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거짓말, 약속, 그리고 네온 불길
카이토가 에이간조의 성벽을 떠난 지도 어느 새 10년이 지났지만, 어떤 습관들은 여전히 고치기 힘들었다.
빗방울이 마치 노래처럼 기왓장들을 가로지르며 춤을 췄다. 카이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앞으로 숙여 아래에 있는 거리를 살폈다.
토와시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색깔들로 가득했다. 개조된 우산의 행렬이 도로를 가로질러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들 각각에서는 우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건조하게 유지해 주는 네온 에너지 방어막이 빛나고 있었다. 찻집의 저녁 메뉴가 스크린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동안 유리 패널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소리가 났다. 머리 위로 불타는 듯한 주황색을 뽐내는 큰 잉어 한 쌍이 하늘과 별빛의 바다를 향해 헤엄치면서 비단 같은 꼬리를 흔들었다.
평소의 카이토라면 토와시의 밤이 풍기는 활기찬 분위기를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향수를 느낄 시간이 없었다. 그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카이토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자, 드론의 실시간 영상이 그의 시야에 나타났다. 그 드론은 어두운 골목 위를 맴돌고 있었고, 카이토는 그 타누키 모양을 한 드론을 무지개 빛으로 가득한 거리 쪽으로 보냈다.
10년간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그 드론은 카이토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종이학 모양 드론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해져 있었다. 그 종이학 모양 드론은 재활용하기에 쉬웠다. 그러나 카이토는 자신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드론이 언젠가 아주 구식이 되어 버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언제쯤 바꿀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타누키와 카이토 사이에는 너무나도 많은 역사가 있었다.
타메시는 그에게 기술 하나 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새로운 건 결국 모두 언젠가는 구식이 되어버린다구," 그의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에 카이토는 타메시의 지혜를 경청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하지만 타메시는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정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그의 인생을 보냈다.
카이토는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 그 유대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작정이었다.
타누키 드론인 히모토는 단순한 기술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카이토의 삶을 영원히 바꾼 카미를 상징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친구가 여전히 실종된 상태라는 사실을 그에게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드론은 빛나는 천막을 두른 노점상들이 등불을 매달고 늘어서 있는 길의 모퉁이 근처에 멈춰서 있었다.
노점상의 카미 하나가 카운터의 가장자리에 침울하게 앉아 있었고, 그의 밀가루 반죽같은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교자만두 세 개가 희망의 끝에서 비틀거리듯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근처에 있는 노점 상인은 그릇에 넉넉한 양의 라면을 담은 뒤, 밝은 분홍색과 하얀색의 어묵, 삶은 달걀 조각, 그리고 파를 위에 뿌려서 멋진 일품 요리를 완성했다. 그는 기다리던 손님에게 식사를 건네주었고, 카미는 실망한 듯이 신음소리를 냈다.
드론의 카메라를 통해서 조차, 카이토는 상인의 눈가에 보이는 걱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카미들은 카미가와 어디에든 있었지만, 모두가 한 성질 하는 신령 곁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때로는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더 나았다.
한숨을 내쉬며, 그 남자는 카운터 뒤에서 오랫동안 뜨거운 국물에 담겨 있던 자신의 불은 국수 그릇을 내밀었다. 통통한 카미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고, 카미는 그릇 바닥이 카운터에 닿기도 전에 라면 그릇 안에 코를 박고 사납게 후루룩거렸다.
노점 상인은 눈을 굴렸고 다음 고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카이토는 드론을 근처에 있는 건물 높이까지 띄워올렸다. 그들은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면서 골목들을 하나 하나씩 수색하며 도시를 훑었고, 어떤 아파트의 바깥에 서 있는 제국의 사무라이 무리를 발견했다. 위쪽 창문은 대부분 커튼이 쳐진 채 밀폐되어 있었지만, 창문 중 하나가 아주 약간 열려 있었다. 그 틈은 너무 작아서,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카이토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가 본 것은 들어갈 수 없다는 불가능이 아니라, 그를 안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다시 두드려 드론의 영상을 해제한 뒤, 지붕의 기와를 타고 내려가 아래에 있는 발코니로 향했다. 난간을 따라 건물 귀퉁이까지 간 카이토는 판자들 아래로 미끄러져 지나간 뒤 다시 벽을 타고 내려가, 도로 위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도 드론이 접근하는 것도, 카이토가 어떻게 그것을 한번에 매끄러운 동작으로 공중에서 낚아챘는 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손 안에서, 금속은 종이처럼 모습을 바꿨고, 몇 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가면 모양이 되었다.
