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잔인한 만큼, 필요한 만큼
AR 4562년
테페리는 차가운 금속 관 안에 상의를 입지 않은 채로 누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전송 전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일까? 길어 봐야 1분일 터였지만, 그것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관 뚜껑을 빠르게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준비되었는지를 묻고 있는 카야였다.
한 달 며칠동안 테스트를 하면서 한 시간을, 하루를, 일주일을 뒤로 돌아갔고, 그러면서 카야와 사힐리가 실험 전에 미리 적어 둔 비밀 문장들이 현재에 정확하게 보고되는지를 보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 달 내내 이 짓을 했는데도 카야는 여전히 그가 준비되었는지를 물었다. 그가 괜찮은지를. 테페리는 관 안에서 부드럽지만 슬픈 미소를 지었다. 이 새로운 플레인즈워커들은 그가 생각했던 자들과는 달랐다. 인간이 아니었음에도 더 인간 다웠다.
테페리는 뚜껑 안쪽에서 두 번 두드렸다. 그는 준비되었다.
그의 눈 앞에서 희미한 보랏빛이 퍼지면서, 그의 시야를 자외선과 짙은 색조로 새하얗게 만들었다. 가벼움이 그의 손끝과 발가락을 얼얼하게 했다.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안심이 되게 해 주는 생각 한 가지는 카야가 다른 이들을 이끌어 줄 터였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엘스페스, 그리고 제이스도. 선한 자들. 테페리는 숨을 내쉰 뒤 더 편안하게 있어 보려 했다. 그는 렌과 그녀의 노래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금속은 그가 얼마나 오래 누워있든 상관없이 따뜻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물 전쟁에서는 타우노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관 안에 있었다고 했던가? 5년?
"직접 물어봐요," 카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했고, 그의 정신 속에서 약하게 쉭쉭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통해, 그를 위해 말을 했다. 실체와 비실체 사이에 있는 중간 단계에서는, 그들 둘 사이의 차이가 점점 사라졌다.
테페리가 웃자, 카야가 웃었다.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긴장감, 피로. 카야는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있었고, 그의 매개체였다. 더 정확하게는, 그가 그녀의머리 속에 있었다.
"기억해요," 카야가 속삭였다. "하늘에 집중해요.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요."
테페리는 그렇게 했다. 시공 고정 장치의 웅웅대는 소리가 한 단계 더 고조되었다.
"시간은 도첩이고, 당신은 바늘이에요."
꿰뚫는. 소리지르는.
관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테페리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고정 장치의 복잡한 음색이 고조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그 불협화음 너머로 카야와 사힐리가 서로에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고, 카야의 목소리는 그의 정신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는 이 부분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는 그의 불꽃과 영혼이 그의 육체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이 순간을 싫어했—
"가세요."
그는 자신의 몸이 미끄러지는 것을,
그리고 그것과 함께 전송 관의
차가운 금속을 느꼈다.
임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목표를 명확히 해 두었고,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힘이, 무기가, 지식이 있었고, 동료도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 그들에게는 새로운 성배가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그 망할 물건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사힐리는 카른의 설계도와 노트를 바탕으로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었지만, 그녀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술자일 뿐이었다. 성배를 활성화하는 방법에 대한 수수께끼는 기계장치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법에 관련된, 역사 속에 묻힌 주문이었고, 역사는 신뢰할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골고다의 성배는 언어와 고대 빙하를 연구한 학자였던 펠돈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발견되었다. 한편, 그것은 애쉬노드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녀의 주인인 미쉬라가 교체한 카디르의 두개골을 조각해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그것은 도미나리아를 강철과 기름의 꿈으로 뒤덮은 악마인 긱스에 의해 올드 피렉시아에 있는 가장 깊은 영액 우물로부터 건져내진 물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성배는 거인의 이빨을 조각한 물건이고 커 산맥의 코볼드들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고, 탈의 눈물이 굳어진 것, 떨어지는 별이 주문에 의해 얼어붙은 광환, 사르디아의 드워프들이 망치로 두드려 모양을 만든 녹아내린 산의 심장이라는 말도 있었다.
옛 세계에 종지부를 찍은 물건의 시작에 대한 신화들은 차고 넘쳤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는 성배의 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카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었지만, 테페리가 발굴해낸 이야기들은 성배가 우르자에 의해 파괴되었다거나, 자레드 카르탈리온이 산산조각냈다거나, 오래 전에 죽은 용에게 삼켜졌다거나, 얼음에 갇힌 신에게 공물로써 바치기 위해 호수에 집어던졌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었다.
