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트마크 상공 높은 곳, 베스키르 요새의 수많은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기둥 사이를, 까마귀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날고 있었다. 까마귀는 하루에 백 마일을 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이 까마귀는 막 그 일을 마친 참이었다. 그것은 칼날 산맥의 높은 능선을 지나며, 화염 거인들이 절벽을 타고 산을 오르는 것과 투스케리 전사들이 통나무와 바위를 굴려 그들을 다시 땅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검은 눈 한 개만이 달린 그 까마귀는 스켈레 부족이 습지에서 모여들어 전쟁 준비를 하며 피의 서약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함대에 속한 배들이 서풍을 받고 항해하면서 수평선에 점점이 늘어서 있는 해안선을 따라 얼마 동안 날아가, 큰일이 났을 때 모든 무리가 모여드는 브레타가르드의 한 장소로 향했다.

Bretagard Stronghold
Bretagard Stronghold | Art by: Jung Park

펠트마크 상공 높은 곳, 베스키르 요새의 수많은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기둥 사이를, 까마귀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날고 있었다. 까마귀는 하루에 백 마일을 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이 까마귀는 막 그 일을 마친 참이었다. 그것은 칼날 산맥의 높은 능선을 지나며, 화염 거인들이 절벽을 타고 산을 오르는 것과 투스케리 전사들이 통나무와 바위를 굴려 그들을 다시 땅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검은 눈 한 개만이 달린 그 까마귀는 스켈레 부족이 습지에서 모여들어 전쟁 준비를 하며 피의 서약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함대에 속한 배들이 서풍을 받고 항해하면서 수평선에 점점이 늘어서 있는 해안선을 따라 얼마 동안 날아가, 큰일이 났을 때 모든 무리가 모여드는 브레타가르드의 한 장소로 향했다.

그 까마귀는 요새를 에워싸고 있는 두꺼운 벽을 지나, 안뜰에 있는 풀을 엮어 만든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그 아래에서는 숫돌에 무기를 가는 소리와 사슬갑옷에 철판을 덧대는 소리가 한창 시끄러운 가운데, 목소리 두 개가 두드러지게 들렸다. 길을 가려던 까마귀는 이를 들으려 잠시 멈췄다.

"동부 지역을 잃었고, 곧 알더가르드 전체가 될 거야," 나이가 더 많은 쪽이 말했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막 내린 눈의 색을 띠고 있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낡았고, 질기며, 거칠어 보였다. 그의 등에는 밝은 빛을 내며 반짝이는 듯한 소재로 만들어진 넓은 방패가 걸려 있었다. "여태껏 트롤들이 한 곳에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어. 거기다 서로 협동까지 하고 있다니."

젋은 쪽이 웃었다. "카나 부족이 하기 몇 마리에게 고생을 하고 있다고요? 우리 부족원 한 명은 어제 악마를 하나 쓰러뜨렸지요. 이제는 젊은이들이 다 그 다음 차례는 자기 거라고 입을 다시고 있어요." 이 자의 머리 옆에는 이상하게 뼈가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마치 검치호가 그의 두개골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되려 중간에 이빨을 잃은 것같이 말이다.

"그렇게 신이 나 있으면, 여기서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나이가 많은 쪽이 툴툴댔다.

다른 쪽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시다시피, 부족의 지도자라면 지켜야 할 의무들이 있잖아요."

경비병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둘 앞에서 교차하고 있던 창을 바로 한 뒤 나무로 만들어진 무거운 문을 열어젖히자, 문은 전사들이 온 힘을 다해 미는 힘에 의해 삐걱거리며 천천히 열렸다.

"투스케리 부족의 상처난 눈썹의 아르니, 그리고 카나 부족의 송곳니운반자, 핀이 입장합니다," 경비병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안에는 네 형체가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멘패스탐색꾼들의 지도자인 룬의 눈을 가진 잉가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이 요새는 신의 은혜를 받은 자, 시그리드의 것이었다. 다른 두 명—검은 피부를 가진 여성과 붉은 머리칼을 땋은 엘프—는 처음 보는 이방인이었다.

둘 중 나이가 많은 쪽인 핀이 허리에 차고 있던 도끼를 그러잡았다. "코마의 숨결에 걸고 저 놈이 왜 여기 있는 거지?"

경비병들이 문을 반쯤 닫고 있다가 황급히 무기를 챙기려 했지만, 시그리드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잉가?"

룬의 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자는 스켐파르의 타이바르고, 이쪽은 다른 곳에서 온 카야라고 하네. 이들은 친구지. 그리고 지금은 찾을 수 있는 친구는 다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고."

"이무기에게 아부나 해 대는 엘프 따위가 내 친구가 될 일은 없어," 핀이 으르렁거렸다. "특히 그놈들의 왕자라면 더욱 말이야."

Fynn, the Fangbearer
Fynn, the Fangbearer | Art by: Lie Setiawan

그는 아직 무기를 꺼내 들지 않았지만, 그럴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타이바르는 아직 자신의 의자에서 일어서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엘프들이 전쟁을 하면 죽게 되는 건 인간들뿐만이 아닐걸. 하지만 내 형이 군대의 선두에 서서 이곳에 도착할 때 당신이 내 형을 헐뜯을 사람이란 건 분명해 보이네."

"헐뜯기만 할까 보냐. 땅속에 묻어 주마."

"그만," 시그리드가 소리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핀, 내 손님들을 모욕하라고 당신을 이곳에 초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하면 이번 주를 살아서 넘길 수 있을지를 논의하려고 초대한 겁니다."

핀은 마지못해 긴 탁자를 둘러싼 의자 중 하나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르니도 똑같이 했다. "자! 뭔가 계획이 있을 거고, 거기엔 엄청나게 대담한 행동과 용기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우리에게 승산이 없는 건 알고 있어요." 그는 이 점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시그리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트롤, 악마, 거인들—서리와 화염 둘 다—이 세계 너머에서 달려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드라우그르에 대한 보고도 들리고 있고, 이건 카르펠의 망자의 군대인 드레드 마른이 돌아왔다는 것을 뜻하죠. 네, 우리에게 승산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이 입만 산 엘프 말고 말이야?" 핀이 중얼거렸다.