그것은 카이토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 타누키 모양의 카미를 닮아 있었다.
그는 그 날 카미가와의 경계를 뛰어넘어 위대해질 운명을 가진 플레인즈워커가 되었다.
카이토는 장치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황제를 찾기 위해, 그는 보세이주까지 불꽃의 카미를 따라갔다. 하지만 숲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의 친구가 아니라 그의 운명이었다.
그는 비를 맞으며 어깨를 으쓱한 뒤, 가면을 얼굴에 대고 두건을 정돈했다. 카이토는 위대함 따위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친구를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카이토는 눈에 띄지 않는 유령과도 같이 그림자들을 찾아 거리를 떠났다. 계속해서 길모퉁이를 돌아 가면서 그는 골목길을 따라 토와시의 중심부로 향했다. 우뚝 솟아 있는 아파트 건물에 다다르자, 그는 건물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제국의 사무라이들은 문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금속 갑옷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갑옷들은 은신이 아니라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불필요한 소음이 너무 많아, 카이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난간 위로 뛰어올라 작은 발코니에 발을 디뎠다.
시간은 그를 더 이상 어린 아이도 제국민도 아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붕을 가로질러 올라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창문을 통해 몰래 안으로 들어가는 카이토였다.
장갑을 낀 손으로 유리창을 밀면서, 카이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살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에서는 벽난로의 불빛이 탁탁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카이토는 움직임을 느끼고, 곧장 시선을 난로가 있는 쪽으로 보냈다. 그는 불꽃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카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씨가 빛나며 반대편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 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 말고는 없어."
카이토는 눈썹을 치켜떴지만 몸을 돌리지는 않았다. "창문을 열어 두다니 사려가 깊네."
짜증난다는 듯이 씩씩대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건 우리 둘 다 알고 있지 않아? 차원 간 여행에서도 예절을 못 배웠는데, 그런 희망을 가지는 게 무의미하지."
"내가 정말로 예절을 배우고 싶었으면," 카이토는 그의 누이에게 바라보며 말했다." 곧장 너한테 갔겠지."
에이코는 입술을 살짝 들어올리며 미소지었다. "만나서 반갑네."
카이토는 타누키 가면을 머리 뒤로 밀어올렸다. "나도 만나서 반가워." 그는 자신의 누이를 보는 기쁨과 그녀가 자라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현실을 한데 짜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망설였다. 그는 그녀가 제국민이라는 사실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거리감은 싫어했다. "너가 요즘에 궁전 밖으로 나오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알아."
"힘든 일이야," 에이코가 수긍했다. "리소나는 소켄잔 산맥에 있는 아사리 반란군 뿐만 아니라 토와시와 지하도시에도 스파이들이 카미가와 전역에 지지자를 가지고 있어.
"내 기억에 넌 네 앞가림을 꽤 잘 했던 것 같은데." 카이토가 반박했다.
"난 이제 제국의 참모가 됐어. 내 스스로 말고도 고려해야 할 게 많아."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카이토는 불쾌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말은 그에게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그가 에이간조를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누군가를. "가벼운 발도 같이 있어?"
그들은 10년 사이에 마주친 적이 없었다. 카이토가 고의적으로 자신의 전 스승을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다시 만나는 것을 바라고 있지도 않았다. 카이토는 가벼운 발에 대해서 아직도 살갗 아래에 멍이 든 것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코는 고개를 저었다. "가벼운 발은 외교적인 회의에 참여할 시간이 없어. 반란을 막는 중에 다른 재판부 임원들이 더 많은 권력을 얻겠다고 서로 등을 돌리지 못하게 하느라 너무 바쁘거든." 그녀의 목소리에는 답답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사리 반란군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어. 황제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리소나는 제국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지지자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되겠지."
