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에 있는 모든 방 중에서, 카이토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주방이었다.

라면 육수, 돼지고기 만두, 그리고 카츠카레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가 복도를 지나 카이토가 앉아 있는 옆 창문 너머로 풍겨왔다. 그는 안개 속에 있는 듯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가벼운 발이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난간에서 미끄러져나와 창고로 들어갔다.

황제의 참모가 카이토의 수업 외에 특별활동을 승인해 주었다는 것은 아니다.

접시들은 근처에 있는 카운터 위에 쌓여 있었고, 그 옆 비눗물이 가득 찬 대야에는 거품이 위험할 정도로 가장자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카이토가 문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작은 카미 한 마리가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깜빡이며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작은 찻잔 네 개가 그 도롱뇽 모양을 한 몸통 주위에 떠다녔는데, 그 얼굴에는 부서진 도자기 조각들과 비슷한 색칠된 뿔들이 모여 있었다.

카이토는 멈춰서서 설교를 들을 각오를 했지만, 제국의 식기를 관리하는 카미는 카이토가 무엇을 하려는지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저분한 접시 하나를 들어 물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장난끼 넘치는 웃음을 지었고모퉁이를 돌아 활짝 열린 부엌을 향해 달려갔다.

궁중 요리사들은 그들의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냄비들, 끓는 육수, 도마 위에서 하고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정육업자의 칼 소리 사이에서, 카이토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는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의 배고픈 듯한 눈길은 웃는 얼굴과 초승달 모양의 작고 노란 눈동자로 장식된 푸른 모찌떡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놓여 있는 가운데 테이블 위로 향했다.

카이토는 손을 들어올렸고, 그의 손가락은 용기를 내려는 듯이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다. 모찌떡 두 조각이 허공으로 떠올라, 테이블 몇 인치 위에 멈춰서 있었다.

카이토는 정신을 다해 간식들을 더 가까이 끌어당겨,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집중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손을 뻗어 그것들을 낚아챘지만— 그 순간 요리사 중 한 명이 당면을 삶는 냄비 뒤에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이봐!" 그 요리사의 얼굴은이미 화가 나 빨갛게 달아올랐고 점점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도둑질에 대해서 뭐라고 했지?"

카이토는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어깨 너머로 돌아보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그는 창고로 몸을 돌렸고, 팔꿈치가 더러운 냄비의 가장자리에 닿아 접시 더미를 카운터 너머로 넘어뜨렸다.

모찌떡을 여전히 가슴에 움켜쥔 채, 카이토는 남은 손을 내밀어 접시들을 공중에 멈춰세웠다. 그것들은 제자리에멈춰 있었지만, 복도에서 들려 오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무 가까웠다.

카이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붙들고 있던 접시들을 놓고 창문 쪽으로 냅다 뛰었고 그의 등 뒤에서는 접시들이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미가 비눗물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와 난장판을 보고 비명을 질렀고, 놀란 요리사는 깨진 접시들 옆에 서 있었다.

카이토는 씩 웃으며 모찌떡 한 조각을 입에 넣었고 다른 한 조각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창문턱에서 뛰어내린 뒤, 주변을 둘러싼 벽을 넘어 되돌아갔다.

에이간조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처럼, 황궁은 낮고 굽은 지붕과 계단식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끼와 모래 정원이 여기저기에 풍성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중 일부는 궁궐의 측면을 타고 올라가기도 했으며, 나무가 함께 꾸며져 있는 곳도 있었다.

충직한 사무라이들과 우뚝 솟은 제국의 감시 메크들이 궁전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토는 수업 사이의 시간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제국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카미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기술을 규제하며, 미래주의자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일에 더 몰두했다.

가벼운 발은 종종 그것을 균형이라고 부르곤 했다.

카이토는 균형 따위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무도 지붕 위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뻤다.

카이토는 가장 가까운 아파트의 가장자리를 기어올라가, 집들 위에 만들어져 있는 엉성한 길을 따라 대련장에 있는 바위 정원으로 돌아갔다. 미닫이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직 가벼운 발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카이토는 서둘러 모래를 가로질러, 땅속에 반쯤 파묻혀 있는 산산조각 난 돌들의 소용돌이를 지나쳤다. 그것들은 에너지를 발하며 희미하게 웅웅거렸고 고대의 유물인 것처럼 보였다.

카이토가 미닫이문을 넘어오자,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늦었잖아," 에이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림자로부터 울려퍼졌다. "얼굴에는 쌀가루나 덕지덕지 묻혀 놓고."