"그래," 카야가 말했다. 그녀는 탁자 아래에서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은 검을 들어 올렸다; 반투명한 칼날 안에서는 파란색 빛과 초록색 빛이 그들의 눈앞에서 물결치며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검을 탁자 위에 내려놓자 둔탁한 쨍그랑 소리가 났다.

"그거 혹시—" 핀이 말했다.

"세계의 검입니다," 시그리드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콜이 그 망할 녀석을 끝내 완성했나 보군," 아르니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그렇죠," 시그리드가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휘두를 수 있는지는 그가 비밀로 무덤까지 가지고 갔습니다.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깬 사람은 핀이었다. "하지만 그 지식이 없으면, 저건 단순한 칼일 뿐이야. 타이라이트로 만들어낸 검인 건 맞지만, 좋은 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둠스카르를 막아낼 수는 없어."

"휘두를 수 있는 자가 아직 한 명 있긴 하지," 화롯불의 빛이 닿지 않는 방구석 어두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섯 번째 형체가 그림자로부터 걸어 나왔다. 길고 무거운 여행용 망토를 두른 노인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올라타 있었다. "그 검의 주인이 돼야 했을 신. 전투의 신, 할바르 말이네."

Strategic Planning
Strategic Planning | Art by: Donato Giancola

그의 눈에서는 희미한 빛—검의 칼날 안에 얼어붙어 있는 것과 똑같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룬드 앞에서는, 핀조차 아무 말이 없었다.

"할바르는 우리 편이야," 카야가 말했다. "하지만 그를 찾아가는 일에는 노력이 좀 필요해."

칼드하임의 신들 중 한 명을 만난 충격에서 회복한 아르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위험천만한 여정이 되겠군. 이제서야 좀 들을 만한 이야기가 됐잖아."

알룬드의 말에 의하면, 할바르는 베스키르 요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결국 그는 전투의 신이고, 지금은 사방 모든 곳에서 전투가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까마귀가 난 거리로 보면, 그는 꽤 가까웠다.

저 노인네가 저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말한 게 아니어야 할 텐데, 카야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깃털을 한 웅큼 집은 뒤 꽉 움켜쥐었다.

카야가 알고 있는 것은 알룬드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새의 이름이 하카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들을 하늘 위로 옮겨 주고 있는, 큰 검은 날개로 날갯짓을 할 때마다 아래에 있는 넓은 초원의 풀들이 이리저리 나부끼는 거대한 까마귀들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았다. 아니, 말했을 수도 있다—분명히, 소개를 하는 동안 카야는 그것들의 커다란 유리 같은 눈동자에만 관심이 쏠렸기에 알룬드의 말에 그다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것들에게 지성과 호기심이 있다는 점을 확신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반 토막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약간 굽은 거대한 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마리 위에는 시그리드와 핀, 잉가가 탔고, 다른 한 마리에는 아르니, 카야와 타이바르가 탔다.

"저길 봐!" 그녀는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 너머로 타이바르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녀가 가장 처음 본 것은 세계에 난 구멍으로, 창백한 하얀 색 줄이 아래에 있는 호박색 평원을 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누군가가 이 차원에 다른 차원을 평평하게 깔아 놓은 것마냥 완전히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얼어붙은 곳의 공기가 브레타가르드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자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벌어진 틈 가장자리에서는 몸을 질질 끄는 말라비틀어지고 썩어빠진 형체들이 차례로 인간의 세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앞에, 수천 개의 꾸물거리는 형체들이 노란 풀밭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그들은 저것을 드라우그르라고 불렀다. 이름만 다른, 좀비였다. 그 무리 위에 우뚝 서 있는 몇몇 거대한 형체는 길고 숱이 많은 머리칼로 뒤덮여 있었다—카야는 그것들이 토르가 트롤인 것을 알아보았지만, 이것들은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 위에서 확실히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이것들 또한 보병대와 같은 불안정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언데드인 것이 분명했다.

드라우그르와 토르가 트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살이 센 넓은 강 위로 지어진 두꺼운 나무다리를 목적지로 삼아 전진했다. 저 멀리, 카야는 작은 오두막이 모여 있는 마을과 자갈길, 물레방아가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을 앞에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 마을은 기적적으로 손이 닿지 않은 것처럼 온전해 보였다. 다리 위에 홀로 서 있는 형체가 이를 확실하게 해 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았을 때는, 할바르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알룬드처럼 으스스한 신의 빛을 뿜어내지 않았다. 하늘로 파랑, 초록, 보라색 빛을 뿜어내고 있는 틈에 비교해 보면, 그에게는 거의 주목할 만한 요소가 없었다. 이 높이에서 보이는 그는, 왜소한 체구에 투박한 철제 갑옷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앞쪽, 다리 옆 근처에는 처치한 드라우그르가 거의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저 다리로 가야 해," 카야는 타이바르가 자신의 말을 들어 주기를, 그리고 이 거대한 새가 어떻게든 자신의 말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소리쳤다. 시간을 뒤로 되돌려 이 언데드 군대를 그들의 얼어붙은 세계 속으로 다시 빨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등 뒤에 세계의 검을 매 두었다. 그들이 할바르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최소한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얼굴을 돌린 타이바르는 다른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그녀 너머로 지나갔고, 그런 뒤—무언가가 그녀와 태양 사이에서 움직이자 까마귀의 윤기 나는 검은 깃털이 아주 약간 더 어두워졌다.

"조심해!" 공격에 맞기 직전에 타이바르가 말했다. 우드득하는 소리와 새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카야는 갑자기 까마귀의 등 위에서 허공으로 날려졌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떨어지고 있는 그녀에게 개별적인 순간들로 보여졌다. 까마귀는 날개가 부자연스럽게 비틀려 있었고, 타이바르와 아르니는 추락하기 시작하면서 두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있을 리 없는 손잡이를 찾았다. 무엇보다도, 너덜너덜한 가죽 날개 두 개가 달린 뿔 달린 거대한 형체가 긴 손잡이가 달린 무거워 보이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Varragoth, Bloodsky Sire
Varragoth, Bloodsky Sire | Art by: Tyler Jacobson

그녀가 지난번에 그를 보았을 때보다 더 가까웠다. 심지어 추락하면서 악마에게서 멀어지고 있는데도, 그녀는 아무렇게나 자라난 수염처럼 걸려 있는 멍든 색깔의 살덩어리들을 알아보았고, 그의 미치광이 같은 두 눈에서는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던 분노가 끓어올라 넘쳐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라고스가 다시 무기를 휘둘러 도끼를 까마귀의 옆구리로 밀어 넣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카야는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져 있는 채로 빙글빙글 돌며 계속해서 추락했다.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생각하라고!