카이토는 제국민들이 자유를 구속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지침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카미와 협상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카미가와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카이토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황제 폐하는 돌아오실 거야." 카이토는 자신이 잃은 것, 그리고 카미가와가 잃은 것에 대한 기억에 목이 메였다.
그는 그녀를 찾기 위해 여러 차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그의 불꽃에 불이 붙었을 때나 지금이나 전혀 그녀에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카이토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 금속 팔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플레인즈워커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 말은 황제가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에이코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기를 바래. 카미가와를 위해서도, 그리고 너를 위해서도."
카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때로 낮이 길고 조용한 저녁이 찾아올 때, 그의 가슴에서는 그 사건이 일어났던 날 쿄다이의 방에 서서 친구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와 똑같은 아픔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픈 가슴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누이를 몇 달 만에 만난 것이었고, 함께 있는 시간을 슬퍼하며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넌 항상 나에 대해 걱정하기를 좋아했지." 그는 그녀를 약올리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게 여기 토와시까지 제국의 드론을 보내는 위험을 감수하려 했던 이유야?"
에이코는 입술을 오므렸다. 이런 주고받음은 그들에게 익숙했고, 오래된 습관들이 그들도 모르게 다시 쉽게 튀어나오게 해 주었다. 그리고 농담은 항상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이 도시를 살피고 있는 게 너만 있는 건 아니야, 카이토. 네가 곤경에 처했으면, 나도 그 일을 알았을 거야."
그 말은 카이토의 입에서 너무 쉽게 흘러나왔다. "내가 이 차원을 떠나야만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니, 꿈에도 몰랐네."
에이코는 눈을 깜빡였다. "작별인사도 안 하고 또 떠나기만 해 봐."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이토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는 궁전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에이코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난 것에 대해서는 후회했다.
그 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에이코는 그들이 불꽃의 카미를 추적하고 있었을 때 카이토와 함께 보세이주의 안에 있었다. 그녀는 카미가와에서 황제의 실종에 금속 팔을 가진 남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그의 말이 옳다고 믿는 유일한 제국민이었다.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런 흔적들은 때로 아픔을 남겼다.
카이토는 당황해 하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오, 제발. 이젠 용서해줄 때도 됐잖아. 난 숲 지구에서 네 목숨을 구해 줬다고. 두 번이나."
"그건 실제로 일어난 일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것 같은데. 넌 아무런 눈치도 못 채고 카미들의 영역을 헤집고 다녔어. 불꽃에 불이 붙었을 때까지 살아남았던 게 운이 좋았던 거지."
"넌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미 외교관이었어."
"아첨해 봐야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네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지."
그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서 메아리쳤다. "한 방 먹었네."
에이코의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미래주의자들이 현실의 물리 법칙을 교란시킬 수 있는 불법 생체 강화제를 연구한다는 소문을 들었어. 아마도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면 얼굴 가죽을 좀더 두껍게 할 수 있을 지도 몰라."
카이토의 미소가 약간 희미해졌다. 아픔을 동반하는 또 다른 기억. "우린 악당이 아니야. 우리는 기술로 실험하는 것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전쟁을 시작하는게 아니라 돕기 위한 한걸음이라고 믿어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 기술은 이미 가지고 있어."
"맞아, 하지만 누가 거기에 접근할 수 있지? 허가증이나 업그레이드된 마더보드를 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어떤 힘이라도 얻기 위해서 카미의 축복을 기대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우리 둘 다 그게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 알고 있지."
"모든 사람이 힘을 가지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만둔 거야?" 에이코가 반박했다. "제국은 퇴보를 원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병합 관문을 건설하고 그것들을 보호해야 하고, 카미들은 확장하는 우리의 도시를 그들의 고향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해. 그들이 우리의 발명품을 그들의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필멸자들의 세계와 신령 세계 둘 모두를 위해, 균형은 필요해."
"소수에게만 힘을 주게 되면 언제나 분열을 만들어내게 돼. 기술은 경기장을 고르게 만들어 주지. 부자나 엘리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말이야. 우리들은 더이상 카미들의 마법에 의지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
"누구로부터 그렇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해 봤을 땐, 너와 같은 걸 원하는 자들은 전쟁을 시작하려는 자들뿐이었어." 에이코가 냉정하게 말했다.