카이토는 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둘은 나이가 같았지만, 에이코가 항상 더 어른스러웠다. 아마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카이토를 돌보는 것이 그녀의 책임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카이토도 에이코를 돌보기는 했지만, 그녀가 장난을 친다고 혼을 내거나 하진 않았다.

에이코가 더이상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옷소매로 입을 훔쳤다. "화내지 마." 그는 주머니에서 남아있던 모찌떡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야."

에이코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눈에서는 미소를 지으려는 기미가 빠르게 지나갔다. 한숨을 쉬며, 그녀는 모찌떡을 가져다 입안에 넣은 뒤,옷자락에 손을 털었다. "넌 훈련을 좀 더 진지하게 받을 필요가 있어. 벌써 5년이야, 제국에서는 대부분 그정도면 특기를 선택한단 말야."

카이토는 여전히 씩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 그렇게 하면 에이코가 심하게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는 예외지 규칙이 아니야. 만약 우리가 일반 훈련을 오래 계속 한다면, 절대로 헤어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영원히 함께 지낼 수 있다고."

에이코는 입을 다문 채 뺨을 붉게 물들였다. "카이토, 나는—"

가벼운 발이 방으로 들어왔고, 에이코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녀의 입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가벼운 발이 방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왔고, 그녀는 그저 제국의 시민으로 자라기만 한 것이 아닌 자들에게 모범이었으며 균형과 고상함이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하얀 꼬리 일곱 개가 휙휙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은 키츠네의 나이와 지혜를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카이토와 에이코는 모두 공손하게 절을 했다. 가벼운 발은 그들의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또한 그들의 보호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

Art by: Randy Vargas

비록 카이토가 궁전의 규칙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그가 가벼운 발에게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일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그저 에이코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그 일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를 바랬다. 제국의 삶은 그의 누이에게 어울렸다.

하지만 카이토에게 있어서는, 벽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벼운 발은 뒷짐을 진 채로 카이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와 에이코는 더이상 대련 상대가 아니게 될 게다."

카이토의 눈썹이 꿈틀했다. "우리가 더이상 훈련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는 누이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입술 끝을 지그시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훈련을 받을 거다," 가벼운 발이 그의 말을 고쳐 주었다. "하지만 함께는 아닐 게다. 에이코는 카미 외교관으로써의 공부를 하기로 선택했지. 에이코의 동료가 될 제국 학생들과 일정을 맞춰 놓았어."

카이토는 차원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누이를 향했다. "왜 나에게 얘기해 주지 않은 거야?"

에이코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하려고 했어. 수없이 많이. 하지만 넌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질 않았고, 난 더이상 훈련을 지체할 수가 없었어. 우리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일 수는 없어, 카이토."

"지체한다고?" 그가 되뇌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가 특기를 선택하는 데 오래 걸렸던 이유는 네가 먼저 선택하기를 바랬기 때문이야. 난—난 그렇게 하면 모든 게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어."

카이토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몸을 움찔했다. 그는 상황이 바뀌기를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누이의 발목을 잡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비밀을 지켜온 것일까?

"미안해," 에이코는 카이토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둘 다 때가 됐어.그리고 이제는 너도 내 걱정 없이 집중할 수 있는 특기를 선택할 수 있을 거야."

가벼운 발은 아무 말 없이 그들 둘을 쳐다보고 있었고, 심지어 그녀의 꼬리들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카이토는 눈이 따끔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눈을 깜빡였다. "괜찮아. 잘 됐네." 그것은 좋은 남매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은 제국 시민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그녀에게 좋은 남매가 되고 싶었다.

에이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터였다. 그녀는 도서관과 의회실에서 공부를 하고, 토와시의 번화한 대도시 중심지로 여행을 떠나며, 어쩌면 카미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카이 숲의 외곽으로 여행을 다닐지도 모른다.

숲의 대부분은 도시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잘려나간 상태였기에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이제 카미들이 그곳을 치열하게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카미 외교에 가장 능숙한 자들만이 이러한 적대적인 행동을 진정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것이 언젠가는 에이코에게는 아주 완벽한 직업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카이토는 여기 궁전 안에서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갇혀 있을 것이다.

가벼운 발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나오면서, 아주 살짝 턱을 들어올린 채로 카이토를 내려다보았다. "신속검이 벚꽃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다. 네게 새로운 대련 상대를 소개해 줄 게야."

카이토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지만, 놀란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신속검은 제국의 엘리트 사무라이들을 양성하는 황금 꼬리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카이토의 훈련에 동의하게 했는가? 그리고 ?