그녀는 바람에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그녀의 아래에는 강물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높이에서 떨어져 강물에 부딪히는 일은 바위 위에 떨어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추락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었다—필멸자의 육체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라면 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타이바르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것에 기대할 수 없었다. 카야는 몸을 곧게 펴고 팔과 다리를 펼쳐 낙하 속도를 늦췄다. 그녀는 아래쪽에서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지면보다는 그녀의 주변에 있는 하늘에 집중하려 했다. 알고 보니, 아르니는 그녀에게서 가까웠고, 아마도 5피트 정도 옆에서 죽음을 향해 떨어져 내려가며 미친 듯한 전쟁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타이바르는 아마 20피트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의 우아함이나 균형은 하늘에서 추락하는 동안에는 무용지물이 되어 자신의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르니를 붙잡은 뒤, 그의 브로드소드를 등에 붙들어 맨 끈 사이로 한 팔을 집어넣었다. "몸을 곧게 펴고 팔을 뒤로 뻗어!" 그녀는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그는 그렇게 했고, 그녀도 똑같이 따라하자 그들은 그 즉시 타이바르 쪽을 향해 더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래쪽에 있는 수풀은 더이상 그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곳이 아니라 풀줄기가 흔들리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드라우그르의 투박한 강철 칼날을, 그들의 갑옷에 여전히 서리가 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거의 강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녀는 놓칠 수 없었다—지금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지면에 충돌하기 약 5초 전에 타이바르와 부딪혔다. 그녀가 필요한 에너지를 불러내기엔 1초면 충분했다. 또 다른 1초로는 그들 모두를 유령화했다. 마지막 3초는 숨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어둠과 추위가 그들을 집어삼켰다—그것은 그들 주위로 밀려드는 강물의 냉기뿐만은 아니었다. 추위가 그녀를 채웠다. 그녀가 추위였다. 혈관으로 흐르는 뜨거운 피도, 폐의 공기도, 그녀에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꾸준하게 상기 시켜 주는 주기적인 심장 박동도 없었다. 그 몇 초 동안, 카야는 죽는 것이 무엇인지, 영혼이, 유령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써서 그들 모두를 실체적인 형태로 되돌려놓았고, 곧바로 그들은 강물의 물살에 휩쓸려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카야는 어느 쪽이 위쪽인지도, 어느 쪽으로 헤엄쳐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던 일이라고는 아르니와 타이바르를 꽉 붙잡아 그들을 한데 뭉쳐놓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 그녀의 주변은 온통 세차게 흐르는 강물뿐이었다. 그녀의 시야 가장자리, 넓은 강의 더 큰 어둠 속에서, 그녀는 물결 속에서 날렵하고 민첩한 몸매를 가진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아르니가 강둑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았다. 카야가 그를 도와서 둘은 타이바르를 물에서 건져냈다. 그는 여전히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었고, 추워하는 것처럼 양팔로 몸을 꼭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사방에 깔린 드라우그르가 너무 놀라 자신들이 몸을 추스리기 전에 공격하지 않은 일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Grim Draugr
Grim Draugr | Art by: Grzegorz Rutkowski

카야는 첫 번째 공격을 피하고 두 번째 공격은 쳐냈다. 그녀는 타이바르를 공격하려는 칼을 튕겨낸 뒤 그 드라우그르의 팔을 어깨 부분부터 잘라냈다. "일어나, 애송이!"

그것들은 느렸지만,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사방에 깔려 있었으며, 자신들의 무리 한가운데에 적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카야는 얼어붙은 하얀 해골을 그녀의 손도끼 중 하나로 쪼갠 뒤, 간신히 그 도끼를 빼내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창을 쳐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면서, 거의 넘어질 뻔했다—아르니가 즉시 그녀의 앞으로 나서 자신의 브로드소드를 크게 휘둘러 드라우그르의 사지를 베어냈다. 저 사람도 유령이 돼본 적이 있나? 카야는 어리둥절한 채로 생각했다.

아르니는 드라우그르의 갈빗대에 칼을 찔러넣고, 그것이 그를 공격하려는 듯이 허망하게 발톱을 휘두르는 동안 칼을 다시 빼낸 뒤,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씩 웃고 있었다. "너희 둘 먼저 가. 난 이 녀석들하고 어울려 줄 테니. 최소한 이게 네가 추락하던 나를 그 으스스한 마법으로 구해 준 것에 대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야."

전사 한 명 대 이 모든 드라우그르라니, 승산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는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카야는 타이바르를 일으켜 세웠고, 그들은 함께 아르니가 베어넘겨 열어낸 틈 사이로 달려갔다. 그녀는 멀리 있는 다리를 볼 수 있었다—거의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지만, 그녀와 다리 사이에는 언데드의 대군이 잔뜩 몰려들어 있었다. 그녀가 페이징을 하기 시작했다면 앞서서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착지"할 때 오랜 시간 동안 유령화했었기에 그녀의 몸이 얼마나 더 부담을 견딜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타이바르도 고려해야 했다.

최소한 들판의 이쪽 부분에는 드라우그르가 덜 밀집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함께 뛰었고, 갈빗대를 박살 내거나 얼어붙은 사지를 잘라낼 때만 잠시 멈춰 섰으며, 그러는 내내 세계의 검은 카야의 등에 매여 있는 칼집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는 그들 뒤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드라우그르 무리의 가장자리와 전투를 벌이는 인간 부족들의 깃발을 볼 수 있었지만, 습격 부대를 모을 시간은 얼마 없었고, 드라우그르는 시시각각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왔다.

드라우그르가 꽉 들어찬 들판 너머로, 카야가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소리가 들려 왔다. 음색과 음조가 여러 번 변화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것은 거대한 야행성 새 또는 늑대의 울음소리였을 수도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울려 퍼지던 그 울음소리에는 그런 야생적이고 섬뜩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타이바르가 얼어붙었다.

"저건 드라우그르의 뿔피리가 아니야," 타이바르가 숨이 가쁜 듯이 말했다.