"난 반란군을 지지하지 않아," 카이토가 명확하게 말했다. "그러나 쿄다이는 황제가 사라진 후로 제정신이 아니었어. 병합 관문에 문제가 생겨서 파괴적인 카미가 풀려나면 어떻게 되겠어? 필멸자와 신령 세계가 하나가 되는데 천 년이 걸릴 수도 있어. 불확실성이 천 년 동안 지속되는 거라고. 카미 전쟁은 전설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다시는 그런 위협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에이코의 목소리가 경직되어졌다. "카미는 우리의 적이 아니야."
"우리는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몰라." 카이토는 가만히 서서, 마른 침을 삼켰다. "황제 폐하는 쿄다이의 사원에서 납치됐고, 아무도 그 일을 직접 보지 못했어."
그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너무 늦었고, 너무 약했으며, 너무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그랬다.
에이코의 얼굴이 굳었다. "그 날에 네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어."
"우리에게 더 나은 기술이 있었다면—"
"애초에 황제 폐하께서 납치된 이유가 규제되지 않은 기술 때문일 수도 있어!" 에이코가 두 뺨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끼어들었다.
카이토는 쏘아보았다. "제국은 이미 아무런 증거도 없이 미래주의자들과 반란군에게 책임을 돌렸어. 그들은 거의 전쟁을 일으킬 뻔 했지."
에이코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이 없었다.
카이토는 누이의 눈 속에 담겨 있는 망설임을 보았다. 그녀는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뭔가 들은게 있어?" 그는 눈을 깜빡였고, 희망이 해일처럼 그의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황제 폐하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아?"
"아니," 에이코가 말했다. "하지만 첩보가 약간 들어오기는 했어." 심지어 침침한 난롯불의 불빛 속에서도, 카이토는 그녀의 눈길에 담겨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든, 그것은 카이토에게 이야기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다급한 듯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만약에 황제 폐하와 관련된 일이면—"
"타메시에 대한 거야." 에이코가 말을 가로막았다.
카이토의 생각이 멈췄다. 그는 자신이 그녀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타메시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에이코의 시선이 문간에 고정되었다. 카이토는 그녀가 그렇게 불안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옷깃 안으로 손을 넣어 종이 부채 모양을 한 작은 도구를 꺼냈다. 그녀가 엄지손가락으로 쓸어올리자, 그것의 가장자리가 펼쳐져 작은 반구를 만들어냈다. 에너지가 바깥으로 발산되어, 남매의 주변에 하얀 빛의 고치를 만들어냈다.
"소음 억제기라고?" 카이토는 가슴 위로 팔짱을 꼈다. "경호원도 못 믿는 상황이면 심각해 보이는데."
에이코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내 정보원들은 한동안 타메시를 감시해 왔어. 그는 카미와 관련된 불법 병합 연구를 거래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내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정보를 제국에게 넘길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심각하게 잘못 생각한 거야." 카이토는 이를 악물었다. "에이코, 넌 내 누이고, 난 널 사랑해. 하지만 나한테 네 스파이가 되어 달라고 하는 거면
"도와줬으면 해서 말해 주는 게 아니야. 이건 애초에 너한테 말하면 안 되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에이코는 콧등을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그냥 병합 연구 뿐만이 아니야. 그가 누구와 같이 있었는지가 문제야." 그녀는 한숨을 쉬며 손을 축 늘어뜨렸다. "타메시가 지하도시에서 어떤 남자와 만난 게 목격되었어. 금속 팔을 가진 남자였지."
그의 등 뒤에서 파직거리며 타오르는 장작과는 상관 없이, 카이토는 그의 가슴 속에서 반항의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보원들이 뭘 봤다고 생각하든 간에, 그자들은 틀렸어."
타메시는 숲 지구에서 둘 모두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황제에 대해서도, 카미에 대해서도, 그리고 카이토가 찾고 있는 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카이토가 자신의 친구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은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타메시가 그렇게 중요한 일을 숨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럴 리가 없었다.
"날 믿어, 나도 그게 사실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절대 너한테 정보를 공유해 주지 않았을 거야." 에이코의 어깨가 축 쳐졌다. "특히나 이 건에 대해서는 더욱 더."