테페리의 계산에 따르면, 후속 조치를 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성배 이야기는 네다섯 개 정도였고, 각각은 서로 모순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고정 장치가, 바늘이, 그리고 도첩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찾아야 하죠?" 사힐리가 물었다. 그녀는 위기 상황에서 테페리가 높이 평가하는 직접적이고 해결책 중심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테페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서류, 두루마리, 원고, 식각, 그리고 고대의 서적들을 내다보았다. 테이블 위를 뒤덮고 있는 그것들은 도미나리아에 전해내려오는 수천 년에 해당하는 전설들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는 하나를 빼고는 모두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테페리는 손을 뻗어 그 역사들을 옆으로 밀어냈고, 뭔가를 찾는 동안 몇 개는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는 일찍이 그것을 읽은 뒤 버렸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사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린 채로 시간 마도사가 귀중한 서류들을 먼지투성이 구석으로 집어던져 대다가 곰팡이가 핀 원고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몸을 일으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유물 전쟁," 테페리가 말했다. 그는 서류를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은 뒤 그것을 열었다. "여기 있네," 그는 곰팡이가 피어 있는 서사시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르자의 아내인 케일라 빈-크룩이 직접 목격했던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이 서사시를 썼네. 많은 버전과 번역이 존재하지만, 다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 우르자가 아르고스에서 성배를 활성화해 전쟁을 끝냈다고 말이야." 테페리는 사힐리를 올려다보았다. "이곳으로 가는 걸세, 형제 전쟁의 마지막 전투로."
"괜찮네요." 사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에 착수할게요."
그는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시간을 가르는 그녀의 바늘이었고,
계속해서 메아리치고,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치는,
영혼이었다.
우르자, 이 관, 성배, 피렉시아인들. 그것들은 테페리가 어떤 더 큰 우주적인 구조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실타래들이었고, 그조차도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는, 이 순간을 움직이게 해 주는 논리였다. 테페리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웅장한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는, 운명의 알 수 없는 템포였다. 테페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그가 지나온 깊은 고랑이 패인 길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뒤에 있는 무언가가 앞으로 다가올 것을 암시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테페리는 이 걱정을 비밀로 했다. 완벽한 시간 마도사가 이렇게까지 몰락했다는 것을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보여 주는 일은 그다지 안심되는 일이 아닐 터였다. 자신이 눈을 가리고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이라는 것을, 바다를 항해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선원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밤이 되면 그는 옛 우르자의 탑 꼭대기 부근에 있는 자신의 방 안에 홀로 서서 잠에 들지 못한 채로 낡아빠진 방바닥을 쳐다보았다.
테페리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둠은 절대적이었고,
그는 떠다녔다, 혼자
혼자서?
테페리는 머리가 아팠다. 이 모든 시공 여행으로 인해, 그는 몇 주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니면 잘 잤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내 잠들어 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관 안에서 테페리는 눈가리개를 하고 간단한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복부에는 붕대가 매여 있었다. 엘스페스가 그의 상처에 손을 얹고 헤일로로 치료해 준 지가 좀 되었지만, 피렉시아의 생물체가 그에게 입힌 상처는 매우 깊었다. 그는 숨을 쉴 때 통증을 느꼈지만, 이것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피렉시아화가 그의 골수를 갉아먹거나 피렉시아인이 바리케이드를 쳐 둔 문을 위협하거나, 어느 쪽이든 죽음의 접근은 꾸준하고 멈출 수 없었다. 다만—
메아리. 시간. 변형이 좀 있을 뿐, 반복되는 역사. 테페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생물이 그에게 번들거리는 기름을 남겼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는 엘스페스, 렌, 조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것들을 저지하는 일에 실패할지를 알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테페리는 숨을 골랐다. 그는 지금이 언제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죽은 것인가? 아니면 어둠 속에 그와 함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인가?
박자를 세
하나, 둘, 셋, 넷,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리는—
테페리가 시간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은 간단하고 진실된 농담뿐이었다. 앞을 향해 한 번만 갈 수 있으며, 그것도 생명의 속도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르자는 이 공리를 깨뜨렸다. 테페리도 그것을 겪어 보았고 거기에 거의 모든 것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만의 시간 관련 문제를 겪은 이후, 그 법칙을 어기는 것을 피해 왔다. 시간을 조작하는 일은 가뭄으로 말라버린 풀바다에 불을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재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운에 맡겨진 것은 뒤따르게 될 불의 힘 뿐이었다.
하지만 들판이 이미 불타고 있다면? 불길이 이미 모든 것을 삼키고 난 뒤라면?
둘 다
바늘과 실, 반짝이는—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은.
은은 시간의 철통같은 법칙을 피할 수 있었다. 우르자는 은이 물리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테페리의 생각으로는 카른을 만든 뒤 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여행은 테페리와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여행은 불길 속에 서서 등유에 몸을 담그는 것과 같을 터였다. 아니, 그들은 직접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기만 하면 됐다.
사힐리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불길에 휘말리러 들어갈 거면, 불꽃이 되어야 하기에 은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람의 정신을 추출해 그것을 과거로 보내면, 그 사람은 관찰하기 위해 남아 있을 수는 있으면서도 과거와 상호작용을 할 수 없을 터였다. 그 반대 또한 참이거나, 최소한 거짓은 아니어야 했다.
서류 상으로, 이건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우르자의 계획도 그랬지’라고 테페리는 스스로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건 어떤 식으로 끝났던가? 화염에 휩싸인 톨라리아, 시간에 찢긴 균열, 그 영원한 지속. 이러한 노력을 정당화할 만큼 큰 위협이 없었더라면, 테페리는 결코 이 원정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큰 위협이 없었더라면, 우르자는 절대로—
그래, 그래, 테페리는 생각했다. 물론.
그리고 마지막에는? 둘 다
자신들의 영원함에 대해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것은 추락하는 것 같고, 춤추는 것 같았다.