다시 그 소리가 들려 왔고, 카야는 그 소리를 따라 멀리 떨어진 언덕의 완만한 경사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줄로 늘어선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그들 중 대부분은 오래되어 녹청색 녹으로 얼룩진, 황동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들고 있었다. 몇몇은 창을, 몇몇은 검을 들고 있었다. 카야는 타이바르가 그들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스켐파르의 엘프들이 전쟁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것이었다.

Harald, King of Skemfar
Harald, King of Skemfar | Art by: Collin Estrada

"타이바르,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움직여야 해," 카야가 말했지만, 타이바르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야, 티볼트의 배신에 당한 건 인간들뿐만이 아니야," 그가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거짓말 때문에 내 민족이 싸우고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군대의 선두에는 내 형이 서 있어—나라면 형이 다시 이성을 찾게 할 수 있어."

타이바르는 허세가 넘쳤지만, 마음만큼은 좋은 사람이었다. "좋아, 애송이. 그럼 움직이자고."

"당신은 괜찮겠어?"

카야는 씩 웃어 보이며 가능한 자신 있어 보이려 했다. "난 언데드들을 죽이는 걸로 내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지. 괜찮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달려 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그에게 말한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다—하지만 이 드라우그르들이 좀 더 영체와 같은 언데드였다면 일이 더 쉬웠을 터였다. 카야는 앞으로 밀고 나가며, 필요할 때는 드라우그르들을 베어 넘기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달렸다. 그녀의 주변은 이제 온통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거기에 멀리서는 남녀의 비명이 들려 왔으며, 그녀의 심장의 고동 소리는 점점 더 크게 그녀의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보다 느리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에 한 시간, 1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축을 뒤흔드는 발걸음이 무아지경의 상태이던 그녀를 제정신으로 되돌려놓았고, 그녀는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얼어붙었다. 카야가 공중에 있을 때 보았던 토르가 트롤 중 한 명이 그녀와 다리로 향하는 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그녀는 그것이 썩으며 내는 거의 달콤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한때는 이끼가 덮여 있던 곳의 일부가 하얗게 변해 부스러지거나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생물의 옆구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그녀는 석판 같은 갈비뼈 세 개를, 그리고 그 트롤의 몸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역겨운 푸른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의 눈은 흐리멍텅했고, 죽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날카롭게 숨을 내쉬자, 두 개의 검게 그을린 엄니 사이로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이 막 그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카야의 왼쪽에서 첨벙 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가장 있을 수 없는 것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돌고래였다. 이 모든 혼란과 대학살의 한가운데에서, 그것은 기이할 정도로 웅장하고 순수했다. 촉촉하고 매끈한 회색 피부를 가진 그것은 그녀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헤엄쳐 오고 있었다—카야는 그것이 자신의 옆에 있는 급류에서 뛰쳐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빛나는 피부는 자연스럽게 망토의 모양으로 되돌아갔고, 그 생물은 이제 인간의 다리로 땅에 내려섰으며, 망토는 날씬한 갈색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카야와 트롤의 앞에는 거친 머리칼을 풀어 헤친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이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는 빛을 발하자, 카야는 자신이 칼드하임의 신들 중 한 명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Cosima, God of the Voyage
Cosima, God of the Voyage | Art by: Andy Brase

그녀의 뒤에서는, 강물의 벽이 솟구쳐올라, 마치 살아있는 짐승처럼 몸부림쳤다. 그것은 언데드 토르가 트롤과 드라우그르 한 무리를 휩쓸었다. 그 파도는 들판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브레타가르드에서 광란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부대 하나를 쓸어냈다.

"당신은 누구지?" 카야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말했다. 그녀를 둘러싼 대기에서 소금의 맛이 느껴졌다.

그녀의 앞에 있는 여성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을 빗어넘겼다. 그녀의 두 눈은 이제 지상 세계의 색으로 다시 검게 돌아와 있었다. "얼마 전에 내 배에 타고 있었지. 배는 어땠나?"

코시마. 바다의 여신. "아. 어, 만남이 너무 짧았어."

"그 아이는 변덕이 심하지," 코시마가 친절하게 말했다. 그녀는 망토 밑에서 길고 구부러진 검을 뽑았다. "자, 그럼. 알룬드가 그냥 와 보라고 날 보낸 건 아니니까."

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당같이 멋진 바다의 여신이라니. 좋아. "할바르에게 다가가야 해."

"앞장서게," 코시마가 말했다..

그들의 앞에는 더 많은 드라우그르가 모여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 둘 앞에서 낫에 베여나가는 밀처럼 쓰러져나갔다. 그들은 이제 100 피트도 채 떨어지지 않게 가까이 다가왔고, 그녀는 할바르가 다리 맨 꼭대기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팔을 휘둘러 드라우그르를 밀쳐 내며 그것들을 아래에 있는 강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보볼 수 있었다.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녀는 어둠에 휩싸이기 전까지는 자신의 위로 지나가는 그림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무언가가 카야의 가죽 갑옷을 날카롭게 옆으로 잡아끌었고, 그와 동시에 조금 전에 그녀가 서 있던 곳의 땅에 투박한 최도끼가 처박혔다.

그녀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준 코시마가 이제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들 둘과 다리 사이에는, 10에서 12피트는 돼 보이고 팔에서는 회색 살점들이 긴 나뭇잎처럼 뻗어 나와 흐늘거리고 있으며, 얼굴에는 소름 끼치는 얼어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바라고스가 있었다. 그는 날개를 한 번 퍼덕인 뒤, 지면에 착지했다.

"지난번에는 날개가 없었는데," 코시마가 중얼거렸다.

"그 칼. 네가 뭘 가지고 있는 지 안다." 그가 거칠고 피비린내가 나는 목소리로 쉭쉭 댔다. "그 황량한 곳에 다시는 나를 가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죽인 수없이 많은 목숨들에 대고 맹세—"

첫 번째 도끼가 날아가 그의 이마에 적중하며 한쪽 뿔에 생채기를 냈고, 맞은 곳에서는 끈적한 피가 거품처럼 솟구쳐 나왔다. 카야가 여전히 들고 있는 두 번째 도끼는 그의 무릎으로 파고들었다. 바라고스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카야는 춤추듯이 그의 손아귀를 피했다. 그녀는 심지어 그가 허리를 숙였을 때 그의 이마에 박혀 있던 그녀의 손도끼를 낚아채기도 했다. "네가 여기 사람들이 애들한테 이야기해주는 무서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건 알지만, 난 여기 출신이 아니거든," 카야는 안전한 거리까지 물러난 뒤 말했다.