카이토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타메시가 날 배신할 리가 없어."
"난 내가 아는 걸 이야기해 주는 거야," 에이코가 말했다. "10년 전에 넌 절대로 황제 폐하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맹세했지. 타메시가 금속 팔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으면서도 너한테 그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알아내고 싶지 않아?"
"네게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을 거야," 카이토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 친구를 희생양이 되게 밀고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라고 하는 게 아니야. 우리도 똑같이 가능한 빨리 황제 폐하를 찾고 싶어. 난 그저 네가 옳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는 거야.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카이토는 씁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타메시가 그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만무했다. 그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터였다.
과연?
"카미가와에는 통치자가 필요해," 에이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국민들 사이의 균형을 회복시켜 줄 누군가가 말이야."
카이토는 턱을 기울이면서 그의 누이를 바라보았다. "난 왕좌가 균형을 되찾는 열쇠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황제 폐하를 찾기 위해서라면 난 무엇이든 할 거야."
그는 오랫동안 타메시를 믿어 왔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오래 에이코를 믿어 왔다.
그녀의 정보가 맞든 틀리든, 카이토는 그 흔적을 따라갈 정도로 자신의 누이를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염탐하는 것만이 그의 결백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타메시도 그를 용서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카이토는 반구의 보호 영역 바깥으로 나가, 창가 쪽으로 움직였다.
에이코는 금속 부채를 휙 튕긴 뒤 소맷자락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미안해, 카이토." 그는 그녀의 침울한 목소리를 듣고 난간 근처에서 잠시 멈춰섰다. "네게 그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
카이토는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타메시가 정말로 금속 팔을 가진 남자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가 그동안 황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들의 우정은 카이토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카이토는 돌담에 등을 기댄 채로 골목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오타와라는 높은 구름 위에 떠 있었고, 때때로 카이토는 그로 인해 떠다니는 도시에는 그림자가 적고, 숨을 곳은 훨씬 더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의 타누키 드론은 너무 알아보기 쉬워서 타메시와 관련해서는 사용할 수 없었기에, 카이토는 자신의 눈과 귀, 그리고 순수한 결심이라는 구식의 방법으로 그를 따라다녀야 했다. 몇 주를 보내며 정보를 계속 수집하는 동안, 카이토는 자신이 쓰게 된 새로운 가면을 싫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짓말쟁이라는 가면.
그는 친구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선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카이토는 여러 번 이 모든 것이 오해였다고 거의 확신했다. 에이코가 틀렸고, 그 자가 쿄다이의 사원에서 보았던 자와 똑같은 플레인즈워커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카이토가 밝혀낸 모든 정보는 그의 여동생이 자신에게 말해 준 것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었다.
타메시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카이토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래주의자들로부터도 말이다.
카이토는 마치 자신의 신념이 오타와라의 다른 사람들과 일치한다는 것처럼 미래주의자 부서에서 일하는 타메시를 매일 같이 지켜보았다. 그런 뒤 해가 지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집에 갔을 때, 타메시는 연구실에 남아서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카이토는 타메시가 어두운 뒷골목에서 도난당한 강화제를 거래하며 악수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친구가 한밤중에 자신의 비밀스러운 직장에 화물 상자를 몰래 들여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규제되지 않은 드론들이 건물을 떠나 토와시의 지하도시로 직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타메시가 무언가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카이토에게는 그의 배신에 대한 증거가 필요했다.
타메시가 건물의 정문에 나타났고, 드론은 이미 그의 손 위에서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리본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용을 살짝 밀어 그것을 공중으로 띄워올렸고, 그것이 숲 위를 훑고 지나가며 그 아래에 있는 지면을 탐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소매에 달린 패널을 확인했고, 시간을 관찰하면서, 우아하게 한 발을 내밀더니, 허공으로 날아가 수평선을 향해 사라졌다.
카이토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타메시의 동료들은 이미 몇 시간 전에 집에 갔다. 그는 허리띠에서 가장자리를 따라 푸른 빛을 내는 작은 표창 한 개를 꺼내 가장 가까운 보안 카메라를 겨냥했다. 그가 손목을 날카롭게 휙 튕기자, 표창이 회전하며 공중을 날아가 카메라 옆에 부착되었다. 표창이 한 번, 그리고 두 번 깜빡였다.