AR 85년
테페리는 물에 잠긴 도시의 어두운 방 안에 도착했고, 나중이 되어서야 그곳이 크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그는 한 야만적인 남자가 미쳐서 유령과 암살자들에 대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어야 했다. 그들이 수행했던 어떤 테스트에서도 영혼 상태인 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테페리는 떠났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그가 찾고 있던 순간이 아니었다.
p>AR 28년
테페리는 불타는 하늘 아래의 어두운 골목에 서 있었다. 그는 크룩에 있었다. 그는 탑을 보고 즉시 그것을 알아차렸다. 처음 방문했을 때에 그것들은 부서진 폐허였다. 이제, 그것들은 포위되어 있는 도시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높아지는 비명소리 위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방에 죽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것은 마지막 전투가 아니었지만, 테페리는 잠시동안 그곳에 머물었다. 병사 한 명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테페리는 나중에 그 사람이 입은 것이 팔라지의 군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되뇌였고, 테페리는 그 사람이 되뇌이는 단어가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이해하고 있었고, 애처로운 단어였다.
"아버지," 소년은 숨을 헐떡였다. 소년은 죽었다.
테페리는 입을 꽉 다문 채로 서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관 안에 있는 그의 몸이 꿈틀거렸다.
"아직 아니야," 그가 속삭였다.
테페리가 본 모든 것을 카야도 보았고, 그녀는 이 순간에 대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p>AR 44년
테페리는 토마쿨 남동쪽 어딘가의 기분 나쁜 골짜기를 걸어 지나갔다. 이곳은 그가 며칠 전에 본 것과 똑같은 전쟁이었고, 이제는 수십 년이 지나 있었다. 기계화의 정점이 되어 있었다.
길고 깊은 참호가 대지를 뒤덮었다. 테페리가 그 위로 날아다닐 수 있다면, 그는 진흙으로 된 흉터가 물결치는 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을 터였다. 기계와 인간의 시체가 농부의 밭에 있는 농작물처럼 두껍게 쌓여, 뒤틀리고 부서진 채로 참호와 철조망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비에 젖은 외투를 입고 배낭을 짊어진 군인들의 대열이 행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테페리가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큼이나 영혼이 없는, 살아있다기보다는 죽은 자들의 군대였다.
군대가 지나가자, 구울들이 망자들의 벌판을 돌아다니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시체들을 수확했다. 테페리는 검은 옷을 입은 무시무시한 형체들이 조잡한 수레 위에 인간과 기계의 시체들을 실은 뒤 그것들을 토마쿨 쪽으로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그들 중 하나가 그를 보았다.
테페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곳을 떠났다. 이 기억조차 되지 못한 들판도 그에게는 지옥의 한 곳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마지막 전투는 어떤 공포를 보여줄 것이란 말인가?
AR 4562년
테페리와 카야, 사힐리는 활짝 열린 관 주변에 둘러앉아 있었고, 테페리가 음식을 먹는 동안 카야와 사힐리는 커피를 마셨다. 때는 밤과 아침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더이상 그들 중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았다.
바깥은 조용했다. 카야는 테페리에게 그가 나타나기 한두 시간 전에 엘스페스가 왔다 갔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의 진척 상황에 대해 물어본 뒤 피렉시아인들이 가까이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가깝다'는 게 무슨 말이지?" 사힐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떠나면 문을 굳게 잠가," 엘스페스가 대답했다. 그녀는 다른 플레인즈워커들과 전선에 나가 있었고, 전투의 소음 속에서 소리를 치며 싸웠기 때문에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은 끝까지 안에 갇혀 있었다.
"찾았네," 테페리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언제요?" 카야가 물었다.
"돌아올 때였네," 테페리가 말했다. "나는 보았네, 마치 흉터처럼 말이지. 도첩의 일부가 얼룩져 있었다네, 마치 잉크가 종이 위에 쏟아진 것처럼 말이네. 얼룩진 시간이었지. 아직 그곳에는 가 보지 않았네."
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정 장치가 더이상 체류를 견딜 수 없을 지도 몰라요," 사힐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들 셋 중에서 가장 부드러웠지만, 이 차갑고 금고 같은 방 안에서 가장 잘 울려퍼졌다.
"테페리가 안에 있을 때 고정 장치가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카야가 물었다.
"나도 몰라," 사힐리가 인정했다. "죽는다고 예상해야겠지. 최소한, 육체는 죽을 거야. 그의 불꽃에도 말이야," 그녀는 손을 흔들면서, 손가락을 춤추듯이 움직여 천장 쪽으로 움직였다. "좋은 일이 생기진 않겠지."
"그렇다면 그녀는?" 테페리는 카야 쪽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는 내 매개체일세, 그녀도 나와 함께 그곳에 있었지.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겐가?"
"테페리, 전 고정 장치를 만들었을 뿐이에요," 사힐리가 말했다. "전 기술자라고요. 전 저게 어떻게 실패할 수도 있는지를 알아요. 고정 장치의 마법석이 폭발하거나, 시공의 다리가 붕괴할 수도 있죠. 관이 과열되어서 폭발할 수도 있고요." 사힐리는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전 기계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 지를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영혼이 육체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요."