바라고스는 짜증 난다는 듯이 울부짖으며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거대한 날개를 한 번 퍼덕이자 단숨에 거리의 반을 좁혔다. 그녀는 공격을 두 번 적중시켰지만, 어느 쪽도 그를 그다지 느리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카야는 몸을 숙여 휩쓸듯이 휘둘러져 오는 도끼를 피했고, 바람이 채찍처럼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뒤에 있던 코시마가 큰 호를 그리며 자신의 칼을 휘둘렀고, 칼날은 바라고스의 철제 갑옷이 마치 물인 것마냥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악마는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더 검고 날개가 달린 형상이 하늘로 솟구쳐올라, 그들과 다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팔다리의 피로감을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손도끼를 고쳐잡았다. 바라고스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걱정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를 통과해 지나갈 수 없다면,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녀와 코시마는 함께 전진했고, 바다의 여신은 아래쪽으로, 카야는 위쪽으로 덤벼들었다. 코시마는 악마가 뒤로 휘두른 거대한 도끼의 둔탁한 부분에 맞아 뒤로 날아갔지만, 카야는 그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는 쓰러지지도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의 한쪽 다리를 그러잡았다. 그녀가 페이징하지 않았다면—이제는 몸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그가 그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척추를 비롯한 전신을 부러뜨렸을 터였다.

그녀는 몸을 굴려서 피했고, 그러는 와중에 다른 도끼 공격을 한 번 더 피했다. 얼마나 더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의 뒤, 드라우그르의 무리 사이로, 뿔이 달린 덩치 큰 형상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넌 언제든 떠날 수 있어.

카야는 자세를 바로잡고 서서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렇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바라고스의 악마들 중에서 첫 번째 악마가 드라우그르들을 옆으로 밀쳐내며 무리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이 더 있었고, 그 뒤로는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앞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했지만, 익숙한 뿔피리 소리가 그녀를 가로막았고, 이번에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 왔다.

Warhorn Blast
Warhorn Blast | Art by: Bryan Sola

그들은 동쪽에서 드라우그르와 악마들 양쪽 모두에게 달려들었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그들의 갑옷과 방패 위로 빛을 비추자 그들의 오래되고 녹슨 황동이—아주 잠시뿐이었지만—새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엘프들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창잡이 한 무리가 창의 손잡이를 지면에 받친 채로, 카야와 악마들 사이에 벽을 형성했다. 그들은 그녀를 돕고 있었다.

"도와줄까?" 그녀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타이바르는 카야가 보기엔 순록처럼 보이는 것 위에 올라타 있었고, 다른 엘프들과 똑같은 녹색 기운이 도는 황동 갑옷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더 키가 크고 더 호리호리한 다른 엘프가 있었고, 그도 타이바르와 마찬가지로 붉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이바르에게서는 본 적이 없는 근엄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카야, 스켐파르의 엘프들의 왕이자 나무 엘프와 그림자 엘프 부족을 하나로 규합한 사람인 해랄드를 소개하지. 게다가, 내 형이기도 하고," 타이바르가 씩 웃으며 말했다.

"폐하, 만나서 매우 기쁘군요."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 왔다. 바라고스가 전열로 달려들어, 창잡이 엘프 하나를 발밑에 완전히 깔아뭉갠 뒤, 자신의 거대한 도끼로 다른 엘프 하나를 두 동강 냈다. 창잡이 여럿이 그의 갑옷 사이에 있는 틈에 파묻혀 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대담해진 나머지 악마들 또한 진격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힘으로 칼을 휘두르며 방패를 후려쳐댔다.

타이바르는 순록에 박차를 가해 뛰어나가, 악마들의 맹공을 버티고 있는 엘프들의 바로 뒤에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그는 엘프들이 입고 있는 갑옷의 뒤에 손을 얹었고, 카야는 그 갑옷들이 자라나면서, 그들의 몸에 완벽하게 들어맞도록 윤곽을 잡으며, 두 배 가까이 두꺼워지는 것을 보았다. 한 악마가 방패를 뚫고 지나가면서 엘프의 강화된 가슴 보호대 위로 자신의 칼을 휘둘렀지만, 그 공격은 갑옷을 맞히고 튕겨 나가면서 불꽃만을 튀길 뿐이었다. 함께하기에 좋은 친구야, 카야가 생각했다.

해랄드의 뒤에서 엘프들이 더 쏟아져나와, 전열의 빈틈을 메웠다. 카야는 잠시 쉬며 숨을 골랐다.

"그러면," 그녀는 엘프 왕을 향해 말했다. "당신의 동생은—"

"바보지," 해랄드가 짧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허풍쟁이이기도 하고. 하지만 거짓말쟁이는 아니야. 내가 이곳에서 실수하는 것을 막아 주었지.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어."

"나도 꽤 감사하고 있어."

"타이바르는 당신이 다리에 가야만 한다고 했어." 해랄드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데려다주지."

"타이바르는 어쩌고?"

그들은 엘프들이 악마와 드라우그르를 상대로 격전을 치르고 있는 전장을 되돌아보았다. 타이바르는 자신의 팔을 그 오래된 황동색으로 빛내면서 성난 바라고스 주위를 춤추듯이 돌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길게 휩쓸듯이 후려치는 공격을뛰어넘은 뒤, 금속으로 변한 주먹으로 그 악마의 턱을 후려갈겼다.

"저 녀석은 지금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이제 출발하지," 해랄드가 말했다.

그는 그녀를 잡아당겨 순록에 앉혔다. 순록은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고, 그녀는 엘프 왕의 허리를 붙들어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그 생물은 여느 훈련된 전투마와 똑같은 우아함과 용기를 보이며 혼돈으로 가득 찬 전장 사이를 누볐다. 때때로 엘프 군대와 싸우고 있지 않은 드라우그르가 그들 쪽으로 다가와 공격을 하려 했지만, 카야는 자신의 손도끼로 그들의 공격을 되받아쳤다. 한쪽 측면에서, 이리저리 비틀린 검은 활을 들고 있는 악마가 활시위를 당겼지만, 그가 화살을 쏘아내기도 전에 해랄드가 손을 휘젓자 활에서 꽃과 덩굴이 돋아나, 놀란 악마의 팔을 휘감으며 그의 목을 향해 빠르게 자라났다.