"당장 가겠습니다." 카이토는 고른 목소리로 대답한 뒤, 주의를 돌릴 무언가를 찾으며 방을 나섰다.

벚꽃 정원은 황궁의 중심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벽을 넘어 가는 지름길이 있었지만, 카이토는 건물들을 지나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긴 길을 택했다. 그는 황제의 알현실과 쿄다이의 사원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는 최소한 자신에게 최선인 행동을 보여주기라도 해야 했다.

카이토가 황제에게 말을 했던 경험은 가림막이 쳐진 문 너머로 한 것들뿐이었다. 처음은 우연한 사고였다. 그는 실수로 꽃밭을 밟은 일을 용서해줄 생각이 없는 봄꽃의 카미에게서 도망가려다가 잘못된 벽을 넘었고, 수국과 잉어 연못으로 둘러싸인 개인 정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호화로운 현관은 종이 가림막이 쳐져 있는 문으로 이어졌고, 그 문 뒤에서는 따스한 빛이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방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카이토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자뿐이었다.

그는 슬그머니 도망치려 했지만, 고작 두 발짝을 내딛었을 때 어떤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우며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카이토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황제인지를 몰랐다. 그가 들은 것은 자기 또래 소녀의 목소리뿐이었다. 그가 벌이려는 장난을 가벼운 발에게 일러바치는 사람보다는 친구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

그래서 카이토는 그녀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고 도서관의 제한된 구역에 몰래 들어가, 책들 중 하나를 거의 잡으려던 중 누군가가 그를 발견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이보다 빠르게 도망친 적이 없었고, 안전한 곳에 도착하기까지 지붕 세 개와 벽 다섯 개, 그리고 건물 한 개를 기어올라야 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소녀는 가림막 뒤에서 미소지었다. 그녀가 자신은 평생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카이토가 수업에 늦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이토가 그 소녀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숨을 곳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와서 자신을 만나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카이토는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곳을 알기 위해서 성벽을 올라가 건물을 둘러보았고 그때 그는 자신이 황제의 정원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제국 시민이라면 돌아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좋은 신하라면 카미가와의 황제에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친한 듯이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학생이라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토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 이외에는 잘하는 것이 없었다.

다음 번에 그가 장막 뒤에 있는 황제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그녀를 어떻게든 불러야 하는 경우에는 그녀를 "황제 폐하"라고 부르는 것 외에 그녀가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매일마다 친구처럼 말을 걸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카이토는 벚꽃 정원의 문 앞에 도착해서 손가락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그는 다음번에 황제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에게 에이코의 선택에 대해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 후 만약에 카이토에게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일까?

가벼운 발은 황제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기르고 있었기에 그들의 훈련 수준을 높이는 것은 일종의 의무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카미가와의 황제에게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무라이가 되는 것은 카이토에게 가장 적합한 일이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강하고 빨랐으며, 염력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적절한 훈련을 받기만 한다면 제국의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가벼운 발의 계획이었으리라. 카이토가 신속검에게 직접 영입된다면, 카이토도 이를 거절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신속검은 풀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제국 갑옷은 그의 키츠네 모양을 따라 전략적으로 조립되어 있었다. 금속이 햇빛을 반사하면서 황금색, 청동색, 그리고 적갈색의 다양한 색조로 반짝였고, 그의 등에는 화려한 부채가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에 걸맞는 투구를 쓴 채로, 신속검은 퉁명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발이 네가 훌륭한 검사라고 하더군."

카이토는 얼굴을 찡그렸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제국의 삶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었고, 거기에서 빠져나갈 방도는 전혀 없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사무라이로써 살게 되는 것이었다. "아—네."

신속검은 투덜거렸다. "가벼운 발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훌륭한 검사가 말을 망설이는 것도 본 적이 없군." 그의 수염이 곤두섰다. "다시 해 보겠는가?"

카이토는 몸을 곧게 폈다. "저는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전 제 누이와 여러 해 동안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좋아." 신속검은 벚꽃 나무 너머로 시선을 고정한 채 옆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새로운 대련 상대를 찾고 있네. 공부에 뒤처지지 않을 기술에 능숙한 사람을 말이야. 그리고 자네는 아직 일반 훈련에서 머무르고 있으니. . ."

카이토는 그의 목소리에서 혐오감을 느꼈다. 그것은 카이토가 게으르고 사무라이의 재질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암시였다.

그는 기쁜 마음을 숨겼다. 아직은 희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신속검은 나무 뒤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항상 공손해야 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이 수업들 또한 다른 것들과 똑같이 대해야 하네, 알겠나?"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근처에 있는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통로 아래쪽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신속검은 허리를 숙였다.