그들은 사힐리가 그 주제에 대한 마무리를 하게 해 주었다. 그들은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모두 해치웠다. 아무 말 없이, 테페리는 다시 관 안으로 들어가 눈 위에 천을 덮었다.
"준비됐어?" 카야가 사힐리에게 물었다.
"됐어," 사힐리가 동의했다.
"테페리?"
"시작하세," 테페리가 말했다. "다들 잠시 후에 보세나."
카야는 관 뚜껑을 덮었다. 어둠 속에서, 테페리는 미끄러져 내려갔다.
p>AR 63년
우르자는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무릎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를 안에 있는 룬들은 중심부를 향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나 있는 상처로부터 뿜어져나온 피가 그릇으로 흘러들어가, 조각되어 있는 룬들을 진홍빛으로 채웠다.
현재에서는, 카야가 테페리와 대화를 속삭이면서 그가 본 모든 것을 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테페리의 목소리가 아래에 깔려 있는, 좀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사힐리는 고정 장치를 운용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그것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우르자의 이마에 난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그릇으로 떨어져, 룬들에 채워지고 있어. 그는 그릇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있고," 카야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두 손을 관 위에 올려놓은 채로, 땀에 흠뻑 젖어 몸을 비틀거렸다.
미쉬라 기계는 눈사태로부터 회복한 뒤 이제는 용 머리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언덕 위로 돌진하고 있었다. 우르자는 고개를 들어, 반쯤 찢어져 금속 두개골이 드러나 있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동생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어. 성배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일종의 공감대가 공명하면서 격발했을 수도 있겠네. 아마도 한 명이 넘는 사람이 집중해야 할 수도 있고, 고조된 감정 상태가 필요할 수도 있겠어. 아니면 피렉시아 기술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일 수도 있고," 카야가 말했다.
"다른 건 뭐가 있지?" 카야가 물었다.
"눈물. 아주 많은 눈물. 우르자는 절대로 울지 않았어. 하지만 여기에 있는 그는 아주
미쉬라 기계는 이제 언덕 꼭대기에 도달했고, 그 뱀 같은 머리가 그들 위에 높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반은 살점이고 반은 강철인 얼굴로 씩 웃고 있었다. 그것은 승리를 차지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미쉬라는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그릇의 아래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릇의 아래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릇의 아래에서 빛이—
빛이—
p>"멈춰!"AR 4562년
테페리는 현재로 미끄러져 돌아왔다.
그는 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기침을 하면서 차가운 돌바닥 위에 소금 크래커가 섞인 물을 내뱉었다. 그는 옆구리에 있는 상처의 고통에 몸을 떨었다. 현실 세계의 밝음을 막기 위해 쓴 눈가리개의 뒤에서는 여러 가지 색이 만화경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거의 다 됐었네," 그는 카야의 부축을 받아 관 밖으로 나오면서 거짓말을 했다. "내 생각에는 피나 홈의 깊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더군. 사힐리," 테페리가 소리쳤다. "자네의 성배는 나선형인가? 룬들은 어떻지?"
"물론이죠," 사힐리는 고정 장치 아래쪽에서 작은 조정과 수리를 하느라 손을 바삐 놀리면서 소리쳐 대답했다.
카야는 테페리의 이마에 차가운 수건을 가져다 대주었다. "잘 들어요," 그녀는 몸을 휘청이는 그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본 것은 당신의 영혼이 노출된 잔인한 일이었어요."
"쉴 수 있는 시간이 있겠나?" 테페리가 물었다.
"뭐 좀 먹어요," 카야가 질문을 무시하며 말했다.
테페리는 뱃속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아주 조금을 먹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홀짝인 후, 다시 관 안으로 들어갔다. 방 밖에서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서둘러요," 카야가 말했다. "부탁이에요. 이건 저한테도 힘들어요." 그녀의 평소의 태도인, 앞일을 걱정하지 않는 태도는 사라져 있었다.
카야의 말이 옳았고, 테페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그녀 또한 그가 과거로 되돌아갈 때마다 그가 있는 바로 그 곳에 함께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가능한 많은 시간을 주게," 테페리가 말했다.
카야는 그들의 방 문 앞에 쌓아놓은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다가 다시 테페리를 쳐다보았다. "마지막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관 뚜껑을 닫은 뒤 빗장을 거세게 잠갔다.
정지 상태인 관의 고요함 속에서, 테페리는 자신이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고 느꼈다. 지금은 따뜻했고, 편안했고, 그의 땀 냄새가 났다. 그는 숨을 내쉬면서 카야가 그녀가 맡은 일을 해 주기를 기다렸다.
관 뚜껑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그녀의 두 손이었다. 그의 눈가리개 너머로, 밝은 보랏빛 소용돌이가 소리 없는 불처럼 안쪽 뚜껑 속에서 져나갔다.
그의 육체가 떨어져나갔다. 그는 어디에나 있었다.
테페리가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현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과거의 구분. 사힐리의 시공 고정 장치와 카야의 추출과 매개 작용의 도움을 받아, 실시간과 과거를 넘나드는 일은 테페리에게 쉬운 작업이었다. 어려운 것이라고는 피로와 탐색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어떤 지점으로든 돌아갈 수 있었지만 우선 그 순간을 발건해야만 했다. 그 여행은 그를 지치고 쇠약해지게 만들었다.