그러자 빛을 발하던 가장자리가 녹색으로 변했다.
마스크를 쓰고 두건을 꽉 졸라맨 카이토는 골목을 빠져나와 타메시의 건물 정문으로 곧장 걸어나왔다. 장치가 영상을 정지시켜 주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카메라도 그를 볼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타메시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기에 그는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타일이 깔린 바닥은 차갑고 텅 빈 뼈처럼 메아리쳤고, 카이토는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추위에 맞섰다. 그가 이 건물 안에 들어왔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외부인이라고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배신자처럼, 그의 정신은 계속해서 그 단어를 떠올려댔고 그는 그 생각을 어떻게든 밀어내려 했다.
카이토가 타메시에 대해 틀린 것이라면, 그는 앞으로 닥치게 될 수도 있는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일 작정이었다. 하지만 타메시가 여태껏 그에게 거짓말을 해 온 것이었다면
카이토는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황제를 위해서라면 일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렇게 할 것이였다.
그는 타메시의 연구실로 통하는 금속문을 통과하면서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침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키 카드나 거대한 메크 없이는 불가능했다.
또한 카이토는 실험실을 산산조각 내버리게 되면 증거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대신에, 카이토는 곧장 타메시의 사무실로 향했다. 데이터 칩과 서류작업이 뒤섞인 채로 쌓여 있는 거대한 책상이 그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카이토는 구석에 놓여 있는 동그란 등불의 옆을 손가락으로 눌러,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카이토는 등불을 들어올려 자신의 옆에 안정적으로 떠 있게 했다.
그는 방에 있는 모든 서랍과 캐비닛을 뒤졌고, 타메시의 책상 위에 있는 모든 종이 조각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카이토는 한 파일 아래에 암호화되어 있는 메시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이토는 타메시가 가르쳐 준 모든 기술들을 배웠었기에 그것을 해독해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메세지는 아주 애매했지만, 지하도시에서 만나자는 요청인 것처럼 보였다. 만나러 가기에 지하도시는 아주 먼 길이었다. 지하도시는 카미가와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인 보세이주의 그늘과 토와시의 고층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는 곳이었다. 평범한 사업을 하기에 실용적인 위치가 아닌 것만큼은 분명했다.
오타와라에서 이렇게 멀리 가야 한다는 것은
카이토는 손가락으로 책상의 가장자리를 두드리면서, 메시지에 적힌 날짜와 시간을 재차 확인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만남은 오늘밤에 곧 열릴 예정이었고 타메시가 향한 곳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대체 그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카이토의 시야에 서류작업 무더기 뒤에 숨겨져 있던 데이터 칩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타누키 가면에 연결하고, 암호화를 우회하는 데 잠시 시간을 들인 뒤, 내부 패널에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가늘고 네모난 모양을 한 이상한 장치의 청사진이었는데, 그 안에서 철사와 같은 가는 팔들이 해파리처럼 뻗어나오고 있었다. 카이토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타메시가 그 금속 팔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증명해주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카이토는 지하도시에서 벌어지는 만남에 끼어들어야만 했다.
카이토는 타누키 가면에서 데이터 칩을 꺼내 종이뭉치 아래에 끼워넣었다. 그는 책상에서 물러나면서 손가락을 구부려 등불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린 뒤,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문을 안전하게 통과했을 때, 카이토는 손가락을 튕겨 장치를 카메라에게서 떼어냈고 그 장치는 다시 카이토에게 돌아왔다. 그는 공중에서 그것을 잡아, 벨트에 집어넣은 뒤, 하늘 수송선으로 향했다.