어느새, 그들은 도착해 있었다. 입구를 감싸고 부채꼴로 퍼져 있는 드라우그르 시체 더미를 제외하면, 다리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것이었다. 주변의 대혼란 속에서 그 다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나무 널빤지 몇 개 위에는 간단한 갑옷을 걸친 남자가 강철 징이 박혀 있는 나무 방패를 들고서는 그녀만큼 피곤해 보이는 상태로 서 있었다. 순록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당신들도 이 다리를 건너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당신이 할바르야?" 카야가 물었다.

"그래. 나 맞네. 그쪽은 스켐파르의 왕인 걸 알겠군. 당신은 누군가?"

"난 카야야. 당신 거라고 생각되는 걸 가지고 있어."

그녀는 등에 달린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둠스카르의 기이한 빛을 받은 그것은 더 강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카야는 그에게 검을 던져 주었고, 검은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돈 뒤, 예전부터 있어 왔다는 것마냥 그의 손바닥 안으로 쏙 들어갔다.

"콜이 만들고 있던 칼이로군—그가 죽기 전에 말이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 칼을 되돌려주는 자가 엘프라 되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는 내가 신이라고 참칭하는 자들을 돕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 해랄드가 맞받아쳤다. "하지만 이 엉망진창인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당신뿐인 것 같군."

할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검이 있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군.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

"시간은 벌어 줄 수 있어," 카야가 말했다.

"내가 세계들을 다시 떨어뜨려 놓을 때까지 이 다리를 사수해 주게."

"이 망할 다리가 뭐가 그리 중요한 건가?" 해랄드가 말했다. "정확히, 뭐가 이 반대편에 있는 거지?"

"사람들," 할바르가 짧게 대답했다. 그런 뒤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검을 무릎 위에 가로로 올려놓았다.

카야는 순록의 등 뒤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드라우그르는 마침내 측면에서 공격해온 엘프 군대에 반응해 반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수적으로 우세했고, 그 차이는 더 많은 드라우그르들이 세계에 난 균열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면서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멀리서, 그녀는 투스케리 부족, 베스키르 부족, 오멘패스탐색꾼들, 그리고 카나 부족의 깃발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녀가 있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할바르는 다리 위에서 무아지경인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검은 안쪽 어디선가에서부터 빛을 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드라우그르들이 전열을 정비한 뒤 일정한 속도로 카야와 해랄드를 향해 진군해오기 시작했다. 드라우그르 위로는 아까보다 더 많은 데드 트롤들이 어기적거리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한 놈은 머리에 있는 피부가 온통 벗겨져 얼음으로 뒤덮인 두개골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악마들은 가죽으로 된 날개를 퍼덕이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건 어리석은 짓이야," 해랄드가 위험을 감지한 순록이 몸을 앞뒤로 흔들자 고삐를 더 세게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맞아," 카야가 타이바르에게서 받은 도끼를 허리띠에서 빼내며 말했다. "아마도 그럴 거야." 하지만, 그녀는 아무 데로도 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악마들이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 위로 솟구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공기가 희박해져 있는 것마냥 하늘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는 패턴을 보였다. 그것은 이내 흩어지며 신성한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세계에 마치 아직도 드라우그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과 같은, 또 다른 균열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균열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하늘이 팽팽하게 맞닿아 있는 곳에서, 그녀는 무언가가 균열 뒤에서 마치 옷감에 손을 밀어 넣는 것처럼 그것을 누르고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균열은 찢어지듯이 열렸다.

Koma's Coil
Koma's Coil Token | Art by: Simon Dominic

균열에서 나타난 그것은 그녀가 알아볼 수 있는 이목구비—납작한 콧구멍, 배배 꼬인 몸통, 독이 들어 있는 송곳니—를 갖추고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 크기가 되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기이하게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거대했던 것이 아니라, 대륙의 크기를 가졌다고 할 만 했다. 그냥 아무 뱀이 아니라, 바로 뱀이었다. 저 뱀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모조품이자 품질이 떨어지는 복사본일 뿐이었다. 그 뱀은 세계수의 그 어떤 나뭇가지도 휘감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 보였다. 아마도 그러고 있겠지, 카야는 생각했다.

"세상에," 해랄드가 그녀 옆에서 속삭였다. "코마야. 우주 이무기시다."

심지어 중력마저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그것은 마치 호기심 어린 듯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이동했고, 머리 위를 미끄러져 가면서 전장의 절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카야는 그것이 공중에 있는 덩치 큰 악마들을 마치 모기인 것마냥 툭툭 털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지나가는 동안 모든 이들—언데드, 엘프, 인간들 모두—이 숨을 죽이자 전장의 혼란이 사그라들며 조용해졌다.

이무기가 카르펠로 연결되는 균열에 다다르자, 그것은 거기서 멈춰 섰다. 그것의 거대한 콧구멍이 한 번, 그러더니 두 번 펼쳐졌다. 그것은 무시무시하고 갑작스러운 속도로 세계의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러는 와중에 꼬리를 휘두르며 근처에 있는 드라우그르 수십 명을 짓이겼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이를 가진 뱀의 몸뚱아리가 얼음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마침내 모두 사라졌다.

카야는 너무나도 안도했기에 코마가 방금 찢고 나온 균열로부터 다른 존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거의 눈치채지 못할 뻔 했다. 그것들은 천사처럼 보였고, 흰색과 검은색, 갈색과 붉은색의 깃털이 돋아 있는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무장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채로, 그들 중 대다수는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그들이 천사가 아니라 발키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에 대해서는 잉가가 그녀에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심판의 중재자이자, 스타른하임에서 영원히 전투와 축제를 벌이는 영웅적인 영혼들을 수호하는 자들이라고. 그들은 공중에서 악마들과 격돌했고, 함께 공중에서 구르거나 서로 강철을 부딪혀 튕겨 나가면서 깃털 달린 날개와 가죽으로 된 막이 이리저리 엉켜 댔다.