그와 똑같이 하기 위해서, 카이토는 발을 한데로 모았지만 한 소녀가 모퉁이를 돌며 나타났을 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눈처럼 흰 머리카락에 갈색 눈을 가진 소녀는 어린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국을 섬겨 주어 고맙네." 그녀의 목소리는 연습이 되어 있었고 격식도 차리고 있었지만, 카이토는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카미가와의 황제.

카이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전에 오로지 그녀의 그림자만을 보았을 뿐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던 그림자는 따뜻함과 마음, 그리고 이 차원이 언젠가 어떤 곳이 될 지에 대한 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그림자 이상이었다. 그녀는 카이토가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황—어, 황제 폐하."

When We Were Young
When We Were Young | Art by: Eric Deschamps

그녀는 그가 몇 년 동안 써온 서투른 별명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신속검의 코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실룩거렸다. 그는 받침대에 걸려 있는 연습용 목검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쳐 황제에게 내밀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두 번째 검을 꺼내, 몇 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카이토에게 던졌다.

카이토는 재빠르게 반응했다. 그의 손이 허공으로 튀어나가, 칼의 손잡이가 그의 가슴을 치기 전에 그것을 붙잡았다.

신속검은 그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풀밭에 자리를 잡은 뒤, 카이토와 황제는 칼을 치켜들고 대련을 준비했다.

카이토는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았을까?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보았을까?

그녀는 과연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것은 카이토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했던 상상에 불과했을까?

신속검이 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카이토는 검을 휘둘렀다. 황제는 방어했고 그녀의 전투 방식은 물과 같이 유연했지만고 강력했다. 그들은 서로 칼을 정확히 맞부딪혀 가며 임시로 만든 대련 구역을 빙글빙글 돌았지만, 둘 다 땀을 흘리지는 않았다.

카이토는 한 발 뒤로 물러나 방어를 위해 검을 치켜들었고, 그때 신속검이 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

이 수업들을 다른 수업들과 똑같이 대해라.

카이토는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고 황제가 자신을 용서해주기를 바랐다.

그는 칼을 힘껏 휘둘러 황제를 대련 구역의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황제의 침착한 힘과는 반대로 그는 날카롭고 빠른 분노로 가차없이 공격했다.

그녀를 잔물결 하나 없는 호수라고 한다면, 그는 쓰나미였다.

카이토는 얼마 안 있어 그녀를 지치게 할 것이라 확신했다.

황제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방어하다가, 너울거리는 비단처럼 그에게서 튕겨나갔지만, 그 동작이 너무 우아했기에 그녀의 다음 타격이 그의 허를 찔렀다. 그의 검은 그녀의 검 아래에 붙잡혔고, 그녀는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런 뒤 그녀는 빠른 동작으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카이토의 손잡이를 칼날로 내리쳤다.

그는 손잡이가 자신의 손 안에서 달각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회전하면서 카이토의 배를 발로 참과 동시에 다른 손으로 그의 검을 낚아채, 아직 몸을 추스리지도 못한 그의 목을 두 검으로 겨눴다.

카이토는 황제를 올려다보았고 그녀의 뒤에서 햇빛이 폭발하면서, 다시 한번 그녀가 장막 그림자가 된 것처럼 그녀의 가녀린 몸매를 실루엣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그녀의 입가에 그를 알아보았다는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신속검이 여전히 보고 있었기에, 카이토는 따라서 미소를 짓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카이토와 천황은 함께 훈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들이 훈련을 받지 않을 때에는, 카이토가 그녀를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현관의 장막 너머로 이야기를 나눴다. 신속검이 지켜보는 시선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어린 시절의 친구일 뿐이었다.

카이토는 그들 주변의 차원은 변하더라도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소켄잔 시의 산맥에 출몰하는 반란군들에 대한 소문이 일상의 대화에 스며들었다. 미래주의자들은 기술에 대한 제국의 규제에 점점 더 불만을 느끼고 있었고 주카이 숲에서는 카미들과의 관계가 여전히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에이코는 언제나처럼 공부를 하느라 바빴다. 때로는 황제만이 카이토에게 남아 있는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카이토는 검은 기와에 손가락을 대고 누르면서 자신이 붙잡고 있는 곳을 다시 확인했다. 밤새 비가 내렸기에, 물받이 홈통들 중 일부에는 여전히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지만 그는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는 문자 그대로 "발끝"으로 서 있는 연습을 하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멀리서, 에이간조의 열차가 모퉁이를 돌면서, 금속제 단검처럼 역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 절벽에는 종이로 접은 짐승의 모습을 한 메크들이 우뚝 서 있었고, 나방 기수들이 머리 위를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도착을 맞이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황제의 참모와 이야기하기 위해 오타와라의 부유 도시로부터 미래주의자들이 온 것이었다.