테페리는 가능한 한 그의 두려움을 한켠으로 제쳐두었다. 그는 당면한 과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해 보려 했다. 한 달 동안 꼼꼼하게 수색을 진행하여, 그는 마침내 가장 절박한 순간에 필요한 순간을 발견해냈다. 피렉시아인들은, 문자 그대로, 문 앞에 다가와 있었다.
테페리는 그의 마음 속으로는 밤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창공 아래에 홀로 서서, 그가 형제 전쟁이라고 알고 있는 어두운 성운을 찾아 헤맸다. 그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고, 그의 영혼은 단숨에 수천 년을 뛰어넘었다. 그 안은 무(無)가 테페리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질감으로 패턴화된 다양한 어둠이었다.
그는 그가 마지막 전투이기를 바랬던, 흥미로운 칠흑 같은 얼룩을 발견했고 바늘이 옷감을 꿰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검은 하늘. 비바람이 몰아치는 해변. 똑딱거리고 경련하면서 여전히 적들을 향해 움직이려 하는 금속의 폐허들. 두 개의 거대한 구조물이 거세게 타오르는 고목 위에서 함께 무너져내렸다. 그의 뒤에서는 기름이 번들거리는 파도가 일렁이면서, 얼룩진 모래 위로 시체들을 이리저리 밀고 당겼다.
아르고스. 마지막 전투. 다시 한 번,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AR 63년
이제 미쉬라의 기계가 언덕 꼭대기에 도달했고, 그 뱀 같은 머리가 그들 위에 높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반은 살점이고 반은 강철인 얼굴로 씩 웃고 있었다. 그것은 승리를 차지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미쉬라는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그릇의 아래에서 빛이 번쩍였다—
모든 것이 멈췄다.
그것은 완전히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손짓 한 번으로, 테페리는 시간의 진행을 반으로 나누는 일을 무한 번 반복했다. 테페리가 관찰할 수 있는 한 시간은 얼어붙었다.
시간을 조종하는 것은 마치 신의 것인 것과 같은 놀라운 힘이었다. 테페리는 그 힘이 파멸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힘을 신중하게 사용해 왔다. 그는 해답이 관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순간에 우르자가 보이는 움직임, 감정, 그리고 그의 말의 모든 세부사항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려 했다. 그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려 했다. 심지어 비마저도 주문을 구성하는 부품일 수 있기에 염두에 넣었다.
이 모든 세심함은 그에게 아무런 보람을 안겨주지 않았다. 그가 본 것 중에서 사힐리가 만든 성배의 그릇의 복제품을 따뜻하게 만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 너머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테페리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 일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모든 것이 잘못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시대에는 이미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카른은 떠났고, 피렉시아인들은 도미나리아에 다시 있었으며, 자야는 죽었고, 그들의 마지막 보루는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이겠는가? 테페리는 생각했다. 다차원의 종말?
상황이 그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그를 보호해주었던 무한한 반감 또한 그를 멀어지게도 했다. 그는 그의 시간을 우르자의 시간과 일치시켜야 했다.
그것은 끔찍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테페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저울질했다. 우르자는 성배가 폭발했을 때 죽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언제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몰랐지만, 테페리는 젊었을 때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톨라리아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르자가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이 그가 유령이라고는 해도 성배의 폭발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 마법물체는 단순한 폭탄 그 이상이었다. 열두 세계의 조각, 빙하기, 지난 4천년 동안 있었던 수많은 중요한 사건들 모든 것이 이 순간 이후에 일어났다. 그의 가족도 이 순간 이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테페리가 깊이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했을 터였다. 행동에 나선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존재는 보장된 것이 아니라고.
테페리는 시간을 붙들어 두는 일을 멈췄다.
다차원이 찢기며 열렸다.
모든 것이 뒤따라왔다.
??????
우르자에게서 남은 부분이 아르고스의 땅 한 구석에 책상 다리로 앉아있었다. 성배는 그의 무릎 위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릇 안에는 얼어붙어 있는 하얗고 세찬 빛이 가득 차 있었다.
테페리는 부드러운 색조를 띤 영혼인 상태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성배가 내뿜는 빛 때문에 우르자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폭발 속에서 플레인즈워커의 실루엣을 보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들 둘은 함께 텅 빈 공허 속에 홀로 있었다. 그들 아래에 아르고스의 작은 조각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고, 그 외의 사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테페리에게 그 광경은 마치 그들이 구름의 배 안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르자. 테페리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얼마나 많은 인생을 보냈고, 얼마나 많은 목숨을 보냈던가? 테페리는 우르자에게로 걸어가 성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당신에게 미래에 대해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테페리가 우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미래고, 제 현재지요. 모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르자가 고개를 들었고, 그의 해골은 씩 웃고 있었다. "뭐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테페리가 강조했다.
"흥미롭군," 우르자가 말했다. 그는 성배를, 그릇 바닥의 빛나는 지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을 바라보았고, 그 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형체가 없는 공허에서 행복한 소식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가 중얼거렸다. "이곳은 사후세계인가?"
"아닙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럼 됐네," 우르자가 말했다. "자네는 누군가?"