카이토는 쉽게 지하도시의 아랫부분을 통과했다. 한밤중이 아니기는 했지만, 햇빛이 그가 있는 곳까지 다다르지 않았고, 도시의 네온 불빛들은 이 좁은 거리에까지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탁한 물길은 벚꽃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러한 매력적인 아름다움조차 대기에 퍼져 있는 땀과 오수의 악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월인들은 지하도시를 방문하는 일이 드물었고, 낯선 이들은 기꺼이 적은 비용으로 정보를 제공해 주었기에 타메시를 추적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이토는 친구의 흔적을 따라가 부두에 도착했다. 도시의 가장자리에는 광원이 부족했고, 운하의 물은 거의 칠흑같이 어두웠다. 카이토는 그의 입술에서 불쾌한 신맛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지하도시의 하수구에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생긴 화학적 얼룩이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문제가 생기면 검을 뽑아들기 위해 손을 옆구리에 가져다 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발견하게 될 지 몰랐지만, 만에 하나 금속 팔을 가진 남자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를 그냥 도망치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환풍구들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증기가 부두의 가장자리를 가로질러 돌아다니는 카이토의 발자국을 가려 주었다. 금속 컨테이너들이 균일하게 줄지어 쌓여 있었기에 숨을 곳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카이토의 시선은 앞쪽에 있는 창고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곳에서는 넓은 창고 문의 안쪽에서 빛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카이토는 마스크를 벗어, 히모토가 다리 네 개를 가진 드론으로 변신하게 했다. 그것은 창고를 향해 조용히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카이토는 등 뒤로 손을 뻗어 검을 붙잡았다. 손잡이를 튕기자, 칼날이 확장되며 두 줄의 날카롭고 뾰죡한 톱날이 드러났다.
카이토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드론을 뒤쫓아가면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창고 안에서, 타누키 드론은 서까래 위에 있는 어두운 공간에 떠 있었다. 방의 대부분은 금속 상자로 채워져 있었지만, 맨 끝에 있는 트인 공간에는 탁자들과 실험실 장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빛나는 비커들이 마치 미로처럼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것들 중 일부는 네온 액체의 거품이 일고 있었고, 다른 것들은 에너지를 발하며 타닥거리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넓은 삼각형처럼 생긴 기이한 모양의 칼과, 나뭇가지처럼 얇은 칼과 같은 수술 도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기이한 금속 색채를 발하고 있는 혈청이 가득 들어 있는 비커들이 작업대 위에 늘어서 있었고, 금속 조각들과 헝클어진 전선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처럼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불안감이 카이토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 실험들은
카이토가 히모토를 실험실 장비 쪽으로 더 가까이 가게 하려던 찰나,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고 카이토는 행동을 멈췄다. 문가에서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논쟁이었다.
드론의 카메라에도 불구하고, 카이토가 아래쪽에서 볼 수 있던 것은 너무나도 큰 그림자가 전부였다. 그 그림자가 움직였을 때, 카이토는 그 형상의 목소리에서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것 같은 비정상적인 떨림을 들었다.
"살덩어리들이 예전에 유용했는지는 상관없다. 의심과 나약함은 완전함으로부터 제거되어야 해."
한 컨테이너 근처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고, 걸걸한 목소리가 무언가 카이토가 알아듣지 못한 말을 중얼거렸다.
거대한 형체가 다시 한 번 움직이면서, 빛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나왔다. 기괴한 괴물이 나타나자 카이토는 숨을 죽였다. 그것의 몸은 크롬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발톱이 있는 팔과 구부러진 척추를 가지고 있었다. 노출된 갈비뼈와 뾰족한 척추뼈가 금속 세공품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의 얼굴과 입은 괴물 같고 마치 새처럼 생겼으며 얼굴을 뒤덮은 날카로운 바늘들과 길고 평평한 이빨은 심지어 창고 밖에 있던 카이토조차도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게 할 정도였다.
이자는 카이토가 쿄다이의 사원에서 보았던 금속 팔을 가진 남자가 아니었다. 이 자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였다.
그 생물은 부자연스런 걸음걸이로 그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했고, 카이토는 자신의 드론을 그림자 속으로 더 깊숙히 끌어당겨 드론을 숨겼다.
"필요한 재료의 연결을 완료하고 확보한 표본들을 이송해라." 괴물이 돌아섰고, 그의 턱이 움직이는 것과 함께 금속이 덜컥거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카이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행 속도를 늦추지 마라. 피실험체들이 완전히 의식을 되찾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다."