카이토는 마지막 팥빵 조각을 입에 넣고, 빵 부스러기를 탁탁 쳐낸 다음, 지붕 가장자리를 따라 황제의 거주지로 향했다.

반쯤 갔을 때, 그는 계단식 정원 중 한 곳에 미래주의자의 갑옷을 입은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월인 한 명이 풀밭 위로 몇 인치쯤 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온 게 분명했고, 카이토는 그를 관찰했다.

푸른 불빛이 불규칙한 패턴을 보이며 그 미래주의자의 가슴을 가로질러 빛을 발했고, 그가 입은 하얀 조끼가 그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의 어깨에는 장밋빛 금색을 띠는 얇은 금속판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남자는 그중 하나를 마치 나무에서 잎을 떼어내듯이 손가락으로 하나를 떼어냈다.

그 삼각형 모양은 그의 손 위에서 부푼한 다음 스스로 계속해서 접혀 가며, 종이학 모양의 드론으로 모습을 바뀌었다. 그것은 재빠르게 날아올랐고, 그 날개에 비밀을 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Replication Specialist
Replication Specialist | Art by: Cristi Balanescu

그 남자가 몸을 돌리자, 카이토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이방인은 확연하게 놀란 모습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카이토의 젊은 얼굴을 확인하면서 나이를 가늠한 다음에, 발을 땅에 대면서 긴장을 풀었다. "놀랍구나, 꼬마야. 누군가가 이렇게 나도 모르게 내 근처에 다가온 건 꽤 오랜만이거든." 그는 낄낄대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넌 제국이 관문에서 내 무기를 가져간 걸 행운으로 삼아야겠구나. 나 같은 사람들은 일단 베고 난 뒤에 질문을 하거든."

카이토는 움직이지 않았다. "난 꼬마가 아니야." 그리고 그 남자의 어깨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래주의자들은 외부 기술을 궁전으로 들여와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고 말이야."

"난 그저 친근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을 뿐이야,"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걸 보내기 위해 정원에 숨어야 했을 정도로 친근한 건가?"

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악의는 없지만, 넌 그다지 제국민으로 보이지 않는군." 그는 자신의 얼굴 위로 손을 흔들면서 강조했다. "그들 대부분은 좀 잘난척하는 게 있거든. 하지만 넌? 넌 그저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여. 게다가, 넌 여전히 여기서 내게 말을 걸고 있잖아."

카이토는 팔짱을 꼈다. "난 제국민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여기가 내 고향이야."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그는 무언가가 옳지 않다고 느꼈다. 어떻게 하면 진실된 것이 이렇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일까?

"부모가 없군, 그렇지?" 카이토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 부모는 공장에서 일하다 돌아가셨지. 유독물질이 유출됐었는데, 그곳의 감지기가 너무 낡아서 너무 늦을 때까지 아무도 그 독성 증기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어." 그는 다문 입에 힘을 주었다. "더 나은 장비를 이용할 수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테지만, 제국의 수많은 규제와 지하도시에서 무언가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 보면. . ." 그 남자는 말끝을 흐렸지만, 억지로 씩 웃었다. "오타와라에 친척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저 아래에서 구식 기술들과 싸워 대며 매일 밤 잘 곳을 찾느라 애쓰고 있었을 거야."

카이토는 아무에게도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것은 에이코도 마찬가지였다.

카미가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싸워서라도 얻어내려고 할만한 쉼터와 충분한 식량을 갖춘 안전한 연구 공간을 준 제국에게 불평하는 것은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 .

"부모님이 일하시던 토와시 연구소에서 사고가 났는데, 두 분 모두 방사능에 노출됐어." 카이토의 온몸이 뻣뻣해졌다. 그 말을 큰 소리로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마치 너무나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이코가 뭐라고 하겠는가? 가벼운 발은? 황제는?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토가 이방인에게 말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아," 그 남자가 말했다. "지하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방사능 중독에 적합한 의료 기술에 접근하는 건 무척 힘들지. 너무 비싸니까."

카이토의 얼굴은 자신도 모르는 분노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아버지는 의료 기술을 가지고 계셨어. 어머니에게 사용하실 작정이었지. 하지만. . .승인이 되지 않은 것이었어."

"암시장?"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구속되셨지. 그분은 감옥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어."