"그건 잠시 후에 말하죠. 저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자네는 내 미래에서 왔다고 했지," 우르자는 테페리의 주장을 무시한 채로 말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나와 대화하는 것이 무언가를 바꿀 지 아닐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르자는 영원의 광활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면 더 안 좋을 수도 있지.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 버릴 수도 있고."
테페리는 망설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저 우리는 이 기회를 잡아야 했습니다."
"우리," 우르자가 말했다. 그것은 대화처럼 제시된 질문이었다. "자네가 내게 말하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거나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겠지."
"그런 것 같군요," 테페리가 중얼거렸다. 두 남자는 조용해졌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성배를, 그 파멸적인 물건을 쳐다보았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지금 위대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될 존재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그는 성배의 가장자리를 툭 건드렸다. 이제는 그릇의 가장자리까지 차올라 넘쳐흐르는 물처럼 팽팽해져 있는 빛의 중심부가 흔들렸다. 테페리는 성배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파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 시대의 끝과 다른 시대의 여명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뭔가?" 우르자가 물었다. 그는 그릇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대부분은 성배의 폭발로 타서 없어졌지만, 그는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검게 그을린 살점이 벗겨져 긁힌 뼈가 드러났고,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는 더 밝은 빛이, 불꽃이 합쳐지고 있었다.
그의 불꽃. 이 순간에, 우르자는 그가 되었던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당신을 신이라고 부를 겁니다." 테페리는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저주라고 부를 테고요. 저는 당신을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을 '플레인즈워커'라고 알고 있지요."
우르자는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그의 두개골은 검게 변해 바스러졌으며, 그의 어깨와 갈비뼈는 불에 타 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는 온전한 육체를 가졌을 때처럼 강렬했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안 그런가?" 우르자가 물었다. 그는 슬픈 것이 아니라 지친 것처럼 들렸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지친 목소리였다.
"제가 지금 여기에 있다면," 테페리가 속삭였다, "당신이나 제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시계바늘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무언가," 우르자는 그들 주위를 둘러싼 형체 없는 공허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그는 상반신 전체가 회색빛 재 덩어리가 된 채로, 휘청이면서 두 발로 일어섰다.
"제가 잠깐 일장연설을 늘어놓아도 되겠습니까?" 테페리가 물었다.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가지게," 우르자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앉아 있던 테페리는, 사람들이 풀밭에서 하는 것 마냥 온 몸에 햇빛을 쬐기라도 하는 듯이 뒤로 누웠다. "시간을 표현하는 은유들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테페리가 말을 시작했다. "다들 맞는 말이지요, 어느 정도는 말입니다. 그들은 다 함께 이해의 모자이크를 형성합니다." 테페리는 우르자가 땅 가장자리로 발을 내딛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에게 얼굴이 남아있었다면, 테페리는 그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저 바깥에 무언가가 있네," 테페리가 속삭였다. "서두르게."
"사람들은 시간이 강처럼 흐른다고 합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앞으로만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명백한 짜증을 내비치는 와중에도, 우르자는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테페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완전히 틀린 것도,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관점에 의해 제한된 것일 뿐이죠. 그러니까, 인간들 말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보며 존재의 프리즘에 대한 한 가지 시각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간을 강처럼 상상하는 일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시간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말이죠," 테페리는 그들 주위를 둘러싼 공허 속에서 손을 휘저었다, "우리의 비유도 진실의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 강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표시해 주는 매개체이죠. 그것들은 우리보다 더 큰 규모로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또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기도 합니다. 마르둔 강이라고 해 보지요. 우리가 강을 따라 걷는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이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거나, 아무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작은 나뭇가지가 떠 있다거나, 다른 강물과 합쳐지거나, 호수가 되는 곳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호수는 강이 멈추는 장소들입니다. 시간이 강이라면, 그 호수들은 시간이 멈추는 순간들입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제 생각엔 우리가 그런 것들 중 하나에 있는 것 같군요."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른 후, 우르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째서지?"
테페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사실에 기반해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저도 당신만큼이나 이곳에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죠."
"미래에는 내가 자네의 스승이 된다고 했나?"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뒤에 생기는 일이죠," 테페리가 말했다.
우르자는 코웃음쳤다. "내 교육학에 노력이 필요하겠군," 그가 말했다. 투덜거렸지만, 불친절하지는 않았다. 테페리는 젊은 시절에 톨라리아에서 테페리를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이 늙은 염소가 자신의 결정을 긍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다음은 뭔가?" 우르자가 말했다. "자네가 알고자 하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하는 게 무엇이지?"
"그것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겁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그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됐다. 우르자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했다. 그의 동생, 그리고 코일로스의 악마.
"당신은 피렉시아인들과 싸우는 데에 평생을 바치게 될 겁니다. 우선은 그것들이 당신의 동생에게 한 일에 대해, 그 후에는 그것들이 당신에게 할 일에 대해 말이죠."
"이걸 그렇게 부르고 있나?" 우르자가 중얼거렸다 "한 종족이 통째로 있다니
우르자는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것으로 한데 합쳐지고 있었다.
플레인즈워커가 되고 있었다.