한 무리의 심복들이 드론의 카메라에 나타났다.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응징자들 같았다. 거의 열 명은 되어 보이는 그들은 급히 탁자에서 장비를 옮겨 대기 중이던 차량에 실었다. 그들은 형형색색을 발하며 부글거리고 있는 비커들은 내버려둔 채 큰 컨테이너들 중 하나를 차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무기 같은 걸 보관하기에 완벽한 크기로군, 카이토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타메시는 대체 어떤 일에 연루된 거지?
심복들이 화물을 부분적으로 차량에 싣고 있는 도중에,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카이토는 어딘가에 갇혀 있을 지도 모르는 황제의 생각에 가슴이 아파 왔지만, 화물 안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웠다.
그 소리는 마치 카미의 것 같았다.
그는 조사하고 싶었다. 그는 컨테이너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그것이 이 창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고, 카이토는 열명 남짓한 응징자들과 괴물 하나를 혼자서 모두 상대해낼 수 없었다.
"비커들은 어떻게 할까요?" 심복들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그 생물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량을 향해 나아갔다. "모든 증거는 근절되어야 한다. 작업의 확장은 살덩어리들이 풍부한 곳에서 계속될 것이다."
비열한 미소와 함께, 그 응징자는 몸을 돌려, 비커들 중 하나를 집어들어 나머지 비커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
폭발이 일어나자 카이토는 경계하면서 칼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는 재빨리 눈을 깜빡이며 관자놀이를 눌러 드론을 다시 불러들였고, 차량이 빠르게 멀어지면서 우르릉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불길이 쉭쉭대며 성난 듯이 빠직거리는 소리가 그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또한 파괴되고 있는 단서들도 있었다.
카이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가, 이미 창고 안쪽의 한쪽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형형색색의 불길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몇 분만 더 지나면, 건물 전체가 집어삼켜질 터였다.
그는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탁자들을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남겨진 것들은 이미 불에 타고 있었고, 불길은 멈추기에는 너무 사납고 너무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카이토의 어깨가 축 늘어지려는 것과 동시에, 그의 등 뒤 어디에선가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그가 검을 빼어들고 몸을 돌리자, 타메시가 창고 구석에 있는 컨테이너 옆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입고 있던 긴 로브의 천 한가운데가 금속 팔로 긁혀 쭉 찢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카이토가 자신의 친구에게서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창백한 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타메시는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카이토는 칼을 칼집에 넣은 뒤 친구의 곁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의 뒤에서 타오르고 있는 비커들처럼 그의 가슴이 산산조각난 것만 같았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메시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고개를 들었다. "카이토
카이토는 고개를 젓고 또 저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또다른 친구를 잃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죽음은 그와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타메시의 목소리는 먼지처럼 희미했다. "나는—나는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 하지만 네게 거짓말을 한 게 가장 최악이었지."
카이토는 그의 등 뒤에서 불길이 포효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타메시를 옮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을 더 가속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시간이 단지 몇 초 뿐이라면
그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평화와 용서를 주고 싶었다. 친구가 받기에 합당한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황제 폐하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해 줘요," 카이토는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그에게 간청했다. "금속 팔을 가진 남자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타메시의 눈이 흔들렸다.
"안돼!" 카이토는 친구의 로브를 잡아 끌어당겼다. "아직은 가면 안 돼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떠나지 마요."
싸움의 마지막 속삭임처럼, 타메시가 마지막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너무나 많은 상처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카이토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간이 다하고 있었다.
"테제렛," 타메시는 마치 주문을 깨는 것처럼 속삭였다. 그런 뒤 그는 숨을 거뒀다.
카이토는 숨이 막히는 듯이 꺽꺽대며 울었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마치 카이토의 살갗을 태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등에서 불길이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같은 열기를 느꼈다.
이를 악문 채로, 카이토는 타메시의 눈을 감겨 준 뒤 말없이 작별인사를 했다. 비록 잘못된 행동이라고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는 그의 친구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의 연구실로 들어갈 수 있는 키 카드를 꺼냈다.
타메시는 죽었을지 모르겠지만, 카이토에게는 할 일이 더 있었다.
그의 타누키 드론이 옆구리에 나타나, 다시 접혀서 가면으로 모습을 바꿨다. 카이토는 얼굴을 가리고 친구의 시체 위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괴로움과 싸우며 걸어갔다.
그의 뒤에서 창고가 불길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