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동정심이 가득했다.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를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아. 기술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만 해. 그래야 아무도 돌봐 주지 않을 때 스스로를 돌볼 수 있으니까."

카이토는 불쾌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규제가 없다면 아무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돼. 나쁜 사람들이 무기를 만들 수도 있지." 규칙은 있어야만 했다. 가벼운 발은 이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 남자는 카이토의 어깨를 두드리며 몸을 기울였다. "그게 바로 널 조종하려는 사람들이 네게 하는 말이야." 그는 손을 내린 뒤 그의 갑옷에서 작은 종이학 모양의 드론을 하나 더 떼어냈다. "자. 이 체제에 실망한 사람이 또 다른 그런 사람에게 주는 거야."

카이토는 선물을 받아들었고, 편안해하는 자신을 보며 깜짝 놀랐다. 제국도 그들만의 드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은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카이토가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의 일부였다.

그 월인은 거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흐르는 듯한 팔다리를 이끌고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회의에 늦었군.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서 좋았네, 꼬맹이."

"꼬맹이가 아니야!" 카이토는 그의 등 뒤로 소리쳤다.

그 남자는 어깨 너머로 웃었다. "일을 찾고 있다면, 미래주의자들에게는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할 것 같구나. 카츠마사를 찾아와라."

그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고, 카이토는 마치 땅이 흔들리며 무언가를 놓아 준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가 오래 전에 묻어버린 뒤 너무 두려워서 다시 찾아갈 수 없었던 무언가를.

지금까지는.

그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에이코는 제국의 삶에 모든 것을 바쳤고 그녀는 그의 마음 속의 갈등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황제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그녀가 카미가와를 지배하면서 인간과 신령 세계의 융합 속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한 그럴 리 없었다.

카이토는 궁전 위를 날아가는 나방 기수들을 지켜보면서 가벼운 발이 언젠가는 자신을 저렇게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치는 자로 만들게 될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최소한 그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만약 그의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싸움을 하게 된다면 심장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부모를 잃었고 다시는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종이학 모양의 드론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카이토는 자신도 회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구름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가 친구를 만나러 갔다.


몇 달이 더디게 지나갔다. 카이토는 정원에 있던 미래주의자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지닌 비밀이었으며 그의 머리 속에서 떨쳐지지 않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는 황제에게 자신의 이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녀는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을 하게 해 주었고, 어쩌면 그것은 그의 감정에 더 큰 목적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제국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해도, 그의 나머지 삶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카이토가 벚꽃 정원에 가벼운 발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날까지는.

"신속검은 어디에 있죠?" 카이토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련 수업이 취소된 건가요?"

"대련 수업은 더이상 없다." 그녀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그녀가 카이토보다 훨씬 큰 것처럼 보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둘이 거의 비슷한 키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카이토는 황제를 찾으려 정원 쪽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가벼운 발의 코가 살짝 씰룩였다. "너는 이제 거의 어른이 됐다, 카이토. 네가 누군가의 대련 상대가 될 이유는 없어. 너는 이제 길을 선택해 너만의 여정을 시작해 나가야 한다. 신속검은 네가 잘 어울릴만한 곳이—"

"전 사무라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카이토가 끼어들었다. 그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숨기는 일에 지쳐 있었다.

가벼운 발의 꼬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곧게 펴졌다. "네가 황제 폐하와 친분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카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제는 둘 다 카미가와에 대해 맡은 임무에 집중할 시기가 됐다. 황제께서는 그의 시민들에게, 너는 황제께 말이다."

"그러려고 황금 꼬리 학원에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카이토는 큰 소리로 반박했다.

"아주 많은 적들이 황제께서 실패하기를 바라지," 가벼운 발이 경고했다. "황제께는 사무라이가 필요해.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고,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말이 그 뒤를 따랐다. "황제 폐하의 머리 속에 다른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채워넣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대련 상대가 아니라."

카이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그녀가 말해 준 거에요?"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서로의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차원에 대한 희망도.

하지만 카이토는 결코 그녀가 그의 감정을 배신하고 가벼운 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황제 폐하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그게 어느 때이든 말이야. 그녀 같은 신분을 가진 자에게 사생활은 환상이야." 가벼운 발은 한숨을 쉬며 카이토를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아마도 내가 너를 어린 시절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게 한 것 같구나. 진작에 개입해서 너를 더 나은 길로 이끌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더 나은 길이요?" 카이토는 목이 메였고, 주먹을 쥔 손은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그게 뭔지 전혀 몰라요!"