"당신은 패배합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피렉시아인들이 승리합니다. 당신은 수천 년 동안 그들과 맞서 싸우지만, 항상 그들이 승리합니다. 당신은 세계가 하나가 아니라 헤아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죠. 각각은 독립적인 차원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함께 모여 다차원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묶여 있습니다. 당신은 수백 년 동안 이 차원들을 여행하면서 그곳들을 여행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다가, 당신은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는 곳인 학교를 설립해서 시간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고 시도합니다. 성공은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해낸 겐가?"
"큰 어려움이 있었죠," 테페리는 지친 기색을 띤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르자의 몸을 감싼 빛의 테두리 안에서 피부가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치 하얀 천 위에서 복숭아를 으깬 것처럼 그의 이목구비를 서서히 채워 나갔다. 그가 얼굴을 찌푸릴 때쯤, 타이밍 좋게 입술이 다시 만들어졌다.
"요점만 말하게," 우르자가 말했다. "모든 노력에도 불고하고, 나는 피렉시아인들을 저지하지 못하는군. 자네는 내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시간을 여행해서 여기에 와 있고. 왜지?"
테페리는 옛 스승의 목소리에 담긴 고통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과 마주한 순간 속에 미래에서 찾아온 필사적인 남자와 함께 갇힌 채로, 자신의 전쟁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의 최후의 행동은 그에게 어떠한 평화도 가져다주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전쟁을 막고 있던 문을 열었을 뿐이며, 파멸의 흔적은 피할 수 없고 수천 년 동안 이어지며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가 더 친절한 사람이었다면, 테페리는 말을 멈췄을 터였다. 그는 우르자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았을 터였다.
나도 그만큼이나 잔인한 건가? 테페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필요한 만큼? 시간만이 말해주리라.
"피렉시아인들이 돌아왔습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제 시간대에는 그들이 다차원 전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제 육체는 당신의 탑 안에 누워 있는 채로, 우리같은 다른 플레인즈워커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죠. 피렉시아인들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려 하고 있죠."
우르자는 이제 거의 완전해져 있었다. "왜 우리가 처음 피렉시아인들을 물리쳤을 때로 되돌아가지 않고?" 그가 물었다. "그때 있었던 일이 지금보다 훨씬 안 좋은 게 있었나?"
"아닙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그는 잘피르를 생각했다. 시브를 생각했다. 신기루 전쟁에 대해 생각했다. 찢겨 나간 시간과 우르자의 분노를 생각했다. "그 때로는 안 갑니다. 절대로."
"그렇다면 왜 지금이지?"
"성배," 테페리가 말했다. "제 시간대에 저희는 이것의 복제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낙원이라고 생각할 만한 차원에서 온 영민한 여성인 사힐리가 이 장치를 다시 만들어냈습니다. 저희가 알아내야 하는 것은 이것을 활성화하는 방법 뿐입니다."
"자네는 그걸 피렉시아인들에게 사용할 생각이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이 싸움이 끝난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우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비켜 주게," 그는 테페리에게 물러나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우르자는 성배로 다가가 그 위에 멈춰섰다. 모든 것을 없애는 빛이 곧 저물어 가는 태양을 가릴 정도로 커질 터였다.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릇의 가장자리를 잡아 다시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한 번 그의 육체가 타서 재가 되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아래에 있는 빛의 그물망이 드러났다.
테페리는 수복 이전에는 그 힘이 어땠는지를 떠올렸다. 육체는 그릇일 뿐이었고 불꽃이 그보다 더 큰 존재였다.
"나는 그걸 이렇게 잡았지," 우르자가 말했다. 그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상반신이 다시 타오르면서 그의 목소리는 잠시 가늘어졌다. 그럼에도, 성배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압도적이었지만, 테페리는 여전히 그 훨씬 밝아진 빛 안에서 어째서인지 우르자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존재를.
"나는 내 동생이 나를 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그것 안으로 떨어지게 했지," 우르자가 말했다. "나는 테리시아의 무게가 내 심장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지," 그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온 세계가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 난 룬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들을 읽을 필요가 없었어." 그는 그릇의 안쪽을 빛나는 손가락으로 훑었다. "전쟁 중에 한 여성이 있었네, 라트-남 대학에 있는 허킬이었지." 우르자는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테페리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테페리는 경청했다. 우르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열쇠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 우르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만, 내가 틀렸었어. 허킬의 명상은 진짜였지. 스스로를 통로로 만들어
테페리는 공포와 함께 이해했다. 발견해야 하는 알려지지 않은 주문 따위는 없었고, 우르자가 성배를 활성화하기 위해 작동시킨 비밀스러운 기계장치도 없었다. 허킬의 명상은 잘 기록되어 있었다. 성배의 새겨진 룬은 사힐리의 복제본에도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알려져 있었고 이해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이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성배의 폭발을 격발하는 장치는 주문이나 마법물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다 된 것 같군," 우르자가 테페리의 머리 위에 있는 공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용하고 천천히, 무한대의 하늘을 가로지르며 금이 가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텅 빈 공간으로부터, 무수한 검은 손가락들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그림자들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오래 이곳에 머무른 것이었다.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이것을 기억하게 될 것 같나?" 우르자가 물었다.
"아니오, 그럴 것 같지 않군요," 테페리가 대답했다. "우리의 호수는 방금 다시 강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우르자는 일어섰다. "이 일이 수천 년 계속된다니," 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맙소사, 난 준비가 안 됐어."
"되어 있습니다," 테페리가 말했다. "그래야만 해요."
