든 학부의 다양한 마법을 괴물들에게 쏟아부었고, 주문들은 그것들의 껍질을 꿰뚫고 반으로 쪼개 열어제꼈다. 디나가 거대한 녹주석 색의 마법 구체를 던져 그 끔찍한 생물들을 산산조각내는 것으로 공격을 마무리했다. 괴물들의 죽음이 확실해지자, 그곳에 있던 모든 마법사들은 킬리안이 한 일을 경외하는 표정으로 그가 떠 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겼고, 그가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킬리안은 잠시 후 전투에서 완전히 녹초가 된 채로 벽에 몸을 기댔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파네사와 마도사 사냥꾼을 향해 사용했고, 거기에는 여전히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그의 목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이상 주점에 있는 게 아니긴 하지만," 벽 반대편에서 디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넌 뭘 좀 마셔야 할 것처럼 보이네, 킬리."

그녀는 마치 전투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소 같은 태평스러운 모습으로 벽 모퉁이를 미끄러지듯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그녀가 작은 나무 그릇에 붓고 있는 액체의 빛을 반사하면서 마법의 기운을 띤 녹색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수상한 혼합물에서 풍겨 오는 냄새는 킬리안이 구역질을 하기에 충분했고. . .실제로도 구역질을 할 뻔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기도를 하고 그녀가 제안하는 치료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개인 과외를 하는 학생 중 한 명이 자꾸 내 차가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거든," 디나가 손가락으로 킬리안의 턱을 들어 올려 그의 고개를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그 말엔 동의하지 않아. 내 특제 조합은 네 목소리 같은 증세를 치료하려고 허브들을 숙성시켜서 만든 거야.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고 부작용은 별로 없어. 다 마셔."

"나라면 안 그럴 것 같은데," 비쿠스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더 가벼워져 있었고, 그는 씩 웃고 있었다. "늪지에서 채취한 허브들은 때때로 인간의 신체 장기를. . .녹게 만들기도 해. 간호사한테 가는 게 나아." 디나는 다가오는 비쿠스를 어깨 뒤로 쳐다보았다. "아, 그리고 그건 나한테 주려던 선물이잖아. 고마워, 디나. 좀 도와줄까?"

비쿠스는 킬리안에게 한 손을 내밀었고, 킬리안은 그 손을 붙잡았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그는 킬리안을 일으켜 세운 뒤 말을 꺼냈다. "너희 실버퀼은 악랄한 녀석들이야. 마도사 사냥꾼들이 공격하기 전에, 너랑 같이 있던 그 여자가 우리 모두에게 스트릭스헤이븐이 불타게 될 거고 우리는 모두 오리크의 손아귀에 죽게 될 거라고 알려 줬지. 그건 정말로 사악한 이야기였다고. 그 여자는 도망간 거야?"

너무나 익숙한 실패의 고통이 킬리안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깨달음을 얻고 자신에게 내재된 믿을 수 없는 힘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을 도망치게 한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의 말이 옳았을 수도 있다. 빛 마법은 적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좋아," 비쿠스가 말했다.

킬리안은 당황하고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그녀를 바꿔 놓았어," 디나가 말했다.

여전히 킬리안의 손을 잡고 있는 비쿠스는 다른 손으로 따뜻하게 그 손을 감쌌다. "네가 내게 느끼게 해줬던 것의 일부분만이라도 그녀가 느꼈다면," 비쿠스가 말을 이어 갔다, "그녀는 더이상 지금처럼 있을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그 변화는 그녀를 넘어 다른 오리크들에게로 전파될 거고, 그들의 마음을 변화 시켜 그들이 자신들의 끔찍한 방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거야. 넌 그들을 빛 아래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만들어 낸 거라고. 그림자의 학장이라고 해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

킬리안은 그들의 칭찬에 거의 얼굴을 붉힐 뻔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대화를 듣고, 도코가 나타나 킬리안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 부글거리는 잉클링은 자신의 단짝을 축하한다는 듯이 슬쩍 찌르면서 그들이 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용을 믿으라고 격려했다. 그가 이제껏 오랫동안 부정해 온 빛이 그가 흑색 마법으로 할 수 있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낸 것이다—그것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멀리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 킬리안의 시선이 지평선을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밝게 빛나는 두 번째 태양을, 미소를, 전투에 지친 동료들의 얼굴들을, 그의 빛의 힘을 목격한 무적의 전우들을 보았다. 그들을 살펴보다가, 킬리안은 갑자기 아버지의 시선을 마주했다. 팔짱을 낀 채로 굳은 얼굴을 한 엠브로즈가 막 도착한 다른 교수들 몇 명과 함께 군중들 사이에 서서는 그가 오늘의 승리자가 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는 셰일 학장과 라지네스가 서서 다른 이들과 함께 킬리안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킬리안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를 치켜들고서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것은 반항의 표현이 아니라 평화의 몸짓이었고, 대립되는 두 개념이 마침내 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타협에 대한 희망이었다.

우주는 넓고, 그 모양을 빚어내는 사람들은 웅변가만이 아니야. 그 말이 킬리안의 마음속에서 크게 메아리쳤고, 킬리안은 자신의 모든 의지를 집중해 그 생각을 아버지에게로 보냈다. 엠브로즈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킬리안은 그의 말이 전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질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킬리안은 엠브로즈의 입 한쪽이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 어느정도 인정의 표시라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아버지의 머리가 살짝 들리면서 아들의 방향으로 따뜻한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갑자기 칼리안은 그의 손바닥에서 날카로운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창백한 피부에 패트리스크리트를 새겼다.

"나는 만들어낼 수 있어," 킬리안은 큰 소리로 말했다.

잉크가 희미해지자 그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운명의 희망으로 무르익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침내 그가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태양의 빛 속으로 발을 내딛을 때가 온 것이다. 그는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