Starnheim Unleashed
Starnheim Unleashed | Art by: Johannes Voss

그들 중 오직 한 명만이 날개를 달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는 한 발키리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그 발키리는 그를 카야 쪽으로 데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땅에 닿기 직전에—아마도 10피트쯤 상공에서—날개가 없는 자가 손을 놓았다. 그들 주변의 공기가 단단해지는 것 같더니, 이내 무언가의 파편 같은 모습으로 응축되었다. 곡예사와 같은 속도로, 그는 그중 세 개를 잡아 던졌다. 각각의 파편은 거대한 언데드 토르가 트롤들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트롤들이 평범하게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그것들은 마치 유리를 망치로 내리친 것마냥 산산조각났다.

"멋진 기술이네," 카야가 말했다. "넌 누구지?"

그 낯선 사람은 카야를 향해 몸을 돌렸고, 그의 손에는 그 거울과도 같은 파편이 들려 있었다. 카야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두 손을 들었다. 그것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이미 보았으니 말이다.

"넌 누군데?" 낯선 사람이 말했다. 그는 뒤에 있는 드라우그르가 거대한 고대 장검을 들어 올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를 조심해!" 카야는 도끼를 바꿔 잡고 그대로 던졌다.

낯선 사람은 호를 그리며 덮쳐 오는 무기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까딱했다—다행히도, 올바른 방향이었다. 도끼는 드라우그르의 해골 얼굴을 강타하며 그것을 넘어뜨렸다. 잠시 후,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긴 숨을 내쉬었다.

"난 카야야," 그녀가 말했다. "이름을 알려줄래?"

"니코. 니코 아리스야."

그 이름은 칼드하임의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좋아. 나머지 자기소개는 나중에 하자고."

Shard Token
Shard Token | Art by: Aaron Miller

카야는 드라우그르와 악마들이 잔뜩 뭉쳐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군중들 사이에서 뭔가가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시체로 구성된 병사들을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악마 귀족이라기보다는 야생 짐승에 더 가까워 보이는 바라고스—달리 누가 있겠는가?—가 드라우그르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입고 있던 철 갑옷은 뒤틀리고, 구겨지고, 부서져 있었으며, 도끼는 도중에 잃어버린 것 같았다. 십수 개는 되는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똑바로 서 있었다. 그의 등에는 타이바르가 매달려 있었고, 그의 붉은 머리칼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해랄드가 무언가를 쉭쉭 대듯이 말하자 땅에서 뱀들이 튀어 올랐고, 그것들의 비늘에는 타이바르가 사용한 마법에서 카야가 봤던 것과 똑같은 룬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뱀들은 바라고스의 다리를 휘감아 그를 구속했지만, 바라고스는 맨손으로 그것들을 잡아 뜯었다. 니코는 악마를 향해 거울 같은 파편을 던졌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팔에 붙어 있던 철판으로 그것을 막았고, 파편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바라고스가 앞으로 전진하는 동안, 카야는 타이바르가 자신의 황동 칼날로 악마의 날개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고통과 분노로 포효했고, 타이바르를 잡으려 등 뒤로 손을 뻗었다—그러면서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이것이 바로 카야에게 필요했던 기회였다.

그렇다. 그녀는 지금 영웅적인 일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야는 암살자로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그 동작은 매끄럽고, 간단하고, 거의 힘도 들지 않았다. 페이징도 마법적인 힘도 필요하지 않았다. 카야는 미끄러지듯이 바라고스의 팔을 지나, 도끼를 휘둘러 그의 목을 그었다. 악마는 갑자기 그의 목에서 쏟아져나오는 지저분하고 끈적끈적한 피를 양손으로 틀어막은 채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가, 발톱을 내밀다가—쓰러졌다.

카야에게는 숨을 내쉴 시간이 없었다. 그들의 뒤로 갑자기 물결이 몰아치듯 밀려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머리 위 하늘에서는 신들을 감싸고 있던 것과 같은 신성한 녹색과 보라색과 청색 빛이 물결쳤다. 그녀는 그것이 전장에 나 있는 큰 균열—여전히 드라우그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그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천천히, 마치 상처가 낫는 것처럼, 균열이 줄어들다가 닫혔다.

카야는 드라우그르가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언데드인지는 몰랐지만, 최소한 그것들은 눈치가 매우 느렸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지원 병력이 더이상 추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들판 여기저기에서, 그녀는 발키리와 교전하고 있지 않은 악마들이 마침내 피의 욕망보다 더 큰 겁에 질려 도망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뒤쪽으로 몸을 돌리자, 할바르가 세계의 검을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세운 채로 서 있었다. 검에서는 눈부신 오색 찬란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그의 뒤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다리 건너편 마을에 있는 창문 중 하나가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가 입을 벌리고서 전투의 신이 세계의 구멍을 메꾸고 있는 것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카야는 생각했다. 이 일은 꽤 괜찮은 서사시가 될 거야.

Halvar, God of Battle
Halvar, God of Battle | Art by: Lie Setiawan

"마지막 즈음에는," 타이바르가 이제는 조용해진, 수많은 발자국으로 짓밟혀 진흙탕이 된 전장을 건너며 말했다, "나 혼자서 드라우그르 백 명에 악마 셋을 쓰러뜨렸지. 그래도, 이건 내 생각인데, 사람들은 네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게 될 거야. 바라고스를 죽인 여성—핏빛 하늘의 고관을 쓰러뜨린 자라고.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은데!"

"네가 꼭 그 사람들이 자세한 내용도 다 정확하게 이야기하게 해 줘," 카야가 말했다. 몸 구석구석이 아팠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사실," 타이바르가 발을 멈추면서 말했다. "내가 여기 남아서 그들의 말을 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카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디에 가기라도 하게?"

"당신이 말한 다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고 싶어."

"오? 넌 차원 이동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타이바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어. 그리고 당신이 그 가치를 알려주기도 했고. 당신이 여기 오지 않았다면, 난 이 세계에 어떤 일이 생길지를 몰랐을 거야. 예상해 보자면, 혼돈과 파괴가 더 큰 규모로 발생했겠지. 아마도 저 바깥에는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차원이—사람들이—있을지도 몰라. 칼드하임에 당신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야."

"기억되는 자가 되겠다던 건 어쩌고? 네가 말했던 그 영광은 모두 뒤로 하고 떠나는 거잖아," 카야가 말했다.