우르자는 루비와 에메랄드 빛을 발하는 두 눈으로 테페리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말해 주지 않은 게 있군," 그가 말했다. 자네의 이름이 ㅁ—"
공허가 부서졌다.
어둠이 밀려들었다.
p>AR 64년
그리고 테리시아에는 정적이 흘렀다.
p>AR 69년
한때는 푸르름을 자랑하던 해안선이 이제는 무수한 파편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대한 나무들의 표류물들과 바위의 분출물들이 해안선 안쪽으로 수 마일이나 들어오면서, 해변을 따라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파괴된 지역을 만들었다.
잔해 중에는 길이가 7피트, 너비는 3피트, 높이는 3피트 정도 되는 큰 금속 상자가 있었다. 그것은 파괴의 힘에 겉이 손상된 채로 한때 아르고스를 구성하고 있었던 다른 잔해들 사이에 같이 놓여 있었다.
우르자는 상자 옆에 서서 뚜껑을 손으로 눌렀다.
상자의 윗부분이 바퀴를 따라 미끄러지면서, 그의 이전 제자의 잠든 모습을 드러냈다. 타우노스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곧바로 일어나 앉아, 숨을 헐떡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피부는 떨어져나가야 했지만 갇혀 있는 상태에서는 갈 곳이 없었던 각질들로 뒤덮여 있었다.
우르자는 동상처럼 참을성 있게 서서 타우노스가 평정심을 되찾기를 기다렸다. 타우노스는 심호흡을 한 뒤,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그런 뒤 그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참상을 둘러보았다.
"다 끝났다," 우르자가 상자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타우노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은신처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우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우노스가 말했다, "당신의 동생은요?"
"죽었지," 우르자가 말했다. "나는
"여기는 어디인가요?" 타우노스가 물었다.
우르자는 주변을 둘러본 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티아의 남쪽 해안이네."
타우노스는 눈을 깜빡였다. "바뀌었군요."
"세계가 바뀌었지," 우르자가 말했다, "우리가 한 일 때문에, 내가 한 일 때문에 말이야."
타우노스는 상자 밖으로 기어나왔고, 우르자는 그를 도왔다. 타우노스는 갇혀 있던 것 때문에 몸이 약해진 것을 느끼면서, 각질을 벗겨내고 혈액순환을 회복하기 위해 팔과 다리를 문질렀다. 해변은 추웠고, 타우노스가 어린 시절에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추웠다.
"전 제자인 자네에게 마지막 과제를 내려야 할 것 같군," 우르자가 말했다.
"말씀하시죠," 타우노스가 말했다.
"서쪽으로 가게. 연합의 남은 자들을 찾게, 상아탑의 학자들을 말이야. 그들에게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 주게.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실패했는지 말해 주게. 그들이 똑같이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자네가 그렇게 해 줄 거라고 믿네."
타우노스는 그 나이든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우르자가 더이상 나이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금발이었고, 어깨는 곧게 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나이보다 훨씬 더 오래되어 보였고, 필멸자의 고통을 넘어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언제든지 믿으셔도 됩니다," 타우노스가 말했다. "어디로 가시나요?"
우르자는 그의 전 제자로부터 몸을 돌렸다. "멀리," 그는 잠시 침묵한 후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타우노스가 말했다. 우르자는 타우노스의 귀에는 불편한 웃음처럼 들리는 소리를 냈다. "이 대지는 더이상 내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네. 나는
타우노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우르자는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테리시아의 대지 너머에, 도미나리아의 세계 저 너머 멀리에 있는 장소들이 있네. 내가 성배에 내 기억을 쏟아부었을 때, 그곳들을 보았지. 내게는 여태껏 본 적이 없던 수많은 것들이 보인다네."
그가 타우노스를 향해 돌아서자, 대학자는 우르자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더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라, 녹색, 백색, 적색, 흑색, 그리고 청색의 다양한 색조의 빛을 뿜어내고 있는 두 개의 보석이었다.
강화 보석과 약화 보석이 살아남은 쪽의 형제의 안에서 마침내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한 순간뿐이었다. 그 후 우르자의 두 눈은 정상적이 되어 있었다. 우르자는 미소지었다. "나는 떠나야만 하네," 그는 한 번 더 그 말을 반복했다.
타우노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인간의 수정 같은 눈을 가진 남자가 일어섰다. "자네는 오랫동안 학생으로 있었지," 우르자가 말했다. "이제는 가서 스승이 되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우르자는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서서히 색이 빠져나가면서 외곽선만을 남겼고, 그것도 이내 희미해졌다. "그들에게 우리의 승리와 실수를 가르치게," 희미한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케일라에게는
"예전 당신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의 되려던 모습을 기억해 달라고 말이죠," 타우노스가 그 말을 끝맺었지만, 그는 허공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우르자는 이 세계를 떠나 그의 수정 같은 눈만이 볼 수 있는 더 큰 세계들로 향했다.
타우노스는 주의를 둘러보았지만, 생명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서쪽으로 가기 전에 최악의 참상을 지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내륙으로 이동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익숙한 지형지물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우노스는 그 참상이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타우노스가 내륙으로 걸어가는 동안, 차가운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첫 눈송이가 그를 맞이했다.