가벼운 발의 검은 두 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균형만이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만든 기계들은 카미가와를 바꿔놓을 수 있어. 그 힘에는 감독이 필요해."

"한 개뿐인 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할 때나 통하는 거죠," 카이토가 쏘아붙였다. "제국민들은 에이간조에서 안전하게 지내요. 카미들과는 조화를 이루고, 기술은 필요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죠. 하지만 카미가와에는 그런 사치를 즐길 수 없는 곳들도 있어요. 기술의 한계에 몰아붙여져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편안함을 찾을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들을 조종함으로 그런 것들을 막아버리죠. 시민들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장비를 만들어내는 차원을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적절한 허가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그런 것들을 살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도 하지 않고 그들의 출입을 제한하죠. 거기에 무슨 균형이 있다는 거죠? 당신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고—"

"거기까지다, 카이토," 가벼운 발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귀를 접은 채로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이러한 허가와 규제는 기술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해 줘. 너는 황궁에 발 붙일 자리가 없는 과격한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건," 카이토가 씁쓸한 듯이 대답했다, "여기에 제가 발 붙일 곳이 없다는 말이에요."

카이토가 자신의 스승에게서 등을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용감하지도, 강력하지도, 너무 늦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다시는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무언가를 잘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이토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몸을 뒤척이며 자신과 가벼운 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궁전 전체에 경보가 울려퍼졌을 때, 그는 이미 깨어나 있었다.

카이토는 침대에서 뛰쳐나와 옷장에 있는 금속 종이학 모양의 드론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평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어 있었고 이제는 그의 손목에 편안하게 들어맞았다. 그는 복도로 달려갔다. 사방에 깔린 사무라이와 제국의 직원들이 서로에게 경고를 하면서 자신이 맡은 위치로 달려갔다.

카이토는 에이코의 숙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때 사서 한 명이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팔을 들어올려 그녀를 멈춰세웠다. "무슨 일이죠?"

그녀는 눈에서 공포가 가시지 않은 채로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궁 안에 침입자가 있어요. 반란군이 쳐들어왔대요!" 그녀는 그의 팔을 밀치고 안전한 곳을 찾아 그를 지나쳐 쏜살같이 달려갔다.

카이토는 망설였다. 에이코를 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다른 외교관 학생들과 함께 있으니 안전할 터였다.

하지만 황제는. . .

카이토는 발을 돌려 가장 가까운 발코니를 찾았다. 복도와 출입구, 성문은 사무라이들이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카이토에게는 몇 년을 궁전을 뛰어다니며, 이곳 저곳을 들키지 않고 오갔던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경비병들은 지붕 위는 거의 감시하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매끄러운 하늘 아래에서, 카이토는 황제의 처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택했다. 그의 숨소리는 검은 기와들을 가로질러 날아가면서 괴로운 듯이 가빠졌고, 그의 시선은 그가 수많은 오후를 보낸 정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현관을 발견했을 때, 풀밭 너머로 쏟아져내리는 빛은 없었다.

하지만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카이토는 벽에서 뛰어내렸고, 땅바닥에서 한 바퀴 구른 뒤 맨 아래 계단에서 조심스럽게 멈춰섰다. 그는 조용히 발끝으로 계단을 걸어올라가 문 앞에서 멈춰서서, 손목에서 금속 드론을 떼어냈다. 그것은 스스로 접혀 종이학 모양이 된 후 그림자 속으로 곧장 날아들어갔다.

그는 관자놀이에 있는 칩을 손가락으로 눌러 드론의 카메라 영상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황제도 없었고, 침입자도 없었다. 하지만 쿄다이의 방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달빛이 바닥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마치 세 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부짖는 듯한 어떤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쳤다. 고함 소리, 노래 소리, 그리고 속삭임. 그 소리들 모두에 고통이 조금씩 스며 있었다.

카이토는 문 뒤에 뭐가 있는지 드론이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만일 쿄다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황제는. . .

그는 큰 방에 미끄러지듯이 멈춰섰고, 그와 동시에 드론이 그의 손목에 내려앉았다. 멀리 위치해 있는 실내 온천에서 뿜어져 나온 안개가 물 위를 뒤덮어, 마치 방이 무한하게 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이토는 이전에 쿄다이를 봤던 적이 없었다. 카미가와의 수호령은 다른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직 황제를 통해서만 자신을 전달했다. 이는 황제가 죽었을 때만 내려지는 위대한 카미의 축복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카미는 거대했고, 금빛을 띤 사람 크기의 팔 수백 개가 그녀의 배와 팔다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금빛 구체들이 그녀의 등 뒤에 올려져 있는 부채들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그녀의 이마에는 큰 검은 구체가 박혀 있었다. 그것의 입은 용처럼 뾰족했고, 얼굴 위에는 세 개의 가면이 늘어서 있었다. 그것들은 쿄다이와 하나가 되었던 최초의 황제인 미치코 콘다를 상징했다.