"오, 이제 그런 건 더이상 신경 쓰지 않아. 당신이 여기서 한 일을 사람들이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가 말했다. 그 말은 여전히 그녀를 당황시켰다—그는 끔찍할 정도로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거짓말이라고는 모르는, 속이 뻔히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목숨을 구해 줬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그는 그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녀가 말했다. "다른 어딘가에서 만날 수도 있겠네."

"그럴 거야," 타이바르가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업적이 서사시에 남겨지게 될 거고."

그들은 교차로 같은 곳에 다다랐다—한때는 교차로였던 곳이긴 했다. 이제 이곳은 전쟁 후의 쓰레기들이 가득 흩어져 있었다. 검과 창, 도끼와 투구, 그리고 죽은 자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드라우그르가 많긴 했지만, 인간과 엘프들도 있었다. 대기 중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교차로에서는 룬의 눈을 가진 잉가가 브레타가르드의 다른 부족 지도자들—아르니, 시그리드, 핀—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나 부족의 지도자 옆에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던 깡마른 낯선 자가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코라고 했었다.

해랄드 또한 가까이 있었고, 그의 옆에는 황동으로 무장한 의장대가 서 있었다. 그와 핀은 서로를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적어도 무기를 뽑은 사람은 없었다. 둠스카르가 끝나자, 신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은 다른 임무, 다른 의무를 찾아 떠났다—카야는 칼드하임의 이 구석만이 고생을 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카야. 타이바르," 잉가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무사한 것처럼 보이는구나"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카야가 말했다.

"기쁘구나."

"우리는 드라우그르의 전열을 부수고 본진을 몰아냈습니다," 시그리드가 말했다. "정찰대가 낙오한 자들을 뒤쫓고 있지만, 그들을 모두 잡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드라우그들이 따뜻한 날씨에 녹아내리지 않는 한, 몇 년 동안은 그것들과 상대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은 탈출한 악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Sigrid, God-Favored
Sigrid, God-Favored | Art by: Johannes Voss

"그건 브레타가르드 어디나 마찬가지네. 아마도 모든 세계가 다 마찬가지겠지," 잉가가 말했다. "균열은 오랜 시간 동안 열려 있었어. 어떤 것이 흘러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난 알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군," 아르니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말했듯이, 여기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모든 세계에 변화가 일어났지. 엘프들은 스켐파르로 돌아가 스스로를 돌보겠다," 해랄드가 선언했다. "둠스카르가 끝났다고 해도 그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주문은 그런 일들 이상을 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할 것 같군," 핀이 이빨을 앙다물고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카야?" 잉가가 말했다. "아직 잡아야 할 괴물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

"그래," 카야가 말했다. 오멘패스탐색꾼들과 함께 여행을 했던 것이 백 년은 지난 일처럼 느겨지기는 했지만, 그녀는 동굴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난리가 난 뒤에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리고 내 감은 그게 단순히 세계들 사이만을 건너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하고 있어."

"세계들 너머에 뭐가 있는데?" 니코가 물었다.

"차원들.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 카야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다시 설명하기엔 지금은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니코는 앞으로 다가왔고, 그의 눈에는 기이한 열정이 가득했다. "이 차원이란 것들 말인데. 테로스라는 곳도 있어?"

카야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여기서 그 이름을 들었다는 사실은 꽤 믿기 힘들었다—하지만, 그녀가 오늘 하루 동안 겪었던 일 중에 쉽게 믿을 수 있을 법한 일이 무엇이 있었던가? 이 녀석도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은 얘기를 좀 해야겠네."

에필로그

에시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그녀는 신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신들이 필멸의 운명으로부터, 노화로부터, 어둠의 마지막 선고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그녀 덕분이었다. 에시카는 세계수의 수액을 이용해 죽음을 막아 주는 신성의 물약을 만들어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팔에서, 몸에서, 얼굴에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지금쯤이면 땅 위로 쓰러져야 했겠지만, 그녀를 이렇게 만든 괴물은 생살 같은 색을 띤 발톱 하나로 그녀를 붙잡아 세워 두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자신의 검고 텅 빈 눈 구멍으로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그녀와 그녀가 성소에서 수액을 뽑아내 우주의 영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를 발견해냈다. 아무도—아무것도—그녀가 여기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Esika, God of the Tree
Esika, God of the Tree | Art by: Collin Estrada

잠시 후, 그 생물의 목에서 목소리가 솟구쳐 올라왔다—마치 다른 목소리에서 단어를 빼앗아 온 것 같은 이상한 음색과 어조가 새롭게 합성된 것 같은 목소리였다. "네 안에는 굶주림이 충분하지 않다. 생존할 만큼 두려움이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되겠지."

그것은 그녀를 떨어뜨렸고, 나무의 심장부와 연결되어 있는 우물로 걸어갔다.

에시카는 팔을 들어 올리려 애썼다—그녀는 할바르나 토랄프와 같이 용맹한 전사였던 적은 없지만,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싸울 터였다. 그러나, 그녀의 팔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를 쳐서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이라곤 거품 섞인 캑캑대는 소리뿐이었다.

그녀는 무기력한 채로 그 괴물이 우물에 다가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떤 독을 사용하려는 것인가? 이 가장 신성한 장소에 어떤 타락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인가?

Tyrite Sanctum
Tyrite Sanctum | Art by: Volkan Baga

놀랍게도, 그것은 그녀가 만들었던 병 한 개를 꺼내 들었다. 싸우는 동안 그녀에게서 빼앗아 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병을 우물에 담근 뒤 치켜들어 빛에 비춰 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병 안에서는, 세계수의 수액이 모든 세계들의 색을 띠며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에시카의 기준에서는 어느 세계에서든—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괴물은 감동했는지 따위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표본 획득 완료," 그것이 서로 꿰메어 붙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환할 준비 되었음."

에시카는 그것이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방 안의 빛이 희미해져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시야가 흐려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방의 한가운데에서 눈 부신 빛이 빛나기 시작했다—쉭쉭 거리며 불똥을 튀기는 붉은 빛이 점 하나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퍼져 나가며 원을 만들었다. 원이 넓어졌다—이제 그녀는 이것이 오멘패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껏 보지 못한 마법이었다.

차원문의 반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나도 기이하고 낯설었기에, 그녀는 그것이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뻔했다. "수고했다, 보린클렉스. 우리는 완벽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Vorinclex, Monstrous Raider
Vorinclex, Monstrous Raider | Art by: Richard Lu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