Kyodai, Soul of Kamigawa
Kyodai, Soul of Kamigawa | Art by: Daniel Zrom

카이토의 시선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중앙 장치로 향했다. 카이토는 쿄다이가 거대한 케이블처럼 마치 아래에 있는 필멸자들의 차원으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그것에 매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쿄다이는 물속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마치 아프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처럼 안개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황제는 아무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카이토가 경비원이 빨리 와서 쿄다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게 하기 위해서 경비원을 부르려는 찰나에 이상한 남자가 안개 속에 있는 카미의 몸 옆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카이토가 한번도 본 적 없는 크롬 갑옷을 입고 있었고, 보라빛 에너지가 활기치고 있는 금속 팔의 끝 부분은 거대한 발톱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이 카이토에게 향했을 때, 두 눈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분홍빛을 발했다.

비웃는 표정과 함께, 그 남자는 안개 속에서 열려 있는 발코니 쪽으로 뛰어내렸다. 카이토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없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침입자를 그냥 도망치게 놔둘 수 없었다.

카이토는 지붕까지 그를 뒤쫓아갔다. 기와들은 이방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는 너무나도 빨랐고, 너무나도 단호했다.

하지만 단호한 것은 카이토도 마찬가지였다.

느슨해진 기왓장을 본 카이토는 손을 앞으로 내밀어 그 물체를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그것은 이방인의 머리 옆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거의 아무런 상처도 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금속 팔을 가진 남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몸을 돌리다가, 카이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지더니,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휙 튕겼다.

카이토는 자신의 손목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고, 공중에서 그의 몸이 떨어지기 전에 난간이든 무엇이든 붙잡으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지붕에서 잡아당겨졌다.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이 모래 정원에 부딪혔다. 카이토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마치 드론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의 손목에서 금속 드론을 떼어낸 뒤, 절뚝거리며 벽으로 돌아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가능한 한 빨리 벽을 기어올랐다.

그가 지붕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그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쿄다이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모든 고위직 경비병들과 참모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황제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국민들은 서로 이야기하며 무슨 일이 일어난것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려고 했다. 그들은 카이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저 반란군들의 공격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제가 그자를 봤어요," 카이토가 주장했다. "황제 폐하에게 뭔가를 한 사람이요. 그는 반란군이 아니었고 금속 팔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자는 그럴 리가없었다. 그 이상한 옷과 카이토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술을 다루는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가벼운 발이 등 뒤로 꼬리 일곱 개를 모두 활짝 펼친 채로 나타났다. "금속 팔이라고?"

카이토는 안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발이라면 그를 믿어줄 것이다. 그녀는 그의 말을 들어 줄 것이다. 그녀라면 이해해 줄—

그녀는 다른 참모들을 향했다. "아마도 이건 미래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겠군. 그들이 황제를 납치하기 위해 규제되지 않은 인공 기구를 사용했을지도 모르네. 그분이 법을 바꾸도록 강요하기 위해서 말이야."

"뭐라구요? 아니에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카이토는 간청하듯이 말했다. "그건 미래주의자들이 아니었어요. 전 제가 뭘 봤는지 알아요!"

하지만 가벼운 발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제국민들과 머리를 맞댄 채로 누구를 비난하고 어떻게 보복을 할지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쿄다이는 저 멀리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르는 듯이.

어디에선가 황제 또한 겁에 질린 채로 혼란스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카이토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생생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당신들은 잘못된 쪽을 바라보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본 이 일에 책임이 있는 남자를 쫓는 대신 미래주의자들을 비난하려고 하고 있어요."

아무도 카이토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소음과 안개 너머로 소리쳤다. "그자는 도망치고 있어요. 누군가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황제 폐하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가벼운 발은 그를 향해 꾸짖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네 방으로 가거라, 카이토. 이건 제국의 일이다."

카이토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항상 알고 있었던 것을 느꼈다.

그는 이곳에 속해 있지 않았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다.

사원에서 빠져나오는 그의 눈에서 흐르는 성난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방에 도착했을 때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에이코를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녀는 에이간조에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이제 카이토 또한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금속 팔을 가진 자를 찾아 카미가와를 샅샅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친구를 찾아 집으로 데리고 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시는 궁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카이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에이간조의 마지막 벽을